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업·기술·기기가 또 2021년 우리의 일상을 바꿔놓을까? <블로터>가 설문조사와 전문가 추천 등의 방식으로 '우리의 일상을 바꿀 기업·기술·기기'를 선정, 소개한다.

판매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지는 온라인 쇼핑은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소비자는 물건의 상태나 수량이 주문과 다를 경우 불만을 나타낸다. 판매자가 주문대로 발송했다고 반박한다면 배송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는지 따져봐야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을 살펴보며 잘잘못을 따지기는 쉽지 않다. 누구의 잘못인지를 가려내기 어렵다보니 이를 노리고 물건을 제대로 받았지만 보상을 요구하는 악성 소비자도 나타났다.

이러한 입증이 필요한 곳은 온라인 쇼핑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존재한다. IT 솔루션 기업 인베트는 영상을 통해 이러한 사회적 분쟁을 해결하겠다고 나섰다. 최근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한 인베트 사무실에서 김종철 대표를 만나 동영상 물류 관리 시스템 '리얼패킹'의 개발 과정과 향후 계획에 대해 들었다.

▲ 김종철 인베트 대표가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블로터></div>와의 인터뷰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블로터)
▲ 김종철 인베트 대표가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블로터>와의 인터뷰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블로터)
물류센터 300곳서 '리얼패킹'으로 증거 영상 촬영…인바운드콜 85% 감소
김 대표는 지난 2004년 인베트를 설립하고 주문관리시스템(OMS) '헬프셀러'를 개발했다. 헬프셀러는 이커머스 기업이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제품을 판매하는 경우 판매관리를 한 곳에서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시스템이다.

김 대표는 헬프셀러를 공급하며 서울 동대문 시장을 기반으로 한 패션몰들이 제품 포장 과정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목격했다. 그들은 제품 포장 과정을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한 후 사진으로 인화해 택배 박스에 동봉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온라인으로 주문한 제품을 택배로 받아본 일부 소비자들이 자신이 주문한 것과 다르다며 교환이나 환불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에 대한 대응으로 사진을 택한 것이다. 일일이 제품 사진을 찍고 인화한 후 박스에 동봉하는 업무가 추가됐지만 분쟁을 줄이기 위한 증거를 제공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사진조차도 믿지 못하는 소비자들이 나오며 한계를 드러냈다. '이 사진의 제품이 내가 받은 제품인지 어떻게 믿느냐'는 불만도 나왔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사진이 아닌 영상으로 제품 촬영 과정을 보여주고 자막으로 설명까지 해준다면 소비자들이 수긍하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는 주문별로 제품 포장·입고·반품 등의 과정이 촬영되고 어떤 제품인지 표시가 되는 영상 서비스 개발에 돌입했다.

리얼패킹의 연구개발은 2011년 시작됐지만 현재의 서비스 모습을 갖추기까지 약 5년이 소요됐다. 물류 현장에서 업무가 이뤄지는 과정이 제각각이다보니 동일한 패턴을 뽑아내 하나의 솔루션으로 만들기가 까다로웠다. 영세한 패션몰들도 많다보니 일정한 업무 매뉴얼을 갖추지 못한 곳도 많았다. 개발과정에서 겪었던 또 하나의 어려움은 시스템에 에러가 발생하지 않아야 하고 혹시 발생하더라도 최대한 빠르게 정상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주문·발송·반송 등의 물류 과정이 실시간으로 이뤄지는데 제품 하나라도 누락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500여개의 물류 케이스를 리얼패킹에 적용하며 안정화 작업을 거쳐 120가지의 촬영 로직을 갖춘 리얼패킹을 완성했다.

▲ 리얼패킹을 도입한 한 물류센터의 모습. (사진=인베트)
▲ 리얼패킹을 도입한 한 물류센터의 모습. (사진=인베트)

리얼패킹은 영상을 촬영하는 카메라와 소프트웨어로 구성된다. 물류센터의 검수라인이나 포장라인에 설치된다. 주문이 들어오면 송장의 바코드를 바코더에 인식시키면 촬영이 시작된다. 제품 포장을 마치고 바코드를 다시 인식시키면 촬영이 종료되고 영상은 서버에 저장된다. 쇼핑몰 사업자는 시스템에서 해당 물품을 검색하면 영상을 볼 수 있다. 제품의 출고 준비가 끝나면 소비자에게 카카오톡 알림톡을 통해 영상을 발송한다. 소비자는 물건을 받기 전에 제품의 포장 영상을 먼저 보는 셈이다.

리얼패킹을 이용하는 업종은 다양하다. 쇼핑몰을 비롯해 요식업의 수요도 늘었다. 최근 배달 음식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배달 과정에서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도 증가했기 때문이다. 일부 음식 프랜차이즈에서도 리얼패킹을 도입했다. 영상은 고객과의 분쟁 발생시 입증을 하거나 마케팅을 하는 과정에서 활용된다. LX판토스, 패션 의류 업체 한섬, 패션 커머스 기업 브랜디 등이 리얼패킹을 도입했다. 카카오커머스의 카카오프렌즈 강남 플래그십 스토어도 리얼패킹을 사용 중이다. 각종 카카오프렌즈 관련 상품을 판매하는 이 매장은 도심 속 물류센터 역할을 한다. 온라인으로 들어온 주문 상품이 카카오프렌즈 강남점에 있으면 매장의 제품을 보내주는데 이 과정에서 리얼패킹이 활용된다. 한국엡손도 리얼패킹 고객이다. 총판에서 각 대리점으로 제품들을 보내줄 때 리얼패킹을 활용해 영상을 보여준다.

현재 전국 300여곳의 물류센터에서 리얼패킹을 활용하고 있다. 인베트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리얼패킹을 도입하면서 소비자의 인바운드콜이 85% 감소하는 효과가 나타났다. 리얼패킹을 2년 이상 유지하면서 쓰는 고객 유지율은 86%다.

인베트는 전자상거래 플랫폼 '카페24'를 통해서도 리얼패킹을 판매하고 있다. 김 대표는 헬프셀러 서비스를 하던 시절부터 카페24와 인연을 이어가고있다. 카페24의 플랫폼을 활용해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 중인 사업자들은 카페24의 스토어를 통해 리얼패킹을 이용하고 있다. 카페24의 스토어는 온라인 사업자들일 필요로 하는 다양한 서비스들을 판매하는 마켓이다. 김 대표는 "카페24 스토어를 통해 다양한 쇼핑몰 고객을 만날 수 있어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 한 물류센터에서 리얼패킹을 통해 촬영된 제품 포장 영상이 모니터에 나타나고 있다. (사진=인베트)
▲ 한 물류센터에서 리얼패킹을 통해 촬영된 제품 포장 영상이 모니터에 나타나고 있다. (사진=인베트)

리얼패킹, 사회 분쟁 해결사로…글로벌 버전도 진화중
김 대표는 리얼패킹의 활용 범위를 더욱 넓힐 계획이다. 애초에 패션몰이나 배달 음식점 용도로만 개발하지 않았다. 블랙박스와 CCTV가 각종 교통사고나 범죄 해결의 단서가 된 것처럼 리얼패킹도 각종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분야가 많다는 것이 김 대표의 판단이다. 그는 사회적 문제가 있는 곳에 적용할 수 있는 초기 버전을 개발 중이며 조만간 공개할 예정이다. 그는 영상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촬영하기 쉬워야 하고 비용이 저렴해야 하는 것을 핵심으로 꼽았다.

리얼패킹의 글로벌 버전도 진화 중이다. 현재 2단계까지 공개됐다. 1단계는 한국의 제품을 외국인들이 구매하는 경우다. 한국의 쇼핑몰이 리얼패킹을 활용해 포장 과정을 담은 영상을 190개국의 소비자들에게 보내준다. 올해 7월 오픈된 2단계는 한국 소비자가 외국 쇼핑몰을 통해 제품을 구매하는 경우에 활용된다. 현재 외국 쇼핑몰이 사용할 수 있도록 4개국어로 제공 중이다.

3단계는 현지화된 버전이다. 외국 기업들이 현지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사용하는 리얼패킹이다. 김 대표는 네이버클라우드와 손잡았다. 인베트는 네이버클라우드가 운영하는 'SaaS 육성 프로그램'의 지원기업으로 선정돼 글로벌 진출을 위한 기술 컨설팅을 받고 있다. 대형 물류 기업과 해외직접판매 물류센터에서 이용하는 리얼패킹의 시험검증(PoC)을 준비 중이다. 리얼패킹 서비스를 네이버클라우드의 인프라를 활용해 제공하는 방식이다.

김 대표는 리얼패킹을 사회 문제 해결사로 키울 생각이다. 그는 "각종 물리적 제약을 받지 않는 영상을 활용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신뢰 사회의 형성에 기여하는 것이 회사의 비전"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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