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글로벌 반도체 업계에 ‘환경 문제’가 화두로 떠오른 지 꽤 시간이 지났습니다. 칩 제조사도 그렇지만 부품 제조사도 산업 생태계 측면에서 마찬가지입니다. 탄소 중립을 실현하지 못하면 중장기적으로 제품을 팔게 되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죠.

이는 국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3월 전자, 전기, 전지 업계 8개 회사가 함께 ‘탄소중립위원회’를 만들었는데 최근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낸 삼성전기도 이 위원회에 동참했습니다. 2050년까지 사실상 탄소 배출량을 제로(0)로 만드는 ‘넷 제로’에 동참하기로 한 겁니다.

▲ 경계현 삼성전기 대표.(사진=삼성전기)
▲ 경계현 삼성전기 대표.(사진=삼성전기)

물 재이용률 줄고 '스코프1'은 증가세
삼성전기의 사업부는 크게 세 부문으로 분류됩니다. 반도체에 필요한 전기를 담는 적층세라믹콘덴서(MLCC)를 만드는 컴포넌트 사업부문, 카메라·통신장비 모듈을 만드는 모듈 사업부문, 반도체를 패키지로 묶어 동시에 작동하게 만드는 기판 사업 부문으로 나뉩니다. 제품 제조 과정에서 물과 전기를 쓰고 탄소를 배출하며 산업 폐기물이 만들어지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GHG 프로토콜’(온실가스 회계처리 및 보고 기준)에 따르면 기업은 크게 세 가지 방식으로 탄소를 배출합니다. 제품 생산 과정에서 직접 탄소를 배출하는 ‘스코프1’, 기업이 쓰는 전기에서 간접적으로 탄소를 배출하는 ‘스코프2’, 물류, 협력사 등 외부 배출에서 생기는 ‘스코프3’로 분류됩니다.

사실 삼성전기는 반도체 벨류체인에 속한 기업 중에서도 탄소 저감에 있어 선도적인 편입니다. 영국 카본 트러스트로부터 MLCC와 반도체 패키지기판을 만드는 기업으론 처음으로 ‘탄소 발자국’과 ‘물 발자국’ 인증을 취득했는데요. 공정 개선과 고효율 에너지 절감 설비 도입을 통해 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제조과정에서 생긴 오염된 물도 정화해 재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 삼성전기는 2018년과 2019년 15~16%대까지 유지했던 용수 재이용률이 2020년 9.28%로 급감했다.(사진=삼성전기 지속가능경영보고서 갈무리)
▲ 삼성전기는 2018년과 2019년 15~16%대까지 유지했던 용수 재이용률이 2020년 9.28%로 급감했다.(사진=삼성전기 지속가능경영보고서 갈무리)

다만 탄소 배출과 물 사용 측면에서 숙제가 없는 건 아닙니다. 수자원 측면에서 용수 사용량 기준으로 2018년 2369만 톤에서 2020년 1971만 톤으로 절댓값은 400만 톤가량 줄이는 데 성공했지만, 용수 재이용에선 같은 기간 379만 톤에서 183만 톤으로 오히려 200만 톤가량 역행했습니다. 이에 용수 재활용률도 2018년 15.99%에서 2020년 9.28%로 급감했죠.

급작스러운 용수 재이용률 감소에 대해 삼성전기 측은 중국 쿤샨 사업장 폐쇄를 이유로 들었습니다. 쿤샨 사업장은 삼성전기의 스마트폰 기판을 만들던 곳인데 2019년 청산됐습니다. 기판 제조에 물 사용량이 많아 저감 장치를 갖춰놓은 상황에서 사업장을 폐쇄하니 물 재이용률이 급감한 겁니다. 이렇게 줄어든 물 재사용률은 타 사업장에서 채워야 하는데, 2026년까지 목표치인 용수 재활용률 40%를 이룰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제어하기 어려운 국내사업장 스코프2
▲ 삼성전기의 스코프2를 줄이고 있지만 절댓값 측면에서 극적으로 수치를 줄이지는 못하고 있다.(사진=삼성전기 지속가능경영보고서 갈무리)
▲ 삼성전기의 스코프2를 줄이고 있지만 절댓값 측면에서 극적으로 수치를 줄이지는 못하고 있다.(사진=삼성전기 지속가능경영보고서 갈무리)

탄소 배출도 적잖은 숙제들이 보입니다. 우선 직접 탄소 배출인 스코프1(이산화탄소 환산 배출량·CO2e) 기준으로 2018년 6만6138톤에서 2020년 7만9240톤으로 약 1만3000톤 증가했습니다. 같은 기간 원단위 이산화탄소 배출량 기준으로도 톤당 8600만원에서 9700만원으로 늘었습니다. 제품 생산 과정에서 탄소 배출이 줄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탄소 저감 측면에서 스코프2가 줄어들고 있는 건 긍정적입니다. 2018년 121만 톤에서 2020년 112만 톤으로 약 9만 톤 줄였는데, 이는 같은 기간 매출이 5000억원 가량 늘었음에도 감축에 성공한 겁니다. 이에 스코프1과 스코프2를 합친 총 원단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18년 16억원에서 2020년 14억7000만원으로 1억3000만원 가량 줄었습니다.

다만 이런 상황을 무조건 낙관할 순 없습니다. 스코프2가 줄어들고 있다고는 하나, 절댓값 측면에서 탄소 배출량이 많고 앞으로도 많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올해 상반기 매출이 4조8000억원에 달했던 삼성전기는 연간 기준으로 10조원에 육박하는 매출을 낼 것으로 전망됩니다. 반도체 시장의 호황이 역설적으로 회사의 탄소 저감 활동에 악영향을 주는 셈입니다.

▲ 삼성전기는 국내에 수원과 부산, 세종에 생선 거점을 도고 있다.(사진=삼성전기 뉴스룸 갈무리)
▲ 삼성전기는 국내에 수원과 부산, 세종에 생선 거점을 도고 있다.(사진=삼성전기 뉴스룸 갈무리)

삼성전기는 국내에 경기도 수원과 세종, 부산에 각각 공장을 두고 있습니다. 해외에는 중국 고신과 천진, 쿤산, 동관에, 베트남과 태국 필리핀 등에 생산 거점이 있죠. 중국의 경우 일찌감치 신재생에너지 시장이 커져 있어 스코프2를 줄일 수 있겠지만, 신재생에너지가 아직 보편화하지 않은 우리나라 사업장에서는 스코프2가 지속될 개연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삼성전기 공시에 따르면 이 같은 문제가 잘 드러납니다. 2018년 이산화탄소 배출량 43만5276만 톤에서 2020년 44만4100톤으로 절댓값을 줄이는 데 실패한 겁니다. 같은 기간 총 사용량이 줄어든 걸 감안할 때, 국내에서의 에너지 전환은 향후 삼성전기에게 적잖은 숙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 (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
▲ (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

다소 간과됐지만 스코프3 배출도 적지 않습니다. 2018년 27만 톤에서 2019년 16만9000톤으로 줄었던 스코프3는 2020년 15만 톤으로 저감 속도가 크게 둔화됐습니다. 운송과 물류에서의 탄소 배출량이 2018년 16만6000톤에서 2019년 4만8000톤으로 12만톤 가량 줄였지만 2020년엔 이를 줄이지 못한 게 컸습니다. 구매제품과 서비스, 출퇴근, 투자 활동 등에서 발생하는 탄소도 지속적으로 줄여나가야 합니다.

▲ 다소 간과되고 있는 스코프3도 줄여나가야 할 지표다.(사진=삼성전기 지속가능경영보고서 갈무리)
▲ 다소 간과되고 있는 스코프3도 줄여나가야 할 지표다.(사진=삼성전기 지속가능경영보고서 갈무리)
증설과 저감의 역설, 삼성전기의 리스크
언택트 시대의 도래로 반도체 시장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삼성전기는 고사양 볼그리드어레이(BGA)와 플립칩(FC)-BGA 생산량 증설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반도체에서 후공정 패키지가 성능 향상으로 이어지는 만큼 패키지 수요는 늘어나고 있습니다. 증설은 실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죠.

다만 증설은 삼성전기에 있어 필연적인 탄소 배출량 증가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특히나 삼성전기는 기판 사업을 베트남 시장으로 재편하고 있는데, 베트남의 친환경에너지 시장은 이제 막 커나가고 있는 수준에 불과합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전체 전력에 57.1%를 석탄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 베트남은 발전량 기준 탄소 57.1%, 석유 24.9%로 탄소 기반 에너지에 절대적으로 치우쳐있다.(자료=에너지경제연구원 '베트남의 전력수급 및 재생에너지발전 현황' 리포트 갈무리)
▲ 베트남은 발전량 기준 탄소 57.1%, 석유 24.9%로 탄소 기반 에너지에 절대적으로 치우쳐있다.(자료=에너지경제연구원 '베트남의 전력수급 및 재생에너지발전 현황' 리포트 갈무리)

삼성전기의 탄소 배출이 스코프2에 치우친 만큼, 신재생에너지 시장이 커지면 이 수치는 중장기적으로 줄어들 건 확실합니다. 다만 매년 매출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전력 소모는 줄이기 어렵고, 탄소 배출권을 구매하는 방식이 아니라면 탄소가 많이 발생하는 에너지를 씀으로써 생기는 문제는 당분간 불가항력적입니다.

시대적 요구에 따라 중장기 탄소 중립을 달성해야 하는 삼성전기에 이런 상황은 매우 도전적이지만 꼭 극복해야 할 과제입니다. 글로벌 경영, 투자 환경에서 ESG가 강조되는 추세인 가운데 탄소 배출을 잡지 못한다면 제품 판매에도 리스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삼성전기의 지속 가능한 경영을 앞으로도 주목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 삼성전기 클린룸에서 작업자가 일하고 있다.(사진=삼성전기)
▲ 삼성전기 클린룸에서 작업자가 일하고 있다.(사진=삼성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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