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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산하 기관인 기술정책연구소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바이오 소재 시장은 2019년 1050억 달러(약 124조6350억원)에서 2024년 2070억 달러(245조7090억원)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연평균 14.5%의 고성장이 전망되는 분야죠.
• 국내에서도 바이오 산업을 새로운 성장동력 사업으로 안고 가려는 기업들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습니다. 솔루스첨단소재도 전기차 배터리 관련 사업 뿐 아니라 바이오 사업에서 성과를 내려 합니다.
• 하지만 확실한 비전과 확실한 기술이 없다면 미래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솔루스첨단소재가 분사시킨 바이오 사업체(솔루스바이오텍)도 마찬가지입니다.

솔루스첨단소재(옛 두산솔루스)가 물적분할 방식으로 ‘바이오’ 자회사를 설립했습니다. 2가지 관점에서 이번 물적분할이 해석됩니다. 그리 사업 전략이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바이오사업체를 하나 설립했다는 시각이 첫번째 관점입니다. 두번째는 이번 물적분할이 존속회사(솔루스첨단소재)의 사업 구조조정을 위한 거래가 아니냐는 시각이고요.

2가지 관점 모두 물적분할이 다소 의아하다는 관점에서부터 생겨난 시각인데요. 그만큼 예상치 못한 물적분할이었고 앞으로 사업 전개가 확실하지 않아 보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최근 솔루스첨단소재가 금융감독원에 공시한 내용에 따르면 솔루스바이오텍이 지난 1일 공식 출범했습니다. 신설 법인의 초대 대표이사는 서광벽 솔루스첨단소재 대표가 겸임합니다.

▲ 서광벽 솔루스첨단소재 대표이사.(사진=솔루스첨단소재)
▲ 서광벽 솔루스첨단소재 대표이사.(사진=솔루스첨단소재)

이번 물적분할은 의약품·화장품·식품 소재 산업의 성장성을 고려한 결단이라고 합니다.

솔루스첨단소재의 주요 사업 부분은 크게 △전지박 △첨단소재로 나뉩니다. 이 중 첨단소재 사업 부분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바이오 소재 공급을 담당하는 사업부문입니다. 솔루스바이오텍은 솔루스첨단소재 내 첨단소재 사업 중 바이오 소재 부문을 기반으로 설립하는 것이고요. 다만 같은 사업 부문에 속해있던 OLED 소재·화장품 완제 사업 부문은 기존 법인(솔루스첨단소재)에 남습니다.

물적분할의 목적은 신규 바이오 사업체의 전문성을 꾀한다는 것인데요.

시장의 우려는 여기서 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매출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OLED 소재·화장품 완제 사업이 신설 법인에 포함되지 않으면서 당장 '전문성'과 ‘성장성’을 보여줄 수 있을지 미지수란 시각이 나오죠. 솔루스첨단소재는 고급 화장품의 주요 원료인 발효 기반 천연 세라마이드를 국내에 사실상 독점적(95% 점유)으로 공급하고 있습니다. 사업성은 있지만 이 같은 바이오 소재 산업 매출 비중이 현재는 작기 때문에 외연 확장에 어려움이 될 수 있다는 시각이죠.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고 공급해야하는데 바이오 소재 사업은 기술적 난도가 높은 대표적 분야입니다.

신설 법인의 대표까지 겸직하는 서 대표는 ‘바이오 소재 산업의 외연 확장’을 해야 하는 숙제를 갖고 있습니다. 서 대표는 솔루스바이오텍의 출범이 “혁신형 바이오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자신했습니다. 이 포부가 현실화하려면 실적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입니다.

▲ 지난해 기준 솔루스첨단소재 내 첨단소재 사업 부문의 매출 비중.(자료=솔루스첨단소재 회사분할 결정 공시, 단위:원)
▲ 지난해 기준 솔루스첨단소재 내 첨단소재 사업 부문의 매출 비중.(자료=솔루스첨단소재 회사분할 결정 공시, 단위:원)

그러나 지난해 솔루스첨단소재의 매출 중 '첨단소재 사업 부문' 내에서의 각 사업부문별 매출 비중을 보면 시장의 우려가 괜히 나온 게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회사분할 결정 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OLED 소재·화장품 완제 사업을 통해 올린 매출은 약 837억원에 달합니다. 같은 기간 바이오 소재 산업의 매출은 약 423억3800만원에 불과하죠. ‘첨단소재 부문의 매출 약 34%을 차지하던 사업을 분할한다고, 실적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란 견해가 나올 수 있는 구조인 셈입니다. 바이오 소재 사업이 지난해 전체 매출(약 2901억6300만원)에서 차지한 비중도 14%에 불과하죠.

올 상반기 매출 추이를 고려하면, 서 대표가 제시한 ‘2025년 매출 1200억원 달성’도 다소 무리있어 보인다는 평가도 관측됩니다. 솔루스첨단소재 내 첨단소재 사업 부문의 올 상반기 매출은 644억7000만원 수준입니다. 이 중 30%에 해당하는 약 193억4100만원이 바이오 소재 산업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되죠. 올해 이 부문 매출이 400억원을 달성한다고 하더라도 목표치에 3분의 1수준에 불과한 셈입니다. 즉, 4년 안에 3배 이상의 성장을 이뤄야 서 대표의 실적 목표치 달성이 가능한 상황이죠.

▲ 솔루스바이오텍의 올 상반기 사업부문별 매출 비중.(자료=솔루스첨단소재 반기 보고서)
▲ 솔루스바이오텍의 올 상반기 사업부문별 매출 비중.(자료=솔루스첨단소재 반기 보고서)

서 대표는 반도체 전문가로 통합니다. 그의 약력을 살펴보면 바이오 소재 산업과의 연관성을 찾기 힘들죠. 서 대표는 1977년 서울대학교 재료공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대학원에서 재료공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팀 부사장과 SK하이닉스 미래전략기술총괄 사장을 역임했죠. 솔루스첨단소재엔 올 3월 합류했습니다.

서 대표가 반도체와 사업적 연관성이 짙은 전지박·OLED 사업에선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겠으나, 바이오 소재 산업에서도 성과를 낼 수 있을지 미지수죠.

솔루스바이오텍의 신규 사업 역시 바이오 소재 원료 발굴입니다. 솔루스첨단소재는 mRNA(메신저 리보핵산) 백신 전달체 핵심 원료 중 하나인 ‘구조 인지질’을 독자 개발하는 중이죠. 솔루스바이오텍이 이 사업을 이어받아 수행할 계획입니다. 영위하는 사업도, 추후 진출할 사업도 반도체와의 연관성을 찾기 힘드네요.

알아두면 좋은 지식들
세라마이드 : 사람 세포막에 다량으로 존재하는 스핑고신(sphingosine)과 지방산으로 구성된 분자. 친수성기와 친유성기를 함께 가지고 있어서 피부에 있는 수분이 증발하는 것을 막아줍니다.
구조 인지질 : mRNA(메신저 리보핵산) 백신 전달체 핵심원료. 약물 전달체 역할을 하는 지질나노입자(LNP)를 구성해 mRNA 백신 효과 유지에 필수요소로 꼽힙니다.

▲ 솔루스바이오텍의 주요 경영진.(자료=솔루스첨단소재 회사분할 결정 공시)
▲ 솔루스바이오텍의 주요 경영진.(자료=솔루스첨단소재 회사분할 결정 공시)

솔루스첨단소재는 지난해 12월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 스카이레이크에쿼티파트너스가 경영참여형펀드 ‘스카이레이크 롱텀 스트래티직 인베스트먼트’를 통해 인수한 기업입니다. 두산그룹을 떠난 이후 다양한 변화를 맞고 있죠. 그래서 이번 물적 분할도 사업구조 재편과 경영 효율화 작업의 일환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회사는 주력 사업(전지박)과 비교적 연관성이 떨어지는 바이오 소재 사업의 분할을 결정했습니다. 이를 통해 존속회사(솔루스첨단소재)는 전지박 사업에 역량을 집중 시켜 신성장 동력을 마련하겠다는 포부입니다.

▲ 솔루스바이오텍 CI.(사진=솔루스바이오텍)
▲ 솔루스바이오텍 CI.(사진=솔루스바이오텍)

보통 사모펀드가 인수한 기업은 주력 사업을 키우고 비주력 사업을 분사하는 전략을 곧잘 활용합니다. 그리고 분사한 비주력사업체는 가능성이 보이면 키우고 그렇지 않다면 매각하는 선택을 하곤 합니다. 솔루스바이오텍도 분사를 했지만 대주주 입장에서 선택의 과정에 들어가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나오는 것이고요. 물론 솔루스바이오텍은 정부 주도의 바이오산업 성장 기조에 따라 사업 전문성을 높여갈 계획이라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기는 합니다.

서 대표는 “독립법인 체제로 그간의 우수한 포트폴리오를 강화해 K-바이오 시장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도 바이오 소재 선도 기업으로서 입지를 굳건히 해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한때 두산그룹 내에서 미래 먹거리 기업체로 통했던 솔루스첨단소재가 새로운 길에 들어선 것으로 보입니다. 계열사들의 유동성 상황에 따라 일희일비해야 했던 상황에서는 벗어났죠. 반면 자체 성장 가능성을 실제 수치로 확인시켜야 하는 과정에 진입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대주주인 사모펀드가 여러 사업전략을 다시 짜고 있고요.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비전이 확실히 보이지 않는 바이오사업체, 그리고 바이오전문가라고 보기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대표이사, 향후 1~2년간의 행보를 보면 솔루스첨단소재가 의도한 방향성이 드러날 것으로 보입니다. 그 결과는 곧 솔루스첨단소재의 사업 방향과도 깊은 연관이 있을 테고요.

생각해 볼 문제
• 국내 바이오 소재 산업은 코로나19·고령화로 인해 각광받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투자·기술 확보 경쟁이 벌어지고 있죠. 기업은 시장 변화에 민감하기 마련입니다. 관련 기업들은 사업을 어떻게 꾸려가고 있을까요?
• 우리나라는 ‘글로벌 바이오 허브’를 꿈꾸고 있습니다. 정부는 코로나19 백신 등 다양한 바이오의약품을 국내에서 위탁생산하겠단 계획을 추진 중이죠.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달 ‘글로벌바이오콘퍼런스(GBC)’에서 “앞으로 5년간 2조2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기업이 참여하고, 어떤 산업이 육성될지 알아보는 것도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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