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메타버스(Metaverse)'란 용어가 낯설지 않게 들려온다. 이미 '반짝 유행'을 넘어 하나의 '미래 트렌드'로 인정받는 분위기다. 과연 메타버스를 또 하나의 세상이라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단순한 마케팅 용어에 불과할까? 메타버스의 동향을 살피고 메타버스 대중화가 일상에 미칠 영향력을 진단해본다. <편집자주>

메타버스는 2025년 인공지능(AI)을 넘어 300조원 규모의 거대 시장이 만들어질 것으로 예측되는 유망 산업이다. 이는 현실과 가상공간의 접점이 메타버스란 이름 아래 기술, 사회, 문화적 융합을 거쳐 빠르게 확장되고 있는 최신 트렌드에 바탕을 둔 전망이다. 확장현실 제공에 중점을 둔 기업들로는 네이버, SK텔레콤, 페이스북 등이 있다.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상상 가능한 모든 소통, '네이버 제페토'에서
제페토(ZEPETO)는 2018년 네이버 스노우에서 만든 3D 아바타 기반 메타버스 플랫폼이다. 올해 3월 기준 전세계 누적 가입자 2억명을 돌파했으며 네이버제트로 분사한 뒤에도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제페토는 소셜 메타버스 플랫폼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이용자는 자신을 대리하는 아바타로 제페토 속 '월드'에서 다양한 형태의 커뮤니티, 콘텐츠 생산 및 소비 활동을 즐길 수 있다.

얼핏 봐선 제페토나 과거 3D 소셜 게임이나 뭐가 다를까 싶지만, 제페토식 메타버스 플랫폼의 진가는 사용자가 가상공간 속 자신을 입체화할 수 있는 갖가지 장치가 제공된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아바타 꾸미기는 기본이고 사용자가 직접 제작한 외형 아이템을 팔아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인기 제작자라면 스스로 제페토 세상의 패션 트렌드를 주도하며 월 수백만원 상당의 수익을 올리기도 한다.

▲ 블로터 편집국은 최근 제페토에서 단체사진을 촬영했다 (이미지=블로터DB)
▲ 블로터 편집국은 최근 제페토에서 단체사진을 촬영했다 (이미지=블로터DB)

가상공간인 '월드'는 이용자들에게 휴식 공간이자 무대다. 일례로 실제 한강의 전경을 그대로 본 떠 만든 월드에서는 한강 특유의 정취를 3D풍으로 느낄 수 있고 'CU' 같은 현실 속 편의점이 이곳에 문을 열기도 한다. 직접 가상의 월드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이 같은 공간들은 특별한 목적 없이도 자유롭게 활용 가능하며, 일상적인 대화 장소부터 각자의 끼를 뽐내는 무대, 대형 스타들의 비대면 이벤트 현장 등으로 시시각각 변모할 수 있다.

한마디로 제페토는 '쓰기 나름'인 플랫폼인데, 메타버스 플랫폼을 바라보는 세대 간 시각은 이 지점에서 갈린다. 온라인 게임만 하더라도 주어진 임무 수행 구조에 익숙한 20~40대들은 제페토류의 메타버스를 두고 "무슨 재미냐"고 반문한다.

반면 초중고생 중심의 신흥 디지털 세대는 오히려 정해진 룰이 없는 메타버스 공간 속 자유로운 놀이 문화 창조를 재미로 여긴다. 이들에게 중요한 건 '준비된 콘텐츠'보다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다. 과거의 소셜 플랫폼들과 달리 사용자 중심의 소비, 창작 문화를 적극적으로 장려한 점이 이전 세대의 플랫폼과는 다르다.

가벼운 모임, 비대면 행사에 특화된 'SKT 이프랜드'
제페토나 로블록스는 범용 메타버스에 가깝다. 다만 상대적으로 놀이문화에 집중하는 편이고 주 이용자층이 학생들이다 보니 성인들 사이에선 오히려 접근이 어렵다는 평이 나온다. 이에 조금 더 생산성, 비대면 모임에 집중하는 메타버스 플랫폼도 등장하는 추세다. SKT가 지난 7월 공개한 이프랜드(IFland)를 예로 들 수 있다.

이프랜드는 플랫폼에서 게임, 창작적 요소를 덜어낸 대신 철저히 '모임'에 집중할 수 있도록 설계된 메타버스다. 아바타 꾸미기 기능은 있어도 아이템이나 맵 제작 기능은 없다. 대신 800여종의 아바타 소스와 정교하게 구현된 18개 테마의 메타버스 룸을 사전 제작해 제공하며 각 룸에는 문서, 영상 자료를 참여자들 간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는 발표 공간이 마련돼 있다. 아바타 간 대화는 음성으로 가능하고 수십가지 제스처도 지원한다. 제페토와 비교하면 성인들을 타깃으로 한 경량 메타버스에 가깝고, 회의나 컨퍼런스 진행에 특화돼 있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 19일 이프랜드에서 진행된 SKT 메타버스 간담회 (자료=간담회 갈무리)
▲ 19일 이프랜드에서 진행된 SKT 메타버스 간담회 (자료=간담회 갈무리)

이프랜드처럼 목적성이 뚜렷한 메타버스 플랫폼에 대한 평가는 상반된다.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라 재미없다'는 반응, 혹은 '딱딱한 화상회의, 온라인 콘퍼런스 대체용이나 가벼운 비대면 모임 공간으론 적격'이란 반응도 있다. 메타버스 소비층이 정형화되지 않은 현재, 상대적으로 개발사의 초기 서비스 포지셔닝 노력이 중요한 유형이다. SKT도 올해 이프랜드 내 자체 인플루언서 양성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한편 대학 축제, K팝 팬미팅, 불꽃놀이 개최 등 외부 협력 이벤트를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페이스북은 360도 'VR 메타버스' 시동 중
전세계 27억명의 이용자를 보유한 SNS 플랫폼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는 지난달 페이스북이 5년 내에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변모할 것이라 선언해 화제를 모았다.

메타버스 분야에서 페이스북의 무기는 웹이 아닌 가상현실(VR)이다. 2014년 VR 기기 제조사 오큘러스를 인수한 페이스북은 그동안 높은 가격과 즐길거리 부족으로 흥행에 실패했던 VR 기기를 매년 더 저렴하게 공급하는 전략으로 VR 대중화의 초석을 마련할 계획이다.

페이스북의 경우 특유의 몰입도 높은 360도 VR 공간을 무대로 페이스북이 제공하던 커뮤니티, 상거래 공간을 메타버스로 재구성한 서비스를 제공할 것으로 예상된다. 페이스북은 이미 지난 2017년 '페이스북 스페이스'를 통해 사람들이 VR 공간에서 시공간의 제약 없이 소통하는 환경을 구현해본 경험이 있다. 당시는 간단한 사진 공유, 핸드 제스처 중심의 초기형 메타버스였다면 앞으로 공개할 VR 메타버스는 보다 다채로운 사회적 활동 및 여가 문화를 지원하는 플랫폼이 될 전망이다.

▲ 2017년 공개된 페이스북 스페이스 베타 서비스 (자료=오큘러스 유튜브 갈무리)
▲ 2017년 공개된 페이스북 스페이스 베타 서비스 (자료=오큘러스 유튜브 갈무리)

특히 지금까지 거의 모든 메타버스가 스마트폰 플랫폼 중심으로 구현된 점을 고려할 때 사용자가 직접 가상공간에 참여할 수 있는 VR 메타버스는 경쟁사와 완전히 차별화된 사용 경험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 페이스북은 지난 19일 페이스북을 통한 독점 개봉 영화를 선보인 바 있는데, 이 같은 서비스들도 향후 페이스북의 VR 메타버스에서 충분히 구현될 요소임을 예측할 수 있다.

한편 VR 메타버스의 흥행 여부는 페이스북이 약속대로 VR 기기를 얼마나 저렴하게 보급할 수 있을지 여부, 복잡한 VR 공간에서 기존 메타버스 플랫폼처럼 사용자에게 얼마나 높은 자유도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인지 등에서 성패가 갈릴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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