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쳐나는 데이터와 숫자, 누구에게나 공개돼 있고 누구나 볼 수 있지만 해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숫자 뒤에 숨은 진실을 보는 눈, 데이터를 해석해 스토리를 만드는 힘, 넘버스가 함께 합니다.
Questions
• 태양광 밸류체인의 명암, 신성이엔지 태양광 사업 14년의 현주소는?
• 기업 실적과 재고자산의 상관관계는?
• 신성이엔지의 본업 '반도체 클린룸' 사업의 전망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장비 기업 중에는 태양광 사업을 끼고 있는 곳들이 적잖습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제조와 태양광 셀, 모듈 제조 원리가 비슷하고 오히려 기술적으론 태양광 쪽이 좀 더 쉽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반도체·디스플레이와 태양광 사업을 동시에 영위하고 있는 기업들이 있고, 혹은 태양광 사업을 하진 않더라도 정관상 사업 목적에 관련 내용을 넣은 곳들도 많죠.

▲ (사진=블로터 최창원 기자)
▲ (사진=블로터 최창원 기자)

다만 비즈니스 측면에서 두 사업 모두 성공한 기업은 현재까지 드뭅니다.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클린룸 기업으로 알려진 신성이엔지도 태양광에서 오랫동안 고전하고 있는데요. 신성이엔지는 2000년대 중반 반도체와 LCD 설비, 장비제조 사업 노하우를 바탕으로 태양광 사업에 진출했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된 이익을 내지 못했습니다.

2016년부터 태양광 적자 누적액 '877억원'
신성이엔지의 사업 갈래는 ‘투트랙’입니다. 기존부터 해오던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 클린룸 사업, 2007년 새롭게 진출한 태양전지 사업으로 나뉘죠. 클린룸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제조 시설의 먼지와 에어로졸을 없애 수율을 높여주는 핵심 시설입니다. 신성이엔지는 이 분야에 일찌감치 진출해 반도체, 디스플레이 시장 성장과 함께 사세를 키우는 데 성공했습니다.

반면 태양전지 사업은 새롭게 진출한 분야인데 15년간 별다른 수익성 확보 없이 적자입니다. 올해 상반기 신성이엔지는 연결 기준으로 매출 1747억원, 영업손실 68억원을 기록했는데요. 사업부별로 보면 클린환경 사업부문은 매출 1268억원, 영업이익 22억원을 거뒀지만 재생에너지 사업부문은 매출 476억원, 영업손실 90억원이었습니다.

회사가 영업활동에서 창출하는 현금을 보여주는 영업활동현금흐름은 지난 상반기 마이너스(-)267억원이었습니다. 이는 코로나19라는 대외 변수가 작용했던 지난해 말(240억원)보다 500억원가량 감소한 겁니다. 지난해 상반기(39억원)와 비교해서도 영업활동현금흐름은 크게 안좋습니다. 재생에너지 사업 적자가 지난해 말과 비슷한 규모로 늘어난 가운데, 반도체에선 전방 고객사의 상반기 설비투자가 지연되며 수주가 줄어든 영향으로 해석됩니다.

알아두면 좋은 지식들
클린룸 : 반도체 소자나 LCD 등 정밀 전자 제품은 물론 유전자조작과 같은 극미산업(極微産業)에서 미세먼지와 세균을 제거한 작업실을 말한다.
재고자산 : 유동자산 중 상품이나 제품과 같이 재고조사에 의해 실재의 현 재고를 확인할 수 있는 자산을 말한다. 쉽게 말해 기업의 판매를 목적으로 생산한 후 아직 판매하지 않은 제품이나 판매하고 남은 제품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재고자산이 많아지면 매출 활동이 원활하지 않은 조짐으로 해석된다.

다른 재무항목의 사정도 비슷하게 좋지 않습니다. 재고자산을 보면 지난해 말 기준 191억원에서 올해 상반기 457억원으로 266억원 늘었습니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256억원과 비교해서도 재고자산이 크게 늘어난 걸 확인할 수 있죠.

지난해 말과 올해 상반기를 기점으로 매출채권은 861억원에서 675억원으로, 매입채무는 721억원에서 524억원으로 줄었습니다. 매출채권은 회사가 다른 회사로부터 받아야 할 채권이고 매입채무는 반대로 회사가 갚아야 할 외상값이죠. 매출도, 매출채권도, 매입채무도 모두 줄었다면 결국 사업이 전반적으로 축소되고 있다는 해석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신성이엔지 태양광 사업은 적자 누적 추세가 꽤 심각합니다. 2016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연간 기준으로 영업이익을 낸 적이 없었습니다. 이 기간 누적된 영업손실은 877억원이었죠. 2016~2018년 3년 연속 전사 영업손실을 기록한 것도 태양전지 사업에서 본 손실이 클린룸 사업에서의 이익을 덮은 영향입니다.

터질 듯 안 터지는 태양광 사업 수익성
최근 몇 년간의 신성이엔지 태양광 사업 부진은 글로벌 업황과 맞물려보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신성이엔지는 2008년 태양전지 사업에 뛰어들며 사명을 신성홀딩스로 바꿨고, 2011년엔 신성솔라에너지로 또 한 번 이름을 변경했습니다. 클린룸 사업에서 성과를 내고 있었지만 태양광이란 새로운 먹거리에 방점을 찍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친환경 추세를 타고 곧 커질 것 같았던 태양광 시장은 2010년대 들어 꽤 오랫동안 정체됐습니다. 전력 효율이 낮고 설비 가격이 비싼 탓에 수요가 적었기 때문입니다. 화력발전과 비용이 같아지는 ‘그리드 패러티’를 달성하는 데 시간도 오래 걸렸죠. 여기에 정부의 보조금을 받은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도 업계 전반에 수익성을 낮추는 요인이었습니다.

▲ 2011~2023년 글로벌 태양광 수요 현황 및 전망.(자료=BNEF/신성이엔지 공시)
▲ 2011~2023년 글로벌 태양광 수요 현황 및 전망.(자료=BNEF/신성이엔지 공시)

태양광 산업 규모가 본격적으로 확대되기 시작한 2016년 신성솔라에너지는 신성이엔지와 신성에프에이를 합병한 뒤 신성이엔지라는 이름으로 다시 통합됩니다.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죠. 하지만 2017년부터 시작된 미국의 대중국 관세 장벽과 중국의 태양광 발전차액 지원 보조금 삭감 이슈로 업황이 나빠지며 회사는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신성이엔지의 사업보고서에서 늘 앞자리를 차지하던 태양광 사업 실적도 2019년부터 뒤로 밀리게 됩니다.

신성이엔지는 태양광 산업의 미드스트림에서 셀(전지)과 모듈을 모두 취급했는데요. 적자 누적 끝에 결국 지난해 12월 증평공장의 태양전지 생산을 중단하면서 모듈 사업에만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태양전지는 R&D 비용이 많이 드는 반면 수익 창출엔 시간이 걸리지만, 모듈은 국내외에서 상대적으로 빠르게 상업화가 이뤄지고 있어 실적을 키울 수 있다는 판단이었습니다.

▲ 태양광 소재별 가격 추이. 폴리실리콘 가격은 킬로그램 당 30달러선까지 치고 올랐다.(자료=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
▲ 태양광 소재별 가격 추이. 폴리실리콘 가격은 킬로그램 당 30달러선까지 치고 올랐다.(자료=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

다만 이렇게 사업 구조조정을 벌인 올해에도 태양광 사업은 부진합니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폴리실리콘 가격 상승세 때문입니다. 태양전지와 모듈의 원재료인 폴리실리콘은 지난해 초 킬로그램 당 10달러 아래로 내려갔다가 올해 상반기 30달러 선까지 치고 올랐습니다. 글로벌 폴리실리콘 생산의 절반을 담당하는 중국 신장 지역의 인권 문제로 미국 정부가 수입을 제한했기 때문이었죠. 원재료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자 신성이엔지의 마진도 줄어들게 됩니다.

하반기에 쏠린 계약..높은 국내 의존도는 '숙제'
대외 변수에 휘둘려 성과를 못 내는 태양광 사업, 그리고 올해 들어 성장세가 꺾인 클린룸 사업에 대해 신성이엔지 측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회사 관계자는 “반도체와 태양광 모두 하반기엔 좋아질 것”이라는 답을 내놨습니다. 반도체의 경우 상반기 집행되지 못했던 전방 산업의 시설투자가 하반기엔 이어질 것이며, 태양광 또한 현재 진행 중인 새만금 국책사업으로 발주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겁니다.

관련해 주목할 부분은 ‘단일판매·공급계약 체결’ 공시입니다. 이 공시는 최근 사업연도 매출액의 10%(코스닥 상장사 기준, 코스피는 5%) 이상 단일판매나 공급계약을 맺었을 때 또는 해지했을 때 의무적으로 하게 되는데요. 지난해부터 올해 3월까지 1년 반동안 단 3건에 그쳤던 신성이엔지의 계약 체결 공시가 지난 4월을 기점으로 9건이나 나왔습니다.

신성이엔지의 기대처럼 하반기 반등이 기대되는 건 계약 종료일이 올해 말과 내년에 집중돼있기 때문입니다. 9건의 공시 중 7건이 올해 말 계약이 종료되며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지는 것도 2건 있습니다. 수주처도 프레스티지바이오로직스, SK하이닉스, LG디스플레이, 삼성물산(이상 클린룸), 호반건설, 한화시스템(이상 태양광 모듈) 등으로 다변화되고 있죠.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에 국한됐던 클린룸에서의 성과가 다른 산업으로 파생되고 있다는 겁니다. 바이오 산업에서의 클린룸 시설 공급, 이차전지 산업에서 친환경 제조 설비인 NMP(N-Methyl-2-Pyrrolidone)의 회수 장비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기존엔 고객사가 아니었던 곳들과 새롭게 관계를 맺게 된다면 클린룸 수익성이 지금보다 더 높아질 수 있고, 이 경우 투자가 더 필요한 태양광도 시간을 벌 수 있을 겁니다.

물론 태양광에만 국한해서 보자면 여전히 인내심이 필요해 보입니다. 현재 수익성에 악영향을 주는 폴리실리콘 수급 문제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이며, 중국 태양광 기업들의 저가 공세도 지속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성이엔지의 태양광 매출 중 국내 기업 의존도가 높은 만큼 해외 고객사 확보도 회사가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이 분야에서 제대로 된 수익을 내지 못한다면 신성이엔지는 지금처럼 클린룸에서 돈을 벌어 태양광에 쏟는 구조가 이어질 겁니다. 태양광이라는 ‘메가 트랜드’에 베팅한 신성이엔지가 언제쯤 본격적 수익을 거둘지 주목됩니다.

생각해 볼 문제
• 적자에도 불구하고 태양광 밸류체인에 속한 기업들은 왜 10년 이상 태양광 사업에서 발을 빼지 못할까?
• 반도체는 여전히 호황이고 반도체 제조 기업들은 천문학적 자금을 반도체 공장 설립에 투자하고 있는데 왜 클린룸 시장의 파이는 커지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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