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무실을 완전히 떠날 수 있을까. 코로나19로 원격근무가 확대되는 가운데, 현실·가상을 결합한 ‘메타버스(Metaverse·3차원 가상세계)’ 근무도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효석 소풍벤처스 PR디렉터가 메타버스 근무를 경험했던 근로자의 입장에서 체험기를 보내왔다.
[기고|이효석 소풍벤처스 PR디렉터] 바야흐로 메타버스 시대라고들 한다. ‘포트나이트’ 개발사인 에픽게임즈의 팀 스위니 최고경영자(CEO)는 “메타버스는 인터넷의 다음 버전이다. 사람들은 메타버스로 일하러 가고 쇼핑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는 전세계 메타버스 시장 규모가 2025년에 2800억달러(약 33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회계·컨설팅기업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메타버스를 둘러싼 산업이 2025년 540조원, 2030년 1700조원 규모로 커질 거라고 내다봤다.

메타버스는 게임이나 콘텐츠를 즐기는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이나 혼합현실(MR, Mixed Reality) 수준에서 더 나아가 실제 세계를 온라인 공간으로 옮긴 확장현실(XR, eXtended Reality)의 개념으로 확대되고 있다. 현실의 공간과 기능을 대체하는 새로운 무엇인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팬데믹(pandemic·대유행)’이라는 변수는 메타버스를 시대의 화두로 만들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류의 일상 전반을 위협하면서 우리 삶을 지탱하는 큰 기둥인 ‘근무’도 영향을 받게 됐다. 디지털 도구의 발달과 팬데믹이라는 변수들이 만나 원격근무는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되고 있다.

눈치 빠른 창업가들은 변화를 감지하고 아예 메타버스 근무공간을 개발했다. 메타버스 근무 툴 ‘개더타운’(gather town)을 선도적으로 개발한 미국 스타트업 개더(Gather)는 올해 3월 2600만달러(약 29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받으며 메타버스 근무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개더 투자에는 와이콤비네이터 등 유명 초기투자사들이 참여했다. 한국에서도 메타버스 근무공간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 △국회입법조사처는 <메타버스의 현황과 향후 과제></div> 보고서에서 현재의 법・제도와 메타버스의 정합성을 확보하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메타버스에서 이루어진 활동에 대한 현실적 효력을 인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출처=포트나이트)
▲ △국회입법조사처는 <메타버스의 현황과 향후 과제> 보고서에서 현재의 법・제도와 메타버스의 정합성을 확보하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메타버스에서 이루어진 활동에 대한 현실적 효력을 인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출처=포트나이트)
우리에겐 ‘질문’이 필요하다
새로운 기술에는 늘 질문이 따른다. 지난해 인공지능(AI) 챗봇 ‘이루다’ 사태로 AI 분야에 많은 질문이 쏟아졌던 것처럼, 올해는 메타버스를 향한 질문이 늘고 있다. 특히 메타버스가 게임·콘텐츠 분야를 넘어 ‘일자리’ 같은 우리 삶의 핵심까지 엄습해오면서 질문의 깊이도 더해지는 중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7월 <메타버스의 현황과 향후 과제> 보고서에서 “(메타버스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제도적·윤리적 대응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보고서는 “(메타버스에서도) 모욕·비하·인신공격 같은 개인 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특히 아바타 스토킹, 아바타 불법촬영, 아바타 성희롱 등 성범죄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문제, 다른 사람 아바타에 폭력적 행동을 하는 문제 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도 우려했다. 

앞서 3편에 언급했듯, 메타버스에서 근무하면서 카메라를 켜 놓고 상사·동료와 마주보면서 일하는 사례들이 있다고 말했다. 누군가 메타버스에 띄워 놓은 동료들의 얼굴을 캡처해 악용한다면 어떨까? 아바타의 손을 조작해 다른 아바타에게 부적절한 행위를 한다면, 우리는 이를 가해와 피해로 규정할 수 있을까? 낯선 기술로 인한 전례 없는 피해를 법·제도가 보호해줄 수 있을까? 메타버스 개발사나 메타버스 근무에 돌입한 기업들은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어떻게 대처할까? 예상되는 우려를 분석하면서 정책을 짜고 있을까, 아니면 5편에서 가정했던 것처럼 알면서 묵인하고 있을까?

▲ △네이버제트의 제페토에서는 다양한 컨퍼런스·행사·콘서트가 열리고 있다. 사진은 한국모바일게임협회가 제페토에 설립한 가상세계 사무소 모습.(출처=한국모바일게임협회)
▲ △네이버제트의 제페토에서는 다양한 컨퍼런스·행사·콘서트가 열리고 있다. 사진은 한국모바일게임협회가 제페토에 설립한 가상세계 사무소 모습.(출처=한국모바일게임협회)

이런 상상도 해본다. 가령 한국의 A기업이 어딘가 작은 나라에 몰래 법인을 차린다. 거기서 메타버스 근무공간을 개발해 서버를 돌리면서 고객불만 응대 인력을 메타버스에 근무하게 한다. 이때 이 메타버스 근무공간은 한국의 노동법을 지켜야 할까? 여기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이나 주52시간제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 여기서 다국적 노동자가 일한다면 어떨까. 각국의 법으로 보호받아야 할까? A기업에는 아무런 책임이 없을까? A기업은 한국에 있지만 A기업의 메타버스는 해외 서버에 있다면? A기업의 자회사로 귀속돼 있는 구조도 아니라 하청에 하청을 준 구조라면?

네이버에서 개인정보보호책임자를 맡고 있는 이진규 이사는 <메타버스와 프라이버시, 그리고 윤리>에서 “확장현실(XR·Extended Reality)을 지원하기 위한 기기들을 통해 기존에 수집되지 않았던 정보가 수집돼 처리된다. 이용자의 시선추적(Eye Tracking)을 통해 시선이동이 수집, 분석된다”면서 “단순히 2D 화면에 시선이 머무는 것을 분석(heat map)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메타버스에서 무엇을 보고 누구와 교류하며, 어떤 것에 골몰하는지를 보다 심층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메타버스에서는 회사가 직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어쩌면 접속시간부터 교류 상대방, 대화 등 직원들을 파악할 수 있는 정보가 수집·처리될지도 모른다. 메타버스가 가져다 주는 편리와 효율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 △메타버스가 가져올 혁신에 대한 기대는 넘쳐나지만, 우려를 둘러싼 고민은 찾아보기 힘들다.(출처=로블록스)
▲ △메타버스가 가져올 혁신에 대한 기대는 넘쳐나지만, 우려를 둘러싼 고민은 찾아보기 힘들다.(출처=로블록스)

팬데믹이 길어지면서 공포와 경계도 옅어지고 있다. ‘위드(with) 코로나’ 시대로 넘어가는 이때, 기업들이 조직문화를 한 번씩 점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세계인이 원격근무를 경험했고, 정보기술(IT)기업 외의 다양한 업계에서도 사무실 출근과 원격근무를 혼용하고 있는 지금, 조직원들이 잘 커뮤니케이션하고 있는지, 조직문화가 여전히 건강하고 지속가능한지 돌아봐야 한다. 코로나는 새로운 시대와 미래를 여는 멋들어진 제막식이 아니다. 과거의 일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비극적인 종언이다.

요즘 10대들은 모래놀이터 대신 메타버스 속 ‘샌드박스’에서 논다고 한다. 마인크래프트에서 블록을 쌓고, 로블록스에서 직접 게임을 만들어서 놀고, 제페토에서 셀카 찍고 춤 춘다.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메타버스라는 기술을 물려줄 자격이 있을까. 정말 이대로 메타버스 시대를 시작해도 괜찮은 걸까.(연재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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