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워싱' 아니겠지...또 '수소'로 뭉친 현대차·GS 등 재벌들

발행일 2021-09-11 06:22:05
수소모빌리티 쇼 Korea H2 Business Summit 참석자들이 창립총회 후 포스코 부스를 방문했다.(사진=포스코)

천재지변 등 재난 상황에서 각국 정부가 힘을 합쳐 위기를 헤쳐나간 사례는 여럿 있다. 코로나19 등 재난 상황에서도 국제 사회의 협력이 이어졌고, 각국 정부는 경제에 미칠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유동성을 늘려 경기를 부양한 게 한 예다.

글로벌한 위기는 또 있다. 바로 지구온난화다.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지난달 9일(현지시간) 기후변화에 대한 포괄적인 분석을 담은 6차 보고서를 내놓았다. 보고서는 향후 20년 안에 지구의 평균 온도가 산업혁명 시기였던 19세기 말보다 섭씨 1.5도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고서는 2034년 중반쯤 1.5도 상승폭에 다다를 것이라고 전했다. 당초 2040년 중반쯤 상승폭에 다다를 것으로 예측됐는데, 상승폭이 빨라졌다. 보고서는 "파리기후협약을 지킨다면 최악의 재앙은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파리기후협약(Paris Climate Agreement)은 지구 온난화를 방지하기 위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자는 전 지구적 합의안이다. 이 합의 끝에 지구의 평균 온도 상승을 2도 이내로 억제하고, 1.5도 이상 넘지 않도록 공동으로 노력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지구의 평균 온도 상승폭은 임계점인 1.5도보다 0.3도 낮은 1.2도에 이르렀다.

이 같은 상황에서 현대차와 SK 등 국내 대그룹과 대기업이 탄소중립 실현과 수소 경제 활성화를 위해 뭉쳤다. △현대차 △SK △포스코 △롯데 △한화 △GS △현대중공업 △두산 △효성 △코오롱 △이수 △일진 등 12곳의 대그룹과 삼성물산과 E1, 고려아연 등 대기업 3곳은 국내 첫 수소 관련 민간기구인 '수소기업협의체'에 참여했다.

이들은 사업영역은 각자 다르지만 수소 경제를 앞당기고, 각자 경쟁력 있는 분야에 투자해 밸류체인을 강화하기로 했다. 수소 관련 인프라는 투자 기간도 길고, 금액도 크다. 수소기업협의체는 매해 상반기 전 세계 투자금융사를 대상으로 '인베스터 데이'를 연다. 매해 9월 회원사들이 만나 주요 이슈와 협력 방안을 논의한다. 공동의장사는 현대차와 SK, 포스코가 맡는다.
수소기업협의체 목적은 '투자사 자금'?...협력 위한 거버넌스 논의 빠져
참여 기업들은 각자 수소 사업에서 미래를 발견했다. 수소는 우주의 75%를 차지할 정도로 흔한 원소이며, 에너지 밀도는 가솔린의 4배에 달한다. 사용 후 물만 배출해 친환경적이다. 이산화탄소 등 각종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화석연료보다 힘세고 깨끗한 원료다.

하지만 수소를 에너지로 쓰는 건 쉬운 문제가 아니다. 생산과정에서 발생한 부생수소를 포집하는 방법이 있지만, 생산량이 미미하다. 액화석유가스(LPG) 또는 액화천연가스(LNG), 암모니아를 개질해 수소를 생산하는 방법도 있고, 물(H2O)을 전기분해하는 방식도 있다.

수소를 용기에 저장하려면 고압으로 압축하거나, 영하 253도의 극저온에서 냉각해야 한다. 수소를 보관하려면 고강도, 단열재인 스테인리스 스틸이나 알루미늄 강을 사용해야 한다. 수소를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려면 연료전지도 필요하다.

수소는 생산과정부터 저장·운반, 사용 과정까지 어느 하나 단순한 게 없다. 수소를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현대차와 SK 등 대그룹이 협력하기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날 행사에 총수들도 자리를 함께한 것도 수소 경제에 협력할 필요성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 참여기업들이 배포한 보도자료를 살펴보면 협력 방안에 대한 논의는 빠졌다. 대신 국내외 투자사들로부터 투자금을 마련해 참여기업들에게 사업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얘기가 나왔다.

(사진=최태원 SK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수소 경제 활성화를 위해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며, 원활한 추진을 위해서는 펀드 조성을 건의드린다"며 "참여 기업에 유망한 수소 사업 기회를 제공하고, 금융회사는 자금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해외사업 및 수소 인프라 투자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최 회장의 설명대로 수소사업에는 대규모 자금이 필요하다. 기업들이 자사의 자금으로만 투자를 하기에는 벅찬 것도 사실이다. 금융기관의 차입 또는 펀드 등 가능한 많은 자금 조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자금 조달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지금 단계에서 필요한 건 '수소 경제'와 '탄소 중립'을 실현하기 위한 '기업 간 거버넌스'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데드라인'까지 0.3℃...시간은 기업 편 아냐
기업들의 '수소 경제'에 대한 그림은 각자 상이하다. 현대오일뱅크와 GS칼텍스 등 석유화학 업체는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부생수소를 활용해 이산화탄소를 제거한 그린 수소를 생산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생산한 수소를 연료전지에 탑재해 발전소와 조선·해운 분야에서 활용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포스코는 수소 환원 제철 공법을 개발해 수소 생산량 중 75%를 철강 공정에서 활용하는 방안을 그리고 있다. SK는 18조원을 투자해 2025년 연간 28만톤의 수소를 생산한다. 수소 사업 역량을 키운 후 베트남 등 동남아로 진출한다.

현대차는 현대글로비스가 트라피구라(Trafigura)로부터 들여온 LPG와 암모니아를 개질해 수소를 생산할 계획이다. 이를 현대모비스가 생산한 수소 연료전지에 탑재해 모빌리티와 발전소에서 활용한다. 롯데와 효성은 계열사가 수소를 생산한 후 계열사가 운영하는 수소 충전소와 수요처에 공급한다.

한화는 부생수소 생산과 가스터빈 발전 사업에, 두산은 액화수소 플랜트와 수소 연료전지, 수소 드론 등의 사업을 하고 있다. 일진그룹은 계열사 일진하이솔루스에서 수소 연료탱크를 생산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상사사업의 역량을 활용해 해외에서 청정수소를 수입한다. 앞으로 수소 사업을 다각화할 사업 기회를 엿보고 있다.

참여기업들은 기존 사업의 역량을 확장해 수소 사업에 진출했다. 한화 등 일부 기업들은 M&A를 통해 수소 사업에 뛰어 들었다. 

참여 기업마다 이해관계가 다양하고, 수소기업협의체를 통해 구상한 그림이 다를 가능성이 크다.

수소기업협의체는 △해외수소 생산·운송 영역에 진입 안정적인 수소 공급망 확보 △수소 공급원 및 투자기회의 다양화 △수소 액화·액상화, CCU 등 기술 확보 △대정부 정책 제안 등을 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앞으로 참여기업의 수소 사업이 일정 궤도에 오르기까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자칫 공급이 넘쳐날 경우 수소 생산에 뛰어든 기업의 사업성이 악화될 수 있고, 수소 생산기술은 일부 기업에 쏠릴 수 있다.

(사진=게티이미지)

이 때문에 수소기업협의체는 '협력적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협력의 전제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서로 협조해야 하며, 공동의 목표를 위해 참여자 간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한다. 또 협력의 과정에서 행위자가 선호하는 결과를 강제할 수 있다. 협력은 행위자의 전략적 목표와 동기, 헌신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수소기업협의체'는 무얼 할 것인지 현재까지 불분명하다.

재계에서는 수소기업협의체가 수소 경제를 앞당기고, 탄소중립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지금보다 더 높은 수준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수소가 친환경이 아닐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지구의 표면온도가 1.5도 상승할 때까지 13년 남은 데다 벌써부터 세계는 기상이변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각종 자연재해는 기업의 사업 기회를 제한할 것이며, 안전성을 저해할 수밖에 없다. 파리기후협약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기업들의 사업에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수소 경제는 '탈탄소' 사회로 가기 위해 선제적으로 달성해야 하는 목표가 됐다. 현대차와 SK, 포스코 등 국내 '중후장대' 대그룹이 수소기업협의체의 판을 마련했다.

수소기업협의체가 보다 높은 수준의 협력적 거버넌스가 되기 위해선 '논제로섬 게임'이 유지되어야 한다. 논제로섬 게임이란 한쪽의 이익과 다른 쪽의 손실을 합했을 때 제로가 되지 않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경쟁하는 것보다 서로 협력할 때 협력 모델이 유지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래야만 재벌의 그린워싱(실제로는 친환경적이지 않지만 마치 친환경적인 것처럼 홍보하는 '위장환경주의')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

공동 의장사인 현대차와 SK, 포스코는 '게임의 룰'을 정하고, 수소 경제와 탄소 중립 사회를 리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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