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 RE100 홈페이지.(사진=RE100)
▲ RE100 홈페이지.(사진=RE100)

전 세계가 온실가스와 '총성없는 전쟁' 중입니다. 인류는 산업혁명 이후 산업현장에서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를 무분별하게 사용한 결과 지구온난화와 이상기후, 생물 다양성 파괴 등으로 생존에 위협을 느끼게 됐습니다.

앞으로 지표기온이 섭씨 2도 이상 높아질 경우 인류는 심각한 위협에 직면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글로벌 캠페인에 기업들의 참여도 활발합니다. 대표적인 게 RE100인데요. 

RE100은 '재생에너지(Renewable Energy) 100%'의 약자입니다. 글로벌 비영리단체인 '기후 그룹'과 글로벌 환경경영 인증기관인 '탄소정보공개 프로젝트(CDP)'가 2050년까지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량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목표로 2014년부터 추진 중인 캠페인입니다.

그런데 국내 배터리 3사 중 'RE100'에 가입한 제조사는 LG에너지솔루션 뿐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국내외 기업들은 탄소중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ESG 경영을 강화하는 추세죠. RE100에 대한 참여도 늘고 있는데, ESG 경영을 전면에 내세운 국내 배터리 업체들의 참여는 아직까지 저조한 편입니다.

11일 <블로터>는 RE100에 참여한 319곳의 기업을 살펴봤는데, 한국 기업은 8곳(2.5%)에 그쳤습니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 △에어비앤비 △인텔 등 IT기업을 비롯해 BMW와 지멘스, 월마트 등의 참여도 눈에 띕니다. 지난 2월 기준 RE100에 가입한 일본 기업은 50곳을 돌파했는데, 국내 기업의 참여는 일본 기업보다 훨씬 저조합니다.

국내 기업들은 △SK하이닉스 △SK텔레콤 △SK㈜ △SK머티리얼 △SK실트론 △SK실트론 등 SK그룹의 6개 계열사와 LG에너지솔루션 등 대기업이 RE100 참여기업으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공기업인 한국수자원공사도 RE100에 참여했습니다.

▲ LG에너지솔루션이 국내 배터리 3사 중 유일하게 RE100에 가입했다.(사진=RE100)
▲ LG에너지솔루션이 국내 배터리 3사 중 유일하게 RE100에 가입했다.(사진=RE100)

△현대자동차 △기아 △현대모비스 △현대위아 △현대트랜시스 등 현대차그룹의 계열사 5곳은 이달 중 RE100에 가입신청서를 낼 계획입니다. 현대차그룹 계열사의 참여로 국내 기업의 참여는 13곳으로 늘어납니다. 이외에도 ESG 경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여타 기업들도 참여를 준비하고 있어 한국기업의 수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죠.

무엇보다 배터리 제조사들의 참여가 저조한 점이 눈에 띕니다. SNE 리서치의 '전기차용 배터리 사용량' 기준 10대 제조사 중 RE100에 참여한 곳은 2위인 LG에너지솔루션(점유율 23.1%)과 3위인 파나소닉(14.7%)이 유일합니다. 5위인 삼성SDI(5.3%)와 6위인 SK이노베이션(5.1%)은 11일 현재까지 RE100의 참여기업 명단에 빠져 있죠.

특히 SK이노베이션의 참여가 빠진 점은 의외입니다. SK이노베이션은 그룹 계열사 중 ESG 경영에 관심이 가장 높다는 평입니다. 정유업의 특성상 탄소 배출량이 많고, 탄소중립이 화두로 부상하면서 탄소 배출량을 빠르게 줄여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SK이노베이션은 최근 계열사 경영진이 총출동해 '파이낸셜 스토리'를 설명했습니다. SK이노베이션은 "5년간 30조원을 투자해 회사를 탄소에서 그린으로 완전히 바꾸겠다"며 "탄소 배출량을 2030년까지 현 배출량의 50% 이상 줄이겠다"고 강조했죠. 하지만 RE100 가입은 미룬거죠.

SK이노베이션은 "회사 단위 가입 조건에 따라 이번엔 가입을 못했다"며 "글로벌 전기차 OEM과 기관투자자 요구를 감안해 RE100과 동일한 목표를 세우고 실행한다"고 말했습니다. SK이노베이션은 정유사업과 석유화학제품 사업, 배터리 및 소재 사업을 중간 지주사 형태로 영위하고 있습니다. 배터리 사업을 제외한 나머지 사업은 계열 회사가 운영하고 있습니다.

▲ SK이노베이션 계열회사 2019년 기준 에너지 사용량.(자료=금융감독원)
▲ SK이노베이션 계열회사 2019년 기준 에너지 사용량.(자료=금융감독원)

하지만 SK이노베이션의 전력 사용량만 보면 RE100 가입 대상입니다. SK이노베이션의 2019년 기준 에너지 사용량은 1085GWh(3908테라줄)입니다. 100GWh 이상 에너지를 사용하는 기업은 RE100에 가입할 수 있습니다. SK에너지와 SK종합화학, SK인천석유화학의 전력 사용량을 합하면 5만5291GW(19만9106테라줄)에 달합니다. SK텔레콤(5332GW)의 10배 이상 높고, 현대차(8935GW)와 비교하면 6배 가량 많죠.

삼성SDI도 RE100에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삼성전자 등 삼성의 모든 계열사는 RE100에 가입하지 않은 실정입니다. 삼성은 부품 납품사인 애플과 BMW에서 RE100 가입을 요구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삼성전자는 애플에 반도체 등 부품을, 삼성SDI는 BMW에 배터리를 납품하고 있죠. BMW와 애플은 RE100에 가입돼 있는데 주력 납품사는 RE100에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 배터리 3사 에너지사용량. LG에너지솔루션은 2020년, 나머지는 2019년 기준.(자료=금융감독원)
▲ 배터리 3사 에너지사용량. LG에너지솔루션은 2020년, 나머지는 2019년 기준.(자료=금융감독원)

올리버 집세 BMW그룹 회장은 지난해 "우리는 5세대 배터리 셀 납품업체와 (제품 생산에) 친환경 전력만을 사용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재생에너지로 제품을 생산한 업체를 대상으로 납품을 받겠다는 설명입니다.

RE100에 가입한 기업은 2050년까지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양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해야 합니다. 당장은 아니지만 BMW에 납품할 기업들은 재생에너지 사용 압박이 더해질 수밖에 없죠. 삼성SDI의 2019년 기준 전력 사용량은 2225GW(8033테라줄)입니다.

이렇듯 LG에너지솔루션만 국내 배터리 3사 중에 유일하게 RE100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은 300번째 참여기업으로 RE100에 가입했고 2030년까지 생산에 필요한 모든 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는 계획입니다.

▲ 국내 대그룹 RE100 참여현황.(자료=RE100, 공정거래위원회)
▲ 국내 대그룹 RE100 참여현황.(자료=RE100, 공정거래위원회)

RE100 참여현황을 그룹별로 살펴보면 3위인 SK가 8곳(계열회사 비율 5.4%), 4위인 LG가 1곳(1.4%)이 RE100에 가입했습니다. 2위인 현대차는 계열사 5곳(9.4%)이 이달 중 가입할 예정입니다. 1위인 삼성과 △롯데 △포스코 △한화 △GS △현대중공업 등 10위권에 속한 대그룹은 한곳도 RE100을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ESG 경영이 국내 재계의 최대 화두인데, 관련 캠페인의 가입 실적을 보니 초라해보이네요. ESG경영을 환경이 아닌 수익의 관점에서만 보는 게 아닐까 의심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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