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동영상 서비스'(OTT)의 경쟁력은 자체 콘텐츠인 '오리지널 시리즈'입니다. [OTT오리지널]에서는 특색 있는 작품을 분석하고 그 안에 '숨겨진 1인치'를 찾아봅니다. 내용 중 '스포일러'가 있으니 원치 않는 분들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주>

'번뇌'는 '자신에 대한 집착으로 일어나는 마음의 갈등'을 일컫는 불교적 용어다. 이와 달리 '번민'은 '마음이 번거롭고 답답해 괴로워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두 단어가 만나는 지점은 '괴로움'으로, 스스로를 힘들게 만드는 상태를 의미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제8일의 밤'은 인간이 갖는 '번뇌'와 '번민'의 마음을 오컬트 장르로 풀어낸다. '불교'와 '오컬트'의 만남이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인과율'과 '자기희생'
제8일의 밤은 도입부부터 친절한 전개 방식을 택한다. 2500년전 부처는 요괴의 '두 눈'을 봉인시켰다. 붉은 달이 뜨는 밤 '검은 눈'과 '붉은 눈'이 만나면 세상에 위기가 찾아온다는 설화를 바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김태형 감독에 따르면 이 설화는 고대 인도에서부터 전해져 내려온 이야기를 차용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영화를 위해 창작한 것이다. 

인간의 욕심으로 봉인에서 풀려난 '붉은 눈'은 '죽어야 될 운명을 지닌 자'들을 징검다리 삼아 부활을 꿈꾼다. 이 대목에서 불교의 핵심 사상 중 하나인 '인과율'이 장치로 활용된다. 인과율은 '세상에 생기는 모든 일이나 행동이 모종의 이유나 원인이 있기에 발생한다'는 사고방식이다.   

▲ (사진=넷플릭스)
▲ (사진=넷플릭스)
극중 등장인물을 보면 인과율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 '김호태'(박해준 분)는 죽을 뻔한 '동진'(김동명 분)을 살려줬고, '진수'(이성민 분)의 경우 원수의 자식인 '청석'(남다름 분)을 죽이려다 실패한다. 동진이 생존함으로써 무당이 운명을 바꿨으며, 살인미수로 그친 진수의 행동이 세상을 위기에 빠뜨릴 상황을 연출한다. 

극중에서는 '죽음'이라는 소재를 통해 인과율을 강조한다. (스포일러 주의)붉은 눈이 빠져나간 동진이 죽자, 호태도 빙의에 빠진 청석에 의해 끔찍한 최후를 맞는다. 반면 진수는 청석의 몸에 들어간 붉은 눈을 자신에게 오게 하면서 또 한 번 청석을 살려준다. 붉은 눈은 파괴되지만 진수가 죽지 않는 설정은 이런 인과율을 극명하게 강조하는 부분이다. 

진수와 청석의 생존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해탈'이다. 원수의 자식인 청석을 바라보는 진수의 심정은 '괴로움' 그 자체다. 언제든 죽이고 싶다가도 헌 신발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측은지심이 숨겨져 있다. 여기에 '검은 눈'을 지켜야 하는 숙명과 저승으로 가지 못한 영혼들을 천도시켜야 한다는 중압감까지 진수를 옥죄며 자신을 극단으로 몰아부친다.  

끝없는 번뇌와 번민에 시달리던 진수는 '자기 희생'을 이룸으로써 해탈의 경지에 다다른다. 그가 '붉은 눈'을 받아들이기 전 청석의 엄마를 용서하면서 내면에 있던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청석을 살리고 자신을 희생하기로 한 진수의 결정이 영화 '콘스탄틴'의 '존 콘스탄틴'(키아누 리브스 분)의 마지막 장면을 연상케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국판 오컬트 변천사
한국판 오컬트 장르는 다양한 시도와 변주를 통해 주요 장르물로 자리매김했다. 1998년 개봉한 영화 '퇴마록' 이후 명맥이 끊겼던 한국판 오컬트 콘텐츠는 2010년대 들어 다양한 형태로 변화를 거듭했다. 

대표적으로 '검은 사제들', '프리스트', '손 the Guest' 같은 영화와 드라마들이 구마 사제를 앞세운 퇴마 판타지를 기반으로 화제를 모았다. '퇴마록이 20년만 늦게 나왔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신부'의 구마의식을 주제로 한 이야기와 달리 종교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오컬트 영화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나홍진 감독이 연출한 영화 '곡성'은 인간의 신뢰에 대한 이야기에 토속 신앙과 샤머니즘 세계관을 부여했고, 687만명의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였다. '의심'과 '신뢰'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이 선과 악의 경계에 갈등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정재 주연의 영화 '사바하'는 샤머니즘과는 궤를 달리하는 작품이다. 불교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면서도 종국에는 기독교에 등장하는 '헤롯왕'의 서사를 접목시켰다. 사바하의 경우 '신'(절대자)에 대한 절대적 믿음과 선·악의 이분법적 시선을 새롭게 해석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 (사진=넷플릭스)
▲ (사진=넷플릭스)
한국판 오컬트는 이처럼 장르 다양성을 통해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제8일의 밤'도 불교와 오컬트를 결합한 시도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전반적인 평가는 부정적이다. 공포물로 보기에는 수위가 약하며 스릴러 장르의 성격도 찾아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2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불교적 색채의 오컬트 세계관을 담아내다보니 설명이 부족하다는 의견도 많았다. 인물간 인연과 사건들을 생략하다 못해 언급 수준으로 표현하다보니, 서사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다는 평가도 뒤따랐다.

과연 '제8일의 밤'은 불교 오컬트 장르의 선구자로 기억될 수 있을까. 혹시 시대를 앞서간 영화 '퇴마록'의 전철을 밟는 것은 아닐까. 판단은 여러분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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