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원자력연구원의 파이로프로세싱 실험시설 프라이드(PRIDE) 시설 모습.(사진=한국원자력연구원)
▲ 한국원자력연구원의 파이로프로세싱 실험시설 프라이드(PRIDE) 시설 모습.(사진=한국원자력연구원)

현재 국내 원자력 발전소(원전)에서 임시 보관 중인 사용 후 핵연료(폐연료봉) 약 1만7500t. 문재인 정부가 원전의 완전한 가동 중단 목표 시점으로 삼고 있는 2080년까지 나올 폐연료봉 3만8400t. ‘처치 곤란’이던 고준위 폐기물을 이용해 전기를 생성할 수 있는 국내 기술이 국가 검증을 받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는 29일 파이로·소듐냉각고속로(SFR) 연구개발 적정성 검토위원회(검토위)를 발족했다. 검토위는 사용 후 핵연료 처리기술 연구개발 사업에 대한 기술성·경제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검토위의 결론은 연구개발의 지속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근거로 활용될 예정이다. 과기정통부는 검토위를 2~3개월간 운영할 계획이다.

파이로-SFR는 사용 후 핵연료에서 재사용 가능한 물질을 뽑아내는 기술이다. 우유를 다 마신 뒤 팩을 재활용해 화장지 등을 만드는 개념과 같다.

현재 폐연료봉은 고준위 폐기물로 분류된다. 그러나 파이로프로세싱 기술을 사용하면 폐연료봉의 93% 수준을 차지하는 우라늄을 회수할 수 있다. 우라늄은 원전 연료다. 약 1.4%에 해당하는 마이너액티나이드·플루토늄 등 초우라늄(TRU)은 SFR에서 소각된다. 이때 발생하는 열을 통해서도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기술 명칭이 파이로-SFR로 붙은 이유다.

파이로-SFR 기술이 상용화되면 모두 고준위 폐기물로 분류되던 폐연료봉의 약 94.4%를 재사용할 수 있는 셈이다. 폐기물 역시 5.6% 수준으로 대폭 줄어든다. 또 폐기물은 초우라늄이 제거된 상태라 독성도 대폭 줄어들고, 고준위 핵폐기물 처분장의 면적 역시 감소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JFCS 보고서, 한·미 당국서 승인…의미는?
이번 검증은 파이로-SFR 기술에 대한 한·미 원자력연료주기공동연구(JFCS) 보고서가 양국에서 승인받으면서 시작됐다. 이번 보고서엔 한국원자력연구원이 미국 아이다호연구소·아르곤연구소와 10년간 연구한 결과가 담겼다. 우리나라는 이번 연구를 포함해 1997년부터 지금까지 파이로-SFR 기술 개발에 약 6800억원을 투입했다.

국가 예산이 투입된 만큼 연구의 적정성 평가가 이뤄졌다. 해당 연구는 지난 2017년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기술적 타당성 등에 대해 문제가 제기된 바 있다. 이에 따라 당시 재검토위원회가 운영됐다. 재검토위원회는 JFCS 결과가 나오면 다시 판단하는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이번 검토위가 발족한 배경이다. 구성 역시 국회 여·야 합의에 따라 당시 재검토위원회와의 연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기존 위원 7인이 포함됐다. 여기에 경제 전문가와 원자력공학 전문가 각 1인씩 추가, 총 9인으로 구성됐다.

JFCS 보고서는 국가 승인을 받은 세계 첫 파이로-SFR 연구 결과다. 다만 한·미 당국의 JFCS 보고서 최종 승인이 연구의 유효성을 보장하진 않는다. 연구 결과에 대한 가치 판단이 들어가지 않은 승인이기 때문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양국의 승인은 연구 결과에 관한 확인의 의미”라며 “당초 양국이 설정한 계획과 목표에 따라 연구가 진행된 것을 확인한 것이지 연구의 유용성 등을 평가한 게 아니다”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검토위는 해당 연구를 기술성·경제성 위주로 검토할 예정이다. 핵 비확산 수용성 역시 주요 이슈이긴 하지만 검토위는 해당 사안을 이번 평가에서 검증할 성격이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과의 외교·안보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이다.

한·미 양국은 파이로-SFR 기술이 군사 전략과 연관된 만큼 해당 보고서의 구체적 내용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특히 미국이 해당 기술의 유출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해당 기술을 통해 폐연료봉에서 핵폭탄 연료인 플루토늄을 추출할 가능성 있기 때문이다. 경쟁국인 중국·러시아 등을 고려한 조치란 분석도 나온다.

우리나라는 다만 파이로-SFR 기술이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것이 불가능한 건식 공정인 데다, 불순물도 섞여 나와 핵폭탄 제작에 이용될 가능성이 작다고 본다. 그 때문에 연구의 지속성이 유지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인 셈이다.

▲ 한국원자력연구원 연구진이 파이로프로세싱 실험시설인 프라이드(PRIDE)에서 핵연료 재처리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모습.(사진=한국원자력연구원)
▲ 한국원자력연구원 연구진이 파이로프로세싱 실험시설인 프라이드(PRIDE)에서 핵연료 재처리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모습.(사진=한국원자력연구원)

갈수록 늘어나는 폐연료봉…방치된 현실, 해결될까
폐연료봉은 현재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소관하는 사용 후 핵연료 관리 정책에 따라 처리된다. 현재 관리 정책이 결정되지 않은 상태라 원자력 발전소 내 임시 보관하고 있다. 현재까지 약 1만7500t이 쌓여있다.

다만 파이로-SFR 기술이 상용화된다고 하더라도 모든 원전에서 사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파이로-SFR 기술이 경수로 원전에서 나온 폐연료봉에만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서 운영 중인 24개의 원전 중 20개가 경수로 방식이다. 중수로 원전에서 나온 사용 후 핵연료는 독성 물질인 초우라늄 비중이 낮다. 이 때문에 파이로-SFR 기술 적용에 따른 경제적 효과가 크지 않다.

과기정통부가 원전 운영 계획에 따라 추산한 폐연료봉의 양은 2080년 3만8400t에 달한다. 경수로 방식의 원전에서 약 2만6700t, 중수로 방식에서 약 1만1700t이 배출될 것으로 분석된다.

파이로-SFR가 기술적으로 문제가 없더라도 도입이 되기 위해선 ‘경제적 실현 가능성’ 평가란 산을 넘어야 한다. 기술을 구현하는 데 터무니없는 비용이 들어간다면 직접 처분이 더 경제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파이로-SFR가 도입되더라도 고준위 처분장은 지어져야 한다”며 “처분장을 짓는 비용이 감소하더라도 파이로 시설과 SFR을 건설하는 데 비용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에 따른 건설 비용이 증가하지만, SFR에서 전기를 생산할 수 있고 폐연료봉의 부피도 줄어든다는 장점이 있다”며 “다양한 경제적 요건을 고려해 검증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에 대한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더라도 추가 예산 투입으로 직결될지는 미지수다. 일각에선 이번 검증 결과에 따라 약 6000억원이 추가로 집행될 수 있다고 전망했으나, 현재로서는 예비타당성조사(예타) 계획도 잡혀있지 않은 상태다. 500억원 이상의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의 경우 정부의 예타 승인을 받아야한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검토위의 결과에 따라 후속 연구의 여부가 결정될 수 있다”며 “예산 투입 문제는 그 이후에나 논의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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