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쌍용자동차 인수합병(M&A) 이슈로 잘 알려진 코스닥 상장사 쎄미시스코가 무상증자를 결정했습니다. 규모가 상당합니다. 보통주 1주당 신주 3주를 배정하는데요. 쉽게 말해 1주를 가진 주주에게 3주씩 나눠준다는 의미입니다.
무상증자는 보통 주주친화 정책으로 불립니다. 기업이 가진 잉여금을 활용해 주주들에게 무상으로 주식을 나눠주기 때문이죠. 이 때문에 재무 건전성이 튼튼하거나 향후 전망이 밝은 기업 위주로 무상증자가 이뤄집니다.
무상증자를 하는 기업은 보통 ‘주주가치 제고’를 이유로 꼽습니다. 쎄미시스코도 마찬가지인데요. 쎄미시스코 관계자는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무상증자다. 유통 주식 물량이 적다는 판단이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앞서 무상증자는 기업이 가진 잉여금을 활용한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잉여금은 자본잉여금과 이익잉여금으로 나뉩니다. 쎄미시스코는 자본잉여금을 활용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자본잉여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식발행초과금을 썼죠.
쎄미시스코는 무상증자결정 공시에 지난해 말 별도 재무제표 기준 자본잉여금(기타자본구성요소 제외)이 109억원이고 이중 103억원이 주식발행초과금이라고 밝혔습니다. 사실상 보유한 자본잉여금 전부를 무상증자에 활용하겠다는 겁니다. 다른 기업 재무 담당 관계자는 "내부 사정을 모르지만 눈여겨볼 특이한 사례다. 거래소 승인이 될지도 궁금하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쎄미시스코 별도 재무제표 기준 이익잉여금은 2018년 201억원에서 올해 1분기 28억원까지 줄었습니다. 퍼센트로 따져보면 86.1% 차이입니다. 2분기 이후에도 적자가 지속되면 이익잉여금은 결손금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죠. 그런데 이를 보전할 자본잉여금이 사라지는 겁니다.
최근 쎄미시스코 최대주주는 에너지솔루션즈로 변경됐습니다. 에너지솔루션즈는 쌍용차 인수 후보인 에디슨모터스의 최대주주이기도 합니다. 에너지솔루션즈는 쎄미시스코가 진행한 유상증자에 참여해 지분 16.7%를 확보했죠.
기존 이순종 대표 등이 가진 지분 31.6%는 강영권 에디슨모터스 대표 지인과 투자자로 구성된 6개 투자조합이 조합별로 4.2~7.9%씩 나눠 가졌습니다. 이를 두고 ‘한겨레신문’ 등 일각에선 “차익 실현을 제한하는 규제를 피하려는 의도”가 우려된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만일 무상증자를 결정한 뒤 6개 조합이 주식 일부를 매도한다면 일각에서 제기한 우려가 현실이 되는 겁니다.
에너지솔루션즈와 6개 조합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주요 주주 구성이 바뀌었으니 경영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데요. 지난 8일 주주총회소집공고에 올라온 안건들을 보면 바뀐 쎄미시스코가 ‘기존 주주가치 제고’에 큰 관심이 있다고 말하는 건 다소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쎄미시스코는 오는 23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정관 제17조(전환사채의 발행)을 수정할 예정입니다. 전환가액 한도를 ‘액면가’까지 조정할 계획이죠. 현행 행정규칙에 따르면 CB 전환가격을 액면가까지 하향 조정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만약 액면가까지 하향 조정을 원한다면 회사 정관을 수정해야 하는데 이번 임시 주주총회에서 이를 실행하는 거죠.
신주는 오는 9월27일 유통될 예정입니다. 신주배정기준일은 오는 8월31일이고요. 기준일까지 한 달 넘는 시간이 남아있죠. 남은 기간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날지 관심 있게 지켜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