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쳐나는 데이터와 숫자, 누구에게나 공개돼 있고 누구나 볼 수 있지만 해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숫자 뒤에 숨은 진실을 보는 눈, 데이터를 해석해 스토리를 만드는 힘, 넘버스가 함께 합니다.
어떤 기업을 다루나요
• 해성옵틱스는 렌즈와 카메라 모듈 등을 제작하는 코스닥 상장사입니다. 해성옵틱스는 반기보고서에서 주요 사업부를 3곳(CM, LM, VCM)으로 분류했습니다. 이중 2개 사업부 영업을 중단한다고 지난 8일 공시했습니다. 2017년 이후 지속되는 적자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 (자료=미리캔버스)
▲ (자료=미리캔버스)

‘하인리히 법칙’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주로 재해와 관련해 쓰이는 용어죠.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수많은 경미한 사고와 징후들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법칙인데요. 가끔은 기업에도 비슷한 논리가 적용되는 듯합니다. 사고는 아니지만 큰 이슈가 일어나기 전에는 수많은 징후들이 존재한다는 거죠. 특정 사업부 철수, 특정 기업의 한국 시장 철수 등 수많은 사례가 떠오르네요.

여기에 해성옵틱스 사례도 추가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각종 렌즈 모듈을 제작하던 해성옵틱스가 큰 변화를 앞두고 있는데요. 사업부 구조조정에 들어갔습니다. 주요 3개 사업부 중 2개 사업부 영업을 중단합니다. 계속된 영업 부진에 재무건전성이 악화했고, 일부 자산 매각 없이는 회복이 어려운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해성옵틱스는 렌즈모듈(LM) 사업부, 카메라모듈(CM) 사업부 영업을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베트남 법인 해성비나가 보유한 LM, CM 관련 생산설비 및 공장도 매각할 예정입니다. 해성옵틱스는 “해성비나가 보유한 생산설비 및 공장 매각으로 현금을 확보해 부채 상환 및 운영자금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설비 및 공장 매각으로 확보할 현금 규모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반기보고서 연결재무제표 주석 내 ‘담보제공 유형자산’을 보면 대략 추정해볼 수 있는데요. 베트남 제 1, 2 공장 담보설정금액은 56억원이고요. 베트남 3, 4 공장 담보설정금액은 139억원입니다. 해성옵틱스 관계자에 따르면 LM 사업부는 3, 4 공장에 설비가 집중되어 있고요. CM 사업부는 1, 2 공장에 설비가 몰려있습니다.

주요 2개 사업부 영업 중단에 해외법인이 보유한 설비 및 공장 중 일부도 매각하는 겁니다. 대규모 구조조정인 거죠. 해성옵틱스 입장에선 대형 이슈인 셈입니다. 어떤 징후들이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 해성옵틱스 실적 추이. (자료=해성옵틱스 사업보고서 및 반기보고서)
▲ 해성옵틱스 실적 추이. (자료=해성옵틱스 사업보고서 및 반기보고서)

눈에 띄는 지표는 실적입니다. 해성옵틱스는 2017년 이후 수익성이 바닥입니다. 2019년 딱 한 해 8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는데 그쳤죠. 나머지는 모두 영업손실을 기록했습니다. 당기순익 추이는 더 괴롭습니다. 2017년 이후 단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했죠.

LM과 CM의 영업 부진이 영향을 미쳤는데요. LM 사업부 매출은 2018년 424억원에서 지난해 말 303억원으로, CM 사업부 매출은 375억원에서 348억원으로 감소했습니다.

사업부별 수익성은 공개되지 않아 확인이 어렵습니다. 다만 해성옵틱스는 지난해 사업보고서에서 “렌즈모듈, AF엑츄에이터(VCM), 카메라모듈의 부품업계는 경쟁사 난립 및 경쟁심화 등으로 평균판매 가격의 변동이 있다. 원가절감 및 수율 개선 노력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매출이 줄고 경쟁 심화로 원가 관리에도 어려움이 있었다면 수익성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었겠죠.

실적 부진은 다양한 곳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일단 재무건전성이 악화했죠. 해성옵틱스 총차입금은 올해 상반기 기준 352억원입니다. 이중 단기차입금이 304억원에 달하죠. 당장 상환해야 할 돈이 300억원을 넘는다는 겁니다.

▲ 총차입금 및 부채비율 추이. (자료=해성옵틱스 사업보고서 및 반기보고서)
▲ 총차입금 및 부채비율 추이. (자료=해성옵틱스 사업보고서 및 반기보고서)

부채비율도 471.1%까지 치솟은 상태입니다. 지난 3월 말 기준 코스닥 상장사 평균 부채비율은 109.7%입니다. 단순 계산으로도 평균보다 4배 이상 높은 수치죠.

실적 부진은 연구개발 활동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해성옵틱스 연구개발비 항목을 살펴보면 두 가지가 눈에 띄는데요. 먼저 연구개발비가 급감했습니다. 해성옵틱스는 트렌드가 빠르게 변하는 스마트폰 시장에 부품을 납품합니다. 연구개발 활동이 필연적인데요. 지난해 연구개발비는 전년 대비 70.8% 줄어든 8억원에 불과합니다. 

알아두면 좋은 지식들
무형자산 : 유형자산과 달리 물리적 형태가 없는 자산을 의미합니다. 기업 영업활동에 사용돼 미래에 경제적 효익이 기대되는 자산인데요. 기술력이 대표적입니다. 연구개발비는 자산 혹은 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는데요. 수익화가 가능하다고 판단하면 자산으로 처리하고, 그렇지 않으면 비용으로 회계 처리합니다.
또 하나는 영업 부진이 본격화된 2017년부터 연구개발 활동에 들어간 돈을 전부 일회성 비용으로 처리한다는 점입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죠. 회계 감사 등을 대비해 ‘안전한 방식’으로 회계 처리했을 수도 있고요. 또 다른 하나는 영업 부진 속에서 연구개발 활동에 큰 비용을 투자할 수 없는 만큼, 수익화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연구개발 활동에 들어간 돈은 일회성 비용으로 처리할 수도 있고, 기술 개발을 성공적으로 예상한다면 무형자산으로 취급할 수도 있습니다. 해성옵틱스 측에 이에 대해 문의했는데요. 안전한 방식을 채택한 것이라고 답변했습니다. 연구개발비 무형자산 계상 요건이 까다로워지면서 2017년부터 내부적으로 ‘연구개발비는 비용 처리한다’는 방침이 생겼다는 거죠.

해성옵틱스는 사업부 정리를 기점으로 다시 투자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지난 8일에는 향후 VCM 사업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해 새로운 방식의 액츄에이터를 개발하겠다고 공시했죠. 이를 위해 27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도 진행할 계획입니다. 해성옵틱스가 이번 대규모 구조조정 이슈를 딛고 긍정적 징후로 가득한 미래를 그릴 수 있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생각해 볼 문제
• 주요 2개 사업부 정리로 해성옵틱스 매출 규모는 감소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럼에도 해성옵틱스는 공시에서 “중장기적으로 매출 감소 영향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는데요. VCM 사업에 대한 자신감으로 읽힙니다. 현재 VCM 시장 상황은 어떨까요. 또 어떤 전망들이 제시되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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