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뉴런모빌리티
▲ 사진=뉴런모빌리티

“똑같은 단거리 이동수단이니 규제가 심한 킥보드보다는 공유 전기자전거로 넘어가는 경우가 늘고 있죠.” 헬멧·면허 의무화에 이어 불법 주·정차 견인 조치 등 잇따른 규제로 공유형 전동킥보드 업계가 직격탄을 맞으면서, 반대급부로 전기자전거가 부상하고 있다.

‘골칫거리’ 전락한 공유킥보드
코리아스타트업포럼 퍼스널모빌리티 산업협의회(SPMA)에 따르면 지난 5월부터 공유킥보드 이용률은 50%가량 급감했다. ‘노헬멧·노면허’에 범칙금을 부과하기 시작하면서 이용자들이 무더기 이탈한 결과다. 대당 4만원에 이르는 ‘견인료 폭탄’도 공유킥보드 업계에겐 직격타가 되고 있다.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가 불법 주·정차된 전동킥보드 견인을 시작한 7월부터 9월 말까지 견인·보관료로 거둬들인 금액은 총 3억1918만원에 달한다. 일부 공유킥보드 업체들은 이용자에게 비용을 전가할 수 있도록 약관을 손보기도 했지만, 실제 적용하고 있진 않다. 이용자 이탈을 우려해서다.

사업을 접는 곳도 생겼다. 2019년 국내 진출했던 독일 공유킥보드 업체 윈드(WIND)는 지난달 한국 시장 철수를 결정했다. 국내 공유킥보드 스타트업 A사 대표 김모씨는 “글로벌 업체들의 경우 본사로부터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고 들었다”며 “국내 업체들도 정리되고 있는 추세다. 특히 자금력이 부족한 상태서 박리다매식으로 서비스를 운영해오던 업체들의 타격이 크다”고 설명했다.

공유킥보드 업계에선 하소연이 나온다. 이용자의 인식 개선이 우선돼야 하는데, 견인료를 업체들이 떠안고 있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주장이다. 강남 지역에서 공유킥보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 스타트업 B사 홍보담당자 박모씨는 “(시에서는) 단순히 위치만 보고 업체에 모든 비용을 부담시키고 있다. 그렇다고 이를 이용자에게 청구하려면 이용자가 (잘못된) 자리에 놨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데 CCTV 등 증거를 확보하는 게 일반 기업 입장에선 쉽지 않은 일”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차량을 개조해서 킥보드만 사냥하러 다니는 (견인)업체도 있고 심지어는 킥보드 위치를 자신들이 일부러 옮겼다가 견인해가는 사례도 적발해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고 호소했다. “대당 4만원은 지나치죠. 현실적인 숫자로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러나 보행자 등 시민들은 이를 반색하는 분위기다. 서울 마포구에 살고 있는 직장인 정민경 씨는 “이전까지는 길거리나 특히 지하철 역 앞에 공유킥보드들이 널브러져 있어 통행이 불편했는데 요즘은 (그런 모습이) 많이 보기 힘들어져서 좋다”고 말했다. 광화문에서 만난 직장인 장모씨도 “우리나라는 도로도 좁은데 킥보드까지 달리는 건 위험해 보인다”며 “과태료 때문인지는 몰라도 도로에서 수시로 보이던 ‘킥라니’가 줄어든 것 같아서 (긍정적이다)”고 말했다.

알아서 주차, 주행·주정차 제어...기술 개발 고심
이 가운데 기술로 문제를 풀려는 시도도 등장하고 있다. 지난 11일 국내 스타트업 디어는 ‘킥보드 자동주차’ 기술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8개월 연구 끝에 개발했다는 디어의 자동주차 기술은 킥보드가 마지막으로 주차된 장소 주변의 도로 경계석, 점자블록, 방해물 등을 파악해 보행자·운전자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적절한 곳에 스스로 주차하는 게 골자다. 고정밀지도(HD맵)을 사용하지 않고 카메라만으로 주차가 가능하다. 앞으로는 정해진 지점까지 저속으로 자율주행하는 킥보드도 개발할 계획이다. 디어 관계자는 “기술이 상용화되면 잘못 주차된 킥보드 때문에 보행자들과 운전자들이 겪는 불편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용자가 원하는 장소와 시간에 킥보드를 사용할 수 있도록 기술을 발전시킬 예정”이라고 말했다.

▲ 사진=디어
▲ 사진=디어

‘곡예주행’을 방지하는 기술도 나왔다. 뉴런모빌리티가 개발한 위험주행 감지 시스템은 △인도주행 △급커브 주행 △미끄러짐 주행 △2인 탑승 △방지턱 점프 등을 실시간 감지한다. 뉴런모빌리티는 6개월간 호주·캐나다·영국 등 4개 도시에서 공유킥보드 1500대를 시범 운영하면서 해당 기술을 실증할 예정이다. 이 회사는 지난 3월 안전 헬멧을 기본으로 탑재한 공유킥보드를 국내 최초로 출시한 바 있다. 장기적으로는 이용자별 안전등급을 부여해 ‘안전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재커리 왕 뉴런 모빌리티 최고경영자(CEO)는 “전동킥보드의 위험천만한 도심주행으로 각종 민원이 폭증하고 있다”며 “위험주행 감지 시스템은 전동킥보드의 주행과 주차를 통제한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일”이라고 강조했다.

또 공유킥보드 ‘킥고잉’ 운영사 올룰로는 지난해 전동킥보드가 인도 주행하거나 전방에 보행자를 발견하면 알아서 속도를 제한하는 기술을 개발, 특허를 출원했다. 공유킥보드 업체 ‘하이킥’은 이달 말부터 자전거·보행자 겸용 도로주행 모드를 선택하는 경우 시속 8km 이내로 킥보드 속도를 제한할 계획이다.

틈 노리는 전기자전거
앞서 공유킥보드가 차세대 교통수단으로 지목돼 온 이유는 전동킥보드·전기자전거 등 ‘퍼스널 모빌리티(Personal Mobility·PM)’가 주로 전기를 동력으로 삼아 친환경적이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또 단거리 이동에 적합해 교통체증을 개선하는 대책으로도 여겨졌다. 공유킥보드가 규제에 묶이게 되면서 투자자들은 공유 전기자전거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페달보조 방식 전기자전거는 헬멧 착용이 의무이기는 하나 과태료가 부과되지 않는다. 13세 이상이면 면허 없이도 탈 수 있다. 도로교통법상 자전거로 분류돼 적용 규정이 다르고, 시민들의 인식도 보다 긍정적이다.

이에 따라 업체들도 사업 확대를 꾀하고 있다. 공유 전기자전거 서비스 ‘카카오T바이크’를 운영 중인 카카오모빌리티는 알톤스포츠와 92억원 규모의 전기자전거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기존 경기권에 머물렀던 운영지역도 서울 서대문구, 청주시 등으로 넓히기 시작했다. 쏘카 투자사인 나인투원도 사업 확장을 검토 중이다. 이 회사는 현재 18개 도시에서 전기자전거 7000여대를 운영하고 있다.

모빌리티 업계 관계자는 “(규제 이후) 반사이익으로 공유 전기자전거 이용이 높아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투자자들의 관심도 마찬가지”라며 “안전에 따른 규제이기 때문에 상황이 쉽게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이번을 계기 삼아 PM업계가 전반적으로 재편되면서 ‘옥석 가리기’가 이루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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