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월요일, 주목할 만한 블록체인 프로젝트나 업계 트렌드를 알기 쉽게 풀어봅니다.
지난주 엘살바도르가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도입했다는 소식에 가상자산(암호화폐) 시장이 떠들썩했습니다. 그동안 숱한 금융계 거물들이 '내재가치가 없다'며 평가절하했던 비트코인이 국가적 화폐로 채택된 건 가상자산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놀라운 사건이었는데요. 혁신적인, 혹은 무모한 도전으로 불리는 엘살바도르의 선택이 향후 어떤 결과를 낳을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 엘살바도르 국기를 국토 모양으로 형상화한 것 (사진=Pixabay)
▲ 엘살바도르 국기를 국토 모양으로 형상화한 것 (사진=Pixabay)

엘살바도르 정부, 비트코인으로 경제 혁신 이룰 것
엘살바도르는 왜 굳이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채택했을까요? 일종의 '정치쇼'란 시각도 있지만 우선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이 밝힌 표면적 이유는 '경제 회복'입니다. 인구 650만명의 엘살바도르는 중남미에서 가장 작은 나라입니다. 1인당 국내 총생산은 2020년 3279달러(약 383만원)로 소득 수준도 낮죠. 문제는 그 상당 부분도 해외 노동자들의 송금으로 만들어져 왔다는 겁니다. 해당 비중이 지난해에는 60억달러, 국내총생산(GDP)의 23% 수준으로 커지면서 비트코인 도입은 비싼 해외송금 수수료(2~3%)를 절약할 수 있다는 명분을 갖게 됩니다.

실제 블록체인 기반으로 만들어진 가상자산은 해외 송금 시 기존 화폐들과 달리 복잡한 국제은행 송금 시스템(SWIFT, 스위프트)을 거치지 않아 수수료가 적고 송금 속도도 몇 분 이내로 빠르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부켈레 대통령은 비트코인 사용을 통해 연간 4억달러(약 4674억원)의 수수료를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죠.

통화주권을 회복한다는 명분도 있습니다. 엘살바도르는 비트코인 도입 전까지 약 20년간 자국 통화 대신 미국 달러를 법정통화로 사용해왔는데요. 당시 사용성이 낮았던 자국 통화 대신 국민들이 많이 사용하는 달러를 선택했던 것이지만 엘살바도르는 이 때문에 수십년 동안 통화 주권을 상실한 채로 나라를 운영해야 했습니다. 엘살바도르 경제 상황과 관계없이 미국의 달러 정책이 바뀌면 그 영향을 그대로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비트코인은 달러와 달리 발행 주체가 없는 '탈중앙 화폐'입니다. 알고리즘에 따라 자동 생성되고 분배되는 구조이므로 특정 국가가 인위적으로 비트코인 가치를 올리거나 내릴 수 없습니다. 유통을 확대하거나 제한하는 것도 불가능하죠.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채택하면 달러를 직접 주조할 수 없었던 시절과 달리 값싼 국유 자원으로 비트코인 채굴장을 운영하고, 필요한 비트코인 중 일부는 직접 조달할 수 있게 된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지난 7월 외신에 따르면 부켈레 대통령은 이미 화산을 이용한 재생 에너지 비트코인 채굴 인프라 구축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다만 엘살바도르도 비트코인의 생산량 및 가격을 인위적으로 조정할 순 없으므로 비트코인 채택이 통화 주권의 온전한 회복으로 이어진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이와 함께 엘살바도르 정부는 50%를 밑도는 엘살바도르 국민들의 은행계좌 보유율을 감안할 때 스마트폰과 무선통신만 있으면 사용 가능한 비트코인 거래가 국민들의 금융 이용 환경을 전보다 개선시킬 것이란 기대도 가졌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엘살바도르는 비트코인의 원활한 사용을 위해 아예 '치보'라는 비트코인 전용 모바일 지갑을 개발하고 국민 1인당 30달러어치의 비트코인을 치보로 배포하기도 했죠.

▲ 구글 앱 마켓에 등록된 치보 월렛 (사진=구글플레이 갈무리)
▲ 구글 앱 마켓에 등록된 치보 월렛 (사진=구글플레이 갈무리)

비트코인 법정통화 채택, 경제 제재로 이어질 수 있어
이렇게만 보면 엘살바도르의 비트코인 채택 배경이 나름 합리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은 현재 부정적 전망들이 대부분이란 점에서 온도 차이가 큽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스티브 한케 박사는 비트코인이 엘살바도르 경제를 완전히 붕괴시킬 수도 있다고 예측했습니다. 범죄 세력들이 엘살바도르를 이용해 비트코인을 현금화할 경우 엘살바도르가 보유한 달러화는 빠르게 고갈될 수 있다는 주장이었죠. 또 이로 인해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FT)의 기준을 위반하게 되면 미국의 강력한 경제 제재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 7월 엘살바도르의 국가신용등급을 B3에서 Caa1으로 하향했습니다. 비트코인 법정통화 채택이 협력국들과의 긴장을 야기하고 IMF와 논의 중이던 10억달러 규모의 재정지원 프로그램도 위태롭게 했다고 판단한 까닭입니다. 자국의 경제 회복을 위해 도입한 비트코인이 자칫 세계 금융의 외면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된 겁니다.

게다가 엘살바도르는 어떤 이유로 비트코인 가치가 폭락하더라도 대응할 방법이 전무합니다. 비트코인 도입 첫날인 지난 7일 홀더들의 비트코인 대량 매도로 추정되는 원인으로 인해 가격이 하루 만에 10%나 떨어지기도 했죠. 반대로 오를 수도 있으나 24시간 달라지는 물가와 재산가치의 불안정성은 곧 소비 위축으로 이어져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커지죠.

이 밖에도 비트코인 법정화폐의 도입은 국민의 지지 없이 대통령과 여당이 불과 수개월 만에 졸속 진행한 결과물이란 점에서 정부와 국민 사이 깊은 내홍도 예상됩니다. 지난 7월 현지 시장조사기관 디스럽티바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비트코인의 법정화폐화를 찬성한 엘살바도르인의 비중은 20%에 불과했습니다. 비트코인 도입 첫날 수도인 산살바도르 전역에서는 약 1000명 이상이 참여한 비트코인 반대 시위도 벌어져 이 같은 민심을 드러냈죠.

"세상에 다시 없을 실험" 엘살바도르, 어떤 선례 남길까
이같이 엘살바도르 정부는 비트코인에 장밋빛 기대를 걸었고 결국 도입에 성공했지만 이들에겐 아직 해결해야 할 숙제가 많은 상황입니다. 우선 충분한 비트코인 확보를 통해 급변 상황에서도 경제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 국제사회가 우려하는 돈세탁, 불법자금 유입에 대비할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 소비의 주축인 국민들에게 비트코인 사용의 당위성을 이해시키는 것 등이죠.

한편 엘살바도르의 도전은 가상자산 시장의 오랜 논쟁거리였던 '가상자산이 화폐를 대신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현실적인 답안을 제시해줄 것으로 보입니다. 그간 가상자산의 화폐 효용, 혹은 여러 한계들이 제시돼 왔지만 대부분 이론적인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상자산의 법정화폐화가 실제, 그리고 국가 단위로 실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요. 단테 모씨(Dante Mossi) 중미경제통합은행은 총재가 이를 두고 "세상에 다시 없을 실험"이라며 기대를 드러냈을 만큼, 향후 엘살바도르에서 나타날 변화들은 해당 논쟁을 풀어가는 데 있어 좋은 선례가 될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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