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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G전자는 스마트폰 사업 철수를 전후 전장을 필두로 로봇과 인공지능, 헬스케어 등 다양한 신사업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 다만 세부 전략은 다른데요. 자동차 전장이 자본 집약적이라면 지금까지 해보지 않았던 로봇·AI·헬스케어 등엔 모두 ‘찍먹’ 수준으로 접근 중입니다.
• 현금은 넉넉하나 빚도 많고 일회성 비용도 생긴 LG전자는 먼저 전장을 수익화한 뒤 향후 사업성 있는 분야를 정해 집중 투자할 것으로 보입니다.
성숙기에 접어든 기업이 생존을 위해 신사업에 나서는 건 필연적 선택입니다. 상대적으로 몸집이 작은 기업이라면 기민하게 다른 사업을 붙이거나 떼기 쉽겠지만, 사업 하나하나마다 덩치가 큰 대기업은 그렇지 않죠. 다만 오랫동안 살아남은 대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새로운 도전을 마다하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 LG전자 여의도 트윈타워 전경.(사진=LG전자)
▲ LG전자 여의도 트윈타워 전경.(사진=LG전자)

최근 국내 대기업 중 LG전자의 체질 개선 노력은 특별히 눈에 띕니다. 올해 초 MC(Mobile Communications) 사업 철수를 결정한 뒤 새로운 먹거리 사업에 빠르게 투자하고 있죠. MC사업부문의 누적적자가 5조원에 달할 정도로 크긴 했지만, 그간의 모바일 사업을 일순에 포기하고 다른 사업으로 전환하는 건 분명 쉽지 않았을 겁니다. LG가 전통적으로 가졌던 보수적 성향을 생각한다면 더 그렇습니다.

LG전자의 신사업은 크게 두 갈래로 나눠졌습니다. 자동차 전장(VS·Vehicle component Solutions) 사업부문에 대한 선택과 집중, 그리고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각종 기술과 기업에 대한 소규모 투자가 바로 그것입니다.

전장에 사활 건 LG전자, 지분 절반을 마그나에 떼어준 이유

VS부문은 LG전자의 새 먹거리가 될 곳이며, LG전자로선 꼭 그렇게 돼야만 하는 사업입니다. 자동차 전장 사업을 제외하면 LG전자의 주력 사업은 백색가전과 TV, 에어컨, PC 주변기기 등인데요. 이들 사업은 모두 성숙기에 속해 있어 차세대 먹거리가 되긴 어렵습니다.

2016년 이후 LG전자의 사업부문별 매출 추이를 보면 VS부문은 BS(Business Solutions)부문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25.92%의 연평균 성장률을 기록한 게 확인됩니다. PC와 주변기기, 사이니지 등을 취급하는 BS부문은 지난해 코로나19 확산으로 수혜를 봤지만 성장세가 지속 가능할지는 미지수죠. 결국 구조적 성장을 보이는 곳은 VS부문 한 곳입니다.

VS사업부문은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제품과 자율주행 부품, 자동차 램프 등을 생산·판매합니다. 당초 전기자동차용 구동 부품도 만들었는데 마그나 인터내셔널과 합작사 ‘LG마그나 이파워트레인’을 세우며 떼어냈죠. LG전자에는 AVN(오디오·비디오·내비게이션)과 텔레매틱스(차량 정보통신 장비), ADAS(자율주행용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 자동차 헤드램프 등을 만드는 사업이 존속됐습니다.

VS부문의 숙제는 수익성 확보입니다. 외형은 꾸준히 커지고 있지만 아직 분기 흑자도 낸 적 없습니다. 특히 올해 들어선 차량용 반도체의 공급 부족으로 영업손실 규모도 커졌죠. 영업손익률은 2018년 –2.79%에서 2019년 –3.81%, 지난해 –6.56%에 이어 올해 상반기 기준 –9.04%로 늘었습니다.

마그나에게 지분 절반을 주면서까지 합작사를 세운 것도 이 숙제를 풀기 위함입니다. LG전자는 전기차 파워트레인 분야에서 세계적 완성차 기업에 납품할 만한 기술력을 확보했지만 판매 역량은 부족했죠. 마그나는 영업망을 활용한 초기 시장 선점, 다른 부품과의 연동성 측면에서 LG전자의 단점을 메워줄 최적의 파트너로 평가받습니다.

분사하는 LG마그나가 빠르게 수익성을 끌어올린다면 존속하는 VS부문에게도 좋을 겁니다. VS부문은 인포테인먼트와 차량용 LED조명(ZKW)에선 이미 수익성이 본궤도에 오르고 있는데요. 여기에 마그나의 유통망을 통해 파워트레인 매출을 늘릴 수 있다면 인포테인먼트를 비롯한 여타 제품도 묶어서 팔 수 있을 겁니다. 전기차 부품 생태계 전반으로 이어지는 시너지는 전장에 사활을 건 LG전자가 가장 바라는 시나리오입니다.

알아두면 좋은 지식들
파워트레인 : 파워트레인은 화석연료, 전지 등에 저장된 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바꿔 자동차, 항공기, 선박 등이 움직이도록 동력을 부여하는 데 필요한 모든 부품을 뜻한다. 
ADAS(ADAS: Advanced Driver Assistance System) :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의 영문 줄임말로 레벨 2 자율주행 기술을 뜻한다. 사고 발생 전 위험을 미리 감지하고 이를 회피할 수 있게 도와주며 앞차의 거리에 맞춰 차 속도도 조절해주는 등의 역할을 한다.
로봇·인공지능·헬스케어...안 하는 게 없다
LG전자는 전장 외 신성장 동력도 찾고 있습니다. 실제로 LG전자 보도자료를 보면 최근 몇 년 내 새롭게 진출한다는 사업들이 부쩍 늘었는데요. 면면을 살펴보면 신선하기도 하고, 또 LG가 신사업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전사 차원에서 밀고 있는 건 바로 로봇입니다. 2018년 클로이(CLOi)라는 안내·청소·서빙 로봇을 만들었는데, LG전자는 여기서 배운 로봇 기술을 다양한 사업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커피를 만들어주는 바리스타봇과 잔디를 깎아주는 로봇, 실내외 배송을 담당하는 통합 배송 로봇을 선보였고요. ‘배달의 민족’을 만든 우아한형제들이나 현대엘리베이터와도 손잡고 특화 로봇을 만들고 있습니다.

로봇을 하고 있다는 것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함께 다루고 있다는 의미와도 동일합니다. 로봇은 물리적인 산물일 뿐 그것을 움직이는 것은 인공지능이며, 인공지능이 잘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빅데이터에 대한 분석이기 때문입니다. 올해 LG는 전사 차원에서 향후 3년 간 1140억원을 투자해 ‘초거대 AI’를 만들기로 했는데요. 이는 결국 LG전자가 AI는 물론 로보틱스 기업으로 진출한다는 의미가 되기도 합니다.

▲ LG전자 실내외 통합배송로봇.(사진=LG전자)
▲ LG전자 실내외 통합배송로봇.(사진=LG전자)

전에 없던 새로운 시도에 나서는 것도 보입니다. △LIG넥스원과 손잡고 만드는 군용 드론모터 △전기차 충전소를 위한 통합 관리 솔루션 △인공지능으로 진단을 보조해주는 의료용 영상기기 △병원용 원격진료 솔루션 등 지난해부터 특이한 제품과 서비스를 속속 출시하고 있죠.

지난해 말 이뤄진 조직개편도 이러한 일련의 변화와 맞물려있습니다. 미래 산업을 준비하기 위해 CSO(Chief Strategy Office)부문 산하 북미이노베이션센터를 만들었는데요. 전사적 미래 사업 준비 차원에서 만들어진 이 조직은 최근 글로벌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사업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사내 브레인 조직에 해당하는 CTO(Chief Technology Office)부문 아래 혁신기술과 스타트업 방식의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아이랩(iLab)을 신설했습니다. LG전자는 지난해부터 사내 벤처프로그램인 ‘LGE 어드벤처’를 운영하며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하는 프로젝트는 사외 벤처로 분사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LG전자 공시 상 타 법인에 대한 출자를 보면 회사의 최근 대외투자 현황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약 1년 6개월간 총 10개 법인에 1090억원을 투자했죠. 사업 종류도 클라우드 컴퓨팅과 엑스레이, 자율주행, 3D 디자인, 인공지능 반도체, 빅데이터 분석, 스마트홈 등으로 다양합니다.

LG전자에 전장과 함께 미래 먹거리가 될 사업은?
LG전자에게 VS부문이 구본무 전 회장의 ‘유산’이라면, 최근 투자를 벌이고 있는 일련의 신사업들은 구광모 회장의 ‘의지’가 담긴 것들입니다. 구 회장은 인공지능과 로봇 등 4차 산업혁명에 큰 관심을 두고 그룹의 차세대 방향성을 맞춘 걸로 재계에 알려져 있죠. 실제로 그가 취임한 2018년 이후 LG는 부쩍 AI와 로봇에 관심을 높이고 있습니다.

다만 LG전자로선 당장의 수익성 확보도 중요합니다. 23분기 연속으로 적자를 기록하며 무려 5조원의 손실을 안긴 끝에 사업 철수한 MC부문에는 약 1조3000억원의 상흔(사업중단영업순손실)이 남아있고요. 최근 부각된 GM의 볼트 리콜 관련 3300억원의 우발적 충당금도 발목을 잡고 있죠. 회사 곳간엔 올해 상반기 연결 기준 6조1900억원에 달하는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 있지만, 이와 함께 10조1000억원에 달하는 장단기 차입금이 쌓여있기도 합니다.

▲ 구광모 LG 회장.(사진=LG)
▲ 구광모 LG 회장.(사진=LG)

기대처럼 VS부문이 본격적으로 수익을 내기 시작한다면 LG전자의 재무 건전성도 빠르게 회복될 겁니다. LG전자가 다양한 신사업을 열심히 ‘찍먹’하는 건 향후 곳간이 풍족해졌을 때 제대로 된 투자를 하기 위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LG전자에 전기차와 함께 과연 무슨 사업이 회사를 먹여 살릴지 궁금해집니다.

생각해 볼 문제
• LG전자가 다양한 신사업에 투자하는 건 사실이지만 전장을 제외하면 특별히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경쟁 업체들이 치고 올라오기 전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 데 성공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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