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로 일하는 분들 중에 주변기기들이 화려한 분들 계실 겁니다. 본인이 그럴 수도 있고, 내 직장 동료 중 그러신 분들도 있겠죠. 클래식한 느낌의 기계식 키보드에 본체에선 총 천연 빛이 쏟아져 나오고 모니터는 커브드에 듀얼, 트리플을 쓰는 분들입니다. 혹자는 왜 거기에 돈을 쓰나고 하지만, 글 쓰는 사람이 비싼 필기구를 서슴지 않고 고르고 운동하는 분들이 장비를 신중히 구입하듯, PC 작업을 주업으로 삼는 사람이 주변기기에 돈 쓰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 (영상 디자인=김진영)
▲ (영상 디자인=김진영)

블로터 ‘테크쑤다’의 이번 주제는 ‘기계식 키보드’입니다. 누를 때마다 따각따각 소리가 나는 그 키보드입니다. 버튼마다 ‘스위치’(축)가 달린 키보드로, 버튼 안에 금속 접점과 스프링 등이 들어갑니다. 아주 클래식한 방식인데, 사실 이것보단 타건음이 작은 키보드가 대중에 더 익숙하죠. 회로가 인쇄된 얇은 막(멤브레인 시트) 위에 러버돔을 조합한 게 일반적입니다. 1990년대 이후 나온 멤브레인 키보드는 대량 생산이 가능해 싸게는 1만원 아래로 가격이 저렴하고 성능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기계식 키보드가 꾸준히 팔리는 이유는 ‘취향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여러 부품이 들어가며 뭐가 들어갔느냐에 따라 키보드 질감이나 타건감, 타건음 등에서 차이를 보이죠. 원하면 사용자들이 따로 부품을 구해 커스터마이징 하는 것도 가능합니요. 여기에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이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시각적 효과도 생겼습니다. 예전에는 가격대가 10만원 이상부터 시작했다면, 오늘날엔 2~3만원대 저가 제품도 생기며 대중성을 얻고 있습니다.

저희는 가격대별로 저가(콕스 ‘앱코 CK 01’·3만원대)와 중가(체리 ‘MX Board 2.0S’·7만원대), 고가(더키 ‘ONE 2’·12만원대) 기계식 키보드를 각각 준비했습니다. 앱코와 체리, 더키 모두 다양한 가격대의 제품을 만들지만,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제품을 중심으로 선정한 점 참고 바랍니다. 3개 제품은 모두 ‘갈축’이며 각사로부터 대여했습니다. 제품 리뷰엔 노트북 리뷰 전문 사이트 ‘JN테크리뷰’의 게사장이 함께 했습니다.

기계식 키보드 ‘찍먹’해보기
기계식 키보드 하면 한 번쯤 ‘청축’이니 ‘갈축’이니 ‘적축’이니 하는 말을 들어봤을 겁니다. 이건 키보드의 스위치를 뜻합니다. 플라스틱 버튼 구조물 속에 스위치가 숨어있는데, 그 형태에 따라 축의 종류가 달라지며, 그걸 청색·갈색·적색·은색·흑색 등으로 구분한 겁니다. PC방에 가보시면 아시겠지만 특유의 타닥타닥하는 시끄러운 소리는 대부분 청축 키보드입니다.

구조를 설명하긴 무리가 있으니 현재 가장 대중적인 ‘체리’ 사의 방식을 차용해 보겠습니다. 걸쇠가 튕겨지며 특유의 소리를 내는 ‘클릭’ 타입(청축·녹축), 상대적으로 소음이 덜한 ‘넌클릭’ 타입(갈축·백축), 아예 걸쇠가 튕기지 않는 ‘리니어’ 타입(흑축·적축·은축) 등으로 나뉩니다. 그리고 이 안에서 제조사들마다 스위치에 고유한 특징을 집어넣다보니 수많은 파생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시중에 나온 스위치만 족히 수백 개에 달하죠.

▲ 기계식 키보드의 테스터를 활용하면 스위치 별로 타건감을 느껴볼 수 있다. 사진은 체리 사의 스위치 테스터.
▲ 기계식 키보드의 테스터를 활용하면 스위치 별로 타건감을 느껴볼 수 있다. 사진은 체리 사의 스위치 테스터.

스위치가 중요한 건 키보드의 타건감, 타건음, 손맛 등을 모두 좌우하는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축별로 버튼을 누를 때 압력이 다른데, 이로 인해 키보드의 용도 자체가 달라집니다. 또 소리도 다른데요. 이 소리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고통받는다는 말들도 많죠. 특히 청축을 쓰시는 분들 때문에 귀의 피로를 하소연하는 글을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이에 소음 자체를 최소화하는 저소음 기계씩 키보드도 자주 쓰이고 있습니다.

키보드 덮개(키캡)의 차이도 있는데요. ABS와 PBT 플라스틱이 보편적입니다. 통상 ABS가 더 싸고 PBT가 더 비싼데, 이는 제조 단계에서 ABS가 더 만들기 쉽기 때문입니다. 대신 내구성이든 플라스틱 마모도 등에선 PBT가 더 우수하죠. 또 ‘스테빌(스테빌라이저)’이나 통울림이 얼마나 잘 잡혔는지도 중요합니다. 스테빌이란 건 스페이스 바나 쉬프트 등 긴 키를 누를 때 힘을 균등하게 만들어주는 장치인데, 이 정교함도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또 키보드를 강하게 타건했을 때 통울림이 얼마나 작은지도 중요한 요소로 꼽히죠.

▲ 콕스 사의 '앱코 CK 01' 87키. 저렴한 맛에 기계식 키보드 입문용으로 적절하다.
▲ 콕스 사의 '앱코 CK 01' 87키. 저렴한 맛에 기계식 키보드 입문용으로 적절하다.

저희가 준비한 세 개의 키보드도 한 번 무슨 차이가 있는지 체크해보겠습니다. 저가형인 콕스 사의 앱코 CK 01은 키캡이 PBT 재질의 키보드임에도 3만원대라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대가 장점입니다. 무던한 디자인에 깨알같은 키보드의 백색 LED 조명도 괜찮죠. JN테크리뷰 게사장은 통울림이 있으며 타건음이 다소 ‘경박’한 느낌이긴 하나 기계식 키보드의 맛을 느끼기엔 전혀 무리가 없으며, 입문용으로 정말 좋다고 평을 내렸습니다.

▲ 체리 'MX Board 2.0S'. 109키 제품을 리뷰했는데, 전반적인 만듦새는 저가형보다 훨씬 우수했다.
▲ 체리 'MX Board 2.0S'. 109키 제품을 리뷰했는데, 전반적인 만듦새는 저가형보다 훨씬 우수했다.

7만원대인 체리 ‘MX Board 2.0S’부턴 평가가 달라집니다. 전반적인 키감이 일정하고 안정적이며 타건 시 피로가 크지 않다는 게 보편적인 평입니다. 조명도 좀 더 화려하고 스태빌이나 통울림도 훨씬 잘 잡힌 모습이죠. 저가 제품보단 만듦새가 더 나은 게 사실입니다. 다만 무게가 가벼워 잘 밀리며 키보드 하단에 지지대 부분 고정력이 약한 건 다소 아쉬웠습니다. 12만원대의 고급형인 ‘3.0S’은 이 부분이 크게 개선됐죠.

▲ 더키 'ONE 2'. 한 눈에 봐도 예쁘고 비싼 값을 한다.
▲ 더키 'ONE 2'. 한 눈에 봐도 예쁘고 비싼 값을 한다.

12만원대인 더키 ‘ONE 2’는 한눈에 봐도 예쁘다는 말이 나옵니다. 앞선 두 제품과 키감도 다소 차이가 있는데, 확실히 같은 갈축임에도 조금 더 안정적인 버튼감이 인상적입니다. 스태빌과 통울림도 매우 잘 잡혀 있고요. 또 전반적으로 깔끔한 마감에 LED 조명이 더 부드러운 것도 제품 경험에서 긍정적이었습니다. 물론 가격대가 다소 비싸다 보니 실제 구매할지를 가정했을 때 다소 망설여지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기계식 키보드, 그거 왜 쓰나요?
기계식 키보드를 쓰면 뭐가 좋을까요. 쓰지 않는 사람이라면 흔히 물어볼 수 있는 질문입니다. 손에 붙는 타건감이나 경쾌한 소리, 심미적 디자인 등에 10만원 이상의 돈을 투자할 이유가 있냐는 건데요. 글 쓰는 사람 중에서도 특정 필기구만 쓰는 사람이 있고 아무 거나 쓰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PC 업무를 주로 하는 사람 사이에서도 이견이 있는 주제입니다.

▲ 기계식 키보드 리뷰 전, 기자는 이렇게 무식한 소리를 하고 다녔습니다.
▲ 기계식 키보드 리뷰 전, 기자는 이렇게 무식한 소리를 하고 다녔습니다.

다만 저희는 이 부분이 궁금했습니다. ‘취향’의 요소를 제외하고 기계식 키보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이냐는 겁니다. 예컨대 타자를 더 빠르게 쓸 수 있다던가, 게임을 할 때 실력이 더 나아진다던가 하는 게 있느냐는 겁니다. ‘생산성’에 대한 부분인데, 이에 대해서도 간단한 실험을 해봤습니다.

타이핑 시 생산성 체크를 위해 유서 깊은 ‘한글과컴퓨터’의 ‘타자연습’ 프로그램을 활용해봤는데요. 아쉽게도 ‘팬터그래프’ 방식의 노트북 키보드를 쓸 때와 기계식 키보드를 쓸 때 유의미한 차이는 보기 어려웠습니다. 몇 번 해 봤는데 평균 타수에서 노트북 키보드가 더 높게 나올 때도 있었고요.

▲ 타이핑 속도 상 기계식 키보드를 쓸 때 개선되는 점은 크지 않았다. 다만 경험적으론 오타가 덜 난 게 사실이다.
▲ 타이핑 속도 상 기계식 키보드를 쓸 때 개선되는 점은 크지 않았다. 다만 경험적으론 오타가 덜 난 게 사실이다.

다만 개인 경험으론 팬터그래프 키보드보다 ‘쉬프트’ 키가 쓰이는 된소리를 타이핑 할 때 기계식 키보드에서 오타가 덜 났습니다. 예를 들어 노트북에선 ‘했따’와 같은 오타가 자주 나오는데, 기계식 키보드에선 이런 오타 없이 ‘했다’로 자연스럽게 써졌습니다. 이 부분은 노트북 키보드를 사용하는 기자의 스트레스 요인이었는데, 기계식 키보드를 써야겠다고 마음 먹은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사용자의 타건 방식에 따라 기계식 키보드가 실제로 생산성을 올려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게임은 어떨까요. 기계식 키보드가 리듬게임에 매우 유용하다는 평이 많은데요. 실제로 리듬게임 마니아인 게사장이 게임을 해본 결과, 정확도에서 약 5%(89%→94%)가 높아졌습니다. 리듬게임에 적합한 은축이나 무접점 축도 아닌 갈축으로 나온 결과입니다. 게이머 분들이 기계식 키보드를 선호하는 건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일로도 보입니다.

▲ 리듬 게임 'DJ MAX'를 하는 JN테크리뷰 게사장의 모습.
▲ 리듬 게임 'DJ MAX'를 하는 JN테크리뷰 게사장의 모습.

저 또한 기계식 키보드를 만져보기 전까지는 ‘이걸 왜 사야 하는지’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단순히 유튜브로만 봐선 키감이나 재질, 소리, 조명 등을 정확히 판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글을 읽고 기계식 키보드에 관심이 생기셨다면 한 번쯤 용산 선인상가 같은 곳에 제품을 체험하러 가보시는 것도 어떨까 싶습니다. 더구나 하루 수 시간을 키보드와 씨름하는 분들이라면, 어쩌면 돈과 애정을 들인 기계식 키보드가 여러분의 삶에 깨알같은 즐거움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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