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에서 독립한 이후 16년 동안 변하고 싶어도 변하지 못했던 GS가 올해 달라진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결정적인 순간 머뭇거리던 모습에서 탈피해 수소, 이커머스, 바이오 등 신사업에 과감하게 진출했다. GS의 변화는 4차산업 혁명 흐름에 합류하지 못하면 도태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과 연결돼 있다. 이제 막 첫 걸음을 뗀 GS의 사업 포트폴리오 리모델링 작업을 점검해본다.
▲ 허태수 GS회장.
▲ 허태수 GS회장.

허태수 회장 부임 이후 GS가 창사 이래 최초로 조 단위 ‘딜(deal)’을 성사시키며 “GS가 드디어 바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그룹 안팎에선 여전히 그 변화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시선들도 존재한다. 

휴젤, 요기요 등 GS의 미래를 바꿀 기업을 인수하는데 모두 재무적 투자자(FI)들을 끌어들였고 결과적으로 GS가 들인 돈은 5000억원이 채 안 되기 때문이다. GS가 확 바뀌었다고 말하기엔 아직도 보수적으로 보이는 이유다.
M&A 잔혹사 끝냈지만…총 5000억 미만 투자

GS가 국내 1위 보톡스 사업자 휴젤을 인수한 것은 하나의 사건이나 다름 없다. GS가 2005년 LG로부터 독립한 이후 처음 실시한 ‘조 단위’ 투자다. 경험이 전무한 ‘바이오 산업’에 완전히 새로 진출한 것도 과거에 볼 수 없는 행보다. 그동안 소위 간 만 보다가 후퇴한 경험이 많았기에 이번 휴젤 인수전 역시 완주하지 못 할 거란 관측들이 많았다.

GS의 과거 주요 M&A 역사를 보면 이번 휴젤 인수가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2008년부터 쭉 훑어보면 규모가 큼지막한 매물들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으나 대부분 일찌감치 포기하거나 계약을 성사시키지 못 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2008년에만 대우조선해양, 대한통운 등 국내 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는 업체들 인수전에 뛰어들었다가 결국 인수 의사를 거둬 들였다. 여기에 더해 현재 롯데에서 알짜 수익을 내는 하이마트는 훨씬 덩치가 작은 유진그룹에 빼앗겼고, 코웨이는 매각 측이 레이싱을 유도하자 MBK파트너스에 내주었다.


KT렌탈, 아시아나항공, 두산인프라코어 등 이어진 ‘빅딜’에서 GS가 보인 모습은 한결 같았다. STX에너지, ㈜쌍용 등 비교적 규모가 작은 매물들은 곧잘 인수했으나 그룹의 체질을 바꾸기 위한 ‘한 방’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랬던 GS가 허태수 회장 취임 이후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M&A 시장에서 활약하고 있다. 올 4월 계열사인 GS리테일이 배달 서비스 부릉(VROONG)을 운영하는 물류회사 메쉬코리아 지분 19.53%를 사들였고, 최근에는 사모펀드와 손잡고 요기요 지분 30%를 매입했다. 이후 휴젤 인수까지 고려하면 짧은 시간 내 3개의 딜을 연속해 완료한 것이다.

▲ 휴젤 사업영역.(출처=휴젤 홈페이지.)
▲ 휴젤 사업영역.(출처=휴젤 홈페이지.)

허 회장이 “내부 역량을 이러한 외부의 변화에 맞춰 혁신해야 할 것”이라며 혁신 강도를 높일 것을 주문한 게 실제 전략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GS의 변화를 판단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있다. 빅딜을 승리로 이끈 것은 주목할 만 하지만 실제 GS가 투자한 금액은 너무 보수적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올해 성사시킨 2개의 빅딜(요기요, 휴젤)에 GS는 모두 일부 지분만 투자했다. GS는 2400억원을 써 요기요 지분 30%를 인수했으며, 휴젤 투자금과 지분율은 각각 1750억원, 13.65%다. GS가 요기요와 휴젤을 품는데 쓴 돈의 총액은 4150억원에 불과하다. 신사업에 대한 의지와 영향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다른 지주사 대비 여유로운 곳간
휴젤 인수의 주체인 지주사 ㈜GS의 재무상태가 상당히 양호한 것도 “여전히 보수적”이라는 분석의 근거 중 하나다.

GS는 ㈜GS를 중심으로 지주사 형태의 지배구조를 취하고 있다. 계열사로부터 배당, 브랜드 사용료, 건물 임대료 등을 주요 수익원으로 삼는 순수지주사지만 최근 직접 투자에 나서며 투자형 지주사로서의 진화를 도모하고 있다. 지난해 8월 1700억원을 출자해 미국 실리콘밸리에 벤처투자법인 ‘GS퓨처스’를 차린 것이 대표적이다.

▲ 국내 주요 대기업 지주사 순차입금 추이.(출처=한국기업평가.)
▲ 국내 주요 대기업 지주사 순차입금 추이.(출처=한국기업평가.)

올 2분기 별도기준 ㈜GS의 순차입금은 마이너스(-) 상태로 보유 현금으로 빚을 다 갚고도 1300억원이 남는 수준이다. 부채비율도 18.4%에 불과해 상당히 양호하다고 볼 수 있다.

국내 대표 투자형 지주사 SK㈜와 비교하면 ㈜GS의 건전한 재무상태가 더욱 돋보인다. 수소, 첨단소재, 바이오 등 그룹 신사업 발굴에 앞장서는 SK㈜의 순차입금은 무려 7조5500억원에 달한다. 부채비율도 61.3%로 ㈜GS보다 부담이 크다. 빚이 많은 것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레버리지를 일으켜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는데 두려움이 없다는 뜻으로도 해석 가능하다.

▲ 국내 주요 대기업 지주사 부채비율 추이.(출처=한국기업평가.)
▲ 국내 주요 대기업 지주사 부채비율 추이.(출처=한국기업평가.)

비교적 신사업 투자에 보수적이라고 평가 받는 롯데그룹의 롯데지주 역시 ㈜GS보다는 재무부담이 큰 상태다. 순차입금 1조8000억원에 부채비율은 62.1%다. 다만 ㈜LG의 보유 순차입금은 -1조8000억원, 부채비율은 3.1%로 GS보다 현금 여유가 훨씬 더 많았다. 범 LG그룹의 보수적 경영 특징이 잘 드러나는 부분으로 분석된다.

물론 앞으로 추가 투자에 나설 가능성도 충분하다. 사모펀드가 보유한 휴젤 지분을 향후 인수할 수도 있고 다른 신사업에도 마찬가지로 일부 지분 투자 형식으로 진출할 수도 있다.

의사결정구조 바뀌었나 안 바뀌었나
GS가 ‘빅딜’을 연달아 성사시키며 그룹의 의사결정구조 변화 여부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수십명의 오너일가 특수관계자가 지분을 나눠 갖고 있는 GS는 회의를 통해 중대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리스크를 줄이고 신중히 판단한다는 장점은 있지만, 반대로 신속하고 과감한 결단은 내리지 못 한다는 단점도 명확하다.

단 한 번도 대규모 거래를 성사시키지 못했던 GS가 허 회장이 그룹 경영권을 넘겨 받은 뒤 연이어 요기요와 휴젤을 인수한 것은 이러한 의사결정구조에도 변화가 생겼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GS는 오너일가 4세들이 경영 전면에 나서 계열사 곳곳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승계와 계열분리 작업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시기라, 이와 맞물린 변화라는 분석도 나온다.

저작권자 © 블로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