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무실을 완전히 떠날 수 있을까. 코로나19로 원격근무가 확대되는 가운데, 현실·가상을 결합한 ‘메타버스(Metaverse·3차원 가상세계)’ 근무도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효석 소풍벤처스 PR디렉터가 메타버스 근무를 경험했던 근로자의 입장에서 체험기를 보내왔다.
[기고|이효석 소풍벤처스 PR디렉터] 우리는 평소에 동료의 얼굴을 어떻게 볼까? 우리가 가장 많이 보는 동료의 얼굴은 어떤 얼굴일까?

질문을 객관식으로 좁혀보자. 우리는 동료의 앞 얼굴을 더 많이 볼까, 옆 얼굴을 더 많이 볼까?

정확한 답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위 질문을 통해, 우리는 생각보다 다양한 각도로 동료를 본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 △동료와 정면으로 마주볼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런데 메타버스에서는 정반대다.(출처=픽사베이)
▲ △동료와 정면으로 마주볼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런데 메타버스에서는 정반대다.(출처=픽사베이)
아침에 출근해서 먼저 출근한 동료의 뒤통수에 대고 인사를 하면, 동료가 돌아보며 미소를 짓거나 살짝 눈인사를 한다. 그의 옆자리에 앉아서 간단한 안부를 물으면, 동료가 눈은 모니터를 들여다보면서 입으로만 대답할 것이다.

혹은 친한 동료라면 살짝 돌아 앉으면서 대답할 것이다. 이 행동 자체가 ‘근무하기 전에 모닝 스몰토크(Small Talk·잡담)나 잠깐 할까’라는 비언어적 표현이다.

이처럼 우리는 동료의 뒤통수를 보기도 하고, 대각선이나 옆 얼굴과 대화하기도 한다. 점심식사를 할 때, 업무상 필요에 따라 1:1 대화를 할 때 정도를 제외하면 동료와 장시간 마주보는 일은 사실 드물다.

동료와 하루종일 마주본다는 것
메타버스에서는 정반대다. 메타버스에서는 근무시간 내내 동료의 앞 얼굴을 마주봐야 한다. 물론, 서로의 눈을 빤히 응시하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시선은 다른 동료의 얼굴이 아니라 모니터 화면 속 슬랙 따위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메타버스 근무의 사용자경험(UX, User eXperience)은 서로의 정면을 몇 시간 동안 마주보는 경험을 준다.

이 경험이 원격근무의 집중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아직 연구된 바 없다. 하지만 심리학자들은 인간이 타인과 오래 마주보게 되면 불편함을 느낀다고 입을 모은다. 공부에 집중할 때는 누군가의 정면에 앉기보다는 대각선에 앉는 게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는 연구도 있다.

‘캠’을 끄면 안 되냐고 물을 수 있겠다. 그러나 메타버스 근무에서 캠을 자유롭게 끌 수 있게 하면 문제가 더 복잡해진다.

▲ △줌 콜은 잠깐이지만, 메타버스에서 근무하면 이런 화면을 출근부터 퇴근까지 봐야 한다.(출처=줌)
▲ △줌 콜은 잠깐이지만, 메타버스에서 근무하면 이런 화면을 출근부터 퇴근까지 봐야 한다.(출처=줌)
메타버스의 핵심은 오프라인 공간을 그대로 온라인에 옮겨 놓는 연속성이다. 메타버스 툴 ‘개더타운(gather town)’의 경우 메타버스 넓이에 따라 회의실 개수에 제한을 뒀다. 가상공간이니까 줌(Zoom)처럼 회의실을 무한정 열도록 개발할 수도 있는데 왜 그랬을까?

메타버스에 물성(物性)을 부여해서, 회의실 크기·개수 등을 고려해 인테리어하도록 강제한 것이다. 이런 사소한 장치를 통해 개더타운에서 일하는 몰입감은 마치 오프라인의 그것을 그대로 옮긴 것처럼 증가한다.

네이버의 3D아바타 서비스 ‘제페토’는 한강공원 등 실제공간을 메타버스 상에 구축했다. 지난해 네이버는 제페토에 네이버 사옥을 짓고, 신입사원 연수를 비대면으로 진행하기도 했다. 이들은 3D아바타로 출근해 회사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가상사옥을 투어했다. 실제처럼 인증샷도 찍어 올렸다. 비대면이었지만 회사에 방문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 것이다.

▲ △코로나로 인해 자율적 재택근무 중인 블로터는 단체사진을 찍기 위해 오프라인 한강공원 대신 제페토 속 한강공원에 모이기도 했다.(출처=블로터 DB)
▲ △코로나로 인해 자율적 재택근무 중인 블로터는 단체사진을 찍기 위해 오프라인 한강공원 대신 제페토 속 한강공원에 모이기도 했다.(출처=블로터 DB)

조직문화도 마찬가지다. 실제 오프라인에서 근무하는 경험을 메타버스 상에서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침대가 버젓이 있는 집에서 근무해도 업무 몰입감이 깨지지 않는다. 캠을 켜 두는 것이 메타버스 근무의 핵심이다. 사무실에서 일할 땐 옆자리 동료를 부를 때 ‘OO씨, OO님’하고 바로 부르면 된다. 메타버스에서도 이 같은 소통이 가능해야 메타버스 근무가 원활할 수 있다. 출장 등 부재중이 아니라면 자기 자리에 위치하고 있음을 캠을 통해 알려야 하고, 오프라인과 똑같이 서로를 그때그때 불러서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찾는 동료 A가 동료들에게 알리지 않고 캠을 껐다고 가정해보자. 공유 캘린더를 보니 A가 출장 중은 아니다. 그렇다면 A는 원격근무 중에 모종의 이유로 캠을 끈 것이다. 그러면 나는 A와 대화를 하기 위해 A를 슬랙 또는 메신저로 불러야 한다.

‘OO님, 지금 잠깐 대화 가능하세요?’ 같은 메시지를 보내 놓고 A가 확인 및 회신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한 명 두 명 캠을 끄기 시작하면 이런 커뮤니케이션이 늘어나게 된다. A가 상사라면, 다른 팀 동료라면, 한 번도 얘기를 나눠보지 않았던 사람이라면, 커뮤니케이션의 난도와 스트레스는 더 올라간다.

▲ △출처=개더타운
▲ △출처=개더타운
최선은 캠과 마이크, 스피커를 모두가 상시 켜놓자고 약속하는 것이다. 오프라인에서처럼, 아주 잠깐 화장실에 가거나 근무지를 이탈하는 경우에만 자리를 비우기로 해야 한다. 캠을 켜 놓는 게 그저 불편하다는 이유로 끌 수 있도록 허용하면, 머지않아 캠을 켜는 사람이 없게 되고 불필요한 커뮤니케이션이 폭증할 수 있다.

결국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는 캠·마이크·스피커(또는 이어폰)를 상시 켜 놓는 것이 정답인데, 이 방식도 나름대로 힘든 구석이 있다. 앞서 짚었듯 누군가의 얼굴, 그것도 여러 명의 정면을 비춘 화면을 쭉 나열해 놓고 일한다는 것이 꽤나 스트레스가 쌓이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메타버스 근무가 낳은 새로운 유형의 스트레스라고 할 만하다.

마이크와 스피커를 켜 놓는 것 역시 이따금 고역일 수 있다. 원활한 소통을 위해 음성을 켜 놓는 게 회사 지침인데 상사의 만성비염이 신경 쓰이거나, 동료의 혼잣말이 거슬릴 수 있다. 이어폰을 빼면 그만이지만 헤드셋 착용을 원격근무 기본 가이드로 권장하는 기업도 있다.

그래도 표정 관리는 해야 한다.

우리 팀 동료와 상사의 화면에는 나의 정면 얼굴이 근무시간 내내 떠있으니까.

누가, 언제, 어디서 나의 얼굴과 표정을 지켜보고 있을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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