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 (사진=넥스틴)
▲ (사진=넥스틴)

반도체 장비 기업 넥스틴은 반도체 전(前)공정에서 회로에 생기는 미세한 패턴 결함을 검사하는 광학 계측 장비를 만듭니다. 삼성전자와 미국 KLA를 거친 박태훈 대표가 이끄는 넥스틴은 반도체 패턴이 나노미터(nm)대까지 미세화하면서 수율이 계속 하락하고 있다는 데 착안해 관련 투자를 벌여 기술 국산화에 성공했습니다.

특히나 이 기업의 실적은 반도체를 둘러싼 세계 각국의 무역분쟁과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데요. 이 회사의 공시를 보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또 이 회사의 잠재적 리스크가 무엇일지를 대략 짐작할 수 있습니다.

넥스틴의 연 매출은 2014년 45억원, 2015년 6억원, 2016년 26억원에서 2017년 107억원, 2018년 129억원으로 뛰었고요. 반도체 업황이 전반적으로 부진했던 2019년에는 94억원으로 감소했지만 지난해에는 코로나19의 반사이익으로 무려 494억원을 거뒀습니다. 지난해 영업이익도 177억원으로 그간 누적됐던 손실을 한 번에 메우게 됐습니다.

넥스틴의 실적이 비약적으로 좋아진 건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는 무역분쟁 때문입니다. 하나는 2017년부터 벌어진 미국과 중국 간 무역분쟁이 있고요. 또 하나는 2019년 일본이 자국 반도체 소재 3종의 한국 수출을 규제하면서 시작된 무역분쟁이 있습니다. 국가 간 무역분쟁 사태라는 위기 상황이 우수한 기술력을 갖고 있던 넥스틴에 오히려 수혜로 작용한 겁니다.

▲ 반도체 패턴 검사 장비의 작동 원리. 웨이퍼 표면에 형성된 회로 이미지를 여러 장 찍어 레퍼런스와 비교해 차이가 큰 부분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결함과 이물을 찾아낸다.(자료=넥스틴 2021년 상반기 보고서 공시)
▲ 반도체 패턴 검사 장비의 작동 원리. 웨이퍼 표면에 형성된 회로 이미지를 여러 장 찍어 레퍼런스와 비교해 차이가 큰 부분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결함과 이물을 찾아낸다.(자료=넥스틴 2021년 상반기 보고서 공시)

이를 알기 위해선 시장과 기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반도체 패턴의 광학 검사장비는 저렴하지만 30nm 수준의 상대적으로 큰 결함을 찾아내는 다크필드(Dark-field·암조명) 장비, 비싸지만 15nm 수준의 미세한 결함까지 찾아내는 브라이트필드(Bright-field·명조명) 장비로 나뉩니다.

반도체 패턴 광학 검사장비 시장에서 미국 KLA-텐코(KLA-Tencor)는 점유율 90% 이상으로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회사가 만드는 장비(KLA9000 시리즈)는 업계 표준으로 여겨지고 있죠. 일본 히타치(Hitachi)도 다크필드 장비를 만들며, 세계적으로 다크필드 장비를 만드는 곳은 이 두 기업뿐이었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회사는 중요한 공정에는 미국 KLA-텐코 제품을, 그렇지 않은 일반 공정에는 히타치 제품을 써왔습니다. 그리고 넥스틴은 히타치의 다크필드 장비가 기술력이 낮아 이곳을 공략할 수 있다고 판단했죠. 이에 2016년 상대적으로 저렴하면서도 브라이트필드와 다크필드를 선택적으로 쓸 수 있는 2D 웨이퍼 패턴 검사장비 ‘이지스-DP’를 만들었습니다.

회사 매출이 뛴 2017년 감사보고서부터 국가별 매출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넥스틴의 매출 중 국내 비중은 2017년 66.0%(68억원), 2018년 80.6%(104억원), 2019년 74.5%(70억원) 입니다. 넥스틴의 광학 검사 제품이 히타치보다 검사속도가 약 20% 빨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회사들이 기존 히타치 제품을 넥스틴으로 바꾼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 간 무역분쟁의 여파가 본격화된 2020년에는 국내 매출이 예년보다 크게 늘었습니다. 내수 매출이 193억원으로 예년보다 100억원 넘게 뛴 것이죠. 코로나19로 늘어난 전자제품 수요를 ‘추세’로 보고 증설로 대응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키파운드리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히타치가 아닌 넥스틴 제품을 선택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그런데 지난해 실적에서는 ‘특이점’이 보입니다. 국가별 매출 구조가 완전히 뒤바뀐 건데요. 매출 494억원 가운데 내수는 193억원으로 비중은 39.1%로 크게 줄었고요. 반대로 수출은 301억원으로 비중이 60.9%로 커졌습니다. 내수와 수출 비중이 역전된 것인데, 이는 바로 미중 무역분쟁 때문입니다.

실제로 넥스틴의 지난해 수출 전액은 중국에서 나왔습니다. 중국으로의 매출은 2017년 30억원, 2018년 22억원, 2019년 23억원으로 매년 비슷했는데 지난해 288억원으로 무려 10배나 뛴 겁니다. 미국이 지식재산권 도용과 기술 유출을 빌미로 중국으로의 자국 반도체 장비 수출을 차단한 가운데, 중국 기업들이 넥스틴을 차선책으로 선택했다는 게 반도체 업계와 증권가의 일관된 설명입니다.

앞서 중국은 자국 반도체 자급률을 현 수준인 20%에서 2025년까지 70%까지 높이는 ‘중국제조 2025’를 내세웠습니다. 다만 미국의 견제로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 등 반도체 미세 공정 장비 수주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졌죠. 이에 기존 공정에 해당하는 28~14nm에서의 내수 지배력을 확대하는 한편 부족한 장비는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로 우회로를 만드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 다크필드 검사장비 공급자 가운데 KLA-텐코를 제외하면 히타치, 넥스틴 외에 선택지가 없습니다. 가격이 비슷하다면 중국 기업들로선 성능이 떨어지는 히타치보다 넥스틴의 장비를 사는 게 합리적입니다. 2020년 넥스틴이 중국 시장의 활로를 뚫는 데 성공한 건 이처럼 대외적 요인이 적지 않았던 셈입니다.

▲ (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 (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올해 상반기도 상황은 좋습니다. 매출 284억원, 영업이익 98억원, 순이익 78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 대비 매출은 207%, 영업이익은 435%, 순이익은 425% 늘었습니다. 영업이익률은 34.5%였고, 2분기(매출 183억원, 영업이익 73억원)로만 좁혀보면 39.9%에 달합니다. 국가별 매출로 보면 여전히 중국에서 높은 판매액(118억원)을 기록했고, 내수도 166억원으로 물꼬가 더 트이는 모양새입니다.

회사는 전작 이지스-DP에서 속도를 개선한 이지스-II를 올해 본격적으로 팔기 시작했고요. 3차원 반도체 검사장비인 ‘아이리스’(IRIS)와 심자외선(DUV) 파장을 활용하는 검사장비 ‘바이올리스’(VIOLIS)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회사는 매년 매출에서 적게는 10%에서 많게는 30% 넘게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있고요.

▲ 넥스틴은 이지스1, 이지스XT, 이지스DP와 전작 대비 성능이 개선된 이지스2를 개발했고 3D 반도체 검사장비 아이리스, DUV 기반 검사장비 바이올리스도 개발하고 있다.(자료=넥스틴 2021년 상반기 보고서 공시)
▲ 넥스틴은 이지스1, 이지스XT, 이지스DP와 전작 대비 성능이 개선된 이지스2를 개발했고 3D 반도체 검사장비 아이리스, DUV 기반 검사장비 바이올리스도 개발하고 있다.(자료=넥스틴 2021년 상반기 보고서 공시)

무엇보다도 넥스틴의 강점은 KLA-텐코에 버금가는 기술력에도 가격이 절반 이하로 낮다는 겁니다. 기존 다크필드 검사장비의 수준을 끌어올리면서 브라이트필드 검사장비 시장에도 본격적으로 진입할 수 있다면 글로벌 시장으로의 확대도 좀 더 수월해질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배현기 삼성증권 연구원도 리포트에서 “미국 I사(인텔)향과 삼성 메모리향 진입 시점이 일부 늦어질 수 있다는 리스크는 존재하나, 동사의 타겟시장이 펼쳐질 2023년의 그림과 펀더멘탈에는 변화가 거의 없다”라며 “브라이트필드 시장까지 DUV광원 탑재를 통해 타겟 시장의 추가 확대가 나타날 것”이라 언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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