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에서 독립한 이후 16년 동안 변하고 싶어도 변하지 못했던 GS가 올해 달라진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결정적인 순간 머뭇거리던 모습에서 탈피해 수소, 이커머스, 바이오 등 신사업에 과감하게 진출했다. GS의 변화는 4차산업 혁명 흐름에 합류하지 못하면 도태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과 연결돼 있다. 이제 막 첫 걸음을 뗀 GS의 사업 포트폴리오 리모델링 작업을 점검해본다.
▲ GS그룹이 휴젤을 인수했다. 사진은 오른쪽은 허태수 GS 회장.(사진=각 사)
▲ GS그룹이 휴젤을 인수했다. 사진은 오른쪽은 허태수 GS 회장.(사진=각 사)

GS그룹이 창사 이후 최근까지 벌였던 인수합병 중에서도 휴젤 인수는 확실히 ‘특이점’이 있다. 지금껏 많지 않았던 M&A는 모두 본업과 연관성이 있었다. 하지만 바이오 사업을 영위하는 휴젤은 GS그룹이 영위하는 기존 사업과의 접점이 안 보인다.

다소 소심한 투자란 지적도 있다. 휴젤 매각가격은 총 규모로 1조7000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GS그룹의 단독 인수가 아닌 컨소시엄의 일원으로 참여했다. ㈜GS의 순수 투자액은 1억5000만 달러(약 1750억원)로 인수 후 지분율은 13.65%에 불과하다. 전략적 투자자(SI)가 아닌 재무적 투자자(FI)란 반응도 있다.

이런 규모가 알려지자 재계에선 ‘GS답다’라는 말도 들린다. 과감한 투자를 한 일이 없던 그룹의 성향이 이번 휴젤 인수에서도 고스란히 반영됐다는 설명이다.

다만 인수 그 자체만 봤을 땐 분명 주도적이었고, 전례가 없던 게 사실이다. GS그룹이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바이오 사업에서의 대규모 투자이기 때문이다. GS그룹은 '가문 경영'이 중심이며, 사업 방식 또한 보수적이다. 이 때문에  ‘시대착오적’이란 말까지 들었다. 그랬기에 이번 휴젤 인수는 GS그룹이 허태수 회장 체제에서 '뭔가 바뀌고 있다'는 이미지를 주기에 충분하다.

휴젤은 GS의 '바이오 플랫폼'이 될 수 있을까
허태수 GS 회장은 지난 8월 25일 휴젤을 인수하면서 “그룹의 바이오 사업을 다각화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육성”한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이후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이 플랫폼을 만드는 건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바이오 기업의 플랫폼화’는 이해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휴젤은 GS그룹의 바이오 사업을 다각화할 플랫폼이 될 수 있을까. 바이오산업에서 ‘플랫폼’이란 용어는 통상 타 약품과의 결합을 통해 신약을 만드는 기술을 의미한다. 한 가지 후보 물질에만 매달리는 전통적 바이오 전략과는 달리 플랫폼 기술은 한번에 다양한 후보 물질을 빠르게 조절할 수 있어 업계의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 휴젤의 주력 제품 보툴렉스.(사진=휴젤)
▲ 휴젤의 주력 제품 보툴렉스.(사진=휴젤)

다만 허태수 회장의 발언은 이런 의미에서의 플랫폼을 뜻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휴젤이 만드는 보톡스(보툴렉스)와 히알루론산 필러(더채움)는 주로 피부 보형물과 안면 윤곽 성형과 같은 미용 목적으로 활용된다. 치료제나 백신을 만드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바이오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하기엔 무리가 있다.

이런 이유로 허 회장이 언급한 '휴젤의 플랫폼화'는 마케팅 차원으로 풀이된다. 휴젤의 국내외 바이오 공급망을 활용해 해외 시장에서 GS의 신사업 진출을 지원할 발판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사업적인 면에서 휴젤에 있지만, GS에 없는 건 '바이오 공급망'이다. 신규 의약품이나 의료기기 전문 유통조직은 의료산업에 속해 있어도 쉽게 진입할 수도 없다. 관련 노하우를 쌓기도 힘들다. GS가 바이오 신사업을 확장하는 데 성공한다면, 휴젤의 공급망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 M&A를 통해 기대할 수 있는 시너지이다.

▲ 2019~2021년 상반기 휴젤 매출실적 및 유형.(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
▲ 2019~2021년 상반기 휴젤 매출실적 및 유형.(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이런 내용은 휴젤의 사업보고서에서도 잘 나타난다. 휴젤은 메디텍 영업팀을 통해 피부과 및 성형외과와 국내 종합병원 및 대학병원 등에 제품을 팔고 있다. 판매 제품은 치료제와 의료기기 등이다. 휴젤은 해외에서 수입품도 공급하고 있다.

휴젤은 글로벌 영업망도 튼튼하다. 일본과 태국, 브라질 등 해외 24개국에 공급망을 확보했다. 미국과 유럽, 중국 등 30개국에서도 보톡스 판매 허가도 갖고 있다. 휴젤의 매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39.9%, 2020년 42.4%로 매해 증가했고, 올해 상반기 46.6%로 전체 매출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커졌다.

사업 시너지는 ‘안갯속’… GS의 노림수는
GS는 창사 이후 여러 M&A에 수차례 이름을 올렸지만 완주한 경험은 많지 않다. △대우조선해양 △대한통운 △코웨이 △아시아나항공 △두산인프라코어 인수전에 나섰지만 모두 중도 포기했다. 반면 휴젤 인수는 컨소시엄을 주도적으로 만들 정도로 여느 때보다도 인수 의지가 확고했다는 말이 나온다.

시장에선 GS가 어떻게 바이오 사업을 키울지에 대해 ‘물음표’가 떠오르는 것도 사실이다. 휴젤을 플랫폼으로 활용하기 위해선 그룹 내에서 바이오 사업을 육성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해온 비즈니스만 봤을 땐 신사업과의 접점이 없어도 너무 없다는 것이다.

GS의 사업들만 보더라도 세간의 우려는 타당해 보인다. GS는 △에너지 사업(GS에너지) △종합 도소매업(GS리테일) △유통업(GS홈쇼핑) △프로축구단 사업(GS스포츠) △전기업(GS이피에스) △무역업(GS글로벌) △집단에너지·석유 유통사업(GS이앤알)을 꾸리고 있다.

이 가운데 △에너지 △프로축구 사업 △전기업 △집단에너지 사업은 휴젤과의 접점이 없다. 도소매업이나 유통업에서는 제품 판매처로서의 시너지는 있을 수 있으나 그 또한 구체적인 윤곽이 잡히지 않는다. GS로선 휴젤을 통해 바이오 사업의 첫걸음부터 떼야 하는 셈이다.

GS그룹이 휴젤 인수에 앞서 바이오 관련 행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말 GS는 계열사들이 출자해 전사 차원에서 미래 사업에 투자하는 ‘GS퓨처스’라는 법인을 설립했다. GS퓨처스의 첫 투자가 바이오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인디바이오(IndieBio)로 알려졌다.

올해 상반기 GS 보고서에서도 지난해 말부터 그룹 차원의 바이오 사업 투자가 본격화되기 시작된 게 눈에 띈다. 엑셀러레이터 블루포인트파트너스(BPP), 벤처캐피탈 인터베스트가 조성한 바이오 관련 펀드에 각각 10억원, 12억원을 출자했다. LSK파트너스가 조성한 바이오 펀드에도 총 26억원을 출자한 것으로 집계됐다. GS는 중국 CBC그룹의 헬스케어 펀드에도 12억원을 투자했다. CBC그룹은 휴젤 인수를 위한 컨소시엄에도 참여했다.

다만 투자 규모가 작고, 출자 목적도 단순 투자라 GS가 바이오 사업에 진출했다고 보기엔 어렵다. 단기간 안에 바이오 펀드에 집중적으로 투자한 건 분명 이례적이다. 하지만 이를 휴젤과의 시너지를 기대할 수준으로 보기에는 다소 부족해 보인다.

▲ 휴젤 컨소시엄에 나선 최대 출자자 중국 CBC그룹은 아시아에서 잘 알려진 헬스케어 벤처펀드 운용사다.(사진=픽사베이)
▲ 휴젤 컨소시엄에 나선 최대 출자자 중국 CBC그룹은 아시아에서 잘 알려진 헬스케어 벤처펀드 운용사다.(사진=픽사베이)

오히려 시너지는 최대 출자자인 중국 CBC그룹과 더 잘 날 것으로 보인다. CBC그룹은 헬스케어 전문 벤처펀드 운용사로 지금껏 사모펀드 방식으로만 17곳에 투자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와 신약 인허가 및 상업화 파트너십을 맺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GS는 오히려 재무적 투자자로서 명목만 있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투자 규모만 보더라도 최근 GS리테일을 통해 지분 투자한 요기요(3000억원)보다도 작은 상황이며, 구체적 시너지가 어떻게 날지 또한 미지수이다. 자칫 소수지분 투자자로서 별다른 사업적 성과 없이 ‘변죽’만 두드리는 상황도 연출될 수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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