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 원웹 발사로켓 개념도.(사진=한화시스템.)
▲ 원웹 발사로켓 개념도.(사진=한화시스템.)

재고자산 급증과 더불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재무제표에서 눈에 띄는 항목이 또 있습니다. 바로 개발비인데요. 개발비는 말 그대로 기업이 기술력 획득을 위해 연구개발에 사용하는 비용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개발비는 항상 회계적으로 논란거리입니다. 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것은 좋지만 항상 긍정적인 결과물만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투자 대비 수익이 불확실해 이를 어떻게 처리할지 상당히 애매합니다.

예를 들면 연구개발활동에 들어간 돈을 일회성 비용으로 처리할 수도 있고요. 기술 개발이 성공적이어서 수익화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에는 무형자산으로 취급하기도 합니다. 몇몇 기업들은 이 허점 아닌 허점을 분식회계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해서 더 논란이 되기도 하죠.

특히 기술장벽이 존재하는 산업에서 이러한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바이오산업이 대표적인데요. 수년 간 수천억원을 쏟아 부어 신약개발에 ‘올인’해 어느정도 성취를 이뤘는데, 막판 임상시험을 통과하지 못할 경우 수천억원의 자산을 모두 손실로 반영해야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역시 상당한 기술력을 요구하는 사업들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항공엔진, 첨단무기, 위성 등 모두 글로벌 시장 기술장벽이 아주 높은 사업들이죠. 연구개발 비용이 필연적으로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무형자산 변동내역.(출처=한화에어로스페이스 2021년 반기보고서.)
▲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무형자산 변동내역.(출처=한화에어로스페이스 2021년 반기보고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최근 공시한 올 반기 보고서를 한 번 보시죠. 연결재무제표 주석 내 ’14. 무형자산’ 항목을 보면 무형자산 변동내역이 나와있습니다. 무형자산은 말 그대로 기업 영업활동에 장기간 사용돼 미래에 경제적 효익이 기대되는 자산인데요. 유형자산과는 달리 물리적 형태가 없는 자산이죠. 기술력이 대표적입니다.

개발비 항목을 보면 반기말 기준 4565억원이 계상돼 있습니다. 앞서 무형자산은 장기간 경제적 효익이 예상되는 자산이라고 했죠. 그동안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연구개발한 기술적 무형자산이 4565억원어치 쌓여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장부가가 4565억원인 것과 달리 취득원가는 6044억원으로 적혀 있습니다. 이는 곧 그동안 자산가치의 손상이 일어났다는 의미인데요. 가장 아래 항목 상각누계액 1480억원이 취득원가와 장부가의 차액입니다.

상각누계액에는 주석이 달려있고요. 주석은 ‘손상차손누계액을 합산한 금액’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결국 비용 처리된 1480억원은 감가상각비용과 손상차손이 더해진 액수인데요. 기술개발 성공을 기대하고 무형자산으로 취급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수익 모델을 기대할 수 없는 기술을 회계적으로 비용처리한 것입니다.

▲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연구개발비용 추이.(출처=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사업보고서.)
▲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연구개발비용 추이.(출처=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사업보고서.)

1480억원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게 과연 얼마나 큰 의미일까요. 회사마다 규모도 다르고 사정이 달라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1600억원을 연구개발비로 쓴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규모로 보입니다. 또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연결기준 2020년과 2019년도 영업이익이 각각 2400억원, 1650억원이니 절대 적은 금액으로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1480억원은 감가상각비용과 손상차손이 더해진 금액이고 구체적으로 이중 손상차손 금액이 얼마인지 나와 있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잘 알려졌다시피 개발비 무형자산 계상 요건은 매우 까다롭습니다. 이 까다로운 요건을 모두 통과한 개발비 무형자산에서 손상차손이 일어났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질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해당 기술력으로 수익 모델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여겼던 회사의 분석과 예측이 빗나간 것이고요. 또 다른 하나는 애초에 사업화하기 애매한 기술력을 무리해서 자산화시켰을 수도 있죠.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이 우주사업 확장에 직접 참여하며 대내외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과연 두터운 글로벌 업체들의 기술장벽을 뚫어낼 수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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