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블로터DB)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블로터DB)

“바이오산업을 ‘제2 반도체’로 만들겠다”는 삼성그룹의 선언이 점차 구체화되고 있다. 정부의 ‘K-글로벌 백신 허브화’ 정책에 적극 협력하는 등 세계 바이오 시장에서 존재감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 본궤도에 오른 것으로 평가된다.

7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의지에 따라 바이오산업을 차세대 먹거리로 만들기 위한 전략을 추진 중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최근 글로벌 백신 허브화의 거점인 인천 송도 국제도시에 2024년까지 4조2400억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하는 등 외연 확장에 가속도가 붙고 있단 평가가 나온다.

바이오산업은 이 부회장이 직접 살피고 있는 분야다. 실제로 이 부회장은 경영 행보를 재개하자마자 코로나19 백신 생산 계획을 챙긴 것으로 전해진다. 바이오 계열사 최고위 경영진과 삼성전자 임원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를 직접 이끌며 모더나 백신의 국내 공급 난관을 풀어냈다. TF를 중심으로 인허가 문제와 대량생산 수율을 높이는 과제를 해결했다. 모더나 공급 일정이 연말에서 10월로 앞당겨질 수 있던 배경으로 이 부회장의 ‘스피드 경영’이 꼽히는 이유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생산한 모더나 백신 243만5000회분은 지난달 28일부터 현장에 공급되고 있다.

삼성은 이 부회장의 가석방 출소 11일 만인 지난 8월24일 240조원 규모의 투자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반도체·차세대 통신을 비롯해 바이오산업을 차세대 먹거리로 꼽았다. 이를 통해 ‘포스트 코로나’에 대비하겠단 전략이다.

▲ 삼성바이오에피스 연구원이 바이오시밀러 관련 실험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사진=삼성바이오에피스)
▲ 삼성바이오에피스 연구원이 바이오시밀러 관련 실험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사진=삼성바이오에피스)

삼성은 특히 바이오산업을 ‘제2 반도체’로 비유하며 사업 외연 확장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 후 백신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고, 고령화 심화에 따라 시장 확장이 가능하단 판단에서다. 재계관계자는 “바이오·제약 산업은 현재 기업을 넘어 국가 경쟁력으로까지 여겨지고 있다”며 “삼성그룹은 바이오 주권 확보란 대전제 아래 사업을 적극적으로 확장하고 있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삼성그룹의 바이오산업 양대 축은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에피스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바이오의약품의 위탁개발생산(CDMO) 영역에서,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바이오시밀러(의약품의 복제약) 분야에서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신규 공장으로 CDMO 1위 목표…실적도 고공행진
정부는 최근 글로벌 백신 허브화 추진위원회 2차 회의를 통해 ‘K-글로벌 백신 허브화’ 정책의 구체적 실현 계획을 발표했다. 바이오 강국 도약이란 방향성은 정부가 제시했지만, 스포트라이트는 삼성이 가져갔다. 이번 정책의 핵심인 ‘민간 투자’의 대부분을 삼성이 담당하기 때문이다.

15개 기업이 정부 정책에 따라 송도에 2024년까지 6조2900억원의 투자를 집행한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이 중 67%를 담당했다. 두 번째로 많은 투자금(1조5000억원)을 집행하는 셀트리온보다 2조7400억원을 더 투입한다. “바이오 주권 시대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삼성의 청사진이 두 달 만에 현실화되고 있다고 평가받는 이유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해 11월부터 인천 송도 글로벌캠퍼스에 4공장을 짓고 있다. 2022년 부분 생산, 2023년 전체 가동을 목표로 건설 중인 4공장에만 1조7400억원이 투입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여기에 더해 송도 5·6공장의 건설 계획도 발표했다. 2022년 착공해 2024년 가동을 목표로 건설되는 두 생산시설엔 2조5000억원이 투입된다. 회사는 이를 기반으로 백신 및 세포·유전자 치료제 등 차세대 CDMO 사업을 본격화할 방침이다.

▲ 삼성바이오로직스 인천 송도 4공장 조감도.(사진=삼성바이오로직스)
▲ 삼성바이오로직스 인천 송도 4공장 조감도.(사진=삼성바이오로직스)

4공장의 예상 연간 생산량은 25만6000L다. 현재 단일 공장 기준 세계 최대 생산시설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3공장 18만L인데, 4공장이 완성된다면 자체 기록을 스스로 넘어서게 된다.

4공장의 총면적은 약 23만8000m²(약 7만2000평)이다. 이는 1·2·3공장의 전체 연면적의 총합인 24만m²(약 7만3000평)와 비슷한 수준이다. 4공장이 가동되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총 62만L의 생산 규모를 갖추게 된다. 4공장 증설만으로도 해당 분야 전통 강자인 독일의 베링거잉겔하임(2023년 48만L 예정)과의 격차를 벌릴 수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사업 시작 9년 만에 CDMO 공장 3개를 완공하는 등 바이오 분야 외연을 빠르게 확장 중이다. 이번 추가 투자를 통해 2023년 CDMO 시장 점유율 30% 이상을 확보, 세계 1위를 달성하겠단 청사진을 그렸다.

▲ 삼성바이오로직스의 CDMO 수주·승인 현황.(자료=삼성바이오로직스 3분기 경영실적 보고서)
▲ 삼성바이오로직스의 CDMO 수주·승인 현황.(자료=삼성바이오로직스 3분기 경영실적 보고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성과는 실적에서도 나타났다. 올 3분기 매출 4507억원, 영업이익 1674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64.2%, 영업이익은 196.1% 증가, 2분기 연속 분기 최대 실적 경신에도 성공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로써 3분기 누적 매출 1조1237억원을 올렸다. 지난해 연간 총매출액 1조1648억원 수준의 실적을 한 분기 앞당겨 기록했다. 누적 영업이익은 4085억 원으로 지난해 연간 총 영업이익 대비 1157억 원을 초과 기록하는 성과를 달성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호실적 배경으론 원활한 수주가 꼽힌다. 오병용 한양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올 3분기 삼성바이오로직스의 1·2공장은 완전(full) 가동, 3공장은 근접(near-full) 가동이었다”고 분석했다. 이달미 SK증권 연구원도 “4공장에 대한 수주는 현재 25개 이상의 고객사 중에서 30개 제품을 협의 중이며 그중 20개 제품은 긴밀하게 논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 시밀러 기술 고도화 박차…‘비싼 약값’ 해결 도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CDMO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면,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바이오시밀러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현재 총 10종의 바이오시밀러 제품 및 파이프라인(연구개발 중인 신약개발 프로젝트)을 보유했다. △자가면역질환 치료제(SB2·SB4·SB5·SB17) △항암제(SB3·SB8) △혈액(SB12) △안과(SB11·SB15) △골격계(SB16) 질환 치료제 등 다양한 영역에서 제품 포트폴리오를 확대하는 중이다.

▲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바이오시밀러 파이프라인.(자료=삼성바이오로직스 3분기 경영실적 보고서)
▲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바이오시밀러 파이프라인.(자료=삼성바이오로직스 3분기 경영실적 보고서)

최근에는 솔리리스 바이오시밀러(성분명 에쿨리주맙)인 ‘SB12’의 글로벌 임상 3상을 완료하며 기술력 증명에도 성공했다. 미국 제약사 알렉시온이 개발한 솔리리스는 발작성 야간 혈색소뇨증(PNH)과 비정형 용혈성 요독증후군(aHUS) 환자에 투여되는 주사제다.

삼성바이오에피스가 SB12의 글로벌 임상 3상을 완료하면서 희귀성 혈액질환 환자의 최대 고민인 ‘비싼 약값’이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PNH와 aHUS는 ‘1년 치료에 수억원 발생’으로 악명이 높은 질환이다. 고가 치료비의 주된 이유는 비싼 약값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공개한 약제급여목록표에 따르면 올 10월 기준 솔리리스의 국내 급여 상한액은 513만2364원이다. 30mL짜리 1바이알(약병)의 가격이 500만원을 넘는단 의미다. 성인의 경우 투약량에 따라 한 달 약값으로만 4000만원이 발생하는 사례도 더러 있다. 알렉시온은 지난해 솔리리스로만 40억6420만 달러(약 4조4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바이오시밀러 출시는 통상적으로 약값 인하로 이어진다. 시장 경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바이오시밀러는 신약 개발보다 비용이 적게 든다. 바이오시밀러 기업은 이 때문에 복제약 제품의 가격을 본래 의약품보다 비교적 낮게 출시할 수 있다.

▲ 성바이오에피스 사옥 전경.(사진=삼성바이오에피스)
▲ 성바이오에피스 사옥 전경.(사진=삼성바이오에피스)

국내 PNH 환자는 약 300명으로 추산된다. 매년 치료제를 투여하지 않으면 생존 기간이 약 10년에 그친다. 그러나 비싼 치료비 때문에 투약을 포기하는 환자군도 있다. 의학계에선 이를 고려하면 국내에 600명 정도의 PNH 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aHUS 환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희귀성 혈액질환 환자의 이 같은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연구에 착수했다. 회사는 SB12와 솔리리스 간 유효성·안전성 등에 대한 비교 시험을 진행 중이다. 2019년 8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실시된 임상 3상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8개 국가에서 총 50명의 PNH 환자를 대상으로 했다.

시험이 다양한 국가에서 진행된 만큼 긍정적 결과가 나오면 SB12의 글로벌 출시도 가능하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SB12 임상 시험에 관한 내용을 글로벌 임상정보 제공 웹사이트 ‘클리니컬 트라이얼즈’에도 공개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이 밖에도 최근 루센티스 바이오시밀러 ‘바이우비즈(성분명 라니비주맙)’의 판매 허가를 미국 식품의약처(FDA)로부터 획득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에 이어 미국에서도 판매 허가를 획득, 판매처를 더 넓게 가져갈 수 있게 됐다.

삼성바이오에피스 관계자는 “바이오시밀러 개발의 본질적 의의인 ‘의료 미충족 수요’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정부 ‘K-글로벌 백신 허브화’ 정책에 따라 집행되는 민간 투자 계획.(자료=국무총리실)
▲ 정부 ‘K-글로벌 백신 허브화’ 정책에 따라 집행되는 민간 투자 계획.(자료=국무총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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