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무실을 완전히 떠날 수 있을까. 코로나19로 원격근무가 확대되는 가운데, 현실·가상을 결합한 ‘메타버스(Metaverse·3차원 가상세계)’ 근무도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효석 소풍벤처스 PR디렉터가 메타버스 근무를 경험했던 근로자의 입장에서 체험기를 보내왔다.
▲ △페이스북이 공개한 메타버스 회의실 ‘호라이즌 워크룸’.(출처=페이스북)
▲ △페이스북이 공개한 메타버스 회의실 ‘호라이즌 워크룸’.(출처=페이스북)

[기고|이효석 소풍벤처스 PR디렉터]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거나, 일한 경험이 있다면 ‘조직문화(organizational culture)’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 것이다.

전통적인 대기업이나 중견·중소기업에서는 조직문화가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아예 용어부터 기업 조직문화(corporate culture)와 스타트업 조직문화(startup culture)를 따로 구분한다. 기성기업에서 조직문화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오래된 회사일수록 이미 강한 조직문화가 있기 때문에 구성원들이 조직문화에 대한 생각을 별로 하지 않게 된다. 수십년간 구축된 체계에 적응하고 순응하면 될 뿐이다.

스타트업에서 조직문화가 더 중요한 이유는 ‘속도’ 때문이다. ‘스타트업의 하루는 대기업의 열흘과도 같다’는 업계 격언처럼, 스타트업은 굉장히 빠르게 과업을 설정하고 실행해야 한다. 그러려면 회사 전체가 ‘원팀(one team)’으로 끈끈하게 뭉쳐야 된다.

적게는 너덧 명, 많게는 수십 명의 사람을 억지로 뭉치게 할 수는 없다. 리더가 “원팀이 돼야 한다”고 아무리 외친들 팀원 스스로가 동기부여되지 않으면 원팀은 불가능하다. 원팀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조직문화 전문가들이 수많은 해법을 제시하므로, 여기서는 ‘메타버스’에서 원팀이 될 수 있을지 알아보는 데 집중하겠다. 메타버스에서 근무하면서도 원팀으로 끈끈히 ‘뭉칠(bonded)’ 수 있을까? 어쩌면 이번 연재 전체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다.

비대면의 빈틈, 채울 수 있을까
잠깐 지난 글들을 복습해보자. 3편에서 우리는 스타트업에서 쓰이는 커뮤니케이션 도구를 쭉 늘어놓고, 대면 소통과 비대면 소통에는 ‘소통 깊이의 차이’가 있음을 규명했다. 그리고 코로나19 이후에 대면 소통은 급감했고, 비대면 소통은 폭증했다는 사실을 짚었다. 4편에서는 메타버스에서 근무하는 이들이 대면 소통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다는 점을 살폈다. 조직문화가 비대면 중심일수록 대면 소통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원격근무가 편리하다’는 채용광고를 보고 입사한 이들은 굳이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대면 소통을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결국 메타버스 근무에서 대면 소통은 어렵다. 일반적인 조직문화에 원격근무(remote work)를 부분 도입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르게, 100% 메타버스에서 근무를 할 경우에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기까지의 어려움 자체가 상당하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메타버스 근무에서는 대면 소통을 아예 포기하는 게 효율적일 수도 있다. 대면 소통이 소통에서 절반 혹은 그 이상 중요한 것이라면, 메타버스 조직문화 설계자는 나머지 절반을 무엇으로 채울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 △픽사 최고경영자(CEO) 시절 고(故) 스티브 잡스는 화장실을 건물 중앙에 배치했다. 우연히 마주친 직원들이 대화를 나누게 하려는 의도였다. 배달의민족은 ‘잡담을 많이 나누는 것이 경쟁력’이라고 강조한다.(출처=개더타운)
▲ △픽사 최고경영자(CEO) 시절 고(故) 스티브 잡스는 화장실을 건물 중앙에 배치했다. 우연히 마주친 직원들이 대화를 나누게 하려는 의도였다. 배달의민족은 ‘잡담을 많이 나누는 것이 경쟁력’이라고 강조한다.(출처=개더타운)

메타버스에서 조직의 유대(bond)가 퍼석하게 말라가는 것을 확인한 조직문화 담당자들은 나름 고민한 결과물을 내놓기도 한다. 메타버스 상에서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각자 집에서 먹을 것을 준비해서 서로 얼굴을 보며 점심을 먹거나, 술과 안주를 준비해 저녁 회식을 하는 것이다. 원격근무를 열심히 하는 국내외 기업들 여럿이 이런 시도를 했었다. ‘귀여운 조직문화’라는 반응도 얻었다.

그러나 ‘비대면 회식’은 대면 소통을 대체할 수 없다. 왜 그럴까? 회식, 즉 여러 사람이 모여서 무언가를 먹는 것이 유대감 형성에 왜 중요한지를 살펴보자.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다인 간의 소통 속에서 간간이 이뤄지는 소규모 그룹의 소통이 주는 ‘은밀한 유대감’이 가장 크다.

리더를 포함해 8명이 모였다고 해보자. 때로는 1명만 말하고 7명이 들을 때가 있을 것이고, 4·4인 또는 3·3·2인 같은 식으로 소규모로 나뉘어 얘기할 때가 있을 것이다. 일대다 소통도 즐거울 때가 있지만, 웃음이 터지거나 공감의 눈물이 통하는 순간은 대체로 소규모 그룹끼리의 대화에서 발생한다. 어쩌면 주변 사람들을 챙기는 동료의 배려심을, 혹은 누군가 궂은 일을 하기 싫어서 슬슬 내빼고 남에게 미루는지를 확인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소통이 메타버스 회식에서 가능할까? 불가능하다.

메타버스 회식에선 다대다 소통이 기본이다. 8명이 모여도 3·3·2인 등으로 나눠 따로 수다를 떨 수 없다. 메타버스 또는 화상회의 툴에서는 오디오가 물리기 때문에 1명이 말하면 다른 사람은 경청해야 한다. 펍(PUB)에서 왼쪽 사람과 말하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다른 동료와 떠드는 식의 교차소통이 허용되지 않는다. 회식은 대면 소통과 비대면 소통의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예다.

▲ △대면하지 않고 메타버스를 통해서만 일하면서 긴밀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공동의 목표에 몰두하고, 끈끈한 소속감을 갖도록 조직문화를 설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로 다각도의 고민이 필요하다.(출처=개더타운)
▲ △대면하지 않고 메타버스를 통해서만 일하면서 긴밀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공동의 목표에 몰두하고, 끈끈한 소속감을 갖도록 조직문화를 설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로 다각도의 고민이 필요하다.(출처=개더타운)

“상관없는데요.”

연재글을 쓰면서 종종 이 말이 귀에 맴돌았다. 메타버스에서 근무하면서 조직문화에 대한 고민이 생겼고, 한 동료에게 고민을 토로하자 그 동료가 했던 말이다. “내 일만 잘 하면 되지. 조직문화를 왜 신경 쓰세요?”

물론 이 동료는 스타트업에서 조직문화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해 못한, 어쩌면 조직문화라는 개념을 모르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때문에 공론장에서 유의미하게 언급할 만한 발언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동료의 발언을 토대로 하나의 가설을 세울 수 있다. 주체를 확장하면서 가설을 세워보자.

잊지 말자, 당신은 연재의 1편에서 “지옥철은 이제 그만!” 광고를 보고 메타버스 근무에 합류한 신입사원이다. 메타버스를 이용한 100% 원격근무를 최대 장점으로 내세우면서 광고하는 회사가 과연 메타버스 근무의 단점을 고려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늘 광고를 볼 때 그 광고판의 뒤에는 ‘사측’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어떤 존재가 숨어있다는 사실을 떠올려야 한다.

메타버스에서 근무하면 기존 오프라인 근무와 비교했을 때 커뮤니케이션의 문법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사실을, 조직문화를 새로 정의해야 하며 자칫하면 조직문화가 어그러질 수도 있다는 점을, 사측이 검토를 안 했을까?

“상관없는데요. 조직문화, 커뮤니케이션, 그런 거. 상관없는데요.”

사실 모든 게 의도된 거라면? 지금까지 5편에 걸쳐 연재하면서 메타버스에서 근무했을 때 한 명의 구성원으로서 우려되는 점을 하나씩 논증했다. 그런데 만약 사측도 그런 우려 지점을 다 알고 있었고, ‘그런 건 상관없다’고 이미 결론 내렸다면, 조직이 바뀌지 않는다면, 실은 우리는 제대로 된 조직문화 같은 건 필요 없고, 당신은 그런 고민할 시간에 주어진 업무나 잘 하라고 말한다면.

답은 하나다. 이 조직을 나가야 한다. 메타버스에서 로그아웃.

1편에서 다룬 입사 첫날을 기억하는가? 택배로 받은 노트북. 이젠 택배로 반납해야 한다. 택배비는? 이번에는 당신이 부담해야 한다. 그리고 며칠 뒤 당신은 광고를 보게 될 것이다. “출퇴근 시간 지옥철, 지겨우시죠? 집이든 카페든 원하는 곳에서 근무하세요!”

광고 속에서는 전 회사 동료들이 웃고 있다. 작은 노트북 화면 속에서, 더 작은 아바타 위 캠화면 속에서 둥둥 떠있는 채로.(⑥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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