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리호 발사 후 10여분이 지났지만 SK텔레콤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 중계 화면엔 영상 없이 문구만 노출됐다.(사진=정두용 기자)
▲ 누리호 발사 후 10여분이 지났지만 SK텔레콤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 중계 화면엔 영상 없이 문구만 노출됐다.(사진=정두용 기자)

“3, 2, 1! 누리호가 발사됩니다!” 지난 21일 오후 5시. ‘한국형 발사체’가 우주로 출발하는 순간, 국민들의 눈도 누리호를 따라 하늘로 향했다. 그러나 SK텔레콤의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ifland)’를 통해 누리호 발사 중계를 본 이용자들은 이 순간을 함께하지 못했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누리호 발사에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만큼 다양한 매체의 중계 경쟁도 벌어졌다. 특히 SKT는 이프랜드에서 누리호 발사 중계를 진행하며 차별화를 꾀했다. 코로나19로 직접 발사 순간을 볼 수 없었던 이들에 현장감을 제공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남겼지만 풀어야 할 숙제도 적지 않다.

SKT는 누리호 발사 당일 이프랜드에 131명을 수용할 수 있는 4개의 중계 방(랜드)을 운영했다. 회사는 최대 524명의 시청을 상정하고 행사를 진행했지만 발사 5분 전까지도 이프랜드에 모인 인원은 300명 안팎에 불과했다. 누리호 발사란 대형 이벤트에도 마련한 좌석을 채우지 못한 셈이다.

▲ 누리호 발사 5분 전인 21일 오후 4시55분 SK텔레콤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 중계방 시청자 수.(사진=정두용 기자)
▲ 누리호 발사 5분 전인 21일 오후 4시55분 SK텔레콤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 중계방 시청자 수.(사진=정두용 기자)

SKT의 미흡한 운영도 시청자들에 아쉬움을 안겼다. 이프랜드 내 중계 화면이 지연되면서 참여자들은 실시간으로 누리호 발사 장면을 보지 못했다. 20~30분가량 영상 없이 ‘누리호가 비행 중입니다’와 같은 문구만 나오기도 했다.

메타버스의 강점인 소통 기능도 제한됐다. 이프랜드는 참여자가 아바타를 통해 다른 사람과 육성으로 소통할 수 있다. 이용자들이 다른 콘텐츠 플랫폼 대비 재미를 느끼는 지점이다. 그러나 누리호 발사 중계에선 참여자들 간 대화 기능이 차단됐다. 이프랜드는 현재 텍스트(문자) 채팅 기능도 지원하지 않는다. SKT 관계자는 “음성 대화 차단은 누리호 소개와 축하 공연 등 다양한 영상을 원활히 제공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프랜드를 통해 누리호 중계를 시청한 한 이용자는 “발사 40분 전부터 접속해 참여자들과 제스처를 주고받으며 발사 현장에 가지 못한 아쉬움을 달랬다”면서도 “음성 대화가 차단돼 유튜브 채팅보다 소통이 안 됐고, 무엇보다 발사 순간을 실시간으로 보지 못해 답답했다”고 말했다. 이 이용자는 발사 5분 지난 후에도 영상이 나오지 않자 이프랜드를 종료하고 유튜브 실시간 중계를 시청했다고 한다.

▲ 누리호 발사 5~10분 전 유튜브 채널 실시간 중계 시청자 수.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한국항공우주연구원·청와대·과학기술정보통신부·KBS·MBC 중계 화면.(사진=유튜브 갈무리)
▲ 누리호 발사 5~10분 전 유튜브 채널 실시간 중계 시청자 수.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한국항공우주연구원·청와대·과학기술정보통신부·KBS·MBC 중계 화면.(사진=유튜브 갈무리)

반면 누리호 발사 유튜브 생중계는 ‘초호황’을 기록, 이프랜드와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이 진행한 유튜브 생중계엔 약 5만5000명이 몰렸다. 시청자들은 실시간 채팅을 통해 누리호 발사의 성공을 기원하고, 연구진의 노고를 칭찬했다. 이 밖에도 청와대 중계에 2만명, 방송사 중계에는 5000~1만5000명의 시청자가 누리호 발사 순간을 함께했다.

메타버스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세계 빅테크 기업들은 메타버스를 영상 플랫폼을 대체할 차세대 콘텐츠로 주목하고 있다. 반면 시장 일각에선 메타버스가 현재 대세로 자리 잡은 유튜브와 같은 대형 플랫폼의 역할을 하기엔 ‘갈 길이 멀다’는 견해도 내놓고 있다. 가상현실에서 소통할 수 있다는 장점은 분명하지만, 아직 편의성·접근성이 낮다는 지적이다. SKT의 누리호 중계 역시 메타버스의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대중의 관심을 받는 데는 실패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1인 가구 증가로 누리호 발사와 같은 대형 이벤트를 TV가 아닌 온라인 플랫폼으로 즐기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며 “메타버스도 대안이 될 수 있지만 아직 편의성 측면에서 부족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 누리호가 21일 오후 5시 전라남도 고흥군 나로우주센터 내 마련된 제2 발사대에서 점화되는 장면.(사진=한국항공우주연구원)
▲ 누리호가 21일 오후 5시 전라남도 고흥군 나로우주센터 내 마련된 제2 발사대에서 점화되는 장면.(사진=한국항공우주연구원)

이프랜드, SKT 존속법인 핵심 서비스 될까
이프랜드는 SKT 존속법인의 핵심 사업이다. 회사는 이프랜드를 통해 신성장 동력을 마련하겠단 청사진을 그렸지만, 존속법인에 대한 ‘성장성 부족’ 우려는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양상이다.

SKT는 오는 11월1일 회사를 인적분할해 SK텔레콤(존속회사)과 SK스퀘어(분할신설회사)로 나눈다. SK스퀘어는 반도체·정보통신기술(ICT) 투자전문 회사로 출범한다. 존속회사엔 무선통신(MNO) 사업부가 남는다. 통신과 비통신 분야로 회사를 쪼개는 셈이다.

MNO는 성장이 꺾인 사업 분야로 꼽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무선통신서비스 통계 현황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국내 이동전화 가입자(회선)는 7191만2808명이다. 이 중 5564만239명이 휴대전화 가입자다. 우리나라 인구수(5182만명)보다 높은 수치다.

MNO 시장 포화 현상은 4G(LTE)부터 시작해 5G 상용화 이후 극에 달했다. 신규 가입자를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되면서 성장 둔화 현상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5G 가입자가 늘어난다고 하더라도 이는 신규 가입자가 아닌 4G에서의 전환에 불과하다. 실제로 이동통신 3사(SKT·KT·LG유플러스)의 가입자별 평균 매출(ARPU)은 4G(LTE) 전환이 한창이던 2016년 4만원에 육박했지만, 지금은 3만원 초반에 불과하다.

MNO 사업부 중심인 SKT 존속법인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SKT 밑으론 MNO 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SK브로드밴드(IPTV) △SK텔링크(알뜰폰·MVNO) 등이 편제된다. 반면 SK스퀘어는 반도체·미디어·보안·커머스·모빌리티 등 성장성이 담보됐다고 평가받는 산업군의 16개 회사를 밑으로 둔다. SK스퀘어에 비해 SKT 존속법인의 주목도가 떨어지는 이유다.

SKT는 이 같은 시장 우려에 메타버스 플랫폼을 답안으로 써냈다. 이프랜드 서비스를 성공으로 이끌어 신성장 동력을 마련하겠단 포부다. SKT는 이를 위해 이프랜드에 추후 ‘마켓 시스템’과 ‘공간제작 플랫폼’ 등을 도입할 계획이다. 문자 채팅 기능도 조만간 업데이트된다.

▲ (사진=SK텔레콤)
▲ (사진=SK텔레콤)

사용자는 마켓 시스템을 통해 아이템을 구매하고 판매할 수 있다. SKT 사용자가 이프랜드 내에서 자신이 만든 아바타 의상·아이템을 만들어 판매할 기회도 제공할 계획이다. 메타버스에서 본인만의 개성을 더욱 뚜렷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사용자에게 맞춤형 서비스가 될 수 있다. SKT는 이 시스템을 통해 이프랜드가 새로운 수익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현재 공통으로 제공되는 룸 테마는 ‘이용자 스스로 꾸밀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뀐다. 다양한 파트너들이 취향과 목적에 맞는 메타버스 공간을 직접 만들어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메타버스 시장은 올해 460억달러(약 52조원)에서 오는 2025년 2800억달러(약 315조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SKT 이에 따라 이프랜드의 해외 시장 진출도 준비하고 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SKT가 메타버스 플랫폼을 존속회사의 핵심 사업으로 꼽은 것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면서도 “아직 이프랜드가 출시 초반이라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해 성장성을 보여줬다고 평가하기엔 이른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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