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 한화솔루션 케미칼 여수공장.(사진=한화솔루션.)
▲ 한화솔루션 케미칼 여수공장.(사진=한화솔루션.)

삼성전기가 올 초 한 차례 매각하려다 실패했던 와이파이(WiFi) 모듈 사업부의 유력 인수 후보자로 한화그룹이 떠올랐습니다. 인수 주체로 지목되는 한화솔루션 역시 터무니 없는 사실은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한화솔루션 관계자는 “아직 확정된 것은 없지만 인수를 검토하는 것은 맞다”고 했습니다.

삼성전기가 매각하려는 와이파이 모듈 사업부는 말 그대로 와이파이, 즉 전자기기들의 무선랜(WLAN) 연결을 가능케 하는 제품을 개발합니다. 모바일 기기 확산과 함께 무선인터넷 시대가 열리며 없어서는 안 될 핵심 부품이 된 지 오래죠.

삼성전기는 사업구조 개편의 일환으로 계속 와이파이 모듈사업 매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컴포넌트 등 주력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비주력 사업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삼성전기는 일본 무라타전기와 글로벌 와이파이 모듈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데요. 엄청난 수익이 나는 사업이 아닌 데다 최근 가격경쟁이 심화되고 있어 매각을 한다고 해도 크게 이상하지는 않습니다.

▲ 삼성전기 2020년 반기보고서 내 사업부문별 재무현황.(출처=삼성전기 2020년 반기보고서.)
▲ 삼성전기 2020년 반기보고서 내 사업부문별 재무현황.(출처=삼성전기 2020년 반기보고서.)

와이파이 모듈사업은 삼성전기가 영위하는 모듈 사업에 포함된 사업입니다. 모듈 사업 매출은 1조6500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34% 비중을 차지하지만, 영업이익은 1100억원으로 16% 수준에 불과합니다. 여기에 속하는 와이파이 모듈사업의 실적 비중은 더 낮겠죠.

그렇다면 한화솔루션은 삼성전기의 와이파이 모듈사업을 사들일 만한 상황일까요.

우선 자금사정부터 보겠습니다. 올 초 삼성전기가 켐트로닉스의 자회사 위츠와 체결한 계약에 따르면 와이파이 모듈사업의 몸값은 1055억원이었습니다. 올해 유상증자를 통해 1조3500억원을 확보한 한화솔루션에게 사실 큰 무리가 없는 규모입니다. 올해 반기보고서에 적힌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의 액수만 무려 1조5000억원에 달합니다.

▲ 한화솔루션 별도 기준 재무지표 추이.(출처=한국기업평가.)
▲ 한화솔루션 별도 기준 재무지표 추이.(출처=한국기업평가.)

물론 최근 한화솔루션이 대규모 투자를 연달아 결정하기는 했습니다. 올 하반기에 삼성이 보유한 한화종합화학 지분을 사들이느라 4700억원을 썼고요. 또 프랑스 재생에너지 전문 개발업체를 인수하는데 약 1조원을 투자하겠다고 했습니다. 이 비용이 하반기 재무제표에 반영될 경우 올해 연말 보유 현금은 대폭 줄어들긴 할 텐데요. 영업활동을 통한 현금유입과 와이파이 모듈사업의 몸값 수준을 감안한다면 돈이 없어서 인수 못 할 가능성은 적어 보입니다.

사업적으로도 연관이 없지는 않습니다. 한화솔루션은 화학을 기본 바탕으로 태양광, 수소 등 신사업 확장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첨단소재 사업도 영위하고 있습니다. 자동차, 태양광, 전자소재 등 다양한 소재들을 생산 및 개발하고 있죠. 이중 전자소재 부문에서는 전자제품 모듈 속에 들어가는 고기능성 필름들을 생산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전자제품 속 회로판과 부품들 사이에서 연결, 보호, 접착의 기능을 하는 필름들이죠. 와이파이 모듈사업 인수 검토는 이러한 전자사업 다각화의 일환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 한화솔루션 첨단소재 사업부문 전자소재.(출처=한화솔루션 홈페이지.)
▲ 한화솔루션 첨단소재 사업부문 전자소재.(출처=한화솔루션 홈페이지.)

게다가 한화그룹 차원에서 추진하는 도심항공교통(UAM) 사업과도 관련이 있죠. UAM은 한화 계열사인 한화시스템이 중심이 되어 진행 중인 사업으로 도심 항공을 나는 ‘에어택시’와 관련 인프라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모회사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함께 해외 기술업체들을 공격적으로 인수하며 무선 인터넷 사업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화솔루션이 와이파이 모듈사업을 인수할 경우 이 UAM 사업과 연계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 버터플라이 기체. (사진=한화시스템)
▲ 버터플라이 기체. (사진=한화시스템)

다만 한 가지 주목할 만한 부분도 있습니다. 바로 와이파이 사업의 수익이 얼마나 보장되느냐 입니다.삼성전기가 켐트로닉스의 자회사 위츠에 와이파이 모듈사업을 매각하려다 최근 불발이 됐죠. 그 이유 중 하나가 주요 매출처인 삼성전자가 와이파이 모듈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정했기 때문으로 알려졌습니다. 실제로 삼성전자가 기술적 판단으로 와이파이 모듈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라면 이는 영업협상의 영역을 벗어난 것이죠. 즉 한화솔루션은 와이파이 모듈 사업의 낮은 사업성을 감수하고 미래에 투자해야 하는 상황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어쨌든 그동안 한화와 삼성은 '빅딜'을 통해 서로 윈윈하는 관계를 만들어왔습니다. 삼성의 비주력 사업을 한화가 인수해 주력 사업으로 키우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죠. 동시에 인력 교류도 상당히 잦았는데요. 과연 두 그룹 간 성공적인 거래가 이뤄질지 관심이 갑니다.

저작권자 © 블로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