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월요일, 주목할 만한 블록체인 프로젝트나 업계 트렌드를 알기 쉽게 풀어봅니다.
지난 5일 시가총액 기준 세계 2위 가상자산(암호화폐)인 '이더리움(ETH)'에 중대한 변화가 있었죠. '이더리움 런던'으로 명명된 하드포크(Hard Fork)가 진행된 겁니다. 후술하겠지만 하드포크는 아예 새 블록체인으로 갈아타는 수준의 대규모 업데이트로, 준비 과정이 복잡하고 흔히 볼 수 있는 이벤트도 아닙니다. 하드포크 과정에서 생태계 내에 잡음이 일거나 예기치 못한 기술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죠.

하지만 이더리움은 지난 6년간 벌써 9번의 하드포크를 일삼으며 '프로 하드포크러'의 위상을 뽐내고 있는데요. 이를 두고 단순히 '진보적 성향의 블록체인'이라 볼 수 있겠지만 한편으론 이미 비트코인에 버금가는 위상, 탄탄한 자체 성장 기반까지 갖춘 이더리움 생태계가 굳이 왜 모험을 계속하는지도 궁금증이 따릅니다.

▲ 사진=Pixabay
▲ 사진=Pixabay

합의 기반 업데이트, 하드포크의 두 얼굴
개발사 일방으로 진행되는 일반 컴퓨터 프로그램 업데이트와 달리 블록체인 하드포크에는 '합의'가 필요합니다. 특히 이더리움처럼 탈중앙화된 블록체인에는 절대적 결정권을 지닌 운영주체가 없어 업데이트에는 전세계 주요 블록체인 노드(참여자)들의 합의가 필요한데요. 기존 블록체인과 호환되는 수준의 소소한 소프트포크 업데이트와 달리 하드포크는 신규 기능을 추가하거나 기존 블록체인 구조를 변경해야 할 경우 필요하며 기존 블록체인과 호환되지도 않습니다.

즉, 완전히 새로운 블록체인으로 이사해야 하는 꼴이라 노드들의 사전합의는 물론이고 노드 대다수가 업데이트 준비를 갖출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도 필요하죠. 민주적인 방식이지만 여기엔 마치 안드로이드폰 사용자들이 한날한시에 아이폰 사용자가 되어야 하는 수준의 혼란이 따르곤 합니다.

하드포크의 중대한 리스크는 합의에 실패하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 하드포크 계획이 중단되거나 기존 블록체인이 갈라지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이더리움의 첫 번째 하드포크가 후자의 경우였죠. 2016년 해커에게 이더리움 총발행량의 10%가 해킹되는 대형 사건이 터졌을 당시 이더리움 진영은 사고 이전 블록으로 하드포크해 충격을 흡수하려 했던 측, 해킹도 이더리움의 한 역사이니 그대로 안고 가야 한다는 측이 대립한 결과 결국 둘로 쪼개지는 결과를 맞은 기억이 있습니다. 이후 주류는 현재의 하드포크 이더리움이 됐지만 기존 이더리움 역시 '이더리움 클래식'이란 이름으로 남아 다른 길을 가게 됐죠.

이더리움, 상습 하드포크범이 된 이유
이처럼 하드포크에 아픈 기억이 있음에도 이더리움의 하드포크가 계속되는 이유는 이들 생태계에 '이더리움 2.0 도달'이란 공동의 목표가 설정돼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크게 이더리움의 블록 합의 구조를 작업증명(PoW)에서 지분증명(PoS)으로 바꾸는 것, 그리고 이더리움의 사용성과 확장성을 대폭 개선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이를 통해 어느덧 구형 블록체인이 된 이더리움의 수명과 가치를 다시 제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죠.

핵심은 지분증명으로의 전환입니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이 채택한 작업증명 합의는 대규모 컴퓨팅 자원이 경쟁적으로 블록체인 블록 생성에 필요한 암호 문제를 해독하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가상자산을 지급받는(채굴) 방식입니다. 초창기 많은 블록체인이 이 방식을 채택했지만 단점은 문제풀이에 드는 막대한 전기 자원 소모입니다.

특히 이는 현재 전세계의 탄소 저감, 친환경 기조에 반하는 것으로 이더리움이 장기적으로 환영받는 가상자산이 되려면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합니다. 이더리움이 가려는 지분증명 방식은 보유한 가상자산 규모에 따라 합의 노드에서 경쟁력을 부여받는 형태로 채굴 경쟁에 따른 전력 낭비를 크게 줄여줄 뿐 아니라 합의 과정에 크고 작은 지분 보유자들이 다수 참여할 수 있게 됨으로써 이더리움의 탈중앙성도 강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와 함께 느려진 이더리움 거래 처리 속도, 높아진 거래 수수료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도 병행되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런던 하드포크는 그중 이더리움 거래 수수료인 '가스비' 최적화에 초점이 맞춰졌죠. 이는 이더리움 생태계가 성장하면서 거래량이 폭증하고, 이 때문에 빠른 거래 처리 요청을 위해 사용자가 임의로 가스비를 많이 지불해야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수수료 부담이 폭증한 것에 기인합니다.

불필요한 가스비 지불 경쟁이 결국 거래량 위축, 혹은 처리 속도 저하로 인한 사용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일종의 '표준 가스비'를 만들고 꼭 필요한 경우에만 추가 가스비를 지불하도록 함으로써 수수료 부담을 줄이고 거래는 활성화하겠다는 목표죠.

▲ 이더리움 런던에서는 가스비 계산과 지불이 단순해졌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이더리움 런던에서는 가스비 계산과 지불이 단순해졌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또 이더리움 런던에선 수수료로 네트워크에 지불된 가스비가 모두 소각되도록 변경되기 때문에 거래량이 늘수록 전체 이더리움 코인 수는 줄어들게 됩니다. 이는 곧 자산의 희소성이 높아지는 효과를 갖기 때문에 이더리움 가격 상승에 일조할 수 있죠. 주식 시장에서 기업이 자사주 매입 후 이를 소각하는 식으로 주가를 끌어올리는 것과 비슷한 효과입니다.

이더체인에 따르면 지난 5일 런던 하드포크 직후 이더리움 네트워크에선 분당 4.9개의 이더리움이 소각된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1년 간 약 70억달러(약 8조원) 어치의 이더리움이 소각되는 셈입니다. 다만 이것이 실제 이더리움 가치에 얼마나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란 의견도 있는 만큼, 당분간은 하드포크 전과 후의 가격보다 실제적인 데이터 변화를 주시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드포크는 현재진행형…갈 길 멀다
벌써 9번의 하드포크가 있었지만 '런던'은 이더리움의 종착지가 아닌 정류장에 불과합니다. 이더리움 재단에 따르면 이더리움 2.0은 총 네 단계의 진화 과정을 밟아야 완성되며 현재는 아직 2단계에도 이르지 못한 상황입니다. 당초 올해 완성이 목표로 제시되기도 했으나 여러 기술적 문제 해결과 합의 과정 속에서 시기가 점점 늦어지고 있죠. 그러나 이더리움 진화 방향성에 대해 생태계가 이미 대승적 합의를 이룬 만큼 별다른 외부 요인이 없다면 이후 진화도 큰 무리 없이 진행될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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