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에서 독립한 이후 16년 동안 변하고 싶어도 변하지 못했던 GS가 올해 달라진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결정적인 순간 머뭇거리던 모습에서 탈피해 수소, 이커머스, 바이오 등 신사업에 과감하게 진출했다. GS의 변화는 4차산업 혁명 흐름에 합류하지 못하면 도태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과 연결돼 있다. 이제 막 첫 걸음을 뗀 GS의 사업 포트폴리오 리모델링 작업을 점검해본다.
▲ GS칼텍스 주유소.(사진=GS칼텍스)
▲ GS칼텍스 주유소.(사진=GS칼텍스)

대표 '굴뚝 산업'인 정유업은 디지털과 가장 어울리지 않은 산업 중 하나이다. 산유국에서 원유를 구입해 정제한 후 판매하고, 부산물을 석유화학 제품으로 생산한다. 정유업의 사업구조는 비교적 단순하다.

SK에너지와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사들은 유가 변동에 따른 마진 악화를 최소화하기 위해 수조원을 들여 고도화 작업을 마쳤다. 한 발 더 나아가 유가 등 '외생변수'의 영향을 받는 정유업의 비중을 낮추기 위해 석유화학제품 생산시설에 투자했다. GS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가 2조7000억원을 들인 올레핀 생산시설이 한 예다.

그럼에도 정유업의 변신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번에는 정유사의 골칫거리였던 레깅마진(원재료 투입 시점에 따른 손익) 때문도 아니다. 이번에는 글로벌에서 추진하고 있는 탄소 중립 정책 때문이다.

정유사는 철강사와 발전사와 함께 온실가스 배출량이 높은 곳이다. 지난해 국내 정유 4사가 배출한 온실가스는 3612만톤으로 국내에서 배출된 양(6억4869만톤)의 5.5%를 차지했다.

정유사가 수익을 낼려면 휘발유 등 제품을 더 많이 생산해 팔아야 한다. 한국도 글로벌 흐름에 맞춰 탄소배출량을 줄여야 하는데, 정유 산업은 탄소 중립과 배치된다. 국내 정유사들이 '탈탄소'에 관심을 갖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변화가 느린 GS칼텍스도 '탈탄소'의 흐름에 맞춰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GS칼텍스가 탈탄소 시대를 겨냥해 준비한 사업은 모빌리티와 수소이다. 

GS칼텍스는 지난 7월 GS에너지와 함께 카카오모빌리티에 약 300억원을 투자했다. GS칼텍스는 카카오모빌리티의 지분 0.73%를 취득했다. 국내 인프라 및 네트워크 사업자 중 카카오모빌리티에 투자한 기업은 GS칼텍스가 처음이다. GS칼텍스의 '변화'는 진행 중이다. 

주유소를 '모빌리티 허브'로...'고육지책' 속 나온 전략 
GS칼텍스는 최근 주유소를 확 바꾸고 있다. 주유만 하던 주유소에서 전기차와 수소차 등 친환경 자동차까지 충전이 가능하도록 충전소를 짓고 있다. GS칼텍스는 2019년 전기차 충전사업을 시작했고, 현재 친환경 차의 '통합 에너지 스테이션(Total Energy Station)'이 가능하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모빌리티 서비스까지 더했다. GS칼텍스가 구상한 모빌리티 사업은 '마이크로 모빌리티' 분야다. 마이크로 모빌리티는 자가용과 대중교통 등 기존 이동수단이 감당하지 못했던 지역까지 이동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전동 키보드 충전과 대여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를 위해 2019년 글로벌 전동 킥보드 사업자 라임(Lime)과 협업하기로 했다. 

▲ GS칼텍스의 미래형 주유소 조감도.(사진=GS칼텍스)
▲ GS칼텍스의 미래형 주유소 조감도.(사진=GS칼텍스)

GS칼텍스는 주유소를 모빌리티의 '허브'로 구상했다. 내연기관 차량은 물론 친환경 자동차와 전동 킥보드까지 충전 서비스를 제공하고, 카셰어링까지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주유소의 공간을 활용해 택배 서비스인 '홈픽', 스마트락커 서비스 '큐부' 등 물류 허브 기능도 수행하도록 했다.

주유와 세차, 정비 등을 제공한 '전통적 주유소'의 개념을 모빌리티까지 확장했다. GS칼텍스는 2016년 카닥에, 2017년과 2018년 오윈(커넥티드카 스타트업)과 그린카(카셰어링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과거 IT 스타트업 투자는 주유소 사업에 모빌리티 분야를 결합하기 위해서였다. 이를 통해 주유 서비스의 밸류체인을 강화했고, 주유 사업을 모빌리티 사업으로 전환할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이다.

GS칼텍스가 주유소에 모빌리티 서비스를 도입한 건 이유가 분명하다. 폭스바겐과 GM, 현대차 등 글로벌 메이커들이 내연기관 차량의 생산을 단계적으로 줄여나가고 있다. 앞으로 10년 후에는 내연기관 차량의 비중이 현재보다 약 30% 이상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유사의 경우 실적 저하가 불가피하다. GS칼텍스 등 정유사들이 주유소에 전기차와 수소차 충전소를 도입한 이유다.

▲ GS칼텍스 매출 추이.(자료=금융감독원)
▲ GS칼텍스 매출 추이.(자료=금융감독원)

지난해 GS칼텍스의 전체 매출 중 휘발유와 경유의 매출은 각각 9.5%(2조1172억원), 30.0%(6조7012억원)에 달했다. 2017년 휘발유 매출은 10.8%(3조2788억원), 경유 매출은 23.4%(7조841억원)을 기록했다. 이 기간 동안 매출 규모는 17.5% 줄었다.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제품 수요가 줄어든 영향도 있다. 앞으로 '탈탄소' 시대에 가까울수록 휘발유 및 경유 매출의 감소 속도는 빨라질 전망이다.

GS칼텍스의 IT 업체에 대한 투자는 '탈탄소' 및 '탈 내연기관'을 준비한 것으로 주유소를 '모빌리티 허브'로 바꾸기 위한 일환이다. IT 업체들이 결제 등 온라인 플랫폼에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만큼 GS칼텍스의 주유 사업과 시너지가 예상된다.

수소 사업에서도 신중·소극적...'과감한 결단' 필요해
GS칼텍스가 추진 중인 '모빌리티 허브' 전략은 '탈탄소 시대'를 준비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유는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한 석유화학 산업은 필연적으로 온실가스를 배출시키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모델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탈탄소'에 대응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정유사들은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사업구조를 재생 에너지로 바꾸고, 화석연료로 만든 제품 생산량을 줄이고 있다.

글로벌 정유사인 로열더치셸(Royal Dutch Shell)은 풍력·태양광 발전소를 건설하는 등 재생에너지 사업을 확대했다.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꼽히는 수소 생산에도 나섰다. 지난해 네덜란드 법원은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45% 줄이라고 로열더치셸에 판결했다. 로열더치셸은 기존 사업을 영위하기 어려운 환경에 직면하면서 사업구조를 빠르게 바꾸고 있다. 

프랑스 토탈과 영국 BP 등은 석유화학 제품의 생산량을 단계적으로 줄이고 친환경 제품을 생산하겠다고 나섰다. 이러한 움직임은 국내에서도 불고 있다.

▲ 정유4사 온실가스 배출량.(자료=금융감독원)
▲ 정유4사 온실가스 배출량.(자료=금융감독원)

SK이노베이션은 석유화학 사업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친환경 사업 위주로 전환하고 있다. 자사의 사업을 화석 연료 중심에서 친환경 사업 위주로 바꿀 계획이다. 5년 동안 30조원 이상을 투자해 배터리 사업의 밸류체인 전반을 강화하고, 플라스틱의 리싸이클링 사업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탄소를 배출하는 사업은 자산 및 지분을 매각해, 친환경 중심 자산 포트폴리오를 운영할 계획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의 현대오일뱅크는 재생 에너지와 수소 에너지 등을 생산하는 종합에너지 기업으로 탈바꿈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2025년까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블루수소 10만톤을 생산하고, 화이트 바이오 사업에 나설 계획이다. 2050년까지 탄소 순배출량을 30% 이상 줄일 계획이다. 

GS칼텍스 또한 친환경 사업을 강화하고 있지만 사업구조를 근본적으로 혁신하는 수준의 계획은 내놓지 못했다. 지난 6월 국내 최초로 200만 배럴 규모의 탄소중립 원유를 수입했다. GS칼텍스의 일일 최대 원유처리량은 약 80만 배럴로 3일치의 물량이다.

GS칼텍스는 생산 과정에서 투입되는 저유황 중유를 액화천연가스(LNG)로 대체했다. 원유 처리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최소화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 GS칼텍스가 배출한 온실가스는 785만톤으로 정유 4사의 전체 배출량 중 약 21.7% 가량이다.

▲ GS칼텍스 제품 생산현황.(자료=금융감독원)
▲ GS칼텍스 제품 생산현황.(자료=금융감독원)

GS칼텍스는 2017년 780만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했는데, 지난해 온실가스 배출량은 4만6868톤(0.6%) 늘었다. 이 기간 동안 매출 규모는 26.4% 줄었는데, 온실가스 배출량은 오히려 늘었다. GS칼텍스는 화석연료 기반 사업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글로벌한 '탈탄소' 흐름을 거스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GS칼텍스는 액화수소를 생산할 계획이다. 한국가스공사와 함께 2024년 준공을 목표로 액화수소 생산공장을 짓고 있다. GS칼텍스는 2025년 약 1만톤 규모의 수소를 생산할 계획이다. 같은해 SK E&S 생산량의 약 28분의 1, 현대오일뱅크 생산량의 10분의 1 수준이다. GS칼텍스는 '수소 경제'를 준비하기 위해 액화수소와 수소 연료전지 사업을 준비하고 있지만, 현실화까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정유사들이 미래 에너지원인 수소를 생산하는 건 글로벌 트렌드이다. 석유화학 제품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부생수소에서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면, 친환경 수소인 블루수소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산 규모 면에서도 투자 규모 면에서도 GS칼텍스의 수소 사업과 친환경 사업은 여타 정유사에 비해 신중하고, 소극적이다.

▲ 허세홍 GS칼텍스 사장.(사진=GS칼텍스)
▲ 허세홍 GS칼텍스 사장.(사진=GS칼텍스)

앞으로 탈탄소 흐름이 어떻게 진행될지 불확실한 측면도 있고, 수소의 채산성 또한 논란거리 중 하나다. 이 때문에 무리하게 석유화학 사업의 구조를 바꾸기보다 정유업계의 변화에 대응해 단계적으로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미래 사업을 추진하는데 있어 신중함이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특히 수소는 생산 과정에서 저장 및 유통까지 넘어야 할 기술이 산적해 있다. SK그룹과 현대차그룹, 포스코그룹 등 국내 대그룹들은 수소 경제에 과감한 투자를 하고 있다. GS칼텍스가 석유화학 기업의 '불안한 미래'를 보완할 대안으로 수소를 정했다면 보다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GS칼텍스는 탈탄소 시대를 준비하는데 있어 사업구조를 무리해 바꾸기보다 신중하게 준비하고 있다"며 "GS그룹의 경영 스타일이 배어 있지만, 자칫 경쟁사에 뒤쳐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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