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 LS그룹 사옥 전경.(사진=LS그룹)
▲ LS그룹 사옥 전경.(사진=LS그룹)

재계에서 보수적으로 유명한 LS그룹이 변하고 있습니다. 최근 '핫한' 전기차와 배터리 관련 부품 사업까지 착착 준비하면서 그룹의 사업구조를 미래 사업 위주로 바꾸는 작업에 시동을 걸고 있습니다.

LS그룹의 전력설비 계열사 LS일렉트릭(옛 LS산전)은 지난 14일 북미 시장을 겨냥한 ESS(에너지 저장장치) 솔루션 (LS Modular Scalable String Platform)을 공개했습니다. LS일렉트릭은 현지 ESS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2018년 미국 파커 하니핀(Parker Hannifin)'의 EGT(Energy Grid Tie) 사업부를 인수하면서 차근차근 준비했습니다.

북미 시장은 전 세계 ESS 시장의 절반 규모를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큽니다. LS일렉트릭은 시장이 성숙할 때까지 현지 기업과 M&A(인수합병)를 추진했고, 현지 소비자를 공략하기 위해 맞춤형으로 제품을 준비했습니다. '에너지를 물쓰듯 쓰는' 미국은 대용량 ESS를 선호하는데, LS일렉트릭 또한 이러한 수요에 맞춰 중·대용량 ESS에 적합한 솔루션 준비했다고 합니다.

북미 ESS 사업에 필요한 인증(UL-1741, Califonia Rule21)을 국내 기업 최초로 획득했습니다. ESS 사업에 '사활'을 걸고 준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 왼쪽부터 구자홍 LS니꼬동제련 회장, 구자열 LS그룹 회장, 구자은 LS엠트론 회장.(사진=각사)
▲ 왼쪽부터 구자홍 LS니꼬동제련 회장, 구자열 LS그룹 회장, 구자은 LS엠트론 회장.(사진=각사)

LS그룹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안정'입니다. LS그룹은 '범 LG가'로 분류되는데, B2B(Business to Business) 사업 위주로 성장했습니다. 수익성이 보장되는 안정적인 사업을 중심으로 성장해온 터라 도전보다 '안주'하는 경향이 많았습니다. 전선(LS일렉트릭)과 전기동(LS니꼬동제련), 도시가스(E1) 등 안정적으로 캐시카우 역할을 하는 계열사가 받춰준 영향도 있습니다.

'탄소중립 시대' 온실가스를 대량으로 배출하는 제련 사업과 도시가스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점도 신사업의 필요성을 더했습니다.

그런데 글로벌 산업구조가 전기차와 배터리, 수소 등 친환경을 중심으로 한 지속가능한 성장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LS그룹도 변화를 택했습니다.창립 18돌을 맞은 LS그룹의 변화를 책임지고 있는 사업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전기차와 배터리, 수처리...'마운드'에 선 친환경 편대 

LS그룹의 친환경 사업은 크게 전기차 및 배터리 부품과 수처리 사업 등으로 나뉩니다. △LS일렉트릭 △LS오토모티브 △LS전선 △LS이브이코리아 △E1 △한성피씨건설 △예스코이에스 등입니다. 계열사별로 차례차례 살펴보죠.

LS전선은 전기차의 구동모터에 삽입되는 권선을 만듭니다. 권선은 구동모터에 코일 형태로 삽입돼 전기 에너지를 기계 에너지로 전환하는 역할을 합니다. 권선의 역할은 단순해 보이지만, 이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업체는 세계적으로 4곳밖에 없습니다.

▲ 전기차에 쓰이는 LS전선의 권선 조감도.(사진=LS전선)
▲ 전기차에 쓰이는 LS전선의 권선 조감도.(사진=LS전선)

전기차 구동모터에 삽입되는 권선은 표면이 둥근 환선이 아닌 각이 진 선입니다. 이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곳은 일본의 히타치와 스미토모, 후루카와 등 3곳과 국내의 LS전선이 있습니다. LS전선은 이전까지 전기차 구동모터에 들어갈 권선은 만들지 않았는데, 일본 업체가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요구하면서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뛰어들게 됐습니다.

LS이브이코리아는 전기차의 인버터와 배터리, 모터 등을 연결하는 하네스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하네스는 자동차의 신경과 혈관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됩니다. 자동차에 필요한 전력과 제어 신호 등을 커넥터와 케이블 등을 통해 차량 전체에 흐르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하네스는 ESS에도 탑재됩니다.

LS오토모티브는 차 부품사로 기존에는 내연기관용 부품을 생산했는데, '전기차 붐'을 맞으면서 48V(볼트) 컨버터와 전자식 변속레버를 생산합니다. 현대차를 비롯해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에 부품을 납품하고 있습니다. 

▲ ESS단지에 쓰이는 LS일렉트릭의 PCS.(사진=LS일렉트릭)
▲ ESS단지에 쓰이는 LS일렉트릭의 PCS.(사진=LS일렉트릭)

LS일렉트릭은 ESS의 핵심 부품인 전력변환장치(PCS)와 전력교환장치를 생산합니다. ESS는 크게 전력을 저장할 배터리와 전력을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BMS △PMS △PCS로 나뉩니다. BMS(Battery Management System)는 배터리셀의 상태를 통제하고, PMS(Power Management System)는 ESS를 최적의 상태로 운영할 수 있게 관리하는 장치입니다. PCS는 배터리의 직류전력을 교류로 바꾸거나, 교류전력을 직류로 바꾸는 장치이죠. 

도시가스 회사인 E1은 태양광 사업에 진출했습니다. 이미 LS일렉트릭이 전력운영 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만큼 태양광 모듈(에스에너지 등)과 배터리(삼성SDI) 등을 납품받아 태양광 발전단지를 구축할 수 있죠. 한성피씨건설과 예스코이에스는 수처리 사업을 맡고 있습니다. 예쓰코이에스는 미생물 분해 기술을, 한성피씨건설은 건설업을 하고 있으니 두 회사의 기술력을 결합해 수처리 사업에 진출한거죠.

수처리 사업은 부동산 시장의 둔화로 건설업계가 눈을 돌린 사업이죠. 일종의 인프라 사업으로 물을 정수하거나 해수를 담수화하는 모든 사업을 일컫습니다.

'장거리 마라톤' 나선 친환경 계열사들...그룹 성장 기여는 '아직'

LS그룹의 친환경 신사업은 이전부터 전략적으로 준비돼 왔습니다. LS그룹의 DNA는 B2C(Business to Customer)가 아닌 B2B(Business to Business)에 강했던 만큼 완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거죠. 완성차 업체와 배터리 업체 등과 탄탄한 비즈니스 관계를 구축했습니다.

LS그룹의 친환경 신사업은 그룹의 외형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을까요. 이 사업들은 시장이 막 열린 만큼 마켓쉐어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전략적인 투자가 필요합니다. LS그룹은 이 사업들에 투자금을 쏟을 역량이 있을까요.

E1과 한성을 제외한 LS일렉트릭 등은 그룹 지주사인 ㈜LS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최대주주가 ㈜LS이거나 모기업의 최대주주가 ㈜LS입니다. LS전선과 LS오토모티브, LS전선 등은 전기차와 배터리 등 유망 사업에 발생하는 매출을 별도로 공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전기차 붐'을 맞아 이들 사업의 매출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 ㈜LS 연결기준 실적 추이(자료=금융감독원)
▲ ㈜LS 연결기준 실적 추이(자료=금융감독원)

㈜LS의 연결기준 실적을 보면 가늠할 수 있어 보입니다. 연결기준 손익계산서에는 ㈜LS가 종속회사로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의 실적 전체가 합산되고, 관계기업으로 분류한 회사는 지분율에 비례해 실적이 합산됩니다.

LS는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 10조4443억원, 영업이익 4191억원을 기록했습니다. 1947억원의 순이익을 냈습니다. 2017년에는 매출 9조5151억원, 영업이익 5321억원을 기록했습니다. 2017년과 비교해 매출은 9.7%(9292억원) 늘었고, 영업이익은 21.2%(1130억원) 줄었습니다.

2014년과 비교하면 매출 규모는 4.0%(4420억원) 줄었고, 영업이익은 12.4%(464억원) 증가했습니다. 이를 보면 LS그룹의 친환경 신사업이 그룹의 실적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LS그룹의 매출 비중은 비철과 전선 부문이 각각 30% 가량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전통사업에 대한 의존도가 큰 만큼 친환경 신사업의 비중은 크지 않은거죠. 앞으로는 어떨까요. 단기간에 지금과 같은 사업구조가 바뀌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온실가스 배출로 인해 기업이 지불해야 할 비용이 커지고, 화석연료 사용량이 줄면서 LPG 사업도 영향이 불가피합니다.

산업구조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쇠태한 대그룹들의 사례는 다양합니다. LS그룹은 전선과 비철, 도시가스 등 핵심 사업에 있어 탄탄한 마켓쉐어를 갖고 있습니다. 현금을 빨아들이는 '파이프라인'이 확실한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만큼 당장 걱정할 상황은 아닙니다.

▲ LS그룹 주요 계열회사 재무현황.(자료=금융감독원)
▲ LS그룹 주요 계열회사 재무현황.(자료=금융감독원)

전기차와 배터리, 수처리 등 친환경 사업을 육성해 그룹의 성장을 이끌 사업으로 키워야 하는거죠. '안정'과 '보수적' 사업구조에 갇혀 있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다행히 LS그룹은 기존 사업을 고도화해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의 밸류체인에 탑승했습니다. 앞으로 납품처를 확대하고, 생산 규모를 늘려 마켓쉐어를 장악해 나가는 일이 남았습니다.

㈜LS는 지난달 1840억원의 공모사채를 발행해 신재생에너지와 전기차와 관련된 업종에 지분 투자를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LS는 "그린뉴딜 시대를 맞아 새로운 성장기회를 모색하고 있다"며 "전기차용 전장부품과 신재생에너지 등의 친환경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 ㈜LS가 지난 6월 발행한 공모사채 관련 공시.(자료=금융감독원)
▲ ㈜LS가 지난 6월 발행한 공모사채 관련 공시.(자료=금융감독원)

㈜LS는 친환경 신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모으기 위해 현금을 '영끌'하고 있습니다. 지난 1분기 현금성 자산은 1436억원을 기록했고, 1개 분기 동안 601억원 증가했습니다. 2018년 말 현금성 자산이 1억원에 달했던 만큼 '실탄'을 모으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곳간'이 넉넉하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계열회사인 LS일렉트릭과 LS전선은 지난해 말 각각 6832억원, 4903억원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현금 보유량이 넉넉했습니다. LS오토모티브테크놀로지스(508억원)와 LS이브이코리아(155억원)는 상대적으로 현금 보유량이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LS그룹이 이제 막 '장거리 마라톤'을 시작한 친환경 계열사들을 어떻게 육성해 나갈지 관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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