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출신 양향자 의원 “뉴 스페이스도 ‘반도체’처럼…대선 후보 ‘과학’ 논의해야”

발행일 2021-10-28 17:47:43
양향자 국회의원이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와 만나 과학기술 정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모습.(사진=양향자 의원실)

“뉴 스페이스 시대, 민간 주도의 우주 산업도 ‘반도체’처럼 접근해야합니다. 우리나라가 반도체 산업을 선도할 수 있었던 것은 삼성전자 신념에 국가적 지원이 뒷받침됐기 때문이죠. 우주산업의 성공 여부 역시 여기에 달려있는데, 대선 후보들 사이에선 과학기술 정책 논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어요.”

지난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양향자 국회의원(무소속·광주 서구을)은 잘 벼린 칼과 같았다. 스스로를 ‘정치인’이라고 소개한 양 의원은 인터뷰 내내 포근한 태도로 대화를 이어갔지만, 과학기술 정책을 설명할 때만큼은 말투도 단어도 냉철해졌다. 국회의원보단 되레 연구원을 마주하고 있단 느낌을 받았다.
치열한 삶의 궤적…“과학기술 정책에 목맬 수밖에 없어”
양 의원은 2016년 문재인 대통령(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영입 인재로 정계에 입문했다. 2020년 초선 의원으로 21대 국회에 진출한 후 과학기술 정책과 관련된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양 의원은 “과학기술 정책에 목맬 수밖에 없다”고 했다. 양 의원이 과학기술·기업인의 대변을 자처한 이유는 그녀의 삶의 궤적에서 찾을 수 있다. 양 의원의 삶은 정계 입문 전·후를 구분치 않고 ‘치열함’으로 압축된다. 양 의원은 21대 국회의원 선거도 “치열하게 임했다”고 말했다.

양 의원은 광주여자상업고등학교 졸업한 직후인 1985년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에 취직했다. ‘미스 양’으로 불리며 커피를 타고 주산·장부 정리로 업무를 시작했던 양 의원은 입사 28년 만에 삼성의 ‘별’이라 불리는 상무에 올랐다. 직책은 메모리사업부 플래시개발실 소속 연구임원직이었다.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하면 앉을 수 없는 자리다. 양 의원은 “고생이 많았다”고 당시 상황을 짧게 언급했지만, 삼성그룹 역사상 첫 여상 출신 임원이라는 이력은 산업계 안팎에서 ‘성공 신화’로 평가된다.
양향자 국회의원이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와 만나 과학기술 정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모습.(사진=양향자 의원실)

“누리호로 높아진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 정계 논의로 이어져야”
우리나라는 누리호 발사로 모처럼 국민적 관심이 과학기술에 집중된 시기를 보내고 있다. 엘리트만 모인 국회 내에서도 ‘과학기술 전문가’로 통하는 양 의원을 찾은 이유다. 양 의원은 “과학기술 정책 논의가 대선 국면과 누리호 발사가 맞물린 현시점에 이뤄지지 않으면 적기를 놓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나라는 누리호 발사를 계기로 정부가 우주 개발 사업을 제시하고 기업이 따라오던 기존 방식인 ‘올드 스페이스’에서 벗어나 민간이 개발을 주도하는 ‘뉴 스페이스’ 시대로의 전환을 앞두고 있다.

양 의원은 ‘누리호 발사 이후의 우주 산업’에 대한 질문에 ‘반도체 산업 성공’으로 답했다. 국내 경제의 대들보로 자리 잡고 있는 반도체 산업 역시 한때 ‘허황된 꿈’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양 의원은 국내 우주 기술도 과거 반도체 산업처럼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된다면 세계적 수준에 이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1983년 2월 8일. 당시 74세였던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도쿄선언’을 통해 반도체 산업에 진출한다고 했습니다. 그때 그 비전을 믿은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까요. 반도체가 뭔지도 모를 때 사업을 하겠다고 나섰으니 반대도 심했죠. 그렇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약 30년간 반도체 시장을 선도하고 있잖아요. 이 창업주 앞에 사상가·경영자보다 ‘선각자’란 수식어가 먼저 붙는 것도 이 때문이죠. 이 창업주는 반도체 산업에 대한 신념이 있었어요.”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1985년 방진복을 입고 기흥 반도체 생산라인을 둘러보고 있다.(사진=삼성)

양 의원은 기업의 신념에 국가적 지원이 바탕이 돼야 산업적 성공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당시 반도체 산업은 일본이 주도하던 형국이었어요. 이 창업자는 ‘일본인이 한다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식의 신념이 있었죠.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도 이런 의지를 이어받았고요. 여기에 당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더해졌습니다. 다소 허황될 수 있었던 우리나라의 반도체 꿈은 그렇게 이뤄졌죠.”

도쿄선언 때 우리나라와 일본의 반도체 기술 격차는 10년 수준으로 평가됐다. 삼성전자는 정부의 지원과 자체 혁신 전략 도입을 바탕으로 빠르게 사업을 성장시켰다. 그 결과 1992년 세계 최초로 64메가 D램 반도체 개발에 성공했다. ‘10년의 기술 격차’를 사업 시작 10년 만에 따라잡은 셈이다. 삼성전자는 64메가 D램 반도체 개발과 동시에 일본 도시바를 제치고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 1위 자리를 차지했다.

양 의원은 이 같은 전략이 우주 산업 분야에도 도입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누리호 발사는 미완으로 남았죠. 그러나 누리호의 성공 여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37만개의 부품을 구성한 기술력입니다. 거기에서 파생되는 산업적 효과에 집중해야 하죠. 누리호가 우리나라 우주산업의 가능성을 보여준 만큼 국민들의 뜻을 모아 과학기술 강국으로 도약해야 합니다. 이를 달성하려면 기업들의 신념을 국가가 뒷받침할 필요가 있죠.”
누리호가 21일 오후 5시 전라남도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되고 있는 모습.(사진=한국항공우주연구원)

양 의원은 우주 산업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모을 방안으로 ‘제도 개선’을 꼽았다. “먼저 기업이 선도적 투자를 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야겠죠. 또 우주기술에 투입되는 세금이 국가 발전을 위해 쓰이고 있다는 자부심도 형성해야 합니다. 현재 세금을 내는 게 ‘약탈’처럼 자리 잡고 있는데 이를 시급히 해결해야 하죠. 기업들도 세금을 내는 걸 자랑스러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국가의 기틀은 국방과 조세인데, 조세를 담당하는 기업의 역할을 너무 죄악시하고 있는 데서 비롯된 문제 같아요.”

양 의원 그러나 ‘우리나라가 우주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엔 “당연하다”고 힘줘 답했다. 그녀는 “이미 우리나라는 반도체 성공으로 기술력을 한 번 세계에 증명했다”며 “정계에서도 과학기술 논의가 활발히 이뤄진다면 현재 꿈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우주강국 도약도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선 후보, 과학기술 정책 낙제점”
양 의원은 누리호 발사에 맞춰 지난 26일 ‘과학기술 관련 기업 최고경영자(CEO)·임원 대상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양 의원은 “우주산업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지만, 국내 과학기술 핵심인 기업인들의 시각을 정확히 아는 정치인은 드물다”며 “직접 만난 많은 과학기술·기업인들은 이번 대선이 ‘정치적 담론’에 함몰돼 정작 중요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우려했다”고 말했다.

이어 “주요 과학기술 관련 기업인 200명을 대상으로 두 달간 진행된 이번 설문조사를 통해 정부 정책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하고 필요한 목소리를 담고자 했다”며 “이 결과를 기반으로 추후 각 정당 대선 후보들에게 공개 질의를 보내고, 릴레이 간담회를 추진해 과학기술인들의 목소리를 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설문조사는 중소기업중앙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한국경영자총협회와 양향자 의원실이 공동으로 추진했다. 각 단체는 대선 국면에 들어설 때마다 다음 정권에서 해결됐으면 하는 국내 산업적 문제들을 발표하곤 한다. 그러나 3개 단체가 공동으로 모여 정책 현안에 대한 조사를 벌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양 의원은 “기업인 출신이라 각 단체의 협력을 끌어낼 수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양향자 의원실)

과학기술·기업인들은 여야 대선 후보들의 과학기술 관련 공약 및 정책 노력에 대해 ‘매우 미흡하다’고 평가했다. △‘각 후보 캠프에서 과학기술 관련 공약을 적적하게 준비하고 있는가’ 부정 평가 79% △‘대선 과정에서 과학기술 정책이 적절하게 다뤄지고 있는가’ 부정 평가 80% △‘대선 후보들이 과학기술 분야를 중요하게 보고 있는가’ 부정 평가 66.5%를 기록했다.

문재인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 평가는 ‘잘하고 있다’가 54.5%를 기록했다. 문재인 정부는 과학기술 정책을 가장 잘 추진한 정부 2위(19.5%)로도 꼽혔다. 1위는 박정희 전 대통령(25.5%)으로 나타났다. 양 의원은 “문재인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이 연속성을 가지고 정상 궤도에 오르기 위해선 이번 대선이 매우 중요하다”며 “이번 대선이 ‘누가 더 더러운가’의 싸움이 된다면 나라의 미래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경제 회복을 넘어 더 큰 성장을 간절히 바라는 국민에게 좌절감을 안겨줄 뿐”이라며 “한 정당과 세력은 대선에서 승리할지 몰라도 국가와 국민은 패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래픽=양향자 의원실)

청년들에게 ‘나처럼 노력하면 된다’고 말하고 싶지 않아 정계에 입문했다는 양 의원에게 끝으로 이번 국회에서 남기고 싶은 성과를 물었다. 그녀는 공정한 사회로의 인식 변화에 일조하겠단 목표를 꼽았다. “지금 시대에선 ‘제2의 양향자’가 나올 수 없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파요. 저도 28년을 노동자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노력한 결과를 공정하게 보상받고,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차별 없이 인정하고, 과정이 다르면 결과도 다른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상식이 통하는 사회, 너무 큰 꿈일까요?”
양향자 국회의원이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와 만나 과학기술 정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모습.(사진=양향자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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