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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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없이 돈을 벌면서도 세금을 거의 내지 않아온 빅테크(대형 IT기업)의 조세회피 행태에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서유럽에서 가장 낮은 법인세율을 고수해왔던 아일랜드까지 인상에 동참하면서다.

11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OECD·G20 포괄적 이행체계(IF)는 지난 8일(현지 시간) 화상으로 개최한 제13차 총회에서 매출 발생국에 과세권을 배분하고(필라 1)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 15%를 도입하는(필라 2) 디지털세에 대한 최종합의문을 IF 140개국 중 136개국의 지지를 얻고 대외 공개했다. 합의안은 이번주 개최되는 G20 재무장관회의에 보고될 예정(홍남기 부총리 참석)이며, G20 정상회의에서 추인될 예정이다. 2022년 초까지 기술적 세부사항 논의를 마무리한 후 2023년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필라 1은 연결 기준 연 매출액 200억 유로(약 27조6600억원) 및 이익률 10% 이상을 내는 다국적 기업의 초과이익에 배분율(시장기여분) 25%를 적용해 시장 소재국에 과세권을 준다. 필라 2는 연결 매출액이 7억5000만 유로(약 1조원) 이상인 다국적 기업을 대상으로 한다. 이번 합의로 글로벌 IT 기업들이 실제로 이윤을 창출한 국가에 세금을 납부하게 됐다.

실질적인 '마지막 단추'인 아일랜드까지 동참한 점이 합의안 공개에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IT 전문매체 <더 버지(The Verge)> 등에 따르면 아일랜드 당국은 법인세 최저세율을 15%로 설정하도록 하는 OECD의 합의안에 지난 7일 서명했다.

아일랜드는 OECD 평균(23%)의 절반 수준인 12.5%의 법인세율로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 다국적 기업들의 유럽 본사를 유치해왔다. 조세회피 기법을 일컫는 용어인 '더블 아이리시 위드 어 더치 샌드위치(Double Irish with a Dutch Sandwich)'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아일랜드와 네덜란드가 맺은 조세협약에서 로열티를 원천징수하지 않는 조항을 이용해, 아일랜드 법인으로 잡힌 유럽 지역 수익을 로열티 명목으로 네덜란드 법인에 보내고 이를 법인세가 없는 버뮤다에 보내는 방식이다.

빅테크들이 이런 기법으로 절세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세계 각국은 아일랜드에 세법을 개정하라고 거세게 요구했다. 결국 아일랜드는 더블 아이리시 기법을 쓸 수 없도록 2014년 세법을 개정했지만 12.5% 법인세율은 최후의 보루로 사수했다. 기업 소재지로서 매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러던 아일랜드가 법인세율까지 내준 것은 미국과 유럽의 뜻이 일치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면서 세금을 회피하는 미국 빅테크 기업을 눈엣가시로 여겨왔던 유럽 국가들은 디지털세를 꺼내든다. 디지털세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반발했지만, 조 바이든 행정부에선 찬성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그 대신 방대한 재정지출 계획을 뒷받침하기 위해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을 제안한다. G7, G20에 이어 OECD 내 130개여국까지 최저 법인세율까지 포함한 디지털세 합의가 이뤄지면서 아일랜드도 더 버틸 도리가 없게 된 것이다.

조세피난처로서 아일랜드의 지위는 타격이 불가피하게 됐다. 미국 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약 800개의 미국 기업들이 아일랜드에서 영업하고 있으며, 약 18만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애플은 1980년에 아일랜드에 첫 공장을 열었고, 현재 코크시 캠퍼스에는 약 6000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그러나 파스찰 도노 아일랜드 재무장관은 기업들이 앞으로도 아일랜드에 본사를 두기로 결정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최저 법인세를 도입하면서도 매출 7억5000만 유로 미만인 기업의 경우 12.5%의 세율을 계속 적용할 수 있도록 OECD와 합의했다.

그는 "아일랜드가 미래에도 경쟁력을 유지할 것이라고 확신하며, 다국적 기업들이 투자처를 찾을 때 매력적인 장소이자 '동급 최고의 입지'로 남을 것"이라며 "다국적 기업들은 질 좋은 일자리로 우리 경제를 지원하고, 동시에 아일랜드는 이곳에 투자하기로 선택한 기업들에 안정적인 플랫폼과 오랫동안 입증된 성공 실적을 제안할 것"이라 피력했다.

빅테크의 조세회피는 우리나라에도 적용되는 사안이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국세청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주요 글로벌 IT기업 19개사의 국내법인이 낸 법인세는 지난해 총 1539억원이다. 같은 기간 네이버가 납부한 법인세(4303억원)의 35.7% 수준에 그친다. 구글은 아일랜드에서 유럽 매출을 절세하는 것처럼, 한국 매출에 대한 세금은 서버 소재지인 싱가포르에 납부하고 있다.

빅테크의 국내 조세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분출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 15%를 지지한다는 입장이다. 용 의원은 "디지털세 협정도 글로벌 IT기업의 세금 회피에 맞서기엔 충분치 않을 것"이라며 "국제 조세 체계에 위배되지 않는 독자적 우회로를 만들거나 조세 조약을 빨리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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