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 (사진=삼성전자)
▲ (사진=삼성전자)

시가총액 1위(468조원) 기업인 삼성전자에 첫번째 단체협약이 체결됐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반도체 회사인 삼성전자가 1969년 설립된 이래 노사의 첫 단체협약입니다.

삼성은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이 생전에 "내 눈에 흙이 들어오기 전에는 노조를 용납할 수 없다"는 경영 철학을 세우면서 '무노조 경영'이 이어졌습니다. 선대 회장의 경영철학은 고 이건희 회장 때까지 이어졌고, 3대인 이재용 부회장 때 폐기됐습니다.

그동안 삼성은 노조 활동을 막기 위해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았고, 기회비용을 치뤘죠. 노조 설립을 방해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매뉴얼화한 문건이 공개되면서 논란도 됐고요. 전·현직 임원 26명이 노조 와해 공작 등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해 5월 기자회견을 열고 "더 이상 삼성에서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며 공언했습니다. 삼성전자 이사회 산하에 노동3권(단체행동권, 단결권, 단체교섭권) 보장을 위한 노사관계 자문그룹도 신설했습니다.

▲ 왼쪽부터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 고 이건희 회장, 이재용 부회장.(사진=삼성)
▲ 왼쪽부터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 고 이건희 회장, 이재용 부회장.(사진=삼성)

삼성은 총수 구속의 상황 등 '대형 악재'를 쇄신하기 위해 노조 대응 전략마저 바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노사가 지난 30일 체결한 단체협약은 지난해 '무노조 경영' 폐기 선언 이후 첫번째 결과물로 볼 수 있습니다. 

단체협약은 쉽게 말해 노조 활동 전반을 관할하기 위해 노사가 맺은 '약속'으로 볼 수 있습니다. 유급 노조 활동을 연간 몇 시간으로 할지, 노조 조합원의 범위를 어느 직급까지 할지 등도 단체협약에 명문화돼 있죠. 이 때문에 노조 활동을 안정적으로 보장받으려면 단체협약을 체결해야 합니다.

노조 설립이 신고제인 만큼 법적 요건을 갖추면 누구나 노조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체협약은 노사간 교섭을 통해 조율을 거쳐 만들어집니다. '무노조 경영' 문화를 암암리 유지하는 회사에서는 단체협약이 체결될 수 없죠. 삼성전자에 단체협약이 체결된 건 적잖은 의미를 갖습니다. 

임금보다 '인사'..."근거와 기준 따지겠다"
삼성전자 노조는 실리 성향의 한국노총 산하 노조로 상급단체는 제조업 산별노조인 금속노련입니다. 2019년 설립됐는데, 현재 조합원수는 25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조합원수는 조직력 규모를 판단하기 위한 기초 자료로 노사 모두에게 예민한 수치입니다. 정확한 규모가 공개되지 않은 만큼 실제 조합원수가 몇 명인지는 외부에서 알 방법은 없습니다.

조합원수가 2500명이라고 가정할 경우 전체 직원(10만9490명)의 2.3% 규모입니다. 사용자인 삼성전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부서 등과 일부 직급을 제외하면 노조 가입률은 소폭 늘어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세에 영향을 미칠 수준은 아닐 것으로 판단됩니다.

▲ 삼성전자노조 출범식.(사진=한국노총 금속노련)
▲ 삼성전자노조 출범식.(사진=한국노총 금속노련)

또 삼성전자 내에서 노조 활동이 쉽지 않았던 것을 고려하면 2500명의 규모는 적다고 볼 수는 없어 보입니다. 조직문화가 경직된 회사에서 노조에 가입하는 것이 직원 개개인에게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삼성전자노조는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회사와 첫 단체협약을 체결했습니다. 노사는 노조 활동 등을 규율할 95개 조항에 합의했습니다. 

노조는 앞으로 인사 제도 개선에 집중할 것으로 보입니다. 노조 홈페이지에 따르면 초과이익성과급(OPI) 산정 기준을 따지고, 인사평가를 손보겠다고 밝혔습니다.

노조는 "급여와 성과급이 어떻게 책정됐는지 산정하는 절차는 공정한지 묻겠다"며 "절차가 공정하지 않으면 공정성을 따지고 바꾸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노조는 "인사고과와 승진이 회사의 무기로 사용되는 것을 막겠다"며 "특정인을 고과 열외자와 승진 열외자로 만들어 퇴사를 종용하는 행태를 바꾸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삼성전자에 있어 인사제도는 곧 연봉과 직결됩니다. 삼성전자는 목표달성 장려금(TAI)과 초과이익 성과급(OPI)를 지급합니다. TAI와 OPI는 사업부문과 인사고과에 따라 기본급의 일정 비율을 지급합니다. 반도체 사업부는 2019년 연봉의 50%를 OPI로 받았지만, 반도체 시황 악화의 영향으로 지난해에는 29%까지 줄었습니다. 액수가 큰 만큼 직원들의 관심도가 높을 수밖에 없죠.

▲ 삼성전자 1인 평균 급여액.(자료=금융감독원)
▲ 삼성전자 1인 평균 급여액.(자료=금융감독원)

실제 삼성전자 직원들의 평균 임금은 들쑥날쑥합니다. 2015년부터 2020년까지 급여액 인상률 평균은 약 4.2%였습니다. 2019년 평균 급여액은 1억800만원으로 전년보다 1100만원 줄었습니다. 평균 급여는 9.2% 줄었습니다.

지난해 평균 급여액은 1억2700만원으로 1900만원 증가했습니다. 인상률은 25.2%에 달했습니다. 평균 급여액은 10만9490명에 달하는 직원의 임금을 모두 합해 산정한 것인 만큼 유의미한 데이터는 아닙니다. 근속연수와 직군 등에 따라 임금 격차가 큰 만큼 삼성전자 직원의 평균 임금을 알 수 있는 자료도 아닙니다.

▲ 삼성전자 직원 평균 급여 인상률.(자료=금융감독원)
▲ 삼성전자 직원 평균 급여 인상률.(자료=금융감독원)

다만 평균 급여액의 인상률이 매해 큰 차이를 보인 건 성과급의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OPI는 연봉의 최대 50%까지 지급하고 있어 삼성전자 직원의 임금 중 성과급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삼성전자노조는 성과급 지급 기준을 개선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회사 고유권한인 성과급 제도를 직원의 입장에서 합리적일 수 있도록 개선하겠다는 의미입니다. 

노조 앞길 '첩첩산중'...노사협의회와 불협화음 이어질 듯
삼성전자와 노조가 단체협약을 체결한 건 '첫 단추'를 막 끼운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노조는 단체협약에 근거해 노조 활동을 전개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노조의 앞길은 '첩첩산중' 입니다. 가장 큰 벽은 노사협의회입니다. 삼성전자의 노사관계는 오랜기간 노사협의회가 주도했습니다. 노사협의회는 근로자참여법에 따라 30명 이상 사업장에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노사 협의기구입니다. 노사협의회는 생산성 향상과 인사·노무관리 제도, 임금 등 다양한 노동조건을 협의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와 여타 계열회사들도 노사협의회를 중심으로 직원의 근로조건 등을 결정했습니다. 현재 삼성 계열사 중 12곳에 노조가 설립됐습니다. 이중 삼성디스플레이와 삼성전자서비스 등 일부 노조는 단체협약과 임금협약 등을 체결했고, 적극적으로 노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삼성디스플레이 노사 단체협약 체결식.(사진=삼성디스플레이)
▲ 삼성디스플레이 노사 단체협약 체결식.(사진=삼성디스플레이)

그럼에도 노사협의회가 노사관계를 주도하면서 노조는 사실상 영향력이 크지 않은 상황입니다. 삼성화재 등에서는 노사협의회가 먼저 회사와 임금인상률 등을 정했고, 노조에 동의 여부를 묻기도 했습니다.

이유는 회사의 대표적인 노사 협의기구가 노조가 아닌 노사협의회이기 때문입니다. 직원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노동조건은 노사협의회에서 정하고, 노조와 회사가 교섭에서 정한 안건은 전체 직원에 적용이 되지 않습니다. 이런 점을 이유로 노조는 조합원을 대표하는 기구일 뿐이고, 대표성도 없고 영향력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죠.

삼성전자 노조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삼성 계열사 중 삼성디스플레이와 삼성전자서비스 등이 회사와 단체협약을 체결했습니다. 삼성전자도 여타 계열사 노사의 사례를 밟을 것으로 보입니다.

현실 속 노사관계는 대화와 협력보다 '힘의 논리'에 따라 좌우됩니다. 통상 노조가 설립되면 근로조건에 대한 폭로전과 고소고발 등이 이어지고, 이후 노사가 교섭 등을 통해 대결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삼성전자는 조합원 수도 규모도 작습니다. 생산라인도 컨베이어 벨트가 아닌 탓에 파업을 해도 영향력이 미미합니다.

임금 등 근로조건이 여타 사업장과 비교해 우수한 만큼 직원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고 단합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대립적인 노사관계를 이끌어 나가기에는 '열세'일 수밖에 없죠.

시총 1위 기업인 삼성전자 노사가 만든 단체협약은 삼성전자를 어떻게 바꿀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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