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셀트리온 렉키로나 제품 이미지.(사진=셀트리온)
▲ 셀트리온 렉키로나 제품 이미지.(사진=셀트리온)

셀트리온의 코로나19 치료제가 유럽 시장에서 판매된다. 유럽 보건 당국은 ‘국산 1호’ 코로나19 항체치료제 ‘렉키로나(성분명 레그단비맙)’의 사용 승인을 내기까지 이례적으로 모든 절차를 신속하게 처리했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유럽의약품청(EMA)은 렉키로나의 유럽연합(EU) 사용이 공식적으로 허가됐다고 밝혔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가 12일(현지시간) ‘렉키로나’와 미국 제약사 리제네론이 개발한 코로나19 치료제 ‘로나프레베’의 판매 승인을 내린 데 따른 조치다.

이번 렉키로나의 판매 허가는 EMA 산하 약물사용자문위원회(CHMP)로부터 ‘승인 권고’ 의견을 획득한 지 하루 만에 이뤄졌다. CHMP가 낸 코로나19 항체치료제 첫 승인 권고 의견에 렉키로나가 포함되면서 사실상 판매 허가가 연내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EC는 CHMP 의견 접수 후 통상 1~2개월 이내에 정식 품목허가 여부를 발표한다. 이번 렉키로나의 판매 허가가 매우 이례적인 조치로 해석되는 이유다.

▲ 유럽의약청(EMA)은 홈페이지를 통해 코로나19 치료제 렉키로나와 로나프레베의 유럽연합(EU) 사용이 허가됐다고 공지했다.(사진=EMA 홈페이지 갈무리)
▲ 유럽의약청(EMA)은 홈페이지를 통해 코로나19 치료제 렉키로나와 로나프레베의 유럽연합(EU) 사용이 허가됐다고 공지했다.(사진=EMA 홈페이지 갈무리)

CHMP는 의약품에 대한 과학적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EMA에 승인 여부 의견을 제시하는 기구다. CHMP는 렉키로나의 승인 권고 의견을 내며 적절한 투약 범위도 지정했다. 코로나19가 확진된 만 18세 이상 성인 환자 중 △보조적인 산소 공급이 필요하지 않고 △중증으로 이환 가능성이 높은 환자에 투여를 권고했다. 방식은 국내 품목허가와 동일하게 정맥투여 60분이다.

셀트리온은 이로써 EMA 승인을 획득한 최초의 국산 항체 신약을 개발한 업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됐다. 셀트리온이 개발한 렉키로나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브라질·인도네시아에 이어 유럽에서도 사용 승인을 받았다.

바이오업계에선 셀트리온의 렉키로나가 판매 허가를 까다롭게 내리는 유럽 당국의 승인을 따내면서 글로벌 시장 진출이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유럽 시장의 허들을 넘었다는 성과만으로도 안전성·효능 등에 대한 입증이 끝났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EMA 승인이 중·후진국의 ‘허가 프리페스 티켓’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 (자료=셀트리온 3분기 실적 보고서)
▲ (자료=셀트리온 3분기 실적 보고서)

유럽 당국이 이례적으로 모든 판매 허가 절차를 신속하게 처리했다는 점도 렉키로나의 글로벌 진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유럽 당국은 직접 셀트리온에 ‘렉키로나의 정식 품목 허가 신청을 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셀트리온은 모든 EMA 평가 절차에서 특혜를 받았다. 셀트리온은 지난 2월 EMA 롤링 리뷰(허가신청 전 사전검토 절차)를 시작했다. EMA는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을 고려, 당시 렉키로나가 임상 절차를 진행 중임에도 불구하고 롤링 리뷰를 진행했다. 임상 진행 중인 치료제에 대한 롤링 리뷰 진행은 다른 사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이례적이다.

유럽 당국은 코로나19 확진자 증가 추세를 고려해 일찍부터 렉키로나의 가능성을 눈여겨봤다. 롤링 리뷰 결과가 나오기도 전인 지난 3월 EMA는 렉키로나의 정식 품목 허가 전 사용 권고 결정한 바 있다. 6월엔 EC가 유망 코로나19 치료제에 렉키로나를 선정했다.

EMA는 롤링 리뷰 과정에서 셀트리온이 제출한 각종 데이터가 정식 허가 절차를 진행하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회사 측에 정식 품목 허가 서류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셀트리온은 지난 10월 EMA의 요청을 받은 후 렉키로나의 정식 품목 허가(MAA)를 신청했다. 롤링 리뷰 진행 7개월 만에 정식 품목 신청이 이뤄진 셈이다. MAA 신청 역시 한 달여 만에 승인이 이뤄지며 신속하게 처리됐다.

셀트리온은 롤링 리뷰 기간이던 지난 6월 렉키로나의 글로벌 임상 3상 결과를 발표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스페인·루마니아 등 세계 13개국에서 코로나19 경증·중등증 환자 131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시험을 통해 안정성·유효성을 확보했다. 렉키로나를 투여한 고위험군 환자군에선 중증환자 발생률이 위약군(임상의약 효과를 검증할 때 효과가 없는 약을 투여한 집단) 대비 72%, 전체 환자에선 70% 감소했다. 임상적 증상 개선 시간 역시 단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고위험군 환자에게선 위약군 대비 4.7일 이상, 전체 환자에게선 4.9일이 단축돼 통계적 유의성을 확보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렉키로나의 임상 3상 결과 등을 검토한 후 정식 품목허가를 내기도 했다.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렉키로나는 지난 11월 5일 기준 국내 127개 병원에서 2만1366명의 환자에게 투여됐다. 아직 사망 사례는 물론 심각한 부작용도 보고되지 않았다.

셀트리온은 렉키로나의 이번 유럽 승인과 국내 투약 사례 등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 공략에 나설 방침이다. 이미 미국 보건당국과 공급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품목허가 전 사전 협의 절차가 끝나면 미국 긴급사용승인(EUA)을 신청할 계획이다. 유럽 사용 허가를 획득한 만큼 미국 진출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또 아시아·중남미·중동 등 약 30개 국가와 렉키로나 허가신청 및 판매 협상도 진행 중이다.

셀트리온은 코로나19 치료제 개발 초기부터 ‘국내 원가 공급 원칙’을 세웠다. 이 때문에 당장 렉키로나로 인한 회사의 매출 증가는 크지 않은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유럽 정식 품목 허가 검토를 계기로 글로벌 확장에 성공한다면 렉키로나로 인한 실적 개선 효과가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회사는 추후 결과에 따라 해외 시장에선 렉키로나의 약값 선정 절차를 국내 기준과 달리 가져갈 방침이다.

셀트리온은 미국·유럽에서 돌파 감염이 증가하고 있고,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 도입 확산에 따라 치료제 수요 증가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셀트리온은 올 3분기 실적발표를 통해 “렉키로나는 대규모 글로벌 임상 3상을 통해 안전성과 효능을 입증했다”며 “60분 단일 정맥 투여로 치료가 완료되기 때문에 편의성 측면에서도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셀트리온은 호주서 흡입형 렉키로나에 대한 임상 시험도 진행 중이다. 약물을 흡입해 기도 점막으로 항체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치료 효과를 낼 수 있다. 한 시간 동안 정맥을 통해 약물을 주입하는 현재 정맥주입형 대비 투약 편의성이 대폭 개선될 수 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흡입형 렉키로나가 출시된다면 병원을 방문할 필요 없이 자가 치료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셀트리온 관계자는 “의료서비스 비용이 많이 드는 국가에서는 정맥주입형보다 비용효율이 더욱 향상된 대안으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 (자료=셀트리온 3분기 실적 보고서)
▲ (자료=셀트리온 3분기 실적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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