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샌드박스는 아이들이 노는 모래 놀이터처럼 기업이 규제없는 경영 환경에서 혁신사업을 해보라는 취지로 도입된 것 아닙니까?그런데 최소한의 살 길조차 막아놓은 조건들 때문에 사업을 할 수가 없습니다."

1일 전화기 너머로 들린 목소리는 간절했다. 전날인 7월31일 정부세종청사 행정안전부 앞에서 분신을 시도한 장민우 뉴코애드윈드 대표다. 장 대표는 7월초 공개적으로 규제 샌드박스의 조건때문에 사업을 할 수가 없다며 극단적 선택을 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가 운영 중인 뉴코애드윈드는 지난 2019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ICT 규제 샌드박스 지정을 받은 기업이다. 규제 샌드박스란 다양한 신기술·서비스의 시장출시 및 테스트가 가능하도록 일정 조건 하에 기존 규제를 면제하거나 유예하는 제도다.

▲ 뉴코애드윈드의 디지털 광고 배달 박스 '디디박스'가 장착된 오토바이.(사진=뉴코애드윈드)
▲ 뉴코애드윈드의 디지털 광고 배달 박스 '디디박스'가 장착된 오토바이.(사진=뉴코애드윈드)

오토바이 광고 사업에 대기업도 관심 나타냈지만…조건 때문에 한계
뉴코애드윈드의 비즈니스 모델은 배달 오토바이에 장착된 '디디박스'다. 배달기사가 음식점의 배달요청 콜을 수락하면 디디박스의 겉면은 배달을 요청한곳의 상호로 자동 변경돼 배달을 요청한 소상공인의 상호를 광고하는 디지털 광고 시스템이다. 현행 옥외광고물법은 오토바이 등 교통수단에 전기사용이나 발광방식의 조명을 이용하는 광고물을 금지하고 있어 오토바이에 디지털 광고를 할 수 없다. 이에 과기정통부는 광주광역시 및 전라남도 경계지역에서 최대 100대 이내의 오토바이에 우선 적용하는 조건으로 뉴코애드윈드에게 실증특례를 부여했다. 실증특례에는 서비스 시작 6개월 경과 후 사고유무를 검토한 후 관계부처 동의하에 운행 오토바이 대수를 상향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뉴코애드윈드는 동네 중소 음식점들로부터는 수수료를 받지 않고 배달과 광고를 해줬다. 대신 기업들로부터 광고를 유치해 매출을 낸다는 것이 장 대표의 계획이었다. 오토바이를 활용한 새로운 광고 모델에 대기업들도 관심을 나타냈다. 예를 들면 해당 지역에 분양을 앞두고 있는 아파트 광고나 지역 영화관의 신작 개봉 소식 등 지역 주민들에게 알려야 효과가 있는 광고들이다. 기업들의 광고가 확대되려면 규제 샌드박스 조건 완화가 필요했다. 운행할 수 있는 오토바이 대수가 늘어나야 하고 사업 지역도 광주시·전남에서 전국으로 확대돼야 했다. 장 대표는 2020년 2월부터 사업을 진행하며 사고유무 등에 대한 내용을 정부에 보고했다. 오토바이는 17대를 유지하며 6개월 후에 정부가 대수를 상향해줄 것으로 믿고 생산시설을 갖췄다. 과기정통부는 감사 후 문제가 없다는 점을 확인하고 서비스 지역과 운행 대수 제한을 없애도 된다고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관계부처인 행정안전부와 국토부가 반대 의견을 내면서 조건은 완화되지 않았고 1년 이상 시간이 흘렀다.

행안부는 실증특례로 허용한 100대 중 17대만 운영하고 있어 우선 허가범위 내에서 확대를 먼저 해야 하고 안전성과 효과성을 검증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국토부는 기업의 투자 유치를 위해 실증특례를 지정한 것이 아니라 안전성 확보를 위해 지정조건을 부여했으므로 투자 유치를 위해 조건을 완화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입장을 보였다.

▲ 장석영 전 과기정통부 2차관(맨 오른쪽)이 2020년 2월 뉴코애드윈드를 방문해 디디박스를 살펴보고 있다. 당시 장 차관은 '디디박스는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활용한 광고 기반의 새로운 배달대행 서비스로 디지털 기반의 비대면 산업의 모범사례'라고 말했다. (사진=과기정통부)
▲ 장석영 전 과기정통부 2차관(맨 오른쪽)이 2020년 2월 뉴코애드윈드를 방문해 디디박스를 살펴보고 있다. 당시 장 차관은 "디디박스는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활용한 광고 기반의 새로운 배달대행 서비스로 디지털 기반의 비대면 산업의 모범사례"라고 말했다. (사진=과기정통부)

"최소 살길 막은 규제 샌드박스 조건…전향적 변화 절실"
이같은 부처들의 반대 의견에 대해 장 대표는 분통을 터뜨렸다. 이미 사업성과 안전성이 검증됐기 때문이다. 대기업과 벤처캐피털(VC)의 관심으로 사업성은 검증이 됐으며 기사들의 운행 속도도 줄어들며 안전성도 입증했다는 것이 장 대표의 입장이다. 장 대표는 배달료 전액을 배달 기사들에게 지급하며 상해보험, 운전자보험도 회사가 가입해줬다. 대신 기사들과 계약을 맺을 때 과속하지 않고 안전운행할 것을 요구했다. 실제로 기사들의 사고는 없었고 이를 정부에 보고했다.

정부가 차일피일 조건 완화를 미루는 사이 뉴코애드윈드의 적자는 쌓여만 갔다. 장 대표는 6개월 후 조건을 완화해준다는 정부의 약속만 믿고 제품 개발과 생산설비 마련에 수십억원을 투자했다. 오토바이 운행 대수가 늘어난다는 전제 하에 투자를 단행한 것이다. 하지만 조건은 완화되지 않으면서 매출이 늘지 않았다. 이름만 들으면 알수 있는 대기업들과 VC도 뉴코애드윈드의 광고 모델에 관심을 나타냈지만 운행대수와 지역이 제한돼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등을 돌렸다. 사업 지역이 전국으로 확대되면 다시 얘기하자는 답만 돌아왔다.

장 대표는 100대를 채우더라도 회사를 이어갈 수 있는 규모의 매출을 내기에는 한계가 있었고 오토바이 유지에 상당한 비용이 들었기에 17대만 운영했다. 오토바이 한 대와 기사 한 명을 고용해 운영하는데 1년에 인건비를 제외하고도 1500만원 이상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운행 대수와 지역이 확대되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 있기에 조건 완화를 기다린 것이다.

추가 매출을 내지 못하고 투자를 유치하지 못하면서 장 대표는 사업을 중단한 상태다. 쌓여만가는 적자속에 사업을 지속하기는 어려웠다. 빚더미에 앉은 그는 지난달 예고한대로 31일 행정안전부 앞에서 온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지만 잠복 중이었던 경찰들에게 제지당했다. 경찰은 장 대표의 가족과 회사의 임직원이 현장에 도착하자 장 대표를 인계했다. 이 자리에 과기정통부와 행안부 담당 직원들도 와 장 대표와 대화를 나눴지만 조건 완화에 대해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장 대표는 현재 규제 샌드박스에 부과되는 조건은 기업의 최소한의 살 길을 막아놓은 수준이라는 입장이다. 그는 "규제 샌드박스에 대한 공무원들의 태도가 전향적으로 바뀌지 않는한  저와 비슷한 사례들이 이어져 이 제도가 소상공인을  살리는 제도가 아니라 언젠가는 귀중한 인명을 앗아가는 제도라는 오명을 얻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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