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카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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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울리는 강력한 경종이다.” 정치권의 거센 규제압박을 받던 카카오가 부랴부랴 상생안을 꺼냈다. 비판을 받은 골목상권 사업에서 철수하고, 소상공인을 돕기 위한 기금 3000억원을 조성한다는 게 골자다. 업계 안팎에선 지난 2013년 ‘문어발식(式)’ 사업확장으로 홍역을 치렀던 네이버와 ‘닮은꼴’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골목대장’서 ‘상생’으로 방향 틀었던 네이버
15일 네이버는 ‘분수펀드’가 만 4년 만에 3000억원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올해까지 3600억 원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설명이다. 분수펀드는 지난 2017년부터 네이버가 사내 예산으로 별도 조성해 운영 중인 일종의 ‘상생기금’이다. 소상공인(SME)·창작자를 전방위로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분수펀드는 지난 2013년 네이버의 골목상권 침해 논란에서 태동했다.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벤처·소상공인의 영역까지 넘본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네이버는 사업을 줄줄이 철수했다. 직접 운영하던 ‘윙스푼(맛집정보)’, ‘윙버스(여행정보)’, ‘네이버 쿠폰’ 등 각종 서비스를 순차적으로 중단했고, 부동산 매물정보 제공 사업도 접었다. 공정거래법 위반이라는 지적을 받자 오픈마켓 서비스에서도 손을 뗐다.

대신 네이버는 상생을 전략적으로 내세우기 시작했다. 입점수수료 없는 ‘스마트스토어’를 선보였고 소상공인 지원책도 연달아 내놨다. 지난 2016년부터 소상공인·창작자와의 동반성장을 위해 추진해온 ‘프로젝트 꽃’이 대표적인 사례다. 분수펀드도 연장선상에서 만들어졌다. 분수펀드는 순항 중이다. △2017년 609억원 △2018년 613억원 △2019년 689억원 △2020년 861억원으로 규모가 커졌고 올해는 8월 말 기준으로 약 500억원을 집행, 만 4년 만에 누적금액 3200억원을 달성했다.

연이은 규제·주가폭락에 카카오도 상생 외쳤다
8년이 지나 카카오는 네이버의 전철을 밟게 됐다. 사세를 불리는 과정에서 미용실·실내골프연습장·영어교육·꽃배달·퀵서비스 등 다양한 영역에 발을 뻗으면서 카카오가 골목상권을 침해한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미국의 정보기술(IT) 공룡 아마존을 꼬집는 용어 ‘아마존 당하다(Amazonized)’에 빗댄 ‘카카오 당하다’라는 신조어가 나오기도 했다. 누리꾼들 사이에선 “이러다 카카오 상조, 카카오 PC방, 카카오 포차도 나오겠다”는 비아냥까지 나오고 있다.

당국도 칼을 빼들었다. 정치권을 비롯해 금융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전방위적으로 규제의 각을 뾰족하게 세우기 시작했다. 주가폭락을 맞닥뜨린 데 이어 카카오 계열사들의 상장 일정도 차질을 빚게 됐다. 카카오는 부랴부랴 사태 수습에 나섰다. 지난 13, 14일 이틀간 주요 계열사 대표를 소집해 상생안을 마련한 것이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은 “카카오는 지난 10년간 추구해온 성장방식을 과감하게 버리겠다”면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성장을 위한 근본적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사진=카카오)
▲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사진=카카오)
“골목상권 철수…상생할 것” 김범수 해법 통할까
계열사 가운데서는 카카오모빌리티가 가장 먼저 대책을 내놨다. 추가요금을 내면 택시배차 확률을 높여주는 서비스인 ‘스마트호출’을 전면 폐지하고 택시업계의 반발을 샀던 ‘프로멤버십’은 요금을 월9만9000원에서 3만9000원으로 낮추겠다는 것이다. 대리운전 중개 수수료 조정, 가맹택시 사업자와의 상생협의회 구성, 꽃·간식·샐러드 배달 등 사업 철수 등도 약속했다. 자율주행 등 신사업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카카오모빌리티가 첫 주자로 나선 이유는 내년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택시호출료 인상, 택시기사 대상 유료멤버십 도입 등 무리한 수익화를 시도하면서 이번 논란에 불을 지폈기 때문이다. 여론이 돌아서는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카카오모빌리티가 사실상 택시비 인상을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카카오의 공격적인 인수·합병(M&A)전략까지 도마에 오르게 돼서다. 카카오는 골목상권 논란의 여지가 있는 계열사들의 사업을 정리해 나갈 계획이다. 미용실·네일숍 예약 서비스인 카카오헤어샵을 운영하는 와이어트의 지분을 처분하거나 이름에서 ‘카카오’를 떼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상생기금도 조성한다. 카카오는 소상공인, 택시·대리기사 등을 지원하기 위한 기금을 5년간 3000억원 규모로 만들기로 했다. 김범수 의장은 새로 마련되는 기금에 사재를 추가 출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카카오의 지주사격인 케이큐브홀딩스는 미래교육·인재양성 같은 사회적 가치 창출에 집중하는 기업으로 전환할 방침이다.

앞서 카카오는 공정위에 대기업집단 지정을 위한 자료를 제출하면서 케이큐브홀딩스를 ‘비금융회사’로 허위신고한 혐의를 받고 있다. 케이큐브홀딩스가 금융회사로 분류되면 비금융사인 카카오 대주주로 의결권을 행사한 것이 ‘금산분리 원칙’ 위반이 될 수 있다.

▲ (사진=카카오)
▲ (사진=카카오)

이번 상생안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계열사의 성장세가 꺾일 것을 우려한 카카오의 대대적인 구조변화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당장의 ‘급한 불’을 끄기 위한 임기응변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네이버가 유사한 논란으로 일찍이 골목상권에서 손을 뗐는데도 ‘문어발을 넘어 지네발’이라는 평가를 받기까지 사업확장을 지속해온 것은 안일한 태도였다는 것이다.

상생안이 일방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15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송갑석 민주당 의원은 카카오가 마련한 상생안을 두고 “무분별한 사업 확장으로 피해를 겪는 중소상공인과 어떤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한 졸속안”이라고 꼬집었다. 한국대리운전총연합회·전국대리운전노조도 각각 상생안을 비판하는 보도자료를 내기도 했다. 

일각에선 카카오가 네이버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상생을 통해 성장동력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꽃’ 출범 당시 네이버는 매년 1만명의 온라인 창업을 지원하겠다고 선언했다. 현재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는 46만명의 온라인 창업자들이 활동 중이다. 스마트스토어의 성장으로 네이버의 지난해 커머스 매출은 1조897억원으로 2019년 대비 37.6% 증가했다. 간편결제 ‘네이버페이’도 동반성장해 지난해 네이버의 핀테크 매출은 전년 대비 66.6% 증가한 6775억원을 기록했다. 네이버는 라인·야후재팬 경영통합 등을 비롯해 해외 시장도 적극적으로 공략 중이다.

한편 내달 1일부터는 국회 국정감사가, 내년에는 대통령 선거가 예정돼 있다. 케이큐브홀딩스에 대한 공정위 조사도 진행 중이어서 김 의장에 대한 검찰고발 등 후속조치가 이어질 수 있다. 카카오의 상생안 발표에도 불구하고 규제폭풍은 계속될 전망이다. 이 여파로 카카오의 신사업을 이끌던 카카오페이·모빌리티도 기업공개(IPO) 일정 연기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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