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II) 발사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누리호는 성패 여부를 떠나 우리나라 우주개발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사건이다. 누리호의 개발 과정과 경제적 파급효과, 추후 과제 등을 추려 소개한다.
20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에 따르면 누리호는 12년 개발 과정 기간 약 2조원이 투입된 국가 단위 사업이다. 이 과정에서 30개의 주력 업체를 포함에 총 300여개의 국내 기업 참여했다.

누리호는 현재 최종 점검을 마치고 발사를 앞두고 있다. 누리호 발사관리위원회가 확정한 발사 예정일은 21일이다. 기상·우주 물체 충돌 등 안전 요건이 받쳐준다면 오후 4시께 우주로 향하게 된다. 발사관리위원회는 22일부터 28일을 ‘발사 예비일’로 설정하는 등 발사 환경 변화에 유동적으로 대처할 방침이다.

누리호 발사가 성공한다면 그 자체로도 값진 일이겠지만, 경제적·산업적 효과까지 고려해야 의미가 더 깊다. 누리호에 적용된 기술이 세계적 수준이라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선 ‘발사 성공’이 뒷받침돼야하기 때문이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국내 기업들이 세계 우주 산업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선 발사 성공이란 트랙레코드가 필요하다.

▲ 누리호가 제2 발사대에 장착된 모습.(사진=한국항공우주연구원)
▲ 누리호가 제2 발사대에 장착된 모습.(사진=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항공우주 분야는 대표적인 지식·기술 집약 산업으로 꼽힌다. 누리호만 보더라도 영하 183도의 극저온 액체산소와 3000도 이상의 화염을 견뎌야하는 극한의 기술이 적용됐다. 약 37만개 부품이 이 같은 환경에서 오차 없이 작동해야한다.

산업적·경제적 파급 효과가 기대되는 이유다. 누리호의 터보 펌프 기술을 극저온 액화천연가스(LNG) 운송용 선박 제작 기업에 기술을 이전하는 식으로 2차 효과를 낼 수 있다. 누리호에 적용된 기술은 이 밖에도 항공·전자·통신·소재 등 다양한 전후방 산업과 짙은 연관성을 지녔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누리호의 경제적 파급효과는 기술 이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뤄질 수 있어 정량적으로 평가하기 대단히 어렵다”면서도 “독자적인 우주 수송 수단의 확보는 언제든 인공위성을 쏘아 올릴 수 있다는 의미라 다양한 경제적·산업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누리호 개발 주요 일지.(자료=한국항공우주연구원, 그래픽=정두용 기자)
▲ 누리호 개발 주요 일지.(자료=한국항공우주연구원, 그래픽=정두용 기자)

전자레인지·정수기도 우주 산업 산물
우리나라는 비교적 우주개발에 뒤늦게 뛰어든 ‘후발주자’다. 이 때문에 아직 국내에서 항공우주개발로 인한 뚜렷한 파급 효과 사례는 찾기 어렵다. 그러나 해외에선 흔하다.

정수기·전자레인지가 대표적이다. 두 제품엔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이 1960년대 ‘사람을 달로 보낸다’는 아폴로계획을 진행하면서 식수와 음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한 기술이 적용됐다. 자기공명영상장치(MRI)·컴퓨터단층촬영(CT)·차량용 위성항법장치(GPS) 기기 등도 항공우주 기술의 산물이다. 우주 산업에서 사용된 기술은 통신방송서비스·재해재난 정보제공·의료기기·대체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로 퍼져나가며 새로운 시장을 형성했다.

최근에는 이 같은 기술 파급효과로 인한 새로운 형태의 우주 산업이 태동하고 있다. 현재 세계 우주개발의 추세는 ‘뉴 스페이스(New Space)’로 압축된다. 정부가 개발 사업을 제시하고 기업이 따라오던 기존 방식인 ‘올드 스페이스(Old Space)’에서 벗어나 민간이 우주개발을 주도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스페이스X는 뉴 스페이스를 이끌고 있는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스페이스X는 나사의 기술을 전수받아 재사용 로켓 확보, 1674기의 인공위성 운영 등 다양한 성과를 냈다. 최근에는 순수 민간인으로만 구성된 첫 우주여행에 성공하기도 했다. 일본항공우주연구개발기구(JAXA) 역시 미쓰비시중공업 등 자국 기업에 기술을 이전해 민간 주도의 우주 산업 진흥을 독려하고 있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세계 우주산업 규모는 지난해 3500억 달러(약 413조원)에서 오는 2040년 1조1000억 달러(약 1297조원)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 1969년 7월 20일 미국 항공우주국의 우주인 버즈 올드린이 달에 착륙해 지진계를 설치하는 모습.(사진=미국 항공우주국)
▲ 1969년 7월 20일 미국 항공우주국의 우주인 버즈 올드린이 달에 착륙해 지진계를 설치하는 모습.(사진=미국 항공우주국)

3대 난제 극복한 누리호…기술 파급 효과 기대
우리나라도 민간 주도의 우주 산업 개발에 나설 방침이다. 누리호는 뉴 스페이스 시대를 열기에 충분한 계기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국내 연구진이 누리호를 발사대에 세우기까지 다양한 난제를 돌파, 기반 기술을 쌓았기 때문이다.

발사체는 미사일 등 군사 전략으로 이어질 수 있어 국가 간 기술 전수가 극도로 제한된 분야로 꼽힌다. 독자 개발할 수밖에 없단 의미다. 또 발사체는 외교적 분쟁의 원인으로 작용, 연구·개발(R&D) 자체가 제한되기도 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은 이 때문에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개발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누리호 개발의 3대 난제인 △연소불안정 △클러스터링 △추진제 탱크 제작도 숱한 시도 끝에 성능 확보에 성공해냈다.

발사체는 온도·압력이 높은 구조라 연료가 연소실 안으로 들어오지 못해 공급이 끊기는 현상(연소불안정)이 발생한다. 발사체가 클수록 이 현상을 해결하기 어렵다. 연구진은 이 때문에 1단 발사체에 75t급 엔진 4기를 하나로 묶는 ‘클러스터링’ 기술을 적용했다. 길이 47.2m의 80%를 이루는 추진제 탱크의 무게를 줄이기 위한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특수 알루미늄 합금으로 제작된 추진제 탱크의 두께는 2㎜에 불과하다.

▲ 누리호 하단 부 모습. 누리호 1단 로켓은 75t급 엔진 4개를 묶어 300t급 힘을 낼 수 있다.(사진=항공우주연구원)
▲ 누리호 하단 부 모습. 누리호 1단 로켓은 75t급 엔진 4개를 묶어 300t급 힘을 낼 수 있다.(사진=항공우주연구원)

이 같은 기술과 노하우는 고스란히 국내 기업의 자산으로 쌓였다. 실제로 누리호 전체 사업비의 80% 정도인 약 1조5000억원은 참여 기업에 투입됐다. 누리호 체계 총조립은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엔진 총조립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진행했다. 누리호가 설치되는 제2 발사대는 현대중공업이 총괄해 제작했다. 이 밖에도 유콘시스템·카프마이크로·에스엔에이치·두원중공업·한양이엔지 등이 누리호의 크고 작은 사업을 맡았다.

‘완전한 독자 기술 확보’의 의미도 적지 않다. 누리호 발사가 성공한다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7번째로 자체적인 우주 수송체를 확보한 국가에 오르게 된다. 우주 강대국에 막대한 돈을 지불하고도 순서를 기다렸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셈이다.

과기정통부는 이에 맞춰 내년부터 5년간 ‘위성정보 빅데이터 활용지원 체계개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현재 운영 중인 8기 위성을 사업 종료 시점인 2027년엔 최소 100개까지 늘린단 청사진을 그렸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누리호는 이 같은 위성을 독자적으로 우주로 쏘아 올릴 수 있다”며 “해외에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돼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용홍택 과기정통부 1차관은 최근 해당 사업과 관련한 전문가 간담회를 열고 “사업 종료 시점 100개 이상의 위성에서 쏟아져 나오는 빅데이터가 위성정보 활용 산업 육성의 밑거름이 되도록 미래를 내다보는 전문가의 식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누리호 1단 산화제 탱크 내부 모습.(사진=한국항공우주연구원)
▲ 누리호 1단 산화제 탱크 내부 모습.(사진=한국항공우주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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