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 민주노총 현대차 노조.(사진=현대차지부)
▲ 민주노총 현대차 노조.(사진=현대차지부)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합법적으로 전면·부분 파업 등을 할 수 있는 쟁의권을 확보했습니다. 현대차 노사는 2년 연속 무파업으로 임단협을 마무리했지만, 올해는 '기싸움'이 불가피해졌습니다.

현대차는 전기차 등 미래차로 전환을 추진하면서 전기차 전용 생산라인 확대를 추진하고 있고, 노조는 고용 유지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죠. 미래로 전환을 추진하는 회사와 고용안정이 필요한 노조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올해는 노사갈등이 불가피해졌습니다.

12일 현대차 노사에 따르면 중앙노동위원회(이하 중노위)는 현대차 노사의 임단협과 관련해 쟁의행위 조정을 중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중노위는 노사간 입장차가 워낙 커 조정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통상 노조가 이른바 '합법 파업'에 필요한 쟁의권을 확보하려면 노동위원회의 쟁의행위 조정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노사가 '강대 강'으로 치닫기 전에 정부에서 나서 대화 테이블을 마련해주는거죠.

노사는 노동위원회에서 서로 간 입장차를 좁히려는 노력을 하는데, 조정 가능성이 없을 경우 노동위원회는 절차를 중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대차 노조가 중노위에 간 건 사실상 요식행위에 불과했습니다. 노사는 지난 5월 상견례를 열고 올해 임단협을 개시했습니다. 이후 2달에 걸쳐 교섭을 진행했지만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고, 노조는 지난달 30일 중노위에 쟁의행위 조정 절차를 신청했습니다.

노조는 지난 7일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열었고, 조합원(4만8599명)의 73.8%가 파업에 찬성했습니다. 조합원 투표와 조정 절차를 모두 거친만큼 파업으로 가기 위한 쟁의권을 확보한거죠. 노조는 13일 쟁의대책위원회 1차 회의를 열고 파업 등 투쟁계획을 논의합니다. 

그런데 노사의 진행 양상을 보면 올해는 '무파업'으로 임단협을 끝내기 어려워 보입니다. 이유는 노사 간 최대 화두가 임금이 아닌 '고용'이기 때문이죠.

노조는 회사가 전기차 등 친환경자동차로 전환하면서 생산직 일자리 감소 문제가 최대 화두가 됐습니다. 현대차가 전기차 전용 생산라인을 구축하려면 기존 내연기관 설비를 전기차 전용인 'E-GMP'로 바꿔야 합니다. 전기차는 내연기관 차량에 비해 구조가 단순하고, 부품이 30% 가량 적게 탑재되죠. 생산과정이 전용 플랫폼을 중심으로 단순화되면서 생산직 노동자의 작업량도 줄게 됩니다.

이런 점을 이유로 현대차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이 늘어날수록 유휴인력이 증가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셋이서 할 작업을 둘이 하게 되니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현대차는 유휴인력을 줄여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노조 입장에서는 생산직의 일자리를 유지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는거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2조는 "근로자가 주체가 되어 자주적으로 단결하여 근로조건의 유지·개선과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노조를 정의했습니다. 고용 안정을 요구하는 건 노조의 권리이기도 합니다.

▲ 현대차 생산직 예상 퇴직 인원.(자료=민주노총)
▲ 현대차 생산직 예상 퇴직 인원.(자료=민주노총)

노동계에 따르면 2025년까지 5년 동안 현대차 생산직 약 1만2000명의 정년이 도래합니다. 2030년까지 약 2만2000명이 정년을 맞을 전망입니다. 신규 채용을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10년 이내 노조 조합원의 수가 절반 가량 줄어들죠. 이는 곧 현대차 노조의 조직력이 약화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노조의 영향력 감소를 의미합니다.

현대차 노조는 이런 점을 이유로 생산직 신규채용를 요구하고, 시니어 촉탁직 제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시니어 촉탁직은 60세 정년을 맞은 근로자가 1년 더 계약직으로 일하는 제도입니다.

노조는 고용 안정에 혈안이 됐지만, 회사는 계획대로 전기차 생산라인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현대차는 2025년까지 그룹 전체에 연 20조원씩 투자해 100조원을 쓸 예정입니다. △전기차 △자율주행 △커넥티비티 △도심항공모빌리티(UAM) 등에 20조원을 투자하고, 기존 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데 41조1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입니다.

그런 가운데 현대차는 지난 5월 미국 현지에 8조원을 투자하기로 했고, 올해 임단협은 시작부터 단추가 꼬였다는 평입니다. 노조가 일자리를 유지하려면 국내에 투자를 유치해야 하는데, 첫번째 대규모 투자부터 해외로 결정됐기 때문입니다.

▲ 현대차 별도 기준 실적 추이.(지료=금융감독원)
▲ 현대차 별도 기준 실적 추이.(지료=금융감독원)

노조는 2년 연속 무분규로 파업을 마친 만큼 올해 임단협에서 노사갈등을 예고했습니다. 노조는 지난 9일 성명을 통해 "이윤추구에만 혈안이 된 현대차의 습성을 뜯어고치기 위해 올해는 노동3권을 활용해 강력한 투쟁으로 맞설 것"이라며 "조합원의 주머니를 더 이상 가볍게 할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노조는 "사회적 분위기와 관계없이 전면파업은 불가피할 것"이라며 "파국 원치 않으면 보따리를 확 풀어야 한다"고 파업을 시사했습니다.

노동계에 따르면 올해 현대차는 차량용 '반도체 쇼티지(공급부족)'로 여러차례 생산을 중단했습니다. 조합원이 무파업에도 근무일수가 줄어들면서 임금 보전을 요구하는 현장의 목소리도 높아졌습니다. 2년 연속 무파업으로 임단협을 마쳤고, 지난해 기본급을 동결하면서 임금 인상에 대한 기대감도 높습니다.

더욱이 올해 하반기에는 노조 집행부의 선거가 예정돼 있습니다. 현대차에는 금속연대와 현장노동자회, 민주현장 등 5~6개 계파가 있는데, 선거 때마다 치열하게 경합을 벌입니다. 2018년 현대차가 영업손실 593억원의 적자를 내면서 이듬해 열린 선거에서 실리를 중시하는 이상수 현 위원장이 당선됐습니다. 현대차 노조 내부에 '벌 수 있을 때 벌자"는 인식이 강해진 영향도 있습니다.

올해 임단협에서 노조가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하반기 집행부 선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여느 때보다 '기싸움'이 예상됩니다.

▲ 현대차 별도 기준 현금성 자산 및 차입 현황.(자료=금융감독원)
▲ 현대차 별도 기준 현금성 자산 및 차입 현황.(자료=금융감독원)

그렇다면 현대차는 임금인상 여력이 있을까요. 결론부터 얘기하면 임금인상 여력은 있습니다. 올해 1분기 기준 현대차의 현금성 자산(금융상품 포함)은 14조8498억원입니다. 이익 잉여금은 49조7264억원에 달합니다. 단기차입금은 약 3조원, 장기차입금과 사채는 각각 2조5876억원, 9969억원입니다. 자금 상황을 살펴보면 현대차는 임금을 인상할 여력도 있고, 신규 채용을 할 여력도 있는 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회사의 모든 재원을 근로자에게 분배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경쟁력을 강화하고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 투자도 해야 하죠. 쌍용차는 자동차 시장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했고,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이미 경쟁력을 상실해 매각을 기다리는 처지입니다. 이를 보면 현대차의 재원은 어디에 쓰여야 할까요.

현대차는 모빌리티 분야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100조원의 투자계획을 짰습니다. 현대차는 회사의 재원을 가능한 효율적으로 운용해 최적의 성과를 내야하죠.

노조와 회사 모두 '생존'이 달린 만큼 올해 임단협은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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