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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G그룹 지주사 ㈜LG의 올 상반기 보유현금은 1조7700억원에 달합니다. 단지 은행에 예치해 두기엔 규모도 크고 기회비용이 아까운 금액이죠.
• 구광모 회장 이후 ㈜LG는 순수지주사에서 탈피해 직접 크고 작은 투자를 벌이고 있습니다. 최근 카카오모빌리티에 1000억원의 지분 투자를 한 것이 대표적이죠. 
• LG는 AI, 모빌리티, 전기차 등 신사업에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데요. 1조7700억원의 현금, 과연 어떻게 활용할까요?
▲ 구광모 LG 회장
▲ 구광모 LG 회장

LG그룹 지주사인 ㈜LG가 지난 7월 택시 호출 업계 1위 카카오모빌리티에 1000억원 지분 투자를 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LG그룹 덩치에 비하면 1000억원의 금액이 큰 것은 아니지만 순수지주사가 직접 투자에 나섰다는 점에서 달라진 경영전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지주사는 크게 순수지주사와 사업지주사 두 가지 형태로 나뉩니다. 순수지주사는 말 그대로 지주사 역할만 하는 회사입니다. 주요 수익은 자회사 및 투자회사로부터의 배당수익, 상표권 사용수익, 임대수익 등으로 구성돼 있죠.

이와 반대로 사업지주사는 지배구조상 지주사 역할을 하면서 자체 사업을 따로 영위하는 것을 말합니다. 두산그룹의 ㈜두산이 대표적이죠. 20개가 넘는 계열사의 모회사 역할을 하는 동시에 전자, 산업차량, 디지털이노베이션 등 자체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최근 SK를 중심으로 투자형 지주사가 트렌드로 떠올랐는데요. 직접 사업을 벌이지는 않지만 보유 현금으로 유망 사업이나 업체에 투자해 향후 그 시세차익을 거두는 방식입니다. 단지 주식투자처럼 이익만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룹이 나아갈 방향을 미리 탐색하는 역할도 합니다. 지주사가 그룹 콘트롤타워라는 점을 감안하면 적절한 역할인 셈이죠.


▲ LG그룹 지배구조.(출처=공정거래위원회.)
▲ LG그룹 지배구조.(출처=공정거래위원회.)

LG는 2003년 국내 대기업집단 중 처음으로 지주사체제로 전환한 그룹입니다. 이후 현재까지 순수 지주사 체제를 유지하며 단순히 계열사를 지배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존재했습니다. 여기에 LG그룹 특유의 보수적 경영문화가 더해지며 사업적으로 눈에 띄는 행동을 한 적은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LG의 이번 카카오모빌리티의 투자가 더욱 돋보이는 이유인데요. 그렇다고 ‘투자형 지주사’를 모델로 삼고 있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LG 관계자는 “투자형 지주사로 변화를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고 했습니다.

알아두면 좋은 지식들
투자형 지주사 : 계열사 지배를 목적으로만 하는 소극적인 지주사 역할에서 벗어나 직접 다양한 투자활동을 벌이는 지주사입니다. 사업지주사와는 달리 직접 사업을 영위하지는 않지만 해외기업 투자, 신사업 발굴, 투자자금 지원 등 능동적으로 그룹의 미래를 설계하는 역할을 합니다. 국내에서는 SK그룹의 SK㈜가 가장 대표적입니다.
초거대 AI :컴퓨팅 인프라를 기반으로 종합적이며 자율적으로 사고·학습·판단·행동하는 인간의 뇌를 닮은 AI를 말합니다. AI의 성능을 가늠할 수 있는 파라미터가 기존 AI보다 최소 수백 배 이상 많고요. 네이버·카카오·LG·SK·KT 등 국내 주요 대기업들도 앞다퉈 개발하고 있습니다.
다만 ㈜LG의 재무상태를 보면 앞으로 활발한 추가 투자가 이뤄질 것이란 예상을 충분히 해볼 수 있습니다.

지난 10년치 ㈜LG의 별도기준 현금 보유량을 살펴보면 최근 급격히 늘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19년까지 2000억~6000억원 수준이었던 현금 보유량이 2020년에 1조6000억원으로 확 불었죠. 올 상반기 기준으로는 1조7700억원으로 더 늘어났습니다.

▲ ㈜LG 주요 재무지표 추이.(출처=한국기업평가.)
▲ ㈜LG 주요 재무지표 추이.(출처=한국기업평가.)

현금이 늘어난 것은 지난해 있었던 LG CNS 빅딜 때문입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8년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밝혔죠. 총수일가가 지분 20% 이상 보유한 기업이 자회사 지분 50% 이상 갖고 있으면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포함되는 것이 골자입니다. 오너일가는 ㈜LG 지분 46%를 보유하고 있고, 당시 ㈜LG가 LG CNS 지분 85%를 갖고 있어 규제 대상에서 벗어나려면 일부 지분을 팔 수밖에 없었습니다.

㈜LG는 결국 지난해 5월 글로벌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 맥쿼리코리아오퍼튜니티즈운용(맥쿼리PE)에 LG CNS 지분 35%를 매각하는 거래를 마무리 지었는데요. 매각대금으로 약 1조원의 거금을 받았습니다.

이유야 어쨌든 결과적으로 ㈜LG의 현금은 엄청나게 불어났습니다. 차입금이 사실상 전무하기 때문에 1조7700억원의 현금을 고스란히 활용할 수 있는 셈입니다. 물론 그냥 갖고 있어도 큰 상관은 없지만 단순히 은행에 예치해 놓기에는 기회비용을 고려 안 할 수가 없겠죠. 4차산업 혁명 시대에 발빠른 변화가 필요한 현재 상황에선 더욱 그렇고요.

LG가 그동안 대내외적으로 나타낸 입장들을 종합하면 공격적인 투자를 예상해볼 수 있습니다. 이미 2018년 구광모 회장 체제가 들어선 이후 LG 계열사들은 굵직한 M&A 딜을 성사시키며 달라진 모습을 보였습니다. ㈜LG는 2018년 LG전자와 함께 오스트리아 자동차 조명 기업 ZKW를 인수하는데 약 4000억원을 쓰기도 했죠. 대규모 투자를 실시한 이력도 있습니다.

▲ 인공신경망은 인간 몸 속 뉴런의 작동 방식을 차용해 만든 AI 기술이다.(사진=픽사베이)
▲ 인공신경망은 인간 몸 속 뉴런의 작동 방식을 차용해 만든 AI 기술이다.(사진=픽사베이)

무엇보다 AI(인공지능) 사업에 많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지난 5월 앞으로 3년 동안 ‘초거대 AI’ 인프라 확보와 개발에 1억달러(1140억원) 이상 투자하겠다고 밝혔죠. ‘초거대 AI’는 사고, 학습, 판단 등 인간의 뇌 구조를 닮은 AI로 산업혁명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죠.

LG는 AI 전담조직인 LG AI연구원을 통해 해당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LG AI연구원은 LG경영개발원 산하에 있습니다. ㈜LG가 LG경영개발원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LG의 직접적인 투자 지원도 가능합니다.

▲ 'LG 클로이 바리스타봇'.(사진=LG전자)
▲ 'LG 클로이 바리스타봇'.(사진=LG전자)

이미 ㈜LG는 지주사로서 그룹의 전체 투자전략을 설계하는 역할을 하고 있죠. 구광모 회장이 직접 영입한 것으로 알려진 홍범식 경영전략팀 사장이 그 중심에 있습니다. ㈜LG는 1조7700억원의 막대한 현금을 과연 어떻게 활용할까요. 또 하나의 '빅딜'이 나올까요?
생각해 볼 문제
•LG가 앞으로 3년 동안 AI에 114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했는데요. 세계적으로 경쟁이 치열한 AI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내기에 과연 충분한 규모일까요?
•LG의 행보를 보면 앞으로 '투자형 지주사'로 변화가 감지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LG는 아직 투자형 지주사라고 부르는 것은 확대해석이라고 선을 긋는데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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