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K-반도체 전략보고’에 등장한 네 개 회사 중 한 곳이 주목받았다. 말 안 해도 아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반도체 후공정의 글로벌 강자 네패스와 그 틈바구니 작은 스타트업, 인공지능 반도체 설계 회사 ‘리벨리온’(Rebellions)이 그곳이다. 지난해 9월 설립된 리벨리온은 설립 후 채 1년도 안 돼 국내 스타트업 반도체 씬을 대표하는 자리에 우뚝 섰다.

투자유치 이력부터 어마무시하다. 지난해 11월 55억원의 첫 시드투자를 받은 데 이어 지난 7월 145억원의 추가 투자로 총 200억원의 프리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다. 제품이 나오기는커녕 수주 계약 한 건도 없는 상황에서 받은 시드 투자라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이다. ‘도대체 인공지능 반도체는 무엇이고 리벨리온이 무얼 하는 곳이길래, 여길 이끄는 사람은 누구길래’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변태’들이 일하는 회사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는 컴퓨터 엔지니어다. 카이스트 전자과를 수석 졸업한 뒤 MIT에서 전기컴퓨터공학으로 석·박사학위를 5년 만에 취득했다. 이후 인텔과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를 거쳐 창업 직전에는 뉴욕 모건스탠리에서 'Vice President' 직책(상무에 해당)으로 퀀트 트레이딩을 담당했다. 11년 간의 미국생활을 통해 첨단 과학을 주도하는 실리콘밸리와 자본주의의 첨병 월스트리트라는 시스템 한복판을 모두 경험한 것이다.

그랬던 그가 지난해 돌연 리벨리온을 만들었다. 뉴욕 IBM TJ왓슨연구소에서 리드 아키텍트로 일하던 오진욱 CTO를 비롯해 MIT, 카이스트, 서울대학교, 포항공대 등 17명의 공학박사들과 IBM, ARM, 인텔 등 외국계 반도체 회사를 거친 8명의 엔지니어들, 국내 스타트업계 이름난 AI 연구자 6명이 이곳에 뭉쳤다. 세계 최고의 기업을 그만두고 스타트업을 차린 이유는 무엇인지, 창업하자마자 큰 규모의 펀딩을 받고 유수의 인력을 모은 원동력은 무엇인지, 그리고 AI반도체는 어떻게 가치를 창출하는지 궁금했다. 그는 “한국에서 제대로 된 시스템 반도체 한 번 만들면 좋겠다”라고 스타트업에 뛰어든 배경을 설명했다.

▲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사진=리벨리온)
▲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사진=리벨리온)

이일호 기자(이하 ‘이’) : 투자 유치 규모가 이례적입니다.

박성현 대표(이하 ‘박’) : 창업 후 1년이 채 안 된 시점에서 200억원 유치는 규모가 컸던 건 사실인 듯한데, 여러가지로 상황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이 : (자료를) 찾아봤는데 이 정도 규모는 잘 안 보입니다.

박 : 반도체 슈퍼 싸이클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벤처캐피탈 마켓에 유동성이 커진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다만 저희가 처음에 투자를 받을 때 ‘팀’을 내세운 게 유효했다고 생각합니다. 투자유치(IR)는 두 번째 슬라이드에서 결판이 나기 마련인데, 저는 거기에 팀원 전체 리스트를 공개했습니다. 정말 유니크한 배경이 있는 사람, 엑스큐션(실행)이 되는 사람이란 두 가지 면을 내세웠습니다. 제가 투자자라도 베팅하고 싶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 : 기술을 이해시키기 어려웠을 듯합니다.

박 : 사실 딥테크 영역은 투자자들이 기술 그 자체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IR은 ‘광’ 파는 작업이라 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좋은 분들을 팀원으로 모셨다는 걸 내세웠습니다. 접근 가능한 마켓 규모는 얼마이고, 우리는 뭘 했던 사람인지를 과거 지향적으로 설명했죠. 또 저희는 주니어 엔지니어들도 ‘구글 스타일’로 모셨습니다. 구글에 가보면 주니어들도 박사들을 채용해 코드를 짭니다. 자칫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이런 구글 스타일만의 유니크함이 있습니다. 주니어의 역할이라도 엑스큐션 단에서 혼자서 일하고 판단할 수 있는 분들을 모시는게 역설적으로 더 효율적입니다. 

이 : 이유가 있을까요.

박 : 장기적으로 비용 효율이 생기고 개발 시간이 극단적으로 짧아지기 때문입니다. 개발 기간이 오래 걸리는 이유는 보통 딱 한 가지입니다. 아키텍처를 만들었다가 다시 뒤엎는 일이 생기기 때문인데, 제대로 짠 코드는 ‘롤백’이 생길 일이 없습니다. 코드를 짜는 게 영화에서 보듯 순식간에 되는 것 같지만, 한 줄을 짤 때 10번 생각하는 것과 10줄을 한 번 생각하고 짜는 건 완전히 다릅니다. 코드 한 줄을 짜더라도 제대로 짜야 개발 시간이 단축되고 롤백할 일도 없습니다.

미국은 투자자들이 딥테크 기업을 심사할 때 기술 자체에 대한 질문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대신 뛰어난 엔지니어들이 계속해서 합류하고 있는지를 주목하죠. 기술에 대한 이해도는 그 회사에 합류하기로 결정한 엔지니어들이 가장 높거든요. 훌륭한 엔지니어들이 계속해서 합류한다는 사실이 바로 그 회사의 기술력을 증명하는 겁니다. 촌스러울 만큼 IR 자료에 팀원 전체 리스트와 레퍼런스 체크를 할 수 있도록 담았습니다. 단순히 어디 외국계 회사에서 일했고 어디서 박사를 취득했다가 아니라, 한 명 한 명 모두 특정 분야에 앞 단에 거론되시는 분들을 모으다 보니 투자자들도 잘 할 거로 생각하는 듯합니다.

이 : 좋은 팀원이란 무엇인가요?

박 : 사실 좋은 엔지니어는 대부분 ‘변태’입니다.(웃음) 팀에 10명이 있다면 되게 신경질적이고 결벽적인 사람이 2~3명은 있어야 합니다. 큰 그림을 보는 사람도 중요하지만 디테일에 집착하는 사람이 없으면 명품은 안 나옵니다. 엔지니어링은 변태 같은 디테일이 쌓여서 명품이 나옵니다. 인텔이나 퀄컴도 처음부터 명품은 아니었습니다. 사업 초기에 변태 같은 디테일에 집착하는 사람이 나와서 그렇게 된 겁니다.

물론 팀이 커지면 더는 디테일에 집중하기 어려운 단계가 옵니다. 다만 첫 단계는 진짜 장인정신을 갖고 한 땀 한 땀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아키텍처를 롤백하게 돼 칩을 다시 찍어야 하는 문제가 안 생깁니다.

이 : 마치 수제 정장을 만드는 시스템처럼 들립니다.

박 : 맞습니다. 브랜딩이 되면 그걸로 대량 생산을 하면 됩니다. 다만 처음에는 수제 정장을 만드는 듯한 장인정신이 필요한 게 사실입니다.

▲ 지난 5월 13일 박성현 대표가 'K-반도체 전략 보고'에서 반도체 스타트업 대표로 발언하고 있다.(사진=산업통상자원부 유튜브 갈무리)
▲ 지난 5월 13일 박성현 대표가 'K-반도체 전략 보고'에서 반도체 스타트업 대표로 발언하고 있다.(사진=산업통상자원부 유튜브 갈무리)
 
이 : 대통령 주관 행사에 참여한 뒤 관심이 커진 듯합니다.

박 : ‘리벨리온은 아직 저기 나갈 급은 아니지 않나?’란 말을 많이 들었는데, 그게 사실입니다.(웃음) 운이 좋았던 거죠. 반도체 업계에 계신 전문가들께서 리벨리온을 가장 주목받는 팹리스(공장 없이 반도체 설계만 하는 기업)로 선정해 주셔서 대통령께서 주관하신 ‘K-반도체 전략보고’에서 발표할 수 있었습니다.

이 : 본인 이야기도 해주세요. 태생이 '공돌이'인가요?

박 : ‘인본 엔지니어’라 생각해요. 발명가에 가까운 인본 엔지니어요. 카이스트에서 공부하고 MIT로 유학을 가서 멀티코어 CPU를 전공했어요. 인텔 랩스에서 2년간 연구하다가 모바일 CPU에 꽂혀서 삼성 모바일로 가게 됐고요. 2017년에 인력 시장이 워낙 좋아서 어디든 골라갈 수 있었는데, 테슬라를 갈까 스페이스X를 갈까 하다가 ‘겉멋’에 취해 스페이스X를 가게 됐어요.(웃음)

▲ 박성현 대표는 인텔과 미국 삼성전자 모바일, 스페이스X, 모건스탠리 등을 거쳤다. 사진은 박 대표가 스페이스X 로켓 앞에 서있는 모습.(사진=리벨리온) 
▲ 박성현 대표는 인텔과 미국 삼성전자 모바일, 스페이스X, 모건스탠리 등을 거쳤다. 사진은 박 대표가 스페이스X 로켓 앞에 서있는 모습.(사진=리벨리온) 

이 :
스페이스X는 어땠나요?

박 : 저랑 잘 안 맞긴 했지만 미친 듯 일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서 제게 굉장히 큰 도움이 됐습니다. 거기서 일하다 모건스탠리를 갔는데, 모건스탠리가 커리어적으로 꿈꾸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면 스페이스X는 순수하게 일과 목표, 임무에 자부심 있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에요. 그런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게 리벨리온 창업의 계기가 됐습니다.

스타트업이 NPU에서 대기업을 이길 수밖에 없는 이유
리벨리온은 인공지능 반도체를 설계하는 곳으로 정확히는 ‘AI 반도체에 기반한 풀스택 솔루션 회사’다. 보통 CPU와 GPU는 소프트웨어 스택이 갖춰져 있고 거기에 하드웨어를 끼워 맞춘다. 반면 인공지능 작업을 하는 NPU(뉴럴 프로세싱 유닛)는 따로 스택이 없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함께 디자인(Co-Design)해야 한다. NPU 시장에서 스타트업이 빛을 발하는 게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이 : NPU와 CPU·GPU는 뭐가 다른가요.

박 : CPU, GPU는 소프트웨어 스택이 있고 거기에 하드웨어를 끼워 맞춥니다. 그런데 NPU는 그런 체계가 없어서 반도체 칩과 소프트웨어 스택이 필수로 함께 만들어져야 합니다. 하드웨어가 소프트웨어에,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에 '인풋'을 주죠. 딥러닝과 컴파일러, 하드웨어, 아키텍처, 설계, 검증으로 이어지는 반도체 디자인의 진수이자 정수입니다.

저희는 하드웨어 팀과 소프트웨어 팀이 나눠져 있는데, 다른 NPU 팹리스 스타트업이 그렇듯 향후 규모가 커지면 소프트웨어 팀이 더 커질 겁니다. 다만 초기 단계에선 하드웨어가 제일 중요합니다. 어떤 ‘인스트럭션 셋 아키텍처’(ISA·명령어 집합 구조)를 갖고 있느냐가 그 팀의 핵심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아키텍처를 100% 활용할 수 있는 컴파일러(소프트웨어상 코드를 기계어로 바꿔주는 과정) 소프트웨어 스택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회사를 ‘AI 반도체에 기반한 풀스택 솔루션’ 회사라 부릅니다.

이 : NPU는 다품종 소량생산에 걸맞다고 들었어요.

박 : 맞습니다. 엔비디아의 GPU를 써도 웬만한 뉴럴 네트워크는 다 가동됩니다만, NPU를 쓰는 건 그것보다 더 잘 하려고 하는 겁니다. 대형사 NPU가 좋다고 하는데 사실 그건 ‘맥가이버 칼’과 같습니다. 하나의 칩으로 서버와 사물인터넷, 센서, 자율주행 등에 다 활용하는 거죠. 저희는 맥가이버 칼은 안 만듭니다. 각 도메인의 요구에 맞춰 최적화된 NPU를 만들겠다는 겁니다. 비즈니스적으로 각각의 시장 규모가 5조원 이상 될 것이기 때문에, 맥가이버 칼과 같은 NPU보다는 각 도메인에 최적화된 NPU가 더 적합한 솔루션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 리벨리온 구성원들.(사진=리벨리온)
▲ 리벨리온 구성원들.(사진=리벨리온)

이 : 각각의 시장에 특화된 NPU인가요?

박 : 네. 사실 NPU를 쓰는 건 뭔가 최적화된 걸 하겠다는 건데 GPU처럼 두루 쓰이는 걸 만들면 원칙이 충돌하게 됩니다. 시스템 트레이딩이나 데이터센터, 자율주행 등 각 도메인이 요구하는 딱 걸맞은 NPU를 만들어주는 겁니다. 이미 테슬라나 구글, 스페이스X와 같은 혁신 기업들은 모두 자체 칩을 디자인하며 그게 트렌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걸 하려면 도메인 관련 지식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반도체만 만들던 사람들은 이 부분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잘 하지 못합니다. 팀을 꾸릴 때 특별한 도메인 지식을 갖춘 사람들을 모신 것도 이 때문입니다. 저 같은 경우 실제로 시스템 트레이딩을 해서 그 분야에 어떤 AI 반도체가 필요한지를 알고 있습니다. 오진욱 CTO는 IBM에서 인하우스로 데이터센터를 담당해 거기에 들어가는 NPU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이 : 시장 규모가 작아도 그에 특화된 칩을 만들어 준다는 건가요?

박 : 네. 기존 NPU 시장은 공급자 중심이었습니다. NPU를 잘 만들었다고 하는데 사실 개별 도메인으로 가면 잘 안 맞습니다. 그런데 시장 규모가 작은 기업이 팹리스에 커스터마이징을 해달라고 해도 안 해줍니다. 100조원짜리 데이터센터 시장이 있는데 수조 원 규모의 시장을 위해 그렇게 하진 않는 거죠. 저희는 반대로 수요자 중심으로 칩을 디자인해 만들겠다는 겁니다.

이 : 리벨리온 첫 칩이 IBM의 AI코어 ‘Gen3’ 대비 성능이 25% 높다고 들었습니다.

박 : 공정도 좋은 걸 쓰기도 했지만 사실 그보단 이번이 첫 제품이기 때문인 게 큽니다. 인텔이나 IBM은 기존 세대에서 돌아가던 코드가 새로운 제품에서 모두 돌아가야 해요. 레거시 코드가 선형적으로 늘지 않고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게 되죠. 마치 축구를 재미있게 하려는 데 규칙이 100만 개 있는 꼴입니다. 그런 조직은 어느 순간이 되면 엔지니어들이 재미를 잃고 나가게 되죠. 저희는 ‘0세대’이기 때문에 레거시 코드를 소화할 필요가 없어서 속도가 빠른 겁니다.

그리고 글로벌 빅테크 회사들의 목표 시장은 최소 수십조원은 돼야 합니다. 반면 저희는 도메인에 특화된 제품을 만들어서 성능이 좋을 수밖에 없죠. 실제로 미국에서 AI 반도체는 스타트업의 성능이 더 좋습니다. 전통의 엔비디아 같은 곳을 제치면 그다음부터는 스타트업들 간의 싸움인 것이죠.

이 : 스타트업이 대기업보다 나을 수밖에 없다?

박 : AI 반도체는 이미 스타트업 씬이 주도하게 됐습니다. 우리도 국내 유수의 반도체 기업과 경쟁할 때 그 큰 기업과 직접 경쟁하는 게 아닙니다. 그 안의 NPU 설계팀과 경쟁하는 거죠. 그럼 투자금과 사람을 봐야 하는데 양쪽 모두 저희가 더 좋습니다. 아무리 대기업이라도 2년짜리 프로젝트에 수백억 원을 넣기 어렵고, 대기업 임원들은 2년 내 성과가 없으면 옷 벗어야 하니 리스크를 취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스타트업은 본질적으로 리스크를 취하는 구조입니다. 스타트업이 대기업을 이기는 건 너무나 자명한데 밖에선 잘 이해를 못 합니다.

우리는 미국 스타트업이 겁나지 한국 대기업은 겁나지 않습니다. 이미 어떤 식으로 그 조직이 작동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라도 대기업에 있다면 리스크를 걸지 않을 겁니다. 반면 스타트업은 리스크를 취하는 만큼 잠재력이 열립니다. 그게 본질적으로 대기업과 다른 점입니다. 향후 리벨리온이 AI 반도체에서 승자가 되지 않더라도 결국 이기는 건 스타트업일 겁니다.

“시스템 반도체, 한국으로 중심 이동할 것”
박성현 대표는 창업 당시 미국에서의 시작을 검토 안 했던 게 아니다. 적잖은 스타트업이 미국에서 시작하는 이유는 한국보다 마케팅이나 자본력, 해외 기업과의 소통, 투자 등에서 훨씬 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박 대표가 리벨리온을 한국에 차린 이유에 대해 그는 ‘사람’을 강조했다. 한국이 좋은 인재를 구하기 훨씬 쉽다는 것이다. 그는 같은 이유로 향후 시스템 반도체 산업의 중심이 한국을 비롯한 몇몇 나라로 이동하리라 전망했다.

이 : 리벨리온 직원은 몇 명입니까.

박 : 이제 딱 30명 됐습니다.

이 : 모두 한국인인가요?

박 : 29명이 한국인이고 딱 한 명만 캐나다에 있습니다.

이 : 왜 한국에서 리벨리온을 차리셨나 궁금했습니다. 애국심이라도 있으셨나요?(웃음)

박 : 굳이 포장하자면 그렇긴 하지만, 현실적인 선택이기도 합니다. 반도체에 투자할 때는 미래 변화에 베팅해야 하는데 이미 주가가 높은 애플이나 삼성전자, 구글을 하기보단 잠재력 있는 곳에 베팅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고 저는 한국이 그런 시장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기왕 할 거면 한국에서 제대로 된 시스템 반도체 회사 하나 차려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 씬에 들어오면 약간의 ‘국뽕’이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웃음) 저는 전자과 출신인데 이건 대한민국 반도체에 대한 국뽕이 없으면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합니다.

이 : 좋은 인재를 구하기 쉽지 않았을 듯합니다. 초기 셋업 단계가 궁금한데요.

박 : 지금도 계속 마음의 상처를 받으면서 훌륭하신 분들을 모시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오진욱 CTO는 미국에서 저랑 2년 가까이 팀워크를 맞춰봤고요. 김효은 CPO는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를 미리 경험한 리더이며 오진욱 CTO와 카이스트 박사과정에서 함께 공부했습니다.

▲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와의 인터뷰는 경기도 판교 소재 리벨리온 오피스에서 이뤄졌다. 리벨리온 로고 앞에 서있는 박성현 대표.(사진=블로터)
▲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와의 인터뷰는 경기도 판교 소재 리벨리온 오피스에서 이뤄졌다. 리벨리온 로고 앞에 서있는 박성현 대표.(사진=블로터)

이 : 한국에서 좋은 인재를 구하는 게 가능한가요?

박 : 사람들이 잘 모르는 건데, 오늘날 미국에 있는 반도체 업계 종사자들조차 반도체 산업은 한국과 대만, 이스라엘이 중심이라는 컨센서스가 생기고 있습니다. MIT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분들도 스타트업 창업할 때 대만이나 이스라엘로 갑니다. 저랑 오진욱 CTO도 미국에서 창업할 수 있었고 첫 투자자가 미국인이 될 뻔했는데, 그런데도 한국으로 넘어온 건 미국인들이 하드웨어를 잘 안 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MIT에 있을 때 EECS(전자공학&컴퓨터사이언스) 조교를 했는데, 학생 130명 중 120명이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했습니다. 빠르고, 편하고, 큰 돈이 안 들기 때문입니다. 엔지니어는 단 10여명에 불과했죠. 미국이 여전히 시스템반도체 최강인 건 사실이지만 끝물인 이유는 인재가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이 반도체 산업에서 오히려 미국보다 인력이 좋다는 건 제가 미국에 있어봤기 때문에 과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이 : 스포츠도 탑 클래스는 국적 구분이 없더군요. 오히려 한국이 인재를 구하기 쉬울 수도 있겠습니다.

박 : 동의합니다. 우리나라 대학교들도 좋은 반도체 인재를 배출한지 꽤 오래 됐습니다. 물론 이는 질적인 이야기지만, 저희는 몇 백 명 규모로 커지는 걸 목표로 하고 있진 않습니다. 나중에 필요하면 미국에 지사를 내긴 하겠지만, 한국에서 모을 때까지 모으는 게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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