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 대한전선 당진공장. (사진=대한전선)
▲ 대한전선 당진공장. (사진=대한전선)
대한전선은 새 주인을 맞이하기 전까지 힘든 나날을 보냈습니다. 2004년 창업 2세 고(故) 설원량 전 회장의 갑작스러운 사망 이후 경영이 흔들렸는데요. 이후 전문경영인으로 선임된 임종욱 전 사장의 무리한 투자로 곳간이 비기 시작했죠.

결국 대한전선은 2009년 채권단과 재무개선 약정을 맺고 구조조정을 맞이합니다. 이때부터 2019년까지 매년 당기순손실을 기록했습니다. 지난해 흑자 전환을 이뤄냈지만 부채비율이 233.5%에 달할 만큼 재무 상태는 악화된 상태죠. 도전보다는 감축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시기였습니다.

▲ 대한전선 수익성 추이. (자료=대한전선 사업보고서, 분기보고서)
▲ 대한전선 수익성 추이. (자료=대한전선 사업보고서, 분기보고서)

하지만 지난 5월 호반산업으로 주인이 바뀌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나형균 대한전선 사장은 인수 공표 행사에서 “해상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와 전기차, 광통신 등 연관 산업으로 진출하겠다”며 신사업 의지를 밝혔죠.

나 사장의 발언은 단순 의지 표명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당시 언급한 신사업을 담당하는 팀이 생겼고요. 구체적인 설비 투자 계획도 밝혔습니다. 인수 3개월 만에 급속도로 변하고 있는 겁니다.

업계의 시선은 신사업 성공 여부로 향하고 있습니다. 평가는 대부분 긍정적입니다. 대한전선의 신사업은 사실 신사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해저케이블, 광케이블 사업은 과거 대한전선이 영위하던 사업입니다. 경영 악화로 수년간 중단했을 뿐 완전히 처음 도전하는 분야가 아니라는 거죠.

▲ 광케이블 샘플. (사진=대한전선)
▲ 광케이블 샘플. (사진=대한전선)

대한전선은 4일 언론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광케이블 사업을 본격화한다고 밝혔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국내에선 충남 당진공장에 광케이블 설비를 구축할 예정입니다. 내년 상반기 제품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죠.

또 2019년 12월 광케이블 사업 진출을 위해 설립한 ‘쿠웨이트 생산합작법인’도 관리에 들어갑니다. 올해 3분기 설비 구축을 시작해 내년 상반기 시제품 출시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대한전선은 2012년까지 광케이블 사업을 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2012년 재무구조 개선 등을 이유로 광통신케이블 사업부를 대한광통신에 넘기면서 광케이블 사업을 중단했습니다. 대한광통신은 대한전선 오너 3세 설윤석이 최대주주인 회사입니다.

업계는 대한전선이 9년 동안 사업을 중단했으나 관련 인프라는 여전히 갖추고 있는 상태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대한전선 관계자 역시 "기존에 확보하고 있는 인적, 물적 인프라를 활용해 빠른 속도로 성과를 보일 수 있을 것"이라며 "광케이블의 주요 수요처가 될 북미 및 유럽 시장을 적극 공략해 나가겠다"고 말했습니다.

▲ 자본적지출 및 현금성자산 추이. (자료=대한전선 사업보고서, 분기보고서)
▲ 자본적지출 및 현금성자산 추이. (자료=대한전선 사업보고서, 분기보고서)

설비 투자 여력도 충분한 상황입니다. 그간 설비 증설을 위한 자본적지출(CAPEX)을 보수적으로 집행했기 때문인데요. 지난 5년간 대한전선 자본적지출을 살펴보면 2017년 213억원을 제외하면 200억원을 넘기지 않았습니다. 지난해에도 75억원에 그쳤죠. 자본적지출은 설비 투자와 유지보수 비용을 더한 금액입니다.

반면 별도 재무제표 기준 현금성자산은 2017년 이후 꾸준히 늘어 지난해 말 기준 1534억원, 올해 1분기에는 2201억원까지 증가했습니다. 대한전선 관계자는 “추가 차입 없이 설비 투자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대한전선은 사업 다각화를 추진하는 만큼 어느 때보다 호실적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다만 올해 2분기 실적은 좋지 않은데요. 2분기 잠정 실적은 매출액 4142억원, 영업손실 13억원입니다. 당기순손실은 93억원이죠. 대한전선 측은 수주 물량이 전년 대비 43% 이상 많다며 하반기 큰 폭의 실적 회복이 가능하다고 내다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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