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쳐나는 데이터와 숫자, 누구에게나 공개돼 있고 누구나 볼 수 있지만 해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넘버스>의 외부 필진(넘버크런처)으로 합류한 뱅커W(필명)가 '쉬운 금융 이야기' 코너를 통해 번득이는 금융데이터 분석 스토리를 전해 드립니다.

'뱅커W'를 소개합니다
국내 회계법인을 거쳐 현재 증권사에서 투자은행(IB)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기업금융 관련 다양한 경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자본시장에서 발생하는 이벤트의 이면과 본질을 분석해 색다른 인사이트를 드리려 노력합니다.

최근 비슷한 시기에 상장해 공모주 청약 열풍을 일으킨 크래프톤과 카카오뱅크의 주가는 왜 초반 상반된 행보를 보였을까요. 카카오뱅크는 증시 입성 첫 날 상한가를 기록한 반면, 크래프톤은 공모가(49만8000원)를 밑도는 가격으로 장을 마감해 시장에 충격을 줬습니다.

물론 이후 크래프톤과 카카오뱅크의 주가는 서로 떨어지기도 하고 오르기도 하며 여전히 평가가 진행 중인 상황입니다. 그렇지만 상장 초반 두 업체를 바라보는 시장의 온도차는 쉽게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인 게 사실이죠. 장기적인 투자 관점에서 살펴볼 만한 요소가 숨겨져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미 많은 얘기가 나온 '고평가 논란'은 제외한 다른 이유들을 찾아보도록 하죠. IPO 시장에서 기업의 가치(Valuation) 측정만큼 중요한 것은 IPO를 둘러싼 이해관계자들과 그 배경입니다.

쉽게 말해 자동차와 같이 금액 꽤나 큰 자산을 구매한다고 생각해봅시다. 차는 몇 년도 모델인지, 얼마나 달렸는지, 사고 이력은 없는지, 또 나중에 되팔 때는 얼마나 돌려받을 수 있는지 등 그 가치를 세밀하게 분석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자산가치만 보고 매매를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누가, 왜, 언제, 어떠한 이유로 매물을 내놓는지도 꼼꼼히 따지지 않는가요? IPO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왜 IPO를 하는지, IPO를 통해 이득을 보는 사람은 누구인지, 왜 이 가격에 내놓으려고 하는지 등의 요소도 분명히 상장 후 시장가격에 영향을 미칩니다.

IPO는 크게 ①기존투자자의 지분 매각을 통한 Exit ②대상회사의 신주 유상증자를 통한 자본금 확충(신규 주식의 추가 발행 및 매각)을 목적으로 합니다.


일반적으로 기존투자자 (특히 대주주 또는 주요 주주)는 IPO 구주매출을 통해 기존 보유 지분을 전량 매각하지는 않습니다. 일부 지분만 매각하기도 하고, 추후 순차적으로(의무보호예수 기간 동안에는 매도가 금지됩니다) 매각을 진행할 수도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IPO 기업의 기존 주주구성 및 의무보호예수비율 등 기존 투자자에 대한 정보를 참고해야 하는 이슈가 끼어드는 것이죠.

예를 들어 기존 투자자 중 금융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재무적투자자(FI)의 비중이 높을 경우 그만큼 구주매출 물량 또한 많습니다. 게다가 의무보호 예수기간이 끝난 이후에도 시장에 지속적으로 물량이 풀릴 것입니다. 반면 일반적인 영리기업(전략적투자자∙SI)이 주요 주주일 경우 구주매출 물량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또 나중에 시장에 매물로 나올 주식도 적을 가능성이 높죠.(금융기관 투자자 또한 상장 후에도 상당기간 대상회사 지분을 보유할 수 있지만, 일반적인 IPO 대상회사의 주요 금융기관 주주의 경우 펀드의 만기 기간이 정해진 벤처캐피탈, 사모펀드가 많습니다.)

알아두면 좋은 지식들
구주매출 : 대주주나 일반주주 등 기존 주주가 이미 보유하고 있는 주식지분 중 일부를 일반인들에게 공개적으로 파는 것을 말합니다. 양도인은 투자금을 회수하는데 의미가 있고요. 양수인은 주식투자, 경영참여 등을 목적으로 합니다.
의무보호예수 : 보호예수는 증권예탁원이나 증권회사가 고객의 유가증권을 고객의 명의로 보관하는 업무인데요. 이를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것을 일컫습니다. 이 제도는 투자자 보호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IPO시 기존 주주들의 주식물량이 시장에 대거 풀릴 경우 주가가 낮아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죠. 코스피 상장사의 경우 최대주주는 6개월간 의무보호예수기간을 갖고요. 코스닥 상장사 최대주주는 2년간 증권예탁원에 의무보호예수하고 1년이 경과한 경우 매월마다 최초보유주식등의 100분의 5에 상당하는 부분까지 반환하여 매각이 가능합니다.

다시 카카오뱅크와 크래프톤의 사례로 돌아가 IPO를 분석해보도록 하죠.


카카오뱅크의 경우 공모금액 전액을 신주 유상증자로 조달했습니다. 이중 대부분을 은행 자본비율 규제 대응과 투자 확대를 위해 사용할 예정이죠.

크래프톤은 공모금액 총 4조3098억원 중 1조5091억원을 구주매출로 활용합니다. 즉 총 자본조달금액의 35%가 기존 투자자의 투자금 회수를 위해 사용되는 셈이죠. 투자금에 대한 만기가 정해진 재무적투자자의 엑시트(Exit·투자자금회수)를 무조건 싫어할 필요는 없지만, 신규 투자자의 입장에서 공모금의 많은 부분이 (카카오뱅크 대비) 회사의 신사업보다 기존 투자자를 위해 쓰이는 것은 기분이 썩 좋지는 않을 것입니다.

▲ 크래프톤 IPO투자설명서 내 자금의 사용목적.(출처=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 크래프톤 IPO투자설명서 내 자금의 사용목적.(출처=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이번 구주매출 물량의 대부분은 재무적투자자로 보이는 벨리즈원이 차지하며, 김창한, 김형준, 조두인 등 크래프톤 및 계열회사의 등기임원들의 구주도 일부 포함됩니다.

특히 신규 투자자 입장에서 크래프톤과 그 계열회사 등기임원의 구주매출은 재무적투자자의 구주매출보다 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습니다.

▲ 크래프톤 IPO투자설명서 내 매출대상주식의 소유자에 관한 사항.(출처=금융감독원.)
▲ 크래프톤 IPO투자설명서 내 매출대상주식의 소유자에 관한 사항.(출처=금융감독원.)

공모금액 총 4조3098억원에서 구주매출 1조5091억원과 관련비용 161억원을 제외한 2조7846억원 (총 공모금의 약 65%)의 대부분(약 2조원)은 M&A에 쓰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카카오뱅크는 공모금 전액을 회사의 사업을 위해 투자할 계획인 반면, 크래프톤의 경우 상당 금액을 구주매출에 썼습니다. 게다가 용처의 투명성에도 차이가 나네요. 카카오뱅크는 신주 유상증자금액의 대부분을 추가 대출 사업을 위해 사용할 예정이지만, 크래프톤은 2조원의 대규모 투자가 어떻게 진행될지 신규 투자자가 알 방법이 없습니다.

물론 공모가 산정, 상장 개시, 그리고 그 이후의 주가를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습니다. 회사에 대한 공부, 공모 경쟁률, 공모의 목적, 그리고 기존 투자자들에 대한 다양한 각도에서의 분석을 통해 최대한 논리적인 추정을 해볼 수 있을 뿐이죠. 그러나 ①공모금의 용처 ②투명한 투자계획 등은 분명 앞으로 투자를 하는데 있어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항목이지 않을까요.

생각해 볼 문제
• IPO는 투자자를 위한 걸까요? 아니면 내부자를 위한 걸까요?
• 상장 초반이라 평가는 '현재 진행중'이지만 단순히 현재 주식그래프만 본다면 인터넷은행업과 게임산업에 대한 미래 가치 평가는 명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사 업종 유사 기업들의 미래 가치 평가에도 카카오뱅크와 크래프톤의 사례를 적용할 수 있나요?
• IPO를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자금 흐름을 분석해 투자세계의 냉혹함과 뱅커들의 노림수를 알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무엇인가요?
정리=김성진 기자(jini@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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