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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 재고자산은 업황과 함께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보통 호황이 길어질 것 같을 때 공급 부족 이슈가 생기지 않게 재고를 늘리는데요. 비에이치는 실적 하락세에도 재고자산을 늘렸습니다. 어떤 이유가 있을까요?

· 비에이치는 내부적으로 향후 수요 증가를 예상하는 듯 보입니다. 실적 악화에도 투자에 적극적이죠. 지난 6월 500억원 규모 시설투자 계획을 밝혔고, 지난 7월에는 시설자금 확보를 위해 베트남 생산 법인(BH Flex VINA) 339억원을 채무보증했습니다.

▲ 인천광역시 비에이치 본사 전경. (사진=비에이치 홈페이지)
▲ 인천광역시 비에이치 본사 전경. (사진=비에이치 홈페이지)

국내 연성인쇄회로기판(FPCB) 업체인 비에이치는 어려운 나날을 보냈습니다. 두 가지 지표만 놓고 봐도 알 수 있는데요. 2018년 910억원이던 영업이익은 지속 감소해 올해 상반기 16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습니다.

당기손익 추이도 비슷합니다. 2018년 816억원에 달하던 당기순이익은 올해 상반기 적자로 전환했죠. 올해 상반기 당기순손실은 47억원입니다. 다행히 영업외 순익(122억원)이 발생해 영업손실을 만회했지만 적자를 벗어날 수는 없었습니다.

실적 외에 또 하나 눈에 띄는 지표가 있습니다. 재고자산이 급증한 건데요. 올해 상반기 재고자산은 1355억원입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 재고자산은 500억원, 지난해 말 기준 재고자산은 914억원입니다. 전년 동기 대비 171.0%, 지난해 말 대비 48.2% 늘어난 거죠.

기업은 보통 호황이 길어질 것 같을 때 재고를 늘리죠. 공급 부족 이슈가 생기지 않게 맞춤형 전략을 세우는 겁니다. 하지만 비에이치는 실적이 하락세에 있는 기업입니다.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죠. 영업이 안 돼 재고가 쌓이는 상황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부 내역을 살펴보면 재고자산을 다른 시선으로 살펴보게 됩니다. 비에이치 반기연결검토보고서 주석 내 ‘재고자산’ 부문을 보면 4가지 항목이 등장합니다. 제품, 재공품, 원재료, 미착품인데요.

이중 재공품의 증가 폭이 눈에 띕니다. 지난해 말 기준 장부금액은 567억원이었는데요. 올해 상반기 913억원으로 늘어났죠. 재고자산 급증 원인이 재공품 증가 때문이라는 거죠.

▲ 재고자산 부문. (자료=비에이치 반기연결검토보고서)
▲ 재고자산 부문. (자료=비에이치 반기연결검토보고서)

재공품은 추후 납품을 위해 공장에서 제조 중인 제품을 의미합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제품의 증가는 악성 재고로 볼 수 있지만, 재공품의 증가는 악성 재고로 판단하기 힘듭니다. 수요가 없다면 제조를 시작할 필요도 없었을 테니까요.

알아두면 좋은 지식들

· PCB(Printed Circuit Board): 스위치 등 전기적 부품들이 납땜되는 얇은 판을 의미합니다. 컴퓨터 등 전자제품 속 ‘녹색 기판’을 떠올리면 됩니다. PCB에 유연성(Flexible)을 더한 제품이 연성인쇄회로기판(FPCB)이고요. 유연성(Flexible)에 단단함(Rigid)까지 더한 제품을 경연성인쇄회로기판(RFPCB)라고 부릅니다. RFPCB를 고부가 가치 제품으로 평가하는 이유죠.

증권가에서 바라보는 비에이치 하반기 전망은 긍정적입니다. 출시를 앞둔 애플 아이폰13 때문인데요. 아이폰13은 RFPCB 위주로 채용을 확대할 예정입니다. 비에이치가 납품할 예정이죠. RFPCB는 FPCB 중에서도 고부가 가치 제품으로 평가받습니다.

▲ 올해 상반기 RFPCB가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 (자료=비에이치 반기보고서)
▲ 올해 상반기 RFPCB가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 (자료=비에이치 반기보고서)

RFPCB 납품은 비에이치 실적에 직결되는데요. 올해 상반기 RFPCB, BUPCB 품목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전년 대비 13.2%포인트 떨어진 62.1%입니다. RFPCB 공급 물량이 늘면 비에이치 실적은 자연스레 회복될 가능성이 높겠죠.

한 가지 의문은 남습니다. 애플은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시기에 신제품을 출시합니다. 이를 고려하면 지난해 같은 기간과 올해 재공품 규모 차이가 상당하죠.

이와 관련 비에이치 측에 문의했는데요. 비에이치는 코로나19를 이유로 꼽았습니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 영향으로 애플 공급망에 있는 업체 대부분이 어려움을 겪었고, 납품 규모가 크지 않았다는 거죠.

▲ 비에이치 RFPCB. (사진=비에이치 홈페이지)
▲ 비에이치 RFPCB. (사진=비에이치 홈페이지)

업계에서는 경쟁사 삼성전기의 RFPCB 사업 철수 가능성도 재공품 증가 요인이라고 판단합니다. 현재 애플 아이폰에 납품되는 RFPCB는 비에이치와 삼성전기, 영풍전자가 맡고 있는데요. 삼성전기가 RFPCB 사업을 정리하면 애플 아이폰에 공급될 RFPCB 시장은 재편되겠죠.

비에이치도 수혜를 대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요. 지난 6월 500억원 규모의 신규시설투자 계획을 밝히고 지난 7월에는 시설자금 확보를 위해 베트남 생산 법인(BH Flex VINA) 339억원을 채무보증했죠. 적극적으로 증설에 나서는 모습입니다.

고의영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지난달 3일 비에이치 리포트에서 “경쟁사는 FPCB 사업을 비주력 사업으로 분류하고 점진적으로 축소할 계획”이라며 “아이폰용 디스플레이 RFPCB 점유율은 비에이치 60%, 경쟁사 40%인데 점유율 10%포인트 확대 시마다 800억~900억원의 추가 외형 성장이 가능하다”고 전망했습니다.

생각해 볼 문제

· 지표만 놓고 보면 비에이치는 아이폰13 수혜를 예상하고 몸집을 키우고 있습니다. 전망은 밝지만 변수가 발생할 수도 있는데요. 비에이치는 변수 발생에 대처할 여력을 갖추고 있을까요? 비에이치 재무건전성에 관심이 가네요.

· 시장에선 RFPCB 호황을 예상하는데요. 그렇다면 삼성전기는 왜 RFPCB 사업에서 철수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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