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이노베이션이 2014년 기아 쏘울에 배터리를 공급하기로 했다.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사업의 기념할 사건이다.(사진=SK이노베이션)
▲ SK이노베이션이 2014년 기아 쏘울에 배터리를 공급하기로 했다.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사업의 기념할 사건이다.(사진=SK이노베이션)

SK이노베이션이 기업가치의 '코어(core)' 역할을 하는 배터리 사업을 분사한다. SK배터리의 출범일은 10월1일로 정해졌는데, SK이노베이션은 앞으로 배터리 사업을 대체할 '먹거리'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SK배터리 상장시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 지분가치가 할인되는 현상까지 고려하면 지주사가 처한 상황은 좀 더 시급하다는 평이다. 

SK이노베이션은 3일 오전 이사회를 열고 배터리 사업과 E&P(Exploration & Production, 석유개발) 사업의 분사를 결정했다. SK이노베이션은 분사 후 배터리 전문회사인 'SK배터리'를, 석유개발을 전담할 SK이엔피를 설립한다.

SK이노베이션은 분사 후 '그린 포트폴리오(Green Portfolio Designer & Developer)' 사업 개발을 전담하기로 했다. 연구개발(R&D)과 M&A 역량을 강화해 폐배터리 재활용(BMR, Battery Metal Recycle) 사업을 육성하고, 차세대 배터리와 분리막 사업을 발굴한다. 배터리 사업의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사업을 투자하고 발굴할 계획이다.

배터리 사업을 떼낸 만큼 사업형 지주사의 성격이 크게 축소되고, 투자형 지주사와 사업형 지주사의 중간형태가 될 전망이다.

SK이노베이션은 BMR 등 배터리 관련 사업을 육성해 기업가치를 제고하겠다고 밝혔다. 김양섭 SK이노베이션 재무본부장은 "배터리 리사이클 사업의 추가적인 성장 옵션을 발굴하고 밸류 창출까지 연계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며 "지주회사로서 포트폴리오를 높일 방안을 지속적으로 실행해 자체 사업의 기업가치를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김 본부장은 "투자자들이 존속법인인 SK이노베이션에 투자할 이유를 계속해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 SK이노베이션 분할 전후 조직도.(자료=SK이노베이션)
▲ SK이노베이션 분할 전후 조직도.(자료=SK이노베이션)
 
남은 과제는 SK이노베이션인 배터리 사업 없이 현재의 기업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지에 달렸다. SK이노베이션은 SK그룹 에너지 사업의 중간지주사다. '㈜SK→SK이노베이션→SK에너지, SK배터리 등 8개 계열사' 형태로 지배구조가 이어진다.

그런데 SK이노베이션의 기업가치는 배터리 사업이 큰 역할을 했다.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사업은 현재 수주잔고만 약 130조원(1000GWh)에 달하고, 전기차향 배터리 기준 글로벌 6위의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내년 배터리 사업은 글로벌 3위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전기차 시장이 매년 30%씩 커지고 있고, 배터리 수요 또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SK이노베이션은 1996년부터 리튬이온전지 배터리를 개발하면서 약 20여년 동안 적자를 냈는데, 전기차 붐으로 기업가치가 현재 수준으로 높아졌다. 

2019년 8월2일 종가는 16만8500원, 올해 2월4일 31만7000원을 기록해 3년 중 주가가 가장 높았다. 주식시장에 유동성이 몰리면서 호황이었던 영향도 있었지만, 배터리 사업의 영향으로 주가가 높게 유지됐다. 게다가 지난 4월 SK이노베이션은 LG에너지솔루션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최종판결과 관련해 2조원의 합의금을 지급하기로 했고, 3년 만에 합의에 도달했다.

배터리 사업의 리스크가 모두 사라졌고 성장할 일만 남았었다. 4달 여 만에 배터리 사업의 분사를 결정하면서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사업을 대체할 사업을 찾는 일이 급선무가 됐다.

배터리 사업은 지난해 1조6102억원의 매출을 냈다. 2019년 배터리 매출은 6903억원을 기록했는데, 1년 만에 133.2% 매출이 증가했다. 영업손실 규모는 4265억원에 달했다.

▲ SK이노베이션 매출 구성.(자료=금융감독원)
▲ SK이노베이션 매출 구성.(자료=금융감독원)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별도 기준 매출 3조8082억원, 영업이익 1조3294억원을 기록했다. 전체 매출 중 50%인 1조9735억원이 SK에너지 등 자회사 배당에서 나왔다. 배터리 사업 매출은 42.2%, 석유개발 사업은 6.3%를 차지하고 있다. 배터리와 석유개발 사업이 분리될 경우 SK이노베이션의 매출은 절반 가량 줄어들 전망이다.

게다가 배터리 사업은 미국과 유럽공장에 증설이 필요한 만큼 일정 기간 배당이 어렵다.

배터리 사업은 '자본집약 산업'이며 '규모의 경제'가 적용되는 사업으로 궤도에 오르기 전까지 투자 비용이 커 적자가 불가피했다. 내년 손익분기점을 달성한 후 매년 7% 이상의 영업이익이 예상된다. 그런데 배터리 사업의 분사를 결정하면서 수익 실현을 기대했던 주주들은 손실이 예상된다. 주주들은 배터리 사업 분할로 투하자본 회수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이 추진할 BMR 사업은 배터리 사업을 대체할 수 있을까. 배터리 사업이 SK이노베이션의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핵심 역할을 한 만큼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평이다.
 
BMR 사업은 폐배터리를 회수해 양극재와 리튬을 재활용하는 게 핵심이다. 전기차의 경우 배터리 잔량이 70% 미만으로 떨어질 경우 성능이 떨어져 사용이 불가능하다. 

통상 전기차는 방전 상태에서 충전할 경우 1000회, 50% 사용 후 충전할 경우 5000회를 사용할 수 있다. 매일 최대 주행거리를 운전한다고 가정하면 약 3년, 50%만 사용할 경우 10년 가량 배터리를 사용할 수 있다.

▲ (사진=SK이노베이션)
▲ (사진=SK이노베이션)

지난해 국내에 버려진 배터리는 38톤으로 집계됐고, 2024년 1000톤을 넘을 전망이다. 폐배터리는 매년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재활용해 ESS(에너지저장장치)로 사용하거나 니켈, 코발트, 망간, 리튬 등을 수거해 재활용하는 방안도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정유공정의 기술을 활용해 폐배터리의 수산화리튬을 추출할 계획이다. 내년 데모플랜트를 완공한 후 2025년 약 3000억원의 에비타(EBITDA, 상각전영업이익)를 창출할 것으로 내다봤다.

BMR 사업은 SK이노베이션 외에도 LG에너지솔루션, 포스코 등 주요 전지업체와 소재 업체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 사업은 향후 예상되는 배터리 핵심 원료 부족에도 대응하고, '탄소 중립'과도 연관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경보다 이익실현을 우선하는 주주에게는 큰 메리트가 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BMR의 사업성보다 배터리 사업이 가져올 이익이 크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블로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