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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G와 삼성은 1990년대 후반 배터리 사업에 진출했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옛 LG화학 전지사업부)은 초창기부터 대형 배터리를 목표로 했고, 삼성SDI는 핸드폰과 노트북 등 소형 IT 기기 위주로 배터리 사업을 키웠습니다.
• SK가 배터리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2005년입니다. 이듬해 하이브리드용 배터리를 개발했는데, 사업 초창기부터 전기차용 배터리가 목표였죠.
• 2018년 SK이노베이션이 3사 중 가장 늦게 글로벌 10위권에 진입했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이 1~2위를 다투면서 가장 선두입니다. 삼성SDI와 후발주자인 SK이노베이션이 중위권에서 경쟁 중입니다.
▲ SK이노베이션 배터리.(사진=SK이노베이션)
▲ SK이노베이션 배터리.(사진=SK이노베이션)

SK이노베이션이 전기차 배터리 누적 사용량에서 처음으로 삼성SDI를 앞섰습니다.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사업의 후발주자로 2017년까지 10위권에도 들지 못했습니다. 생산량과 판매량을 빠르게 확대했고, 점유율 기준 세계 5위 업체로 발돋움했습니다.

SNE리서치는 1일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사용량'을 발표했습니다. 1위는 중국 CATL로 사용량은 44.2GWh(기가와트시), 점유율은 30.0%를 기록했습니다. 2위는 LG에너지솔루션으로 사용량은 33.2GWh, 점유율은 24.2%를 기록했죠.

SNE리서치는 1위 업체부터 10위 업체까지 각사가 전기차 업체에 판매한 배터리의 총량을 집계해 발표하고 있습니다. SNE리서치는 이를 사용량이라고 발표하는데, 사실상 판매량과 같은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 SNE리서치가 1일 발표한 1~7월 배터리 사용량 현황.(자료=SNE리서치)
▲ SNE리서치가 1일 발표한 1~7월 배터리 사용량 현황.(자료=SNE리서치)

중국 CATL은 테슬라, 벤츠 등 글로벌 메이커와 상하이자동차(SAIC) 등 자국 자동차 업체에 배터리를 납품하고 있습니다. 올해 7월까지 1위 업체인 CATL과 2위 업체인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판매량 격차는 약 11GWh입니다. CATL이 전기차 약 16만5000대에 탑재할 분량의 배터리를 더 판매한 것으로 볼 수 있죠.

이번 발표의 특이점은 SK이노베이션이 누적 사용량 기준으로 삼성SDI를 처음으로 앞섰다는 점입니다. SK이노베이션의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누적 배터리 사용량은 7.4GWh로 5위를 기록했습니다. SK이노베이션의 같은 기간 점유율은 5.4%였습니다.

▲ 국내 3사 점유율.(자료=SNE리서치)
▲ 국내 3사 점유율.(자료=SNE리서치)

삼성SDI는 같은 기간 배터리 사용량 7.0GWh, 점유율 5.1%로 6위를 기록했습니다. 삼성SDI는 지난달까지 누적 사용량 기준 5위였는데, 이번에 6위로 1계단 하락했습니다.

양사의 배터리 사용량 격차는 400MWh(메가와트시), 점유율 격차는 0.3%포인트 가량입니다. SK이노베이션이 삼성SDI보다 전기차 6000여대에 탑재할 분량의 배터리를 더 판매한 것으로 추산됩니다. 통상 1GWh당 전기차 1만5000대에 탑재할 수 있는 분량입니다.

삼성SDI는 SK이노베이션이 공격적으로 배터리 사업을 확장하면서 판매량을 후발주자에 따라잡혔다는 점에서 위기감을 느낄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SK이노베이션은 자동차 산업이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 빠르게 전환되면서 유럽과 미국에 생산공장을 짓고 있습니다.

올해 SK이노베이션의 캐파는 40GWh로 1년 동안 전기차 60만대 분량의 배터리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SK이노베이션은 2025년까지 배터리 생산능력을 200GWh로 늘리고, 2030년까지 500GWh까지 확대할 계획입니다. 통상 1GWh 규모의 배터리 생산공장을 짓는데 900억원 가량이 들어가는데, 2025년까지 14조원에서 17조원이 들어갈 예정이죠.

▲ SK이노베이션 조지아 1·2공장.(사진=SK이노베이션)
▲ SK이노베이션 조지아 1·2공장.(사진=SK이노베이션)

SK이노베이션의 생산량이 늘어난 만큼 납품처도 확대했습니다. SK이노베이션은 현대차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의 1차·3차 납품사로 선정됐습니다. 현대차의 전략 모델인 아이오닉5와 기아의 EV6에 SK이노베이션 배터리가 탑재됐죠. 포드와 폭스바겐 등 글로벌 메이커에도 납품하고 있습니다. 생산량과 판매량이 늘어난 만큼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마켓셰어가 높아진 것입니다.

SK이노베이션은 미국 조지아 1·2공장에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습니다. 1공장은 이미 완공돼 상업가동을 준비 중입니다. SK이노베이션은 포드와의 연 60GWh 규모의 합작공장을 추가로 짓고 있습니다. 포드 등 미국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전환 시점을 앞당길수록 SK이노베이션의 판매량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렇듯 SK이노베이션은 파우치형 배터리를 중심으로 점유율을 꾸준히 확대했습니다. 2018년 파우치형 배터리의 점유율은 14.4%에 불과했는데, 지난해 27.8%로 점유율이 급등했습니다. 지난해 각형 배터리와 원통형 배터리 점유율은 49.2%, 23.0%였습니다.

알아두면 좋은 지식들
파우치형 배터리 : 배터리 소재를 층층이 쌓아올린 형태의 배터리. 에너지 밀도와 공간 효율이 우수한 게 장점입니다. 하지만 생산공정이 복잡하고 대량 생산에 불리합니다.
각형 배터리 : 배터리 소재를 알루미늄의 사각형 형태로 패키징한 배터리. 공간 효율과 에너지 밀도가 낮지만 내구성이 우수합니다.
원통형 배터리 : 배터리 소재를 원통으로 패키징하는 형태로 가장 전통적인 방식의 배터리. 원가가 저렴하고 에너지 밀도가 높지만, 생산설비를 구축하는데 비용이 많이 듭니다.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 인산, 리튬, 철을 음극으로 흑연을 양극으로 사용한 삼원계 배터리. 1000회 이상 충·방전 후에도 기존 용량의 80% 이상을 유지할 수 있고, 급격한 온도 변화와 폭발이 없어 안정적입니다.
나트륨황(Na-S) 배터리 : 나트륨 이온의 이동을 통해 충·방전이 이뤄지는 전지. 에너지 밀도가 기존 리튬이온전지에 높지만, 무거운 게 단점입니다.
LG에너지솔루션의 화재 사고로 파우치형 배터리의 안전성 문제가 제기됐습니다. 파우치형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가 높고, 공간 효율이 우수한 게 장점이죠. 하지만 공정이 복잡하다는 게 단점입니다. 각형 배터리는 공간 효율과 에너지 밀도가 낮지만, 내구성이 우수합니다. 원통형 배터리는 원가가 저렴하고 에너지 밀도가 높습니다. 하지만 생산설비를 구축하는데 비용이 많이 들죠.

삼성SDI는 SK이노베이션과 달리 생산량을 늘리는데 다소 보수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현재 국내에는 천안(원통형)과 울산(각형)에 배터리 생산공장이 있고, 중국 톈진과 말레이시아 세렘방에 원통형 배터리 생산공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헝가리 괴드에 삼성SDI의 각형 배터리 생산기지가 있습니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SDI는 약 50GWh의 생산능력을 확보했습니다. SK이노베이션보다 캐파가 10GWh 가량 높죠. SK이노베이션이 전기차용 배터리에 주력하는 것과 달리 삼성SDI는 휴대폰과 노트북 등 소형 가전과 에너지저장장치용 배터리도 생산합니다.

양사의 전기차용 배터리 생산능력이 비슷하다고 가정할 경우 SK이노베이션이 전기차 시장에서 삼성SDI의 '마켓셰어'를 앞지르는 건 시간 문제였던 셈입니다.

▲ (자료=SNE리서치)
▲ (자료=SNE리서치)

실제 올해는 그 '분기점'이었습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6월부터 월별 배터리 사용량에서 삼성SDI를 앞섰습니다. SK이노베이션은 월별 배터리 사용량은 1.4GWh였고, 삼성SDI는 1.2GWh였습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6월 전기차 2만1000대 분량의 배터리를 판매했고, 삼성SDI는 1만8000대 분량의 배터리를 판매했습니다.

지난달에는 SK이노베이션이 1.3GWh를, 삼성SDI가 1.0GWh를 판매했죠. 사실상 지난 6월부터 전기차 시장에서 SK이노베이션이 삼성SDI를 앞질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삼성SDI가 증설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예견됐었던 일입니다. 삼성SDI는 미국에 배터리 생산공장을 짓기 위해 주정부 관계자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미국 공장을 짓는데 약 2년여의 시간이 걸리고, 신규 납품사를 발굴하는데 걸리는 기간을 고려하면 마켓셰어는 앞으로도 현재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럼에도 배터리 업계에서는 삼성SDI의 경영 전략이 더욱 미래지향적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전기차 시장은 배터리 업체가 아닌 고객사가 주도하는 시장입니다. 폭스바겐의 사례가 한 예입니다. 고객사가 파우치형 배터리에서 각형배터리로 선회할 경우 공급사슬(SCM)이 바뀌게 됩니다.

배터리 시장은 더욱 세분화되었고, 현재 NCM(니켈, 코발트, 망간) 등 3원계 배터리와 NCMA(니켈, 코발트, 망간, 알루미늄) 4원계 배터리가 대세였습니다. NCM 배터리에서 잇단 화재가 발생했고, 3원계 배터리가 대세를 이룰 것이라는 기대도 저물고 있습니다. 시장에서는 NCM이 아닌 테슬라가 사용하는 LFP(리튬인산철) 배터리와 NAS(나트륨황)전지 등으로 대세가 달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NCM 전지에 주력한 국내 전지업체로서 위기가 될 수 있죠.

▲ 국내 배터리 3사 올해 반기 실적.(자료=금융감독원)
▲ 국내 배터리 3사 올해 반기 실적.(자료=금융감독원)

삼성SDI의 올해 상반기 배터리 사업의 영업이익률은 4.2%(2156억원)를 기록했습니다.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사업의 영업이익률은 -23.7%(영업손실 2746억원)를 기록했죠.

기업은 많이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익을 많이 남기는 게 중요하죠. 그런 점에서 삼성SDI는 수익성 위주 경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현지 생산·현지 납품' 체계가 필요하기까지 무리하게 생산기지를 건설하지 않고, 고객사의 수요에 대응해 설비를 늘리는 거죠. 원통형 생산공장과 각형 생산공장을 모두 갖고 있는 점도 강점입니다. 시장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고, 고객사 입장에서도 선택의 폭이 넓죠.

SK이노베이션은 2023년 배터리 사업에서 5% 수준의 영업이익률을 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까지 적자를 감수하고, 배터리 사업의 규모를 키운다는 게 SK이노베이션의 전략이죠.

SK이노베이션의 경영전략은 '침투가격 전략'을 사용하면서 성장했습니다. 침투가격 전략은 시장에서 초기에는 낮은 가격을 제시한 후 시장점유율을 일정 수준 이상 확보하면 점차적으로 가격을 인상하는 정책이죠. 주로 후발주자들이 마켓셰어를 높일 때 사용하는 전략입니다.

▲ SK이노베이션은 1998년 리튬이온전지 개발했는데, 본격적인 사업은 2005년부터 시작했다.(사진=SK이노베이션)
▲ SK이노베이션은 1998년 리튬이온전지 개발했는데, 본격적인 사업은 2005년부터 시작했다.(사진=SK이노베이션)

전기차 시장에서 SK이노베이션의 전략은 지금까지 성공적이었습니다. 생산량과 판매량을 기준으로 볼 때 삼성SDI까지 따라잡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과 영업비밀 침해 소송이 있었지만, 선발업체와 후발업체와의 갈등으로 볼 수 있습니다. 양사의 분쟁은 2조원에 마무리됐습니다.

관건은 앞으로 다변화된 전지시장에서 SK이노베이션이 성공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지에 달린 것으로 보입니다. SK이노베이션은 앞으로도 현재의 성장 속도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생각해 볼 문제
•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은 NCM 계열 파우치 배터리로 승부를 보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의 화재 사고로 파우치형 배터리의 안전성 문제가 도마에 올랐습니다. 중대형 파우치 전지만 생산한 SK이노베이션은 더욱 불리해졌습니다.
• 전지산업은 가격경쟁 시대로 진입했습니다. 테슬라는 '반값 배터리'를 목표로 잡았죠. 파우치형은 각형과 원통형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집니다. 과거 배터리의 수급 문제가 불거지면서 전지 업체들의 발언권이 셀 것이라 생각했지만, 결국 '을'은 전지 업체였습니다.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사업이 가격경쟁 시대 얼마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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