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 삼성전기 MLCC 제품중 일부. (자료=삼성전기)
▲ 삼성전기 MLCC 제품중 일부. (자료=삼성전기)

기업 입장에서 ‘재고 관리’는 중요한 관리 요소입니다. 재고는 곧 현금과 직결되기 때문이죠. 재고가 너무 많으면 현금이 묶여 있다고 평가받습니다. 물건을 팔지 못한 채 창고에 쌓아두고 있으니까요. 반대로 너무 적으면 왜 공급 이슈 등 미래 불확실성을 대비하지 않느냐며 지적받습니다. 기업이 적정 재고를 유지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는 이유죠.

그렇다면 기업은 적정 재고 수준을 어떻게 판단하고 관리할까요. 보통 업계 상황과 연관 지어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호황이 길어질 것 같으면 평소보다 재고를 늘려 공급 부족 이슈가 생기지 않게 전략을 세웁니다. 불황에는 그 반대 정책을 채택하겠죠. 

삼성전기는 재고자산이 늘고 있는 기업 중 하나인데요. 2015년 6789억원이던 재고자산은 올해 상반기 1조3841억원으로 늘었습니다. 단순히 재고자산이 증가한 건 걱정할 부분이 아닙니다. 재고자산이 빠르게 회전한다면 매출을 늘려 실적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테니까요. 재고자산 증감 여부가 아닌 효율성을 따져봐야 한다는 거죠. 

▲ 삼성전기 매출 및 재고자산 추이. (자료=삼성전기 사업보고서 및 반기보고서)
▲ 삼성전기 매출 및 재고자산 추이. (자료=삼성전기 사업보고서 및 반기보고서)

삼성전기 재고자산이 불어나기 시작한 2015년 이후 지표를 살펴봤습니다. 재고자산의 효율성을 측정할 때 ‘재고자산 회전율’을 많이 활용하는데요. 매출원가를 기초 재고자산과 기말 재고자산의 평균으로 나눠 계산합니다. 재고자산 회전율이 높을수록 재고가 매출로 빠르게 전환됩니다. 쉽게 말해 재고자산 회전율이 높을수록 적정 재고를 유지한다고 해석해도 무방하죠.

삼성전기 재고자산 회전율은 2016년부터 2019년까지 6.6회→6.2회→5.2회→4.8회로 떨어졌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4.8회를 기록, 상승세를 띄고 있죠. 올해 상반기 재고자산 회전율도 5.4회로 소폭 올랐습니다. 상반기 재고자산 회전율의 경우 연환산 매출원가(상반기 매출원가*2)를 활용했습니다.

▲ 재고자산 회전율 추이. (자료=삼성전기 사업보고서 및 반기보고서)
▲ 재고자산 회전율 추이. (자료=삼성전기 사업보고서 및 반기보고서)

재고자산 회전율이 떨어진 시점엔 재고자산폐기손실도 급증했는데요. 오랜 기간 재고가 쌓이면 자연스레 불량이 생기는 경우도 있는데요. 기업 입장에선 이를 폐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과정에서 손실 처리한 재고를 재고자산폐기손실(폐기손실)이라고 부릅니다.

삼성전기 폐기손실은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5000억원 이상입니다. 폐기손실은 2019년까지 꾸준히 늘었습니다. 2015년 478억원에서 2019년 1386억원으로 불어났죠. 지난해에는 1338억원으로 소폭 감소했으나 여전히 1000억원이 넘는 손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올해 상반기에도 553억원의 폐기손실을 기록했습니다.

▲ 재고자산폐기손실 추이. (자료=삼성전기 사업보고서 및 반기보고서)
▲ 재고자산폐기손실 추이. (자료=삼성전기 사업보고서 및 반기보고서)

재고자산 회전율 추이와 폐기손실 추이는 삼성전기가 재고 관리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걸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결국 삼성전기는 지난해 새로운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선임하고 본격적인 재고 관리에 돌입합니다. 신규 선임된 강봉용 삼성전기 CFO는 지난해 1분기 컨퍼런스콜에서 “향후 예상되는 현금흐름 등을 말해달라”는 질문에 “적정 수준 운전자금 유지, 재고 및 채권 관리 등 리스크 관리에도 만전을 기해 순현금을 증가시키도록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향후 재고 관리 전망은 긍정적입니다. 주력 제품인 적층세라믹캐패시터(MLCC) 호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죠.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MLCC로 구성된 컴포넌트 부문 매출 비중은 전체 47.1%에 달합니다.

IT기기, 데이터센터, 전장 등 수요가 계속 늘고 있어 공급이 부족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옵니다.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기 컴포넌트 부문 평균가동률은 97%로 사실상 풀 생산 체제입니다. 재고를 활용할 시기인 거죠. 자연스레 재고자산 회전율도 개선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삼성전기가 호황에 힘입어 한때 어려움을 겪던 재고 관리까지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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