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무실을 완전히 떠날 수 있을까. 코로나19로 원격근무가 확대되는 가운데, 현실·가상을 결합한 ‘메타버스(Metaverse·3차원 가상세계)’ 근무도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효석 소풍벤처스 PR디렉터가 메타버스 근무를 경험했던 근로자의 입장에서 체험기를 보내왔다.[기고|이효석 소풍벤처스 PR디렉터] 우리는 동료와 어떻게 이야기를 나눌까? 당연히 말과 글로 이야기한다. 바보 같은 질문이다.
질문을 바꿔보자. 우리는 어떤 방식·매체(medium)를 통해 동료와 소통할까? x축을 그려서 원점에 가까울수록 대면의 정도가 커진다고 하면, 어떤 그래프가 그려질까?
왼쪽 ‘대면 소통’의 범주에는 △대면 회의 △점심 미팅 또는 커피챗(Coffee Chat·정보형 미팅) △1대1 미팅 등이 놓일 것이다. 오른쪽 ‘비대면 소통’의 범주에는 △화상회의 △이메일 △슬랙 등 협업 도구 △텔레그램 등 메신저 정도가 놓이겠다.
여기서 전화는 제외했다. 전화는 이슈가 발생했을 때 급한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거나 ‘보고’와 ‘허락’을 빠르게 주고받을 일이 많은 관계에서 주로 쓰이는 기존의 소통수단이기 때문이다. 원격근무를 하더라도 메타버스나 협업도구 등으로 잘 연결돼 있으면 전화는 잘 쓰지 않게 된다.
기업 조직문화에서는 둘 중 무엇이 더 중요할까? 소통의 빈도보다 깊이가 중요하다. 매일 밝게 인사하고 수다 떨던 사람이 갑자기 사직서를 내곤 한다. 이때 상사가 “쟤, 힘든 일 있었어?”라며 놀라는 경우가 많다. 소통의 빈도는 잦았지만, 깊이가 부족했던 탓이다. 이번 메타버스 근무에 관한 글 연재에서도 내가 다루려는 것은 소통의 깊이다. 고로 이 글에서는 대면의 정도란 곧 소통의 깊이인 것으로 정의하겠다.
그렇다면 x축의 가장 왼쪽에 위치한, 가장 깊이가 깊은 대면 소통은 무엇일까? 이견의 여지 없이 1대1 미팅이다. 그 오른쪽에는 점심미팅·커피챗, 그리고 그 다음에는 대면회의가 놓인다.
그 다음 오른쪽부터는 각 회사의 조직문화나 개인마다 순서가 조금씩 다르겠다. 가령 메신저로도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 메신저로는 주로 상사 뒷담화를 하는데, 가볍고 휘발적이지만 유대감 형성에 매우 중요하다. 이메일이나 슬랙으로 깊은 교감을 나누는 사람도 있다. 또는 슬랙에서 가벼운 토크를 즐기는 조직도 있다. 천차만별이다.
이 글에서는 메신저, 협업툴, 이메일 순으로 정렬하겠다. 주관적 결정이다. 셋 중에서는 그래도 메신저가 가장 깊이 교감할 수 있는 도구라고 본다. 이메일에서 이뤄지는 소통은 가장 ‘포멀(formal·격식을 차린)’하고 깊이가 얕다.
자, 이번 시리즈의 대주제를 환기하자. 우리는 메타버스 근무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지금 메타버스 근무 얘기를 왜 하고 있나? 우리는 왜 메타버스에서 일하게 되었을까? 메타버스 근무가 더 편해서? 효율적이어서? 기술이 그만큼 발전해서?
아니다. 정답은 바로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이다. 우리는 역병 때문에 격리가 필요해졌고, 비자발적으로 원격근무를 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원격근무에서 장점을 발견한 회사가 늘어났고, 급기야 메타버스 가상공간을 차려서 100% 원격근무하는 회사까지 생겼다. 그야말로 급격하게 이런 변화가 일어났다. 코로나로 인한 모든 변화는 급진적이었다.x축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가 x축에 쭉 나열한 커뮤니케이션 수단들은, 코로나 이전과 이후 어떻게 달라졌을까? 각각의 빈도를 보면, 코로나로 인해 무엇이 늘고 무엇이 줄었을까?
이를 더 정확히 짚기 위해 y축을 상정해보자. y축을 팬데믹 이전과 이후의 사용 빈도 차이라고 정의해보면, 가파른 그래프를 그릴 수 있게 된다. 대면 커뮤니케이션은 급감하고, 비대면 커뮤니케이션이 급증했다.
아까 대면의 정도란 곧 소통의 깊이와 같다고 했던 점을 돌이켜보면, 우리는 다소 서늘한 결론으로 이 논증을 마무리하게 된다. 코로나 창궐 이후 깊이가 더 깊은 커뮤니케이션은 급감했고, 깊이가 얕은 비대면 커뮤니케이션이 폭증했다.
첫 번째 글에서 당신은 메타버스에서 100% 원격근무하는 회사에 새로 입사했다. 웰컴키트를 택배로 배송 받았고, 동료들과 비대면으로 첫 인사를 나눴다. 편하고 좋았다. 메타버스에 아바타를 생성해 방향키로 조작하며 돌아다니자, 게임처럼 재미있기도 했다.
팀 동료들과 대면회의나 런치미팅, 커피챗을 한 적은 없다. 면접도 비대면으로 봤다면, 상사나 최고경영자(CEO)도 실제로 본 적 없다. 화상회의는 급작스럽게 일상으로 자리잡았다.
가장 자주 쓰는 커뮤니케이션 도구는 화상회의다.항상 캠과 마이크, 스피커(헤드셋)를 켜 놓고 일하면서 상시적으로 화상회의를 한다. 그 다음 자주 쓰는 커뮤니케이션 도구는 이메일이다. 이메일은 주로 다른 팀, 다른 회사와 커뮤니케이션할 때 쓴다. 그리고 슬랙과 텔레그램 등 협업툴·메신저도 자주 사용한다.
평상시에는 괜찮다. 그런데 회사에 이슈가 생기거나, 미스커뮤니케이션(Miscommunication·의사소통 실패)이 발생하면 그때부터 문제가 생긴다. 뭔가 소통이 충분치 않고, 불편하고 때로는 되레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을 한두 명씩 하게 된다. 그 이유가 상단 그래프에 담겨있다.
우리는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소통의 깊이가 깊은 대면 소통을 빠르게 줄였고, 비대면 소통을 빠르게 늘렸다. 코로나 초기에는 타의였고, 이후에는 일정 부분 자의였다. 혁신은 속도라고 믿으며 이런 변화가 효율적이라고 감탄했지만 사실은 소통의 깊이를 치명적으로 잃어가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이제 시작이다.
“저희, 만날까요?”
지옥철은 이제 그만, 집이든 카페든 원하는 곳에서 근무하라던 회사. 면접도 비대면, 온보딩도 비대면으로 하면서 메타버스에서 100% 원격근무하는 회사.
그런 회사에서 “만나자”는 말을 꺼냈을 때, 진짜 문제가 시작된다.(④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