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팬더스트리(Fan+Industry·팬덤산업)’가 K팝을 타고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코로나를 분수령으로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엔터테인먼트·정보기술(IT)업계는 합종연횡을 가속화하면서 미래를 준비 중이다. 급변하는 시장의 흐름을 조망해본다.
“요샌 소통이 정말 중요하거든요. 특히 온라인 소통에 따라서 팬이 늘기도 하고, 떡밥이 없어 떨어져 나가기도 해요.” 10년차 ‘돌팬(아이돌 팬을 일컫는 말)’ 이정민(가명)씨의 말이다. 그는 “트위터·커뮤니티 같은 곳에서 정보가 쏟아진다. 일상적으로 온라인에 접속하지 않으면 ‘덕질’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랜선 덕질’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코로나는 일종의 기폭제가 됐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오프라인 공연·행사가 막히자 엔터테인먼트업계는 온라인으로 무대를 옮겼다. 팬들의 ‘덕질’을 돕는 각종 서비스는 물론 비대면 콘서트부터 팬사인회, 팬미팅, 전광판 응원, 굿즈·기획상품(MD) 구매까지 온라인을 통해 전방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 (사진=SM엔터테인먼트)
▲ (사진=SM엔터테인먼트)
온라인 덕질의 세계
팬들이 활동하는 공간은 다양하다. 초기에는 ‘본진’인 팬카페가 주축이었다면 현재는 트위터를 비롯해 커뮤니티, 인스타그램, 유튜브, 오픈채팅방(카카오톡) 등으로 반경이 넓어졌다.

이정민 씨는 “요샌 트위터에서 정보의 80%를 얻는다. 전세계 팬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게 됐다는 것도 옛날과는 달라진 점”이라고 설명했다. 대형 엔터테인먼트사들이 직접 운영하는 팬 커뮤니티도 있다. 방탄소년단(BTS) 소속사 하이브의 ‘위버스(Weverse)’에는 매달 530만명의 팬들이 방문한다. 팬클럽 활동부터 굿즈 구매, 콘서트 관람 등 다양한 활동이 가능한 데다 해외 팬들도 이용할 수 있어 가입자 수만 3000만명이 넘는다. SM엔터테인먼트는 팬 커뮤니티 ‘리슨(Lysn)’을 운영 중이다.

소통 창구가 나뉘면서 취향·기호에 따른 ‘덕질’이 가능해졌다. 틈새를 노린 스타트업도 등장했다. 스페이스오디티의 블립(Blip)은 좋아하는 가수의 일정, 차트순위, 뉴스만 골라내서 보여준다. 블립 프로덕트매니저(PM) 최우창 씨는 “기존 팬카페는 가입과 인증절차가 복잡했다. 친목도 있어 진입장벽이 높았다”며 “지금은 다양한 채널이 생겨 개인별로 자신에게 맞는 팬 활동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팬덤을 겨냥한 다양한 서비스가 나오고 있다. 덕플(Duckple)은 ‘최애(最愛·가장 좋아하는 멤버)’가 다녀간 장소를 지도로 보여준다. 팬들은 이 지도를 보고 가수의 발자취를 따라 투어를 다닌다. 온라인 전광판에서 아이돌을 응원하는 서비스도 생겨났다. 카카오는 카카오톡·멜론에서 가수를 응원할 수 있는 ‘카카오콘응원보드’를 운영 중이다. 순위를 매겨 1등을 한 아이돌의 전광판 광고를 띄워주는 서비스도 있다. 일례로 후즈팬은 생일을 맞는 아이돌들을 위해 뉴욕 타임스퀘어 대형 전광판 광고 구좌를 놓고 매주 글로벌 팬들의 투표를 진행 중이다.

음악방송 사전투표도 앱이 필수다. 각 방송사마다 사용하는 투표 앱이 다른데, 예를 들어 쇼 음악중심은 뮤빗(Mubeat), 인기가요는 스타패스 등을 통해 투표할 수 있다. 이외에도 후즈팬·아이돌챔프·지니뮤직·엠웨이브·벅스 등이 투표를 지원한다. 대부분 투표권을 얻으려면 광고를 보거나 유료결제 또는 지정된 활동을 해야 한다. 보이그룹 팬이라고 밝힌 김지윤씨는 “1위 후보가 박빙일 땐 팬들도 투표 경쟁이 붙는다”면서 “좀만 더 하면 내 가수가 이길 수 있다는 생각에 돈 쓰고 시간 써서 투표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사진=후즈팬)
▲ (사진=후즈팬)
팬미팅도 ‘영통’으로…유료소통도 등장
코로나로 대면 공연·행사가 줄어들면서 온라인 소통은 기본값이 됐다. 지난해 블랙핑크는 네이버 ‘제페토’에서 팬 사인회를 열었다. 가상공간인 메타버스(Metaverse)로 공간적인 제약이 없는 덕분에 전세계 4500만명의 팬이 사인회에 동시 참석할 수 있었다. 이른바 ‘영통팬싸(영상통화 팬사인회)’도 코로나로 인해 탄생했다. 영통팬싸는 지정된 기간에 앨범을 구매하면 추첨을 통해 소수인원을 선발, 최애와 1:1 영상통화를 연결해주는 이벤트다. 앨범 한 장당 응모권 한 장이 지급되기 때문에 팬들은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 앨범을 ‘무더기’로 구매하기도 한다.

이 같은 쌍방소통은 콘서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트와이스는 온라인 콘서트에서 다중 화상연결 시스템을 통해 전세계 200명의 관객들과 동시 화상채팅을 나눴다. 이보다 앞서 슈퍼엠은 미리 선정된 팬들과 화상연결을 통해 쌍방향 소통을 시도했다. 콘서트를 관람했던 이정민 씨는 “사실 오프라인 콘서트를 하면 관객은 하나의 ‘덩어리’가 된다. 개개인으로 소통하기는 어려운데 (온라인 콘서트는) 화상연결을 통해 멤버들과 1:1 대화할 기회를 주기 때문에 기술적 완성도를 떠나 팬 입장에선 긍정적인 시도로 여겨진다”고 호평했다.

▲ (사진=디어유)
▲ (사진=디어유)

유료 소통도 등장했다. SM엔터 자회사 디어유가 지난해 선보인 ‘버블(Bubble)’이 대표적인 예다. 버블은 월 4500원을 내면 가수로부터 메시지·사진·영상을 1:1 형태로 받고, 답장을 보낼 수 있는 서비스다. 해외 이용자가 전체 구독자의 73%다. 익명을 요청한 아이돌 팬 망고(익명)씨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만 보내줘도 좋다. 만족하고 있다”면서도 “유료소통이지만 조건이 따로 없어 버블을 거의 안 보내는 멤버도 있다. 만족도가 떨어져도 팬들 입장에선 결제를 하고 볼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디어유는 버블 출시로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올해 상반기 매출만 184억원으로 코스닥 상장을 준비 중이다. JYP·FNC·젤리피쉬엔터 등 10여개 이상의 엔터사와 계약을 맺었는데, 특히 JYP엔터는 214억원을 투자해 디어유 지분 23.3%를 확보했다.

가상 소통을 구현한 사례도 있다. 게임 회사인 엔씨소프트는 자회사 클렙을 통해 팬 커뮤니티 ‘유니버스(UNIVERSE)’를 선보였다. 엔씨는 버블처럼 프라이빗 메시지를 받는 유료서비스에 더해, 기술력을 내세웠다. 추가요금을 내면 가수의 목소리를 인공지능(AI)으로 흉내내 팬들이 원하는 시간과 상황에 전화해주는 ‘프라이빗 콜(Private Call)’로 차별화를 꾀한 것이다. 애칭을 정할 수 있고 낮춤말, 아무거나, 높임말 등 말투를 고를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그러나 쌍방소통은 불가능하고 실제 목소리와 괴리가 있어 거부감이 든다는 지적도 있다.

한편 전반적인 엔터산업의 무게추가 디지털로 옮겨지면서 엔터·IT업계의 합종연횡이 활발해지고 있다. 특히 전세계 팬덤이 모이는 팬 커뮤니티가 ‘먹거리’로 급부상 중이다. 가수만 입점하면 월이용자수, 다운로드 수가 보장되는 데다가 버블 등 유료메시지를 비롯해 티켓 판매, 정기구독, 굿즈·MD 사업 등 다양한 수익모델(BM)을 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네이버는 실시간 방송 기반의 ‘브이라이브’를 하이브의 ‘위버스’와 통합해 내년 새로운 팬 커뮤니티를 만들기로 했다. 엔씨소프트는 CJ ENM과 연내 합작법인을 설립, 팬 커뮤니티의 경쟁력을 키울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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