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호 발사를 계기로 국내에서도 우주 산업이 큰 관심을 받고 있죠. 우주 기술 경쟁은 국가 방위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 나라 간 ‘패권 다툼’으로 여겨지곤 합니다. 현재 우주 기술 개발은 과거와 달리 민간이 주도하고 있는 양상인데, 이 분야 선두 기업으론 스페이스X·블루오리진·버진갤럭틱이 꼽힙니다. 어떤 기술을 확보하고 있을까요?
▲ 누리호가 21일 오후 5시 전라남도 고흥군 나로우주센터 내 마련된 제2 발사대에서 점화된 후 우주로 향하고 있다.(사진=한국항공우주연구원)
▲ 누리호가 21일 오후 5시 전라남도 고흥군 나로우주센터 내 마련된 제2 발사대에서 점화된 후 우주로 향하고 있다.(사진=한국항공우주연구원)

△국제우주정거장(ISS)을 대체·보완할 차세대 ‘우주 비즈니스 센터’ △지구 위성 ‘달’에 건설되는 유인기지 △태양계 네 번째 행성인 ‘화성’으로의 이주 계획 △초연결 시대를 열 인공위성 기반의 차세대 통신 ‘6G’ △돈만 있으면 떠날 수 있는 우주여행….

꿈처럼 여겨졌던 우주 개발이 현실이 되고 있다. 인류의 상상을 실현하고 있는 주체는 놀랍게도 민간이다. 국가 단위의 연구개발이 자연스러울 법한 프로젝트들이지만, 기업이 우주 산업의 첨병으로 나선 지는 생각보다 오래됐다.

민간 우주 개발에 다양한 족적을 남긴 스페이스X·블루오리진·버진갤럭틱 등이 대표적이다. 블루오리진은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가 21년 전 ‘지구를 오염 산업으로부터 해방하기 위한 우주 식민지 건설’이라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설립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화성의 식민지화·인류의 우주 진출’ 등을 이루기 위해 스페이스X를 창립한 시점도 2002년이다. 버진갤럭틱 역시 2004년 영국 버진그룹의 리처드 브랜슨 회장이 ‘우주관광’ 등의 사업을 영위하고자 세운 기업이다.

우주 개발 산업의 세계 패러다임은 이들 기업의 발족으로 ‘뉴 스페이스(New Space)’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정부가 사업을 제시하고 기업이 따라오던 ‘올드 스페이스(Old Space)’에서 벗어나 민간이 우주개발을 주도하는 방식으로 변화,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민간 우주 기업 역사는 20년 안팎으로 전통적인 산업군에 비해 짧지만 남긴 성과는 적지 않다.

뉴 스페이스 시대 선두 ‘스페이스X’…블루오리진·버진갤럭틱 ‘추격’
스페이스X는 뉴 스페이스 시대를 이끄는 기업으로 꼽힌다. 블루오리진과 버진갤럭틱 역시 우주 산업의 핵심 기술을 확보했지만, 스페이스X보단 뒤처져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스페이스X는 2006년 세계 최초 민간개발 우주발사체 ‘팰컨1’를 쏘아 올린 것을 시작으로 △인공위성 △로켓 △로켓 엔진 △우주선 △우주관광 등의 영역에서 다양한 족적을 남겼다. 특히 2010년 지구 궤도상 우주선 ‘드래곤’을 발사, 발사 후 회수에 성공했다. 민간 기업 중에선 최초로 달성한 우주선 회수 기록이다. 드래곤은 2012년 ISS 도킹에도 성공한 바 있다.

스페이스X의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015년 ‘팰컨9’ 성공으로 재사용이 가능한 우주발사체 시대를 열었다. 국가 단위 사업에서도 이루지 못한 ‘재사용 발사체’ 기술을 민간 기업이 확보한 셈이다. 팰컨9는 2010년 첫 발사 이후 지난해까지 102회 발사됐는데, 실패 기록은 단 2회에 그친다. 스페이스X는 올해 5월 ‘같은 발사체 10회 사용’이란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 스페이스X의 재사용 우주발사체 팰컨9.(사진=스페이스X)
▲ 스페이스X의 재사용 우주발사체 팰컨9.(사진=스페이스X)

재사용 발사체는 우주 운송비용을 혁신적으로 떨어뜨렸다.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집계한 통계자료를 보면 2005년 미국 주력 우주발사체로 사용된 아틀라스V를 통해 화물 1kg을 우주로 보내는 데 사용된 비용은 1만3400달러(약 1598만원) 수준이다. 반면 팰컨9는 2700달러(약 322만원)다.

스페이스X는 우주 운송비용을 5분의 1 수준으로 감소시키며 뉴 스페이스 시대의 선두 기업 자리를 차지했다. 스페이스X는 재사용 발사체 확보 이후 인공위성 사업에 눈을 돌렸다. 스타링크 프로젝트는 재사용 발사체로 인한 경제성 확보로 시작될 수 있었다.

스타링크는 저궤도 소형위성 수만 개를 쏘아 올려 지구 전역에서 이용 가능한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구축하는 사업이다. 스페이스X는 이미 스타링크용 위성을 1740대를 운용하고 있다. 2세대 스타링크 시스템 구축을 위해 3만대의 위성을 추가 배치할 계획이다. 머스크 CEO는 지난 8월 14개국에서 10만명이 스타링크 위성 인터넷 서비스에 가입했다고 밝힌 바 있다.

▲ 스페이스X는 저궤도 소형위성 수만 개를 쏘아 올려 지구 전역에서 이용 가능한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구축하는 사업인 ‘스타링크’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사진은 스타링크 구상도.(사진=스페이스X)
▲ 스페이스X는 저궤도 소형위성 수만 개를 쏘아 올려 지구 전역에서 이용 가능한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구축하는 사업인 ‘스타링크’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사진은 스타링크 구상도.(사진=스페이스X)

블루오리진 역시 재사용 우주발사체 핵심 기술을 확보했다. 블루오리진의 재사용 1단 로켓 ‘뉴 셰퍼드’는 수직 이륙 후 자세 전환 없이 지상에 내려오는 식으로 운용된다. 우주궤도에 진입하지 못하고 캡슐만 발사한 뒤 회수되는 방식이다. 스페이스X의 팰컨9는 이와 달리 우주궤도 진입을 위해 수평 비행 후 180도 회전해 지상에 수직 착륙할 수 있다. 팰컨9의 활용도가 더 높게 평가되는 이유다. 블루오리진은 팰컨9과 같은 방식의 재사용 발사체 ‘뉴 글렌’을 개발 중이다.

블루오리진은 뉴 글렌 개발을 완료한 이후 세계 첫 민간 우주정거장을 운영하겠단 계획도 최근 밝힌 바 있다. 블루오리진 계획에 따르면 ‘오비탈 리프(Orbital Reef)’란 이름이 붙여진 이 시설은 ISS 고도(340~432㎞)보다 더 높은 500㎞ 상공의 궤도를 돈다. 뉴 글렌을 내년 4분기 발사해 오비탈 리프의 기초가 될 부품을 우주에 띄울 예정이다.

오비탈 리프는 830㎥ 규모의 공간에서 최대 10명이 생활할 수 있도록 설계된다. 우주 여행객은 하루 32번씩 일출과 일몰을 우주 정거장에서 볼 수 있다. 회사는 2020년대 후반 오비탈 리프를 가동하겠단 목표다. 오비탈 리프는 우주 호텔·여행 등 ‘즐길 거리’부터 영화 제작과 같은 ‘엔터테인먼트’ 사업도 가능하다. 회사는 이 때문에 오비탈 리프를 ‘최초의 우주 비즈니스 센터’라고 표현했다.

▲ 블루오리진의 민간 우주정거장 ‘오비탈 리프’ 상상도.(사진=블루오리진)
▲ 블루오리진의 민간 우주정거장 ‘오비탈 리프’ 상상도.(사진=블루오리진)

올드 스페이스 유산으로 큰 기업…우주관광 ‘각축전’
우주관광 분야에선 스페이스X·블루오리진·버진갤럭틱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경쟁을 벌이는 양상이다. 첫 민간 주도 우주관광 기록은 버진갤럭틱이 세웠다. 지난 7월 리처드 브랜슨 회장이 직접 참여자로 나서면서 세계 이목이 쏠리기도 했다.

버진갤럭틱은 우주 왕복선(VSS유니티)을 대형 항공기(VMS이브)에 싣고 이륙하는 식으로 우주관광을 진행했다. 공중에서 우주 왕복선 엔진을 점화한 후 90km까지 상승한 후 지구로 귀환하는 과정을 밟았다. 여행객들은 이를 통해 약 4분간 무중력을 체험할 수 있다.

▲ 버진갤럭틱의 우주선 스페이스십2.(사진=버진갤럭틱)
▲ 버진갤럭틱의 우주선 스페이스십2.(사진=버진갤럭틱)

스페이스X·블루오리진은 이와 달리 발사체를 활용한 우주여행을 선보였다. 블루오리진은 뉴 셰퍼드를 통해 올 7월과 10월 두 차례 우주관광을 진행했다. 첫 비행엔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립자가, 두 번째 비행엔 90세의 노배우 윌리엄 섀트너가 탑승해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섀트너는 미국 인기 드라마 ‘스타트렉’에서 제임스 커크 선장을 연기했던 배우다.

스페이스X는 지난 9월 탑승객 전원(4명)이 민간인으로 구성된 우주관광에 성공했다. 버진갤럭틱이 약 4분, 블루오리진이 약 10분간 진행했던 우주관광과 달리 스페이스X는 무려 사흘 동안 지구를 도는 궤도 비행의 경험을 선사했다. 미국 신용카드 결제 처리업체 ‘시프트4 페이먼트’ 창업주인 재러드 아이잭먼이 약 2억 달러(약 2334억원)를 지불하고 티켓 4장을 구매했다. ‘인스피레이션4’란 이름으로 진행된 이번 여행은 발사체 팰컨9과 우주선 드래건 크루가 사용됐다. 탑승자들은 시속 2만7359㎞로 지구 주위를 돌며 하루 16번의 일출을 봤다.

▲ 스페이스X ‘인스퍼레이션4’에 참가한 민간 우주인들. 왼쪽부터 크리스 셈브로스키, 시안 프록터, 재러드 아이잭먼, 헤일리 아르세노.(사진=스페이스X)
▲ 스페이스X ‘인스퍼레이션4’에 참가한 민간 우주인들. 왼쪽부터 크리스 셈브로스키, 시안 프록터, 재러드 아이잭먼, 헤일리 아르세노.(사진=스페이스X)

스페이스X·블루오리진·버진갤럭틱이 이처럼 빠르게 우주 산업의 성과를 올릴 수 있었던 배경은 ‘올드 스페이스 시대의 유산’이 꼽힌다. 이들 기업은 국가 주도의 연구개발 성과를 이전 받으며 핵심 기술을 빠르게 확보할 수 있었다. 항공우주업계 관계자는 “스페이스X가 우주 산업에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1960년대 사람을 달로 보냈던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기술을 이전받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역시 지난 21일 발사한 누리호를 통해 뉴 스페이스 시대의 진입을 알렸다. 누리호는 개발 과정부터 국내 기업에 기술 이전을 염두에 두고 진행됐다. 누리호 프로젝트엔 약 300개 국내 기업이 참가했다. 전체 사업비의 80% 정도인 약 1조5000억원이 기업에 쓰였다. 자체 우주 발사체 확보는 민간 우주 산업의 기본 조건으로 꼽힌다. 우리나라는 2027년까지 총 6차례 누리호를 발사해 기술 완성도를 높이고 ‘자체 우주 운송 수단’ 확보를 달성할 계획이다. 2차 발사는 2022년 5월로 예정돼 있다.

용홍택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1차관은 누리호 1차 발사 당시 “그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을 중심으로 발사체 개발을 해왔는데, 추가 발사를 통해 이 기술을 완전히 민간에 전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한화가 ‘서울 ADEX 2021’ 전시를 통해 일반에 공개한 누리호 1단·2단에 탑재된 75t급 엔진.(사진=정두용 기자)
▲ 한화가 ‘서울 ADEX 2021’ 전시를 통해 일반에 공개한 누리호 1단·2단에 탑재된 75t급 엔진.(사진=정두용 기자)

저작권자 © 블로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