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무실을 완전히 떠날 수 있을까. 코로나19로 원격근무가 확대되는 가운데, 현실·가상을 결합한 ‘메타버스(Metaverse·3차원 가상세계)’ 근무도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효석 소풍벤처스 PR디렉터가 메타버스 근무를 경험했던 근로자의 입장에서 체험기를 보내왔다.
[기고|이효석 소풍벤처스 PR디렉터] “메타버스 근무의 가장 큰 장점은 ‘채용’입니다. 지역이나 거리에 제한 없이 인재를 채용할 수 있습니다. 지금 회사에 있는 인재도 어디서든 근무할 수 있습니다. 제주도에서든, 보라카이에서든 근무가 가능합니다. 이런 장점은 인재가 회사를 떠나지 않는 요인이 될 것입니다.”

메타버스 근무 툴을 영업하는 기업의 담당자들은 언론 인터뷰 때마다 ‘채용의 원활함’을 강조한다. “서울 집값 폭등 때문에 수도권 및 지방으로 이탈한 정보기술(IT)업계 인재를 메타버스로 채용할 수 있”고 “해외 개발자도 해외에서 그대로 근무할 수 있으므로 메타버스·원격근무를 선호한다”고 말이다.

▲ △원격근무가 자리잡은 기업들도 있다. 특정 직군들에게는 낯선 일이 아니기도 하다. 그러나 전체 직원이 100% 재택근무를 한다면 촘촘한 조직문화 설계가 필연적으로 선행돼야 한다.(출처=픽사베이)
▲ △원격근무가 자리잡은 기업들도 있다. 특정 직군들에게는 낯선 일이 아니기도 하다. 그러나 전체 직원이 100% 재택근무를 한다면 촘촘한 조직문화 설계가 필연적으로 선행돼야 한다.(출처=픽사베이)

이런 말들이 허황된 수사는 아니다. 실제 메타버스 등 재택근무의 장점이 맞기 때문이다. 출퇴근 지옥철을 타지 않아도 되고, 거실에서 퇴근해 곧바로 안방 침대에 누울 수 있다. 도심에서 벗어나 강원도나 제주도 펜션에서 일할 수 있다. 발리 또는 하와이 같은 해외 휴양지에서 일하는 것도 메타버스 근무 기업에서는 가능하다. 서울에서 구하기 어려운 신혼집을 경기도에 구할 때 심리적 부담도 대폭 덜어진다. 왜 메타버스가 혁신이 아니랴.

그런데 조직문화와 커뮤니케이션 영역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자주 소통해야 하는 동료와 미스커뮤니케이션(miscommunication·의사소통 실패)이 발생했거나, 리더를 포함해 팀원 간 다소 심각한 오해가 생겼다고 가정해보자. 이럴 땐 별다른 도리가 없다. 만나야 한다. 비대면 소통에는 한계가 있다. 직접 만나서 1대1 만남, 커피챗, 점심·저녁 미팅 등으로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언어적·비언어적 표현을 섞어가며 소통해야 한다.

“우리, 만날까요?”

그런데 이 대사를 꺼내는 순간부터 고민이 시작된다.

“좋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만나죠?”

▲ △서울에서 사는 팀원과 제주에서 사는 팀원이 만나야 한다면 어디에서 만나야 할까.(출처=구글 지도 갈무리)
▲ △서울에서 사는 팀원과 제주에서 사는 팀원이 만나야 한다면 어디에서 만나야 할까.(출처=구글 지도 갈무리)
만나야 하는데 만날 수 없다면
팀원 한 명은 서울에, 한 명은 뉴욕에 산다는 식으로 과장하지는 않겠다. 다만 전해들은 어느 회사의 실제 사례를 전한다.

메타버스에서 100% 원격근무하는 한 팀은 총 8명이었는데, 팀 리드와 팀원 1명은 서울에 살았고 3명은 경기도에 살았다. 나머지 3명은 집은 수도권이었으나 1명은 강원도 리조트에서, 1명은 시골 부모님 집에서, 1명은 제주도 민박에서 원격근무 중이었다.

당신이 팀 리드라면, 이들에게 어떻게 모이자고 하겠는가?

서울과 경기도만 하더라도 미팅장소를 조율하기 골치 아픈 거리다. “서울에서 경기도 정도 거리도 문제로 친다니 너무 예민한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면 당신은 서울 중심으로 사고하거나, 대면근무를 기본값으로 생각하는 것일지 모른다.

모두 회사로 출근하는 가운데, 미리 2주 전쯤 조율해서 정한 시간에, 회사 근처에서 간단히 점심 또는 저녁 식사를 하는 미팅이라면 경기도에 거주하는 팀원이 ‘양해’해줄 만하다. 그런데 지금은 전체 팀원이 집에서 메타버스로 원격근무하는 상황을 가정하고 있다.

팀 리드는 서울 강남에 사는데 각각 분당, 수원, 일산, 남양주에 사는 팀원 4명에게 미팅을 제안하면서 “경기도보다는 서울이 모이기 용이하지 않겠냐. 광화문이나 강남에서 모이자”고 말한다면 어떨까. 사실 한국의 세대별 거주지역 분포상 이런 경우가 정말 흔하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메타버스에서 100% 원격근무하는 상황을 가정하고 있다. ‘본사 사무실’이 아예 없는 것이다.

팀원들은 그날 아침 오랜만에 오전 6시쯤 기상해 출근 준비를 하고, 7시쯤 집에서 나와서 지옥철을 탄 다음, 늦어도 10시께는 서울 중심부 카페나 공유오피스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그리고 팀원들은 생각한다. ‘이런 짓 안 해도 된다고 해서 이 회사 입사한 건데….’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추진한 미팅인데 모이기 전부터 팀원들이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날 업무와 미팅을 마친 다음, 팀장은 택시를 타며 “조심히들 들어가! 모이니까 역시 좋네. 또 보자고”라며 손을 흔든다. 팀원들은 각자 2시간 가량 이동을 거쳐 밤늦게 귀가한다. 그리고 팀원들은 생각한다. ‘설마 다음 달에도 모이자고 할까? 제발 아니었으면.’

직장에서의 소통은 더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팀리드가 팀빌딩을 위해 소통을 추진하기도 하고, 기본적으로 소통을 좋아하고 갈구하는 성격의 소유자들도 있다. 그래서 소통은 어느 한 쪽이 제안하게 된다. 소통의 수요는 사람마다 다르다. 

▲ △물론 만남이 능사는 아니다. 대면 소통을 한다고 해서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만, 비대면 소통으로만 팀워크를 내는 일은 이보다 더 어렵다.(출처=픽사베이)
▲ △물론 만남이 능사는 아니다. 대면 소통을 한다고 해서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만, 비대면 소통으로만 팀워크를 내는 일은 이보다 더 어렵다.(출처=픽사베이)

어려움을 뚫고, 원래는 메타버스에서 원격근무하던 사람들이 대면 소통을 하는 데 성공했다고 가정하자. 이 다음 단계에서 또 다시 문제가 발생한다. 메타버스 근무가 기본값인 회사에서 대면 소통을 하기까지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은 ‘대면 소통을 지양’하게 된다. 대면 소통을 하기까지 난관이 너무 많으므로, 이를 깨달은 후부터는 오해가 생기거나 부정적인 문제가 발생해도 비대면 소통으로 최대한, 끝까지, 해결하려고 하게 된다.

이들에겐 거주지역이 곧 근무공간이다. 각자 근무공간이 멀기 때문에 만날 장소를 조율하기 힘들어서일 수도 있고, 팀리드 입장에서 팀원들에게 먼 거리를 이동하라고 요청하기가 부담스러워서일 수도 있다. 혹은, 대면 소통이 필요한 줄 알면서도 “이 정도는 화상회의로 얘기 나누시죠”라고 말할 수도 있다.

메타버스에서 100% 원격근무하는 회사에 입사한 사람들은 어쨌든 그것이 더 편할 거라고 생각해서 모인 사람들이다. “지옥철은 이제 타지 않아도 된다”는 광고를 보고 입사한 이들이다. 이들은 끈끈한 팀빌딩을 위해 노력하려고 모이지 않았다.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은 조직원 모두가 지향해야 할 점이지만, 모두의 역할과 책임(R&R·Role and Responsibility)은 아니다.

메타버스에 모인 이들이 회사에 바라는 것은 어느 정도 원활한 업무, 그에 따른 임금 등 보상, 그리고 원격근무의 편리함이다. 어떤 순간이 오면, 이들은 원활한 소통 같은 것은 기꺼이 포기한다.

회사가 이들에게 채용광고 등으로 내건 상대적 우선순위 조건이 바로 ‘원격근무의 편리함’이었기 때문이다. (⑤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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