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업’에 눈뜬 LG전자, 사이벨럼 인수한 두 가지 이유

발행일 2021-09-25 07:44:14
LG전자가 인수하는 사이벨럼은 전장 분야에 특화된 '사이버 디지털 트윈' 플랫폼 기술력을 갖고 있다.(사진=사이벨럼 홈페이지 갈무리)

LG가 전사적 미래 먹거리인 자동차 전자장비(전장) 사업 확대에 속력을 붙이고 있다. 큰 틀에서의 전략이 전장 부품(하드웨어)과 소프트웨어에 해당하는 모든 것을 만드는 데 있다면, 전술적으론 특정 회사를 사거나 협업하는 식으로 나뉘고 있다.

지난 23일 인수를 밝힌 사이벨럼(Cybellum), 그리고 올해 세운 두 개의 합작법인 알루토(Alluto)와 LG마그나를 통해 LG그룹 전장 전술의 윤곽이 드러난다. 저렴하면서도 기술적 내재화가 필요하다고 본 사이벨럼은 사는 쪽을 택했고, 반면 직접 인수가 어렵지만 사업 협력이 필요한 분야에선 세계 최고의 기업들과 합작법인을 세웠다.

LG전자가 사이벨럼을 사는 게 바람직했던 이유
LG전자가 지난 23일 지분 63.9%를 인수한다고 밝힌 사이벨럼은 2016년 이스라엘에서 설립된 자동차 전용 사이버보안 플랫폼 기업이다. 사이벨럼의 ‘사이버 디지털 트윈’ 플랫폼은 자동차의 사이버보안 상 취약점을 찾아내며 또한 일반에 공개되거나 비공개된 정보까지 복합적으로 활용한다.

사이벨럼은 특히 ‘자동차 분야에 특화’된 사이버보안 취약성 대응에 강점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프트웨어 취약성을 확인하는 기존의 플랫폼들은 대부분 일반적인 IT용인데, 자동차 부품 분야는 기존 IT 제품과 달리 뚜렷한 특수성이 있어 범용으로 쓰긴 어렵다. 자동차 소프트웨어에만 특화된 솔루션이 요구되는 것이다.

(사진=LG전자)

오늘날 전장 부품 산업은 완벽히 분업화됐다. IT 소프트웨어의 경우 한 회사가 만드는 게 일반적이지만 전장은 다르다. OS를 비롯한 핵심 소프트웨어는 완성차 회사나 1차 부품업체(티어1)가 만들고 소스코드도 관리하지만 이 밖에 소프트웨어 대부분은 그 외 하청 회사들이 개발한다. 완성차 회사나 티어1들이 모든 소스를 관리할 수 없는데, 그 빈틈을 해커들이 파고들 수 있다.

특히 자동차의 ‘연결성’이 강화되면서 네트워크와 관련된 보안 문제도 현실화할 수밖에 없다. 사이벨럼은 이에 소스코드가 아니라 각각의 부품에 내장된 소프트웨어의 ‘바이너리 코드’(0, 1과 같은 이진법 코드)를 분석해 취약점을 찾아낸다. 특히 사이벨럼의 플랫폼은 인공지능을 활용해 다양하게 결합된 소프트웨어에서 바이너리 코드로 프로그램의 동작을 분석할 수 있는데, 이는 자동차 전장처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결합되는 방식에 적합하다고 한다.

소프트웨어는 근본적으로 0과 1로 된 이진법의 바이너리 코드로 구성된다. 

이런 기술력을 바탕으로 사이벨럼은 지난해 닛산-르노-미쓰비시 얼라이언스, 아우디 등과 보안관리 기술에서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2019년엔 삼성전자 자회사인 하만 인터내셔널과도 OTA(Over The Air) 분야에 제휴했다. 또 일본 완성차 업체들과의 제휴를 위해 올해 3월 일본 오피스를 개설하기도 했다.

LG전자가 사이벨럼의 플랫폼만 구입하는 방식도 선택할 수 있었겠지만 그보단 인수를 결정한 건 크게 두 가지 이유로 보인다. 그룹 전체의 전장 사업 성장성에 비춰봤을 때 사이벨럼의 몸값은 충분히 감수할 만큼 저렴했고, 또 사이벨럼의 대체 불가능한 인적자원을 함께 인수해야 한다는 판단도 있던 것으로 해석된다.
LG전자는 전장 분야에서 전기차 플랫폼과 차체 정도를 제외한 나머지 부품을 다 만들 수 있을 정도로 포트폴리오가 다양하다.(사진=LG전자)

LG는 전사적으로 전장 분야에서 하드웨어적 플랫폼만 빼면 다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갖췄다. 전기차의 심장인 파워트레인은 LG마그나가, 배터리는 LG에너지솔루션이 만든다. 인포테인먼트와 텔레매틱스, AVN 등과 전장용 미래 기술은 LG전자가 담당하며 디스플레이는 P-OLED에 강점을 지닌 LG디스플레이, 카메라 모듈은 LG이노텍이 각각 제조한다.

LG로선 이 같은 그룹의 광범위한 전장 포트폴리오에 사이벨럼의 기술력을 이식해 고도화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봤다. 전장 부품 전반의 '뒷단'에 해당하는 사이버보안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LG전자 전장 부문은 오늘날 수주 잔고가 50조원에 달하며 그룹 차원에선 향후 수백조원 이상의 천문학적 매출을 안겨줄 게 확실시된다. 1000억원대 돈을 들여 안정성을 끌어올릴 수 있다면 M&A가 훨씬 이득이란 계산이 나온다.

사이벨럼의 두 창업자는 사이버 보안에서 세계적 기술력을 갖춘 이스라엘군 출신이다.(사진=사이벨럼 홈페이지 갈무리)

LG는 사이벨럼 인수 후에도 기존 경영진을 유지하기로 했다. 이는 현 경영진들이 사이버보안의 ‘스페셜리스트’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공동창업자인 슬라바 브론프만 CEO와 마이클 잉스틀러 CTO는 이스라엘군 출신인데, 이스라엘군은 사이버보안 분야 스타트업의 인큐베이터와 엑셀러레이터 역할을 할 만큼 세계적 기술력을 갖췄다. 2013~2019년까지 이스라엘 사이버보안 스타트업은 투자 유치금만 63억 달러에 달했다고 한다.

살 수 있으면 사고, 못 사면 합작사 세운다
LG전자는 지난 3월 스위스 소프트웨어 기업 룩소프트와는 합작사 ‘알루토’를, 지난 5월엔 글로벌 전장 부품업체 마그나 인터내셔널과는 합작사 ‘LG마그나 이파워트레인’을 각각 설립했다. 전장 분야에서 세계적 기술력을 갖춘 회사들과 합작사를 세우고 지분을 공유한 건 M&A가 어려운 가운데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 선택으로 해석된다.

룩소프트는 LG전자가 경험이 없던 전장 소프트웨어와 OS에 ‘DNA’를 깔아줬다. 마그나 인터내셔널은 LG전자가 파워트레인 분야에서 세계적 기술력을 갖췄음에도 부족했던 '판로'를 개척해주고 있다. 두 회사 모두 LG전자가 인수하기엔 자금력 측면에서 불가능에 가까운 곳이다. 반면 사이벨럼은 기업 가치가 1억3000만 달러로 LG전자가 사기에 크지 않은 수준이라 M&A가 가능했다.

내연기관 시대에서 전기차 시대로 넘어오며 전장 사업은 플랫폼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다.(사진=현대자동차그룹)

합작사 설립과 인수합병이란 방식을 통해 LG가 노리는 건 ‘모든 전장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전기차 시대로 넘어오며 전장 분야는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있는데, 이는 기존 내연기관과 다르게 자동차 제조가 ‘플랫폼화’ 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 전기차 업체가 된 테슬라가 최초 전기차를 만들었던 방식이 이러하며, 스마트폰 업체인 애플이 뜬금 없이 전기차에 진출한다는 것도 이런 배경이 있다.

자동차가 '소품종 대량 생산'에서 '다품종 소량 생산'으로 넘어가면 수혜를 볼 곳은 전장 기업이 될 수밖에 없다. 다양한 차들이 만들어지더라도 그 속에 들어가는 부품 시장 만큼은 '규모의 경제'가 이뤄질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외부와의 협력에 경직됐던 LG전자가 전장 분야에서 빠른 속도로 합작사를 세우고 소규모 M&A를 단행하는 등 합종연횡을 모색하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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