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II) 발사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누리호는 성패 여부를 떠나 우리나라 우주개발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사건이다. 누리호의 개발 과정과 경제적 파급효과, 추후 과제 등을 추려 소개한다.
19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에 따르면 누리호가 오는 21일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 내 마련된 신규 발사장(제2 발사대)에서 오후 4시께 발사된다. 발사 여부는 기상 상태와 우주물체 충돌 가능성을 고려해 당일 오전 확정된다.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연기될 수 있다는 의미다. 누리호 발사관리위원회는 22일부터 28일을 ‘발사 예비일’로 설정하는 등 발사 조건 변동에 유동적으로 대처할 방침이다.

누리호는 ‘우리나라 땅에서 우리나라 기술로 우리나라 인공위성을’ 우주로 올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우리나라는 이미 독자기술로 개발한 인공위성을 우주 궤도에 올린 바 있다. 지난 3월 정지궤도 안착에 성공한 세계최초 환경감시 위성 ‘천리안위성 2B호’가 대표적 사례다. 다만 이 같은 위성을 우주로 보낼 발사체는 해외 기술에 의존해왔다. 누리호의 발사가 성공한다면 우리나라는 세계 7번째 우주 수송 능력을 갖춘 국가가 된다. 누리호가 우리나라의 우주 강국 시대를 열 ‘마중물’로 평가되는 이유다.

누리호는 12년의 개발 과정을 거쳐 완성된 ‘우리나라 우주 산업’의 결정체다. 약 2조원이 투입된 누리호 프로젝트엔 약 300개 국내 기업이 참여했다. <블로터>는 과기정통부·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이 공개한 자료를 토대로 누리호의 개발 착수부터 예정일 확정을 비롯해 우리나라 발사체 연구 개발 과정을 6개 장면으로 정리했다. 우리나라 연구진은 누리호를 발사대에 세우기까지 다양한 위기를 극복해냈다.

▲ 누리호 개발 주요 일지.(자료=한국항공우주연구원, 그래픽=정두용 기자)
▲ 누리호 개발 주요 일지.(자료=한국항공우주연구원, 그래픽=정두용 기자)

한국형 발사체 확보를 꿈꾸다
누리호 개발은 2010년 3월 시작됐지만, 우리나라가 우주 발사체의 ‘완전 독자 기술’ 확보를 꿈꾼 시점은 더 거슬러 올라간다. 항우연 관계자는 “누리호는 1990년대부터 쌓아온 로켓 발사 시험들을 양분 삼아 제작됐다”고 설명했다.

한국형 발사체의 필요성이 처음으로 제기된 때는 1987년이다. 당시 천문우주과학연구소(현 한국천문연구원)이 로켓 개발 등에 관한 기초 연구를 시행하면서 국가 차원 개발이 시작됐다. 한국형 발사체 확보는 항공우주산업개발촉진법 제정에 따라 1989년 10월 한우연이 설립되면서 구체화됐다. 한국형 과학관측 로켓(KSR·Korea Sounding Rocket) 개발의 시작이다.

항우연은 설립 3년 만인 1993년 6월과 9월 KSR-I를 두 차례 발사했다. 1단형 고체엔진이 적용된 KSR-I 과학로켓은 고도 39km·낙하거리 77km를 비행해 한반도 상공의 오존층 측정하고, 로켓 자체 성능 특성 데이터를 수집하는 데 사용됐다.

항우연은 이후 KSR-II(2단형 고체엔진 과학로켓·1998년 6월)와 KSR-III(액체추진 과학로켓·2002년 11월)의 발사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 시험 발사를 통해 우리나라는 2단 분리 기술을 비롯해 액체로켓 발사 운용 기술 등을 확보하는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KSR 계획을 통해 우리나라는 △시스템 통합 △액체 추진기관 설계 및 제작 △엔진시험 △유도제어 및 자세제어 등 발사체 자력 개발을 위한 기반기술 확보했다. 이 같은 기술들은 누리호 개발의 양분으로 쓰였다.

KSR 계획은 다만 발사체 모두 우주 궤도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포물선 낙하를 통한 기상 관측 등 한정된 임무만을 수행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 우리나라의 발사체.(자료=한국항공우주연구원)
▲ 우리나라의 발사체.(자료=한국항공우주연구원)

국가 단위 우주개발 산업을 추진하다
1996년 ‘국가우주개발 중장기 기본계획’ 수립으로 우리나라는 우주 산업 개발을 국가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이 계획에 ‘우리가 개발한 위성을 우리 발사체로’란 목적이 담기면서 누리호 발사 이어졌다. 이후 2005년 우주개발진흥법이 제정되고, 2007년 6월 제1차 우주개발진흥 기본계획이 수립되면서 제도적 지원이 구체화됐다.

우주개발진흥 기본계획은 2011년 2차, 2018년 3차로 수정·보완됐다. 로켓이 군사적 기술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당시 외교·제도적 한계점에 따른 기술 발전 방향이 반영됐다.

올해 6월에는 ‘제3차 우주개발진흥 기본계획 수정안’이 확정된 바 있다. 최근 미사일지침이 종료되고,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우주 분야에 협력이 진전된 데 따른 수정이다. 정부는 이에 따라 2024년까지 고체연료 기반의 소형발사체 개발·발사를 추진할 방침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센터를 설립하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13번째로 독자적인 우주센터를 보유한 국가에 이름을 올렸다. 2009년 6월 국내 최초의 인공위성 발사장인 ‘나로우주센터’가 준공되면서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는 ‘우리 땅에서 발사’란 우주 개발 계획을 실현할 수 있게 됐다. 누리호 역시 이곳에서 발사된다. 나로호우주센터 준공은 다른 국가에 의존하지 않아도 스스로 발사체를 쏘아 올릴 수 있다는 의미다. 자체 발사장 확보는 우주 강국 도약의 기본 조건으로 꼽힌다.

나로우주센터는 국가우주개발 중장기 기본계획에 따라 설립됐다. 1999년부터 안전성·발사각·부지 확보 용이성 등에 대한 정밀 조사를 거쳐 2001년 1월 전라남도 고흥군 봉래면 외나로도가 최종 건설기지로 선정됐다. 공사는 2002년부터 착수했다.

나로우주센터는 최초 기획단계에서부터 1단계와 2단계로 구분해 추진됐다. 나로호 발사운용을 위한 1단계 사업은 2000년 12월부터 2010년 6월까지 진행됐다. 우리나라는 1단계 사업을 통해 우주센터 구축과 운용기술을 확보했다.

2009년 1월부터 시작한 2단계 사업은 누리호 개발을 목표한다. 우주센터 2단계 사업의 총사업비는 약 2300억원이다. 우리 독자 기술로 세워진 제2 발사대도 이 사업의 일환이다. 누리호는 제2 발사대에서 우주로 향하게 된다.

▲ 나로우주센터 우주과학관 전경.(사진=한국항공우주연구원)
▲ 나로우주센터 우주과학관 전경.(사진=한국항공우주연구원)

실패, 또 실패를 딛고 나로호를 쏘아 올리다
나로우주센터의 첫 임무는 100㎏급 소형 인공위성인 ‘과학기술위성 2호’의 지구 저궤도로 투입이었다. ‘나로호’는 이때 사용된 발사체다. 러시아가 1단 로켓 및 관련 장비 설계와 개발을 담당하고, 우리나라가 2단 고체 모터 개발과 나로우주센터 구축을 총괄했다.

나로호는 2번의 실패 끝에 임무를 수행한 로켓이다. 2009년 8월 1차 발사에서는 이륙 216초 후 한쪽 페어링이 미분리됐다. 2010년 6월 2차 발사에서는 이륙 약 137.3초 후 폭발했다. 항우연은 2번의 실패를 겪은 연구진이 ‘3차 발사마저 실패하면 나로호는 실패로 기록될 것’이란 각오로 배수의 진을 치고 개발을 진행했다고 전했다. 나로호는 2013년 1월 30일 3차 발사에서 100kg급 소형 위성을 지구 저궤도에 투입하는 데 성공했다. 우리나라 발사체 기술 자립의 디딤돌로 평가되는 성과다.

연구진은 나로호를 제작하며 30t급 액체엔진과 추진제 탱크 선행 연구 등도 진행했다. 이는 누리호에 탑재된 75t급 엔진 개발의 밑거름이 됐다.

▲ 나로호 발사 장면.(사진=한국항공우주연구원)
▲ 나로호 발사 장면.(사진=한국항공우주연구원)

기술적 한계 극복하고 누리호 발사 준비를 마치다
누리호는 나로호 1차 실패 이후 개발에 착수한 발사체다. 현재 비행모델 조립을 비롯한 최종 점검을 완료했다. 과기정통부는 발사 2일 전까지 기체 점검을 지속할 계획이다.

누리호는 발사 예정일로 확정된 21일 탑재체들을 700km 태양동기궤도에 올려놓고, 위성모사체가 목표 궤도에 안착해야 발사 성공으로 기록될 수 있다. 이번 발사 때는 1.5t의 위성모사체가 실린다.

누리호는 발사 후 약 16분 안에 성공 여부가 판가름 난다. 고도 59㎞에서 1단 엔진이 분리되고, 2단 75t 로켓에 불이 붙는다. 2단 로켓은 고도 258㎞에서 분리된다. 3단 로켓은 2단 로켓 분리 후 점화돼 고도 700㎞까지 올라간 뒤 위성모사체를 목표궤도에 안착시킬 예정이다.

누리호 개발 연구진은 발사 예정일을 확정까지 다양한 기술적 한계를 돌파해왔다. 특히 75t 엔진 개발 과정에서 중대형 액체엔진 개발의 가장 큰 기술적 난제인 ‘연소불안정 현상’이 발생한 바 있다. 연구진은 2014년 첫 시험부터 발생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6개월 동안 약 10차례의 설계변경과 20회가량 시험을 진행했다.

누리호 추진체 탱크를 제작하는 일도 난관이었다. 누리호 크기가 아파트 12층 높이 정도지만 추진제 탱크의 두께는 2㎜에 불과하다. 맥주 캔처럼 얇게 제작된 탱크가 극한의 우주 환경을 견뎌야 하는 셈이다. 기술적 난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추진체 탱크 제작업체가 기술적 한계에 부딪혀 사업을 포기, 납품이 18개월가량 늦춰지기도 했다. 연구진은 설계와 제작의 무수한 반복을 통해 핵심 기술을 확보해 결국 연소 시험을 성공해 냈다.

과기정통부와 항우연은 지난 8월 누리호의 ‘발사 전 비연소 종합시험(WDR)’을 진행하고, 발사에 기술적 문제가 없음을 확인했다. WDR는 영하 183도의 산화제를 투입했다 빼내는 과정을 통해 발사체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절차다. 누리호의 최종 준비는 현재 완료된 상태다. 이제 우주로 향하는 일만 남았다.

▲ 누리호가 제2 발사대에 결합하고 있는 모습.(사진=한국항공우주연구원)
▲ 누리호가 제2 발사대에 결합하고 있는 모습.(사진=한국항공우주연구원)

누리호, 뉴 스페이스 시대를 열다
우주 개발 산업 패러다임의 세계적 추세는 ‘뉴 스페이스(New Space)’로 압축된다. 정부가 개발 사업을 제시하고 기업이 따라오던 기존 방식인 ‘올드 스페이스(Old Space)’에서 벗어나 민간이 우주개발을 주도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민간인 대상 ‘우주 관광’ 사업을 진행했거나 진행 예정인 스페이스X·버진갤럭틱·블루오리진 등이 대표적 사례다.

우리나라 역시 민간 주도의 우주 산업 개발에 나설 방침이다. 누리호는 뉴 스페이스 시대를 열기에 충분한 계기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약 2조원이 투입된 이번 사업엔 300여개의 국내 기업들이 참여, 다양한 우주 산업의 기술을 확보했다. 12년간 연구 과정을 거친 누리호 발사가 성공한다면 이들의 기술력도 자연스럽게 인정받을 수 있게 된다.

용홍택 과기정통부 1차관은 최근 ‘뉴스페이스 시대, 한국형발사체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전문가 간담회를 열고 “지금은 발사체 개발 사업이 정부 주도적 방식에서 민간이 좀 더 활발하게 역할을 넓혀갈 수 있는 방식으로 추진체계를 전환해야 될 때”라며 “고도화사업을 통해 국내 발사체 산업생태계를 육성·강화하면서 민간의 우주개발 역량을 효과적으로 제고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 누리호 1단 산화제 탱크 내부 모습.(사진=한국항공우주연구원)
▲ 누리호 1단 산화제 탱크 내부 모습.(사진=한국항공우주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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